Supersonic(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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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버전
US 버전
오아시스가 1994년 4월 발표한 데뷔곡.
1994년 4월 11일에 발매된 Supersonic은 영국 차트 31위라는 성적을 거둔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히트곡'의 기준을 차트 40위까지로 잡는 경향이 있고,[3] 락밴드는 보통 인기에 비해 싱글 차트 순위가 낮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4] 무명의 락밴드의 데뷔곡이 31위에 오른 것은 상당한 히트다. 이 31위는 오아시스가 2009년 해체할 때까지 발표한 모든 싱글 중에서 가장 낮은 순위이지만, 오히려 발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아시스의 대표곡 중 하나로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면서 2015년 현재는 영국에서 1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오아시스의 싱글앨범이다.[5] 한편 미국에서는 1994년 12월에 싱글로 발매되어서 빌보드차트 모던 락 부분에서 11위에 올랐다.
특별히 의미를 지니는 가사가 아니었기에 곡의 몇몇 구절을 둘러싸고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특히나 '엘사'를 두고 십대 매춘을 의미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만 노엘 갤러거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냥 스튜디오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데이브 스콧이 기르던 개의 이름이었다고(...) 그리고 엘사가 소화제(Alka-Seltzer)에 절어있다는 가사 역시, 실제로 그 개가 위장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쓴 것이라고(...)
1993년 12월 오아시스는 리버풀에서 그들의 첫 싱글을 녹음중이었다. 원래 녹음중이었던 곡은 Definitely Maybe의 또다른 수록곡이었던 Bring it on down. 하지만 당시 드러머였던 토니 맥캐롤이 제대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맥캐롤과 본헤드가 즉흥적으로 잼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삘을 받은 노엘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6] 이윽고 다시 Bring it on down의 녹음을 재개하려고 했는데, 당시 오아시스의 작업을 도와주던 리얼 피플의 멤버가 노엘이 흥얼거린 새로운 멜로디를 곡으로 써볼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Supersonic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Supersonic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데에는 다름이 아니라 맴버들이 밥먹고 정리하는 삼십분동안 노엘이 곡을 완성한 직후 '씨x, 초음속(Supersonic)이다.'라고 내뱉었기 때문이라고(...) 녹음도 제목만큼이나 초음속으로 진행되어서 작곡 11시간 후 만에 완료됐고, 이 버전이 그대로 발매되게 된다. 하단의 짤방은 Definitely Maybe 발매 10주년을 기념해 촬영된 앨범인 There We Were... Now Here We Are에서 Supersonic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밝히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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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버전
US 버전
1. 개요
오아시스가 1994년 4월 발표한 데뷔곡.
2. 발매와 반응
1994년 4월 11일에 발매된 Supersonic은 영국 차트 31위라는 성적을 거둔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히트곡'의 기준을 차트 40위까지로 잡는 경향이 있고,[3] 락밴드는 보통 인기에 비해 싱글 차트 순위가 낮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4] 무명의 락밴드의 데뷔곡이 31위에 오른 것은 상당한 히트다. 이 31위는 오아시스가 2009년 해체할 때까지 발표한 모든 싱글 중에서 가장 낮은 순위이지만, 오히려 발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아시스의 대표곡 중 하나로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면서 2015년 현재는 영국에서 13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오아시스의 싱글앨범이다.[5] 한편 미국에서는 1994년 12월에 싱글로 발매되어서 빌보드차트 모던 락 부분에서 11위에 올랐다.
3. 평가
4. 가사
특별히 의미를 지니는 가사가 아니었기에 곡의 몇몇 구절을 둘러싸고 각종 루머가 난무했다. 특히나 '엘사'를 두고 십대 매춘을 의미하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지만 노엘 갤러거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냥 스튜디오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데이브 스콧이 기르던 개의 이름이었다고(...) 그리고 엘사가 소화제(Alka-Seltzer)에 절어있다는 가사 역시, 실제로 그 개가 위장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쓴 것이라고(...)
5. 여담
- 노엘은 이 곡을 통하여 오아시스가 다른 밴드와 차별성을 둘 수 있었다고 해서 무척이나 좋아한다. 2009년 오아시스가 해체된 이후에도 공연에서 이 곡을 빼먹지 않고 연주할 정도.
- 싱글 커버에 보면 검은 기타 하나가 바닥에 뉘어져 있는데, 이 기타는 조니 마가 노엘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 상단에 위치한 UK 버전(영국) 뮤직비디오를 보면,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옥상인데 이것은 비틀즈 최후의 야외공연이었던 1969년 애플사 옥상 공연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 기타 솔로가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기도 한데, 진실은 저 너머에...
- 2016년 7월 12일에 드디어 상단의 뮤직비디오의 조회수가 1000만 회를 넘어섰다. (원래 Oasis 공식 채널에도 영국 버전의 뮤직비디오가 올라와 있었는데, 지금은 영국 버전은 볼 수 없고 미국 버전만 볼 수 있다. 이전에 올라왔던 영국 버전의 조회수는 약 1300만 회.)
-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2016년 10월 26일, 국내에는 11월 24일 개봉했다. 번역은 데드풀을 번역했던 황석희. 자세한 내용은 오아시스(밴드) #s-2.8참조.
5.1. 탄생 비화
1993년 12월 오아시스는 리버풀에서 그들의 첫 싱글을 녹음중이었다. 원래 녹음중이었던 곡은 Definitely Maybe의 또다른 수록곡이었던 Bring it on down. 하지만 당시 드러머였던 토니 맥캐롤이 제대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맥캐롤과 본헤드가 즉흥적으로 잼을 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삘을 받은 노엘이 새로운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6] 이윽고 다시 Bring it on down의 녹음을 재개하려고 했는데, 당시 오아시스의 작업을 도와주던 리얼 피플의 멤버가 노엘이 흥얼거린 새로운 멜로디를 곡으로 써볼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Supersonic이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Supersonic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데에는 다름이 아니라 맴버들이 밥먹고 정리하는 삼십분동안 노엘이 곡을 완성한 직후 '씨x, 초음속(Supersonic)이다.'라고 내뱉었기 때문이라고(...) 녹음도 제목만큼이나 초음속으로 진행되어서 작곡 11시간 후 만에 완료됐고, 이 버전이 그대로 발매되게 된다. 하단의 짤방은 Definitely Maybe 발매 10주년을 기념해 촬영된 앨범인 There We Were... Now Here We Are에서 Supersonic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밝히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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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앨범이 발매되기 약 일주일 전, 커트 코베인이 엽총자살을 했다. [2] White Label Demo라는 이름은 오아시스가 첫번째로 낸 EP가 이 버전이었는데 레코드의 라벨이 하얀색이라서 그렇다.[3] 일례로 영국 차트 순위 기록을 모아둔 DB 사이트 'everyhit.com'에서도 40위까지의 DB만 올라와있다.[4]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콜드플레이(Viva La Vida, Paradise)와 악틱 몽키스(I Bet You Look Good On Dancefloor, When The Sun Goes Down)도 UK 1위곡은 단 2개 뿐이고, 라디오헤드와 뮤즈는 아예 없다. [5] 심지어는 차트 1~2위를 차지한 The Hindu Times, Lyla, The Importance of being idle보다도 더 많이 팔렸다. 물론 2000년대 들어와 음반 시장이 크게 축소되었다는건 감안해야겠지만.[6] 다만 인터뷰 등에서 보면 당시 기타리프 등은 이미 미완이지만 가지고 있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