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셔브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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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산)'''의 Camp III에서 촬영한 '''가셔브룸 연봉'''. 왼쪽에서부터 '''가셔브룸 I, II''', III봉, 그리고 화면 가장 오른쪽의 봉우리가 '''브로드피크'''이며, 이 중에서 4번째 봉우리인 '''가셔브룸 IV봉'''의 등정 난이도가 독보적이다.
그냥 옆 산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K2와 가셔브룸 산의 사이에는 '''세계 최대의 빙하인''' 발토로 빙하가 흐르고 있다.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1. 개요
파키스탄 카라코람 산맥의 발토로 빙하 발원지에 있는 '''복수의 8천미터급 봉우리들'''을 보유한 산.
가셔브룸은 발티어로[2] '아름다운 산'을 의미한다. 에베레스트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복수의 8천미터-14좌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8천 미터급 봉우리를 가진 산이며,[3] 유일하게 '''3개'''를 가진 산이다.[4] 세계 제2의 고봉 K2(산) 와 발토로 빙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서쪽에 있는 히스파 산군과 더불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군으로 칭하기도 한다.[5]
2. 가셔브룸 산군
가셔브룸을 구성하는 봉우리는 다음과 같다.
- 가셔브룸 I봉 (8,080미터)
- 브로드피크 (8,051미터)
- 가셔브룸 II봉 (8,035미터)
- 가셔브룸 III봉 (7,952미터)
- 가셔브룸 IV봉 (7,925미터)
- 가셔브룸 V봉 (7,147미터)
- 가셔브룸 VI봉 (6,979미터)
아래는 K2와 가셔브룸 연봉들의 위성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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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가셔브룸 I
가셔브룸의 최고봉으로 세계에서 11번째로 높으며 본 항목에서 다루는 다른 두 봉우리인 가셔브룸 II봉과 브로드피크의 지형학적 모체가 되는 봉우리이다. 구경하게 제일 힘든 장소에 있어서 '''히든 피크'''라고도 불린다. 실제로 K2에서 남동쪽으로 브로드피크-가셔브룸IV-가셔브룸III-가셔브룸II-가셔브룸I의 순서로 떨어져 있다. 가셔브룸IV-가셔브룸III-가셔브룸II 세 봉우리는 3km 이내에 있는데 가셔브룸II와 가셔브룸I은 7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의 8천 미터대 거봉들 중 유일하게 중국과의 국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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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바라 본 가셔브룸 I
1958년 미국 국적의 산악인인 앤드류 코프먼과 피트 쇠닝이 초등정에 성공했다. 여담이지만 미국인이 초등정 기록을 가진 유일한 8천미터급 봉우리이다.
1975년에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와 오스트리아의 피터 하벨러가 '''순수 알파인 스타일'''[8] 로 가셔브룸 I봉을 등정했으며, 이로써 가셔브룸 I은 8000미터급 봉우리 중 최초로 알파인 스타일로 정복된 봉우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 충남산악연맹 소속 박혁상 대원이 초등에 성공했다.
가셔브룸 I에 대한 자세한 등정 보고서는 2008 한국 전남대학교 가셔브룸 I/II 원정등반보고서로서 여기서 구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슬라마바드, 스카르두를 거쳐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부터 시작해서 등정 과정까지 매우 세세하게 나와 있으므로 혹시나 갈 사람이 있으면 참고하도록 하자.
2.2. 가셔브룸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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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세계에서 13번째로 높으며, 가셔브룸의 8천 미터가 넘는 세 봉우리들 중 등정 난이도가 가장 낮다. 네팔의 히말라야를 포함해서 8천 미터급 봉우리 14개 중 에베레스트와 초오유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등반객 수를 자랑한다. 에베레스트는 상징성 때문이고 초오유와 이 봉우리는 쉬워서(...). 아래 사진과 같이 급한 경사면이 별로 없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경사가 완만해진다. 베이스캠프는 5300m인데 실제 등반의 시작점인 캠프1은 5900m에 있다. 정상 8035m까지 2000m 남짓으로 그리 높지 않으며 경사도 완만하다. 대부분의 등반은 왼쪽 눈과 바위의 경계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꼭대기 피라미드 밑을 오른쪽으로 지나서 정상에 오르는 루트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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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번째 사진을 보면 꼭대기가 피라미드처럼 생겼는데 칼로 잘라놓은 것처럼 매끄럽다. 아래 사진에서 피라미드처럼 생긴 가셔브룸 II의 정상 왼쪽 봉우리가 가셔브룸 III의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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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네팔 히말라야를 포함한 등정 난이도도 초오유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물론 전문 산악인들 한정이지 일반인들에게는 절대 아니다.''' [9]
1956년 프리츠 모베락 등 3명의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초등정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991년 성균관대OB산악회와 울산산악연맹 원정대가 연달아 등반에 성공했다.
가셔브룸 III봉이 별도의 봉우리가 아닌 가셔브룸 II봉의 부봉우리에 불과하다는 논쟁도 있다.
아래 영상은 가셔브룸 II의 북벽 등정 영상인데 다른 산들의 북벽과 마찬가지로 가셔브룸 II의 북벽도 등정하기 꽤 까다롭다.
2.3. 가셔브룸 III
네팔 히말라야의 6위봉 초오유와 연봉을 이루고 있는 갸충캉과 함께 '''비-8천미터급 산 중''' 가장 높다. 가셔브룸II의 남쪽 사진에서 정상 바로 왼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가셔브룸III의 정상이다. 확대해 보면 아래 사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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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전설적인 여성 산악인 반다 루트키에비치에 의해 초등. 등반대는 전원 여성만으로 꾸려진 여성 등반대였으며 지금도 여성 산악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2.4. 가셔브룸 IV
세계 17위봉. 등정난이도만 치면 K2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봉우리로서 특히 전설적인 서벽, 이른바 '빛나는 벽(Shining Wall)'은 수많은 뛰어난 클라이머들을 삼켰다. 아래 사진이 발토르 빙하에서 바라 본 서벽(West face), 즉 빛나는 벽의 모습이다. 이 벽이 빛나는 벽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오후 늦게 해가 질 때 석양이 비춰져 노란색으로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
카라코람 산맥에 있는 거봉들, 즉 가셔브룸 연봉이나 브로드피크, K2 베이스캠프에 가기 위해서는 발토르 빙하로 가야 하는데 베이스캠프에 가까이 가면 눈 앞에 가장 확연하게 보이는게 바로 이 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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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빨간선이 북서마루(NorthWest Ridge)로서 1986년 그렉 차일드[10] , 톰 하기스, 팀 매카트니가 처음으로 등정한 루트이다. 이후 1999년에 세계에서 두번째로 강연룡, 윤치원으로 구성된 한국등반대가 다시 올랐다. 자세한 등정기는 여기를 참고하시길.
사진에서 파란선이 폴란드의 전설적인 산악인 부르티에 쿠르티카와 오스트리아의 로버트 사우어가 1985년 알파인 스타일로 처음으로 서벽 등정에 성공한 루트이다.[11] [12] 이들의 서벽 최초 등반은 현대 등반사에서 가장 용감하고 훌륭한 등반으로 평가받는다. 쿠르티카의 삶과 등반은 전기로도 출판되어 있으며 한국어로도 발매되었다[13] .
사진에서 노란선은 1997년 조성대 원정대장과 유학재 등반대장이 이끄는 한국팀이 중앙스퍼를 통하여 등정에 성공한 루트이다. 이들은 1995년에 북서마루 루트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정상을 190m 정도 남겨둔 7800m 지점에서 악천후로 인해 하산을 결정하는 바람에 실패했었다. 이들은 2년 후 1997년에 IMF라는 암울한 경제 상황, 그리고 눈사태로 베이스캠프에 있던 장비와 식량의 대부분이 사라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여 등정에 성공하였다. 이 등반으로 다른 나라 등반팀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도했던 사람들도 숱하게 실패했던 중앙스퍼 루트를 세계 최초로 개척하였다. 그에 따라 중앙스퍼 루트는 "코리안 다이렉트"#로 명명되었으며 아메리칸 알파인 저널에 공식적으로 기재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등반은 한국 산악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책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로 출판되었고 2012년에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들의 등반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칭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내 분위기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심지어 당시까지도 정상에 올랐는지의 여부에 따라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등정주의가 만연한 풍토에서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없다는 이유로 동료 산악인들 사이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는 의심까지 받아야 했다. 거기에 개인의 사재까지 털어서 등반 비용을 조달했던 조성대 원정대장의 자금 유용 논란까지 있었다. 물론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등반을 한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반응에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이러한 의심과 논란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후 이들의 등반가로서의 삶은 많이 위축되었다.
2.5. 브로드피크
가셔브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정상 부분이 다른 봉우리에 비해서 '''많이 널찍하기 때문에'''[14] 그냥 넓은 봉우리라는 뜻의 브로드피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래 사진은 K2에서 찍은 브로드피크 사진인데 봉우리 부분이 정말 넓다. 발토르 빙하를 사이에 두고 K2와 마주보고 있다. 현지어인 발티어로는 '''파르찬 캉리'''라고 불린다. 종종 국내 서적 중에도 브로드피크라는 명칭 대산 파르찬 캉리 산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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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 1, 2, 3봉 등과는 애매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사실 브로드피크가 가셔브룸 연봉에 속하는지 안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좀 있다. 일단 영문 위키백과에는 '''Gasherbrum'''이라는 한 문서로 묶여 있고 또 봉우리 별로 각각 항목이 있다. 거리상으로 보면 가셔브룸 IV와 브로드피크의 정상은 7km 정도 떨어져 있고 가셔브룸 IV와 가셔브룸 II는 3km 정도 떨어져 있다.
일반적인 등반 루트는 위의 사진에서 오른쪽 벽, 즉 남쪽 사면에 있다#.
1957년 헤르만 불[15] , 쿠르트 디엠베르거[16] , 프리츠 빈터슈텔러 등 4명의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초등정에 성공했다.
1988년 한국악우회 장용일 대장의 한국등반대가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 중에 눈처마가 무너지면서 장용일 대장이 3천미터 낭떠러지로 추락하면서 사망했다. #
1995년 빛고을 원정대가 한국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에 성공한다#. 다만 하산 과정에서 박현재 대원이 눈사태로 사망했다.
2007년 7월 고미영 대장은 단 한 차례의 시도만에 등정에 성공했다#. 이 등정은 2006년 10월 초오유 등정 이후 9개월만이며 5월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두 달만이다. 이후 몇달만에 시샤팡마에 등정한다.
2008년에는 오은선 대장이 로체 무산소 단독 등정 이후 두 달만에 브로드피크 무산소 단독등정에 성공했다#.
막스 베르거라는 사람이 K2와 브로드피크에 등정한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 왔다.#
3. 트레킹
파키스탄은 일단 전 지역 외교부 철수권고가 내려져 있는 상태.
설령 간다고 해도 상당히 힘들다. 일단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내려서 차를 타고 마지막 기착지인 아스콜(Askole)까지 가는데 10일, 아스콜에서 가셔브룸 베이스캠프까지 가는데 걸어서 7~10일 정도 걸린다. 이 과정에서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빙하가 녹아서 흘러 내리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이 물에는 돌가루가 섞여 있어서 이 물로 음식을 하게 되면 설사를 하게 된다. 거기에 발토르 빙하까지 가는 길의 고도가 4000m 이상이기 때문에 고산병을 반드시 겪게 된다. 자칫하면 베이스캠프에 가기도 전에 고산병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발토르 빙하에 있는 베이스 캠프의 고도가 4800m이다. 트레커들을 위한 설비도 빈약하고, 또 국경분쟁지역이니만큼 위험성도 있다. 네팔의 안나푸르나나 랑탕과 같이 인기있는 곳을 상상하고 가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트레킹 루트 중 가장 높다는 지점인 '''해발 5,900미터의 곤도고로 라(Gondogoro La)'''가 있고, 초고리사, 마셔브룸, K2(산), 가셔브룸 산군과 발토로 빙하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 카라코람 소재 8천미터급 중 최다[2] 티베트어의 분파[3] 물론 에베레스트와 등반로의 대부분을 공유하는 로체를 에베레스트의 한 봉우리로 친다면 성립하는 말이다.[4] 브로드피크를 가셔브룸 산의 일부로 봐야 하는지는 약간 논란도 있다. 다른 봉우리들보다 '''아주 조금'''(...) 더 떨어져 있기 때문. 일단 위키피디아의 가셔브룸 산 문서는 브로드피크를 포함해서 'Gasherbrum'으로 묶여 있다. 물론 별도의 봉우리 항목도 다 따로 있다.[5] 세계에서 가셔브룸 연봉 다음으로 높은 산군이다. 이곳에서 7,000m대 산은 흔한 높이이며 기본 7,500m 이상이다.[6] 해발 7,821m로 역시 세계 22위의 고봉이다.[7] 초고리 혹은 람바 파하르 라고 불리기는 하는데 전자는 발티어로 '큰 산', 후자는 우르두어로 '높은 산'이라는 뜻이다(...). 즉 현지 기준으로도 따로 산 이름이 붙지 않고 그냥 '이름모를 고산' 정도로 불리고 있었던 것. 실제로 K2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육안으로 관측되지 않으며, 걸어서 접근하는 것도 발토로 빙하 때문에 거의 불가능했을테니까 서양 측량사들이 오기 전까지 현지인들이 그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어도 이상할 이유는 없다.[8] 현지인 포터 없이, 요리사 없이, 말이나 야크 없이, 텐트 포함 모든 것을 등반객이 짊어지고 올라가는 방식.[9] 8000m 14좌 등반에서 등반 난이도에 상관없이 위험한 것이 고산병이다. 일반적으로 가셔브룸이나 K2, 브로드피크에 가기 위해서는 아스콜리에서 발토르빙하까지 10일 동안 걸어서 가야 한다. 아스콜리의 고도가 3000m이고 K2와 가셔브룸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발토리빙하는 고도가 4500m이다. 이 과정에서 고소 적응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고산병으로 맛이 가면 등반이고 뭐고 없이 그 즉시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거꾸로 베이스캠프까지 가면 그나마 고속 적응이 된 것으로 봐도 된다.[10] 1990년 K2의 가장 어려운 등반루트인 North Ridge를 두번째로, 그것도 알파인스타일로 등정한 사람이다. 이 사람 이후로 K2의 North Ridge 루트로 등정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11] 이들은 서벽을 극복한 이후 정상까지 90m를 남겨 놓고 정상까지 가지 않고 그대로 하산했다고 한다. 정상까지는 평이한 설릉이었는데 그들이 정상까지 가지 않은 것은 서벽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의 업적이 더욱 높이 평가받는다. # [12] 참고로 일반적인 등반은 베이스캠프-캠프1-캠프2-캠프3-... 이런 식으로 정상까지 가는 동안 중간에 여러 개의 캠프를 차려 놓고 식량과 장비를 가져다 놓은 후 고소 적응을 위해 캠프들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또는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면서 이루어진다. 돈이 많은 등반팀은 캠프들에 식량과 장비를 옮기는 데 셰르파들을 고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문적으로 짐을 나르는 등반대원을 별도로 데리고 간다. 이에 비해 알파인스타일은 간단한 등반도구와 식량(길어야 3일분)만을 가지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등정을 시도한다. 당연히 일반적인 등반에 비해 알파인스타일이 훨씬 더 힘들다. 일반적인 등반에서는, 날씨가 허락하고 고소 적응만 된다면, 등정 루트를 잘 알고 있는 셰르파에게 앞장 서게 하고 셰르파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셰르파 꽁무니만 따라가도 정상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등산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순간의 상황 판단 조차도 셰르파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알파인스타일에서는 잘 알려진 루트조차도 매순간의 위험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는 판단을 내려야 하며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통 3일 내에 등정을 완료해야 한다.[13] Art of Freedom, 히말라야 미니멀리즘의 개척자 부이테크 쿠르티카, 하루재클럽 # [14] 정상으로 간주되는 영역이 1.5km가 넘는다![15] 낭가파르바트, 브로드피크 초등[16] 다울라기리, 브로드피크 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