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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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CI. 사기(회사 깃발) 등지에 쓰이는 로고는 동그라미 3개가 합쳐진 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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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야쿠르트와의 합작사. 합작계약 당시 지분은 7(한국):3(일본)으로 하기로 하였고, 실제 지분은 61.8(한국):38.2(일본)으로 구성되어있다. 창립 초기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공동대표이사, 이사2명, 감사를 선임하였고, 일본에서 기술자들도 파견했다. 설립 초기 3년 동안 판매액의 3.5%를 일본 야쿠르트에 로열티로 지불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기업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논란을 의식해서 '지금은 거의 별개의 회사[2] 로 한국야쿠르트가 독립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고 보도자료와 sns를 통해서 알려왔다.
일본 야쿠르트 홈페이지에는 사업 진출국에 한국이 색칠되어 있다.#
1.1. 창업주와 5.16 쿠데타와의 관계
윤덕병 창업주는 군장교 출신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으며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된 박정희의 경호실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독재자인 박정희와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서 기업을 설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박정희, 5.16 쿠데타 사이의 관계는 '5.16 민족상'을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1966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쿠데타를 미화하기 위해서 설립한 '5.16 민족상 재단'에 윤회장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총 17차례에 걸쳐 7억 6500만원을 기부했다. 이는 지금까지 재단에 들어온 기부금 약 22억 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사실이 2012년 이후 여러차례 언론에 보도되어 한국야쿠르트와 팔도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자 재단은 홈페이지에 공개하던 기부금 현황과 명단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관련기사
2. 역사
설립 초기인 1975년 당시 광고.
1969년 5월, 군인 출신인 윤덕병(1927~2019) 창업주는 청계천 7가에 '삼호유업(三昊乳業)'을 세웠고, 6개월 후, '한국야쿠르트유업(주)'를 설립하였다. 그는 초대 사장으로 사촌형 윤쾌병 박사를 앉히고 실제 경영을 대표이사에게 맡겨왔다.
설립 초기만 해도 대중들은 야쿠르트가 뭔지도 몰랐고, 몇몇 소비자들은 "왜 병균을 돈 주고 마시냐"며 혐오감을 표했다. 본사는 대대적인 홍보를 위해 1971년부터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를 실시한 후 6월에 안양공장을 세웠고, 1976년에 비락우유(주)를 인수하고 중앙연구소를 세웠으며 1978년 평택공장 준공 후 화장품업체 호중화학(주)[3] 를 설립했다. 1982년 일본 라면스프 제조업체 이찌방식품과 기술제휴를 맺고 1983년 이천공장을 세워 '팔도라면'으로 라면사업에 진출했고, 1985년에 논산공장을 세웠다.
1995년부터 충남 천안공장을 세워 음료사업 진출 후 이듬해 법인명을 한국야쿠르트(주)로 바꾸고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97년에 비락으로부터 음료사업부문 인수 후 2004년에 파스퇴르유업을 인수했다.[4] 2006년에 나드리화장품을 대상그룹 계열사 UTC인베스트먼트에 팔며 플러스자산운용을 인수했고, 2009년에 능률교육을 인수한 후 2012년에 라면사업부문을 (주)팔도로 분리했다.
3. 국내 발효유의 역사 야쿠르트
야쿠르트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의 발효유의 역사. 출시 전인 1970년 야쿠르트 시제품이 생산됐지만, 당시에는 판매를 위한 제품 등록과 법적 기준도 부족했다.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이니만큼 정부 어느 기관에서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없었다고...그러나 정작 유산균 함량에 대한 정부의 규격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그 규격에 미달되는 제품을 만들어 팔아서 비판받았다. 시판 유산균음료 대부분 규격미달
야쿠르트는 출시 이후 다양한 기록을 양산. 국내 첫 유산균 발효유로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490억 병의 누계 판매량은 47년간 대한민국 국민(5000만 명 기준) 1인당 980회를 섭취한 양. 야쿠르트(가로 3.5㎝, 세로 7.5㎝) 490억 병을 위로 쌓으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40만 배 높이가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 고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데에는 소비자 중심의 착한 가격정책도 한몫한다. 1971년 당시 25원이던 야쿠르트는 47년이 지난 지금 180원으로 7.2배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버스요금이 86배, 담뱃값이 45배 오른 것과 비교된다. 당함량을 줄인 야쿠르트 라이트도 출시되었다.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30166#csidxf0b0ef25ba4b5c684268b760b26ed36
그러나 이러한 자화자찬은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다. 애초에 일본 야쿠르트의 기술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발효유'라는 것도 말장난에 가깝다. 그리고 야쿠르트 원료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설탕으로, 야쿠르트 1회 제공량 기준 당류 함량은 콜라 한 컵과 맞먹는 수준었다. 가격 상승률이 높지 않았던 것도 설탕 등 주요 원료가 세월이 지나면서 흔한 재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8,90년대 이후 요거트 타입의 고품질 발효유들이 시장에 속속 등장하면서 야쿠르트가 저급품으로 인식되자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함량을 줄인 버전이 출시된 것 역시, '건강음료'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유산균은 부족하고 설탕의 함량은 너무 높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4. 사업발전 일등공신, 야쿠르트 아줌마
2019년 3월 7일, 한국야쿠르트 창립 50주년을 맞아 정식 명칭이 야쿠르트 아줌마에서 '''프레시 매니저'''로 변경되었다. 기사
설립 초기만 해도 야쿠르트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라,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홍보 등에 소비자들의 발효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전략을 취하며 성장했다. 마트나 시장에 가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신선한 제품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야쿠르트 아줌마 조직의 장점이다. 한국야쿠르트는 방문판매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2014년 12월 냉장기능이 탑재된 탑승형 카트 ‘코코‘를 새롭게 도입했다. 코코 지급을 통해 야쿠르트 아줌마의 활동시간 단축은 물론 고객접점 증대를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문판매 활동이 가능해졌다. 관련기사
그러나 야쿠르트 아줌마들에 대한 한국야쿠르트의 대우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한국야쿠르트의 발전에 대한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야쿠르트 아줌마는 한국야쿠르트의 직원이 아닌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4대 보험, 퇴직금, 연차휴가 등의 혜택에서 제외되는 등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 매니저 항목 참조
5. 지배구조
2019년 기준.
6. 역대 임원
6.1. 삼호유업 대표이사
- 윤쾌병 (1969~1971)
- 이무학 (1969~1970)
6.2. 한국야쿠르트
- 명예회장
- 윤쾌병[5] (1989~2000)
- 회장
- 윤덕병 (1974~2019)
- 윤호중 (2020~ )
- 부회장
- 이은선 (2000~2003)
- 김순무 (2007~2009)
- 윤호중 (2012~2020)
- 양기락 (2013~2015)
- 최재문 (2017~2018)
- 대표이사 사장
- 윤쾌병 (1971~1989)
- 이은선 (1989~2000)
- 김순무 (2000~2007)
- 양기락 (2007~2013)
- 김혁수 (2013~2015)
- 고정완 (2015~2017)
- 김병진 (2017~ )
- 일본측 공동대표이사
- 소마 쇼지 (1971~1974/1980~1987)
- 히로타 코타로 (1974~1976)
- 에모토 분세이 (1976~1980)
- 쿠마타니 나오키 (1988~1994)
- 무라카미 이츠오 (1994~1997)
- 요시다 요이치 (1997~2000)
- 히라노 히로카츠 (2000~2002)
7. 기업정신
7.1. 1996년 이전
- 경영이념
'''건강사회건설'''
- 사훈
'''건강, 성실, 근면'''
- 신조
'''1. 국민보건에 기여하는 야쿠르트와 라면의 철저한 보급이 우리들의 임무다. 하루라도 빨리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애용받도록 노력하자.'''
'''2. 우리들은 우리 사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국가시책인 낙농업발전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자.'''
'''3. 우리들은 조직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다. 이 조직을 보다 견고하게 해서 훌륭한 것으로 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은 호흡하도록 노력하자.'''
'''4. 전원이 자기의 능력을 다하라. 신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 화와 협력으로 같이 자라자.'''
'''5. 판매점에게 풍부한 경제력을 갖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판매구역을 소중히 다루어 주도록 충분한 지도를 하자.'''
7.2. 1996 ~ 2014
- 창업정신
'''건강사회건설'''
- 기업이념
'''함께하는 활력사회'''
- 경영이념
'''고객감동의 실현, 혁신경영의 추구, 인간존중의 실현'''
- 사원정신
'''도전하는 나, 책임지는 나, 함께하는 나'''
7.3. 2014 ~
- 우리의 정신
'''건강사회건설'''
- 우리의 가치
'''신선한 가치, 건강한 습관'''
8. 사가
8.1. 1996년 이전
8.2. 1996년 이후
작사는 사원 공모에서 뽑았으며, 작곡은 최영섭이 맡았다.
9. 주요 판매 물품
9.1. 야쿠르트 등 발효 음료와 유제품
야쿠르트, 얼려먹는 야쿠르트, 윌, MPRO3, 쿠퍼스, 슈퍼100, 하루야채, 발휘(홍삼 브랜드), 브이푸드(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등이 있다.
이 상품들이 한국야쿠르트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한국야쿠르트 하면 항상 떠올리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고급 이미지도 함께 떠오르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앞에 언급한 것처럼 '''프레시매니저'''란 판매전략. 주요 슈퍼에선 팔지 않고 오로지 '''프레시매니저'''의 전동카트에서만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한 몫 했다. 간혹 '''슈퍼에서 판매하는 제품'''(그랜드, 콜드브루 등)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꿋꿋하게 아주머니에게서만 구매할 수 있다.
9.2. 식품 및 음료
2012년 1월 1일부터 별도 법인으로 분사했다. 팔도 항목 참고. 팔도비빔면, 팔도짜장면 등 라면류와 비락식혜 등 음료류를 판매한다. 2018년 11월 6일 정지선 셰프와 콜라보해서 누룽지마라두부, 우육면 키트를 선보였다.
별도로 한국야쿠르트 자체에서 생산하는 잇츠온이라는 즉석식품이 있다.
9.3. 콜드 브루
2015년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쉽 우승자인 찰스 바빈스키와 협업하여, '콜드 브루 by 바빈스키'라는 브랜드로 완제품 2종(아메리카노/라떼)과 앰플 1종을 2016년 3월부터 출시했다. 2016년 11월에는 뜨거운 물에 타서 먹는 '콜드 브루 by 바빈스키 Red'가 출시되었다. 이후 차가운 물에 타서 먹는 '콜드 브루 by 바빈스키 Blue'가 출시되면서 앰플이 단종되었다.[6] 2017년 3월부터 마켓오와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지면서 콜드브루 아메리카노/라떼 X 생브라우니/생크림치즈롤 세트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2017년 4월에는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출시 1주년을 맞이하여 마카다미아 라떼와 다크를 출시하여 라인업을 확대하였다.
콜드 브루(Cold Brew) 방식은 원액의 추출이 오래 걸리는 반면에 유통기한은 짧아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기에는 까다로운 조건이 많다. 레시피 자체는 브랜드명에서 알 수 있듯이 상온에서 원액을 추출하는 방식이며, '로스팅 후 최고의 커피 맛과 향이 살아있는 기간인 10일 동안만 구매 가능하다'는 정책을 표방하여 제품 겉면에 로스팅 일자가 표기된 스티커를 부착하여 판매한다.
주문 및 구매는 야쿠르트 아줌마나 대표번호,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가능하였으나 일부 세븐일레븐과 스토리웨이 지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9.4. 단종 상품
10. 스폰서
10.1. 한국야쿠르트 7even 프로야구
2013년 한국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로 계약하였다. 2012년에는 자회사인 팔도가 스폰서였는데, 나름 성공적인 스폰서 계약이라 판단되었는지, 2013년에는 모기업인 한국야쿠르트가 타이틀 스폰서가 되었다.#
2014년에도 같은 브랜드로 스폰서 계약을 했다.
10.2. Fredit BRION
2020년 League of Legends Challengers Korea 소속 브리온 블레이드의 네이밍 스폰서로 계약하였다.#
11. 계열사
- 해산/매각
12. 공익재단
- 우덕윤덕병재단
[1] 등기상 설립연도.[2] 회사 로고도 타국의 야쿠르트와는 차이가 있다.[3] 훗날의 나드리화장품. 중간에 '가양(佳養)'이라는 사명을 사용했다.[4] 2010년에 롯데삼강으로 매각함.[5] 윤덕병 회장의 사촌형으로 건국대 수의대학장을 역임했다.[6] 앰플은 플라스틱 병에 원액 27ml가 담겨 있었으며 가격은 1,500원이였다. 콜드브루 레드와 블루는 원액 12ml 짜리 스틱이 총 6개가 있으며 가격은 3,000원이다. 가격은 두배 올랐지만 포장방식이 바뀌면서 ml당 가격이 떨어져 가성비가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