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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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베레스트는 네팔과 중국(티베트 자치구)의 국경선 지역에 위치한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8,848 m)[10] 으로 '''세계의 지붕(the roof of the world)'''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네팔어 명칭은 사가르마타(सगरमाथा: 하늘의 이마), 티베트어 명칭은 초모랑마(ཇོ་མོ་གླང་མ: 세상의 어머니)이다. 중국어에서는 티베트어 명칭을 음차해 주무랑마 봉(珠穆朗玛峰)이라 한다. 1852년경 세계 최고의 산임을 확인할 당시[11] 동인도회사의 측량국장은 앤드루 워 경(Sir Andrew Scott Waugh/1810~1878)이었다. 그는 토착 지명의 보존을 장려하는 영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을 따르지 않고 전임국장인 조지 이브리스트 경(Sir George Everest/1790~1866)[12] 의 공적을 기려 그의 성씨를 붙여 명명한 이후에 비로소 에베레스트 산으로 알려졌다.
이후 전세계 고산들이 차츰 서양인이 지은 이름에서 현지 지명으로 정정하는 추세인데도[13] 여기는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으로 계속 통용된다. 워낙 에베레스트 명칭이 확고한 데다가, 현지 지명도 남쪽 네팔 이름과 북쪽 티베트 이름이 따로 있어 에베레스트를 밀어낼 후보 단일화가 안 되기 때문이다.[14]
2. 높이?
8,848m냐 8,850m냐는 논란이 많은데, 일단 최근의 GPS 측량 결과로는 후자가 실제 높이에 근접한 값이라고 한다. 다만 눈과 얼음에 의해 어느 정도의 오차는 난다고 하니 대충 이 정도 높이라고만 알아두자. 중국에서 측량한 결과를 인용하자면, 정상의 암석부의 높이가 8,845m, 그 위에 3~5m 정도의 녹을 일이 없는 얼음층이 덮여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륙의 이동으로 인해 원래 시간이 가면서 미세하게 조금씩 높이가 높아진다.
해수면 아래부터 재면 하와이 마우나케아[15] 가 더 높지만, 사실 에베레스트도 같은 방법으로 재면 항상 더 높고, 지구 중심부터 재면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16] 이 더 높다.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해수면'''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산이라는 의미다.[17]
2020년 중국, 네팔 공동으로 측량 발표 결과로는 8,848.86m로 60년만에 다시 수정했다.#
3.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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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티벳)쪽 상공에서 본 루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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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네팔)쪽 상공에서 본 루트
2009년 한국대의 북서벽 초등루트의 대장은 박영석 대장.
1975년 영국대의 북서벽 초등루트의 대장은 크리스 보닝턴 경.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산이기도 하나 등정 난이도는 유명세에 비해서는 낮다. 워낙 여러 사람들이 올라가서 길도 훤한 데다 등정하기 쉽도록 시설 같은 것도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산세나 주변 지형 자체가 비교적 등정하기도 쉽고[20] .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8000 m 고봉들 기준이니 오르기 쉽다고 함부로 도전하지는 말자. 어쨌거나 세계에서 오르기 어려운 산들 중 하나다. 산악인들 외에는 오르기 힘들다.
특히 올라가기 쉽다고 하는 이 산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고산병을 비롯하여 엄청난 강풍에 전문가들도 고전하기 일쑤며, 2011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여길 오르다가 영원히 혹은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으며, 또한 도중에 몸이 아파서 병원으로 가던 도중 숨진 사람도 따로 또 많다. 2015년에도 24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정상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참고로 2000~2010년까지만 해도 여기에서 등산 도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60명이 넘는다.[21] 등반 또는 하산 도중에 숨진사람들의 시신은 회수하기 어려워 사망한 자리에 방치되고, 이후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지표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Green boots 등 복장의 특징으로 명칭이 붙은 경우도 있다.)
일단 사람의 체중과 장비 무게도 무게이지만, 이렇게 동사(凍死)한 시신의 경우 눈과 얼음이 쌓여 100kg이 넘는 무게를 갖게 된다. 남극에서 사망한 로버트 스콧의 시신도 비슷한 이유로 가져오지 못하고 현지 매장했다. 사망할 상황이면 극한 상황이라는 뜻이므로, 같이 등반한 대원들도 본인이 살아남기 급하니 시신을 끌고 내려올 수가 없다. 시신 회수를 위해 등반대가 다시 가는 일도 있지만, 비용만이 문제가 아니라 조난이나 탈진될 만큼 위험한 곳이면 회수 팀도 숨질 수가 있어서 가기 어렵다.
고도가 높아 춥기 때문에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미라화 되거나 '''반쯤만 부패하거나 풍화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골짜기에 떨어져 죽은 경우엔 빙하에 묻혔다가 수십 년 만에 하류로 밀려 내려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버려진 시신이 에베레스트에만 200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에게 미라나 시체는 질리게 봐서 봐도 그리 놀라지 않는다고 할 정도. 헬리콥터를 써서 가져오면 되지 않나 생각할수 있는데, 고산은 기후 변화가 극심하고 바람이 심해서 비행이 매우 위험하다. 고산 등반을 그린 K2 영화에서도 위험해 헬기가 뜨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에베레스트 정상에도 연이틀 헬기가 착륙한 기록이 있으니 굳이 가져오자면 기상상태 좋은 날을 골라 시도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부상자도 아닌 이미 죽은 시신을 회수하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단체는 드물다.[22]
에베레스트 오염의 심각성이 대두된 최근에 와서는 청소 등반대가 8천미터 이상에서도 시신과 쓰레기를 회수해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고도와 환경이 맞으면 헬리콥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2018년작 영화 Death Zone: Cleaning Mount Everest는 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
등반로 중 특히 북동쪽의 3개 봉우리를 넘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난이도가 상당한데, 여러 등산가들이 이 고난이도 루트로 도전했다가 죽는 바람에 시체 밀집 지역이 되어버려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많다고 우스갯소리로 '무지개 계곡(Rainbow Valley)'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특이하게도 실족이나 사고로 인해 부상을 당해 사망한 시체보다 고산병으로 인해 겉모습만 보면 그냥 멀쩡한 상태로 가만히 죽는 경우가 많으며, 캠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위치, 즉 누군가가 부축해 주거나 끌고 와 주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에서도 이렇게 죽은 시체가 많다. 등산가들의 수기를 읽어 보면 이렇게 죽는 사람들은 극한의 환경과 산소 부족으로 인한 판단력 저하로 인해 더 이상 나아갈 의지를 잃고 그냥 그 자리에 앉거나 누워서 무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제3자가 보기엔 마치 멀쩡한 사람이 뭔가에 홀린 듯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는 것처럼 보이기에 섬뜩하다고. 데스존에서 배낭만 남겨져 있는 경우 항상 시신은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다고 하는데 #관련영상1 배낭을 벗어던지고 걸어가다 쓰러지는 등반가를 상상하면 섬짓하다. #관련영상2
우리나라도 2004년 계명대학교 등산부팀이 여기 등정에 도전했다가 산악인 박무택, 장민, 백준호 3명이 사망했다. 3인의 사망 경위는 다음과 같다. 박무택과 장민 두 사람이 정상등정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해발 8,500m 지점에서, 장민은 탈진하고 박무택은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박무택은 후배 장민을 먼저 내려보내고, 산소 없이 밤을 지샌다. 그러나 장민은 하산 도중 실종됐다. 이를 무전을 통해 알게 된 베이스 캠프에서 백준호와 셰르파 한 명이 박무택을 구조하러 가지만, 박무택은 동상이 심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결국 셰르파는 먼저 하산하고 백준호는 박무택의 곁을 지키다가 홀로 하산했지만, 백준호마저 하산 도중 실종되어 세 명이 사망했다.
박무택과 절친한 사이였던 선배 산악인 엄홍길은 이 소식을 듣고 1년 뒤에 위에 언급된 3명의 시신을 찾아오려는 휴먼원정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23] 전문 산악인 수십 명이 70일 가까이 진행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경비 마련을 위해 여러 기업과 언론사에서 스폰을 받게 되고 이들이 동행하면서 규모가 더욱 커졌다. 유례가 없는 시도로, 세계적인 등산가인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불가능하다며, '같이 산에서 죽어 묻히려는 것'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고로 메스너도 아우인 귄터 메스너[24] 를 비롯하여 많은 친구와 동료를 여러 히말라야 산맥에서 잃었다.[25] 만약 이 원정대가
기적적으로 무사히 시신을 모두 찾아왔다 하더라도 원정대의 성공에 고무받은 세계의 많은 산악인이 덩달아 도전한다고 한다면 또다시 많은 희생자가 생겨날 것이 분명했기에 이 도전을 만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원정대는 실종자 2명은 끝내 찾지 못하고, 위치가 파악된 박무택의 시신을 운구하는 데 집중했다. 마침내 정상 부근에 도착한 원정대가 박무택의 시신을 떼어내고 로프를 이용하여 십여 미터 밑으로 옮기는 데에는 성공하나, 얼어버린 시신의 무게가 상당했고 예보와 달리 기상이 급격히 악화되어 원정대원들의 안전이 위협되는 상황이 되자 더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결국 등반대장이던 엄홍길의 결정으로 시신을 전망이 좋은 양지로 옮기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아 간소한 돌무덤을 만들어주고 대원들은 하산한다. 대원들은 유가족들이 챙겨준 유품들을 태우며 노제를 지내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 했다. 참고로 이 휴먼원정대에서조차 희생자를 냈는데, 격려차 헬기로 캠프에 방문한 전문 산악인이던 계명대학교 산악회장 한승권이 고산병으로 급사했다. 이 휴먼원정대 프로젝트를 다룬 황정민 주연의 영화인 히말라야가 2015년 12월 개봉했다.
그 밖에도 2007년에도 산악인 이현조, 오희준이 등반 도중 낙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며,[26] 2013년에도 에베레스트 등반을 끝으로 14좌 완등을 끝낸 김창호 대장이 이끄는 등반대원 중 산악인 서성호가 하산 중 8,050m 지점에서 취침 도중 고소증과 탈진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 원정대는 '''무산소 등정'''을 하고 있었다.(정확히 말하면 김창호 대장과 서성호 대원 두 명만.) 하산 이후 캠프 4 지점에서 쉬고있던 서성호 대원의 상태가 좋지 않아 동료들과 셰르파가 산소 마스크를 쓸 것을 권유했지만 서 대원은 끝까지 거부했고 결국 취침 도중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건너고 말았다. # 이처럼 많은 경험과 기술이 있는 전문 산악인들도 위험한 곳에서, 일반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돈 많고 산은 오르고 싶은데 체력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약 5만 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정상까지 '''운반'''해주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한다. 등반 전문 사이트의 평가에 따르자면 '''높이가 가장 큰 문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붐빈다는 것도 난이도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한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에베레스트'가 다룬 1996년의 상업 등반대가 몰려 생긴 참사도 도리어 에베레스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 년에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수백 명 단위이며, 한 여름 등산 시즌에는 베이스캠프에만 상업등반대 1천여 명이 운집하며 하루에도 20여 개 팀씩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산을 향한 숭고한 도전 따위는 개뿔... 심지어 가이드가 돈 받고 정상에 오른 뒤 하산 도중에 힘들어하는 고객을 버리고 내려오고, 그거로 모자라서 그 죽은 고객의 고급 침낭을 가지려고 한 사례까지 있다.[27]
이외에도 등반하면서 베이스캠프부터 세우는 4, 5개 전진 기지를 세울 때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거나(이럴 때는 등반용 도끼 같은 도구들이 훌륭한 무기가 된다), 하산 중에 자기 산소가 모자라면 아무 텐트나 뒤져서 산소통을 갖고 가거나[28] , 베이스캠프에서는 그 지역 여인들이 와서 매춘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떤 등산인은 베이스캠프에서 진상 짓을 하는 다른 등산인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블로그에 썼는데, 그 진상이 금방 그것을 읽고 열이 뻗쳐서 자기가 고용한 셰르파들을 등산용 도끼로 무장시키고 찾아오는 바람에, 자기 셰르파들이 똑같이 도끼를 들고 지켜주지 않았다면 베이스캠프가 무덤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에베레스트의 진실> by 마이클 코더스
사우스콜 - 8,790m 지점의 힐러리 스텝. 아주 미어 터진다. 동일한 지점의 또 다른 사진[29] / 남동릉 노멀 루트의 성수기 때 사진을 보면 아주 한 줄로 줄을 주르르르륵 서 있다. 그러나 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인해 빙벽이 붕괴되면서 비탈 경사면으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수직 암벽 등반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게 되었지만 등반 경로가 제한적이라 병목 현상으로 인해 등산, 하산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났고 지반이 불안정해져 붕괴될 우려가 더 커졌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은 의외로 넓어, 가족용 식탁이나 당구대 정도 면적이 있다. (별로 안 넓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산들 중에는 정상에 사람 한 명이 올라설 자리도 간신히 나오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에베레스트에서는 정상에서 등반대 전원이 함께 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도 근처에 높이가 엇비슷한 봉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가 세계의 지붕이다!"라는 감흥은 의외로 잘 와닿지 않는다고. 이런 느낌은 K2가 최고라고 한다.
지나치게 등산객이 많아지자 네팔 정부에선 결국 등정 자격을 크게 제한하는 조치를 내렸다. 허가비를 기존 1만 1천 달러에서 3만 5천 달러로 늘리고, 해발고도 6,500m 이상 등반 경험이 있는 등산객에게만 등반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4. 최초의 완등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30]
공식적으로 최초로 '''정상에 등정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1953년 등정에 성공한 뉴질랜드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31] 와 네팔인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32] 다. 이 둘이 동시에 꼭대기에 발을 닿으면서 동시 등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우리 둘이 동시에 등정했으니 어느 한 사람만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나중에 힐러리가 식구들에게 밝히는 바에 의하면 원래 경쟁적으로 서로 등정했더라면 노르가이야말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늘 앞서 있었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가 앞서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음에도 늘 나를 배려했고 같이 오르자고 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문헌에서는 정상을 앞두고 있던 노르가이가 멈춰서서 힐러리에게 양보했다는 얘기도 있다. 힐러리는 셰르파야말로 등산가의 친구이자 분신으로서 대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하며, 셰르파의 권익 향상에 힘썼다. 지금도 힐러리의 이름을 딴, 셰르파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가 있다고. 힐러리는 평생 노르가이와 친한 친구로 지냈으며 노르가이가 먼저 죽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여 슬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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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는 아니지만, 1978년 5월 8일에 산소 봄베 없이 처음 등정에 성공한 독일계 이탈리아 등반가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도 산악인들 사이에는 상당한 유명인이다. 메스너는 8000 m급 봉우리 14곳을 최초로 완등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다만 칸첸중가 등정을 두고 오은선의 증거부족을 문제 삼지 않고 대충 얼버무렸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전에도 1924년에 영국의 조지 말로리와 앤드루 어빈이 최초로 정상 등정에 도전하여 등정에는 성공하였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 던 것인지, 아니면 올라가다 실패한 것인지는 오랫동안 산악계의 뜨거운 논란거리였다. 현재에는 등정에 실패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들이 세컨드 스텝을 오르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베이스 캠프에서 목격된 후 실종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그 당시의 장비와 등반 기술로는 세컨드 스텝을 돌파할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그들이 등정에 성공했으면 무언가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상에 그들이 남긴 이렇다 할 흔적 역시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봐서 세컨드 스텝 돌파 중 추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 블로그. 영국은 둘의 유해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매년 파견해왔으며, 말로리의 유해는 실종된 지 75년 만인 1999년에 영국 시몬스 등정대가 산 북쪽의 비탈에서 발견했다. 사실 1975년 중국인 왕홍보가 에베레스트 등정 도중 오래된 영국인 시체를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왕홍보에게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 등산가 하세가와와 왕홍보도 등정 도중 죽는 바람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33]
조지 말로리의 카메라도 발견되었지만 아쉽게도 필름이 엉망이라서[34] 이들이 등반에 성공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애초에 수색대가 말로리의 시신과 주변을 뒤져도 '''카메라는 나오지 않았다'''. 현재는 말로리가 아닌 어빈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어찌됐든 결국 이들이 등반에 성공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참고로 조지 맬러리는 "왜 산을 오르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고 대답한, 산악사 사상 가장 유명한 명언을 남긴 인물이다.[35] 그런데 이 말 자체는 신문기자가 귀찮게 자꾸 물어보니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다 나온 것이라고 한다.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신들의 봉우리와 이를 원작으로 한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이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1977년 9월 15일에 한국인 최초로 고상돈[36] 이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김영도[37] 가 원정대장으로 원정대를 이끌었다.
5. 환경 문제
등산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점 때문에 가장 많은 등산가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며 덩달아 이 등산가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정상 등정을 위한 최종 캠프를 보통 사우스콜에 설치하는데, 여기에 버려진 산소 봄베의 숫자가 엄청나다고 한다. 덕분에 네팔 정부에서 청소비 명목으로 돈을 두둑히 받아서 여기 가려면 5만 달러 가까운 상당한 돈을 내야 한다. 그 밖에도 입산비라든지 여러 명목으로 추가로 네팔 측이 돈을 받는데 한 사람당 10만 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이 돈 안 내고 올라가는 불법 등반이 꽤 많다. 물론 걸리면 추방당하고 재입국하자면 벌금과 같이 돈을 더 많이 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8,000m 14봉을 모두 올라간 김재수가 2번 불법 등반했다고 한다.
때문에 전문 등산가들이 산에 오를 때 잘 보면 입고 있는 등산용 옷에 온갖 회사 상표가 가득 달려있는 것도 바로 입산비라든지 여러 자금을 보태주는 스폰서 때문이다. 그 밖에도 입산비를 안 내고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청소등반대에 자원하면 된다. 이들은 입산비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등산하면서 산에 있는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만큼 힘도 들고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엄홍길이 쓴 책에 의하면 기상이변을 에베레스트에서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구경하기 힘들었던 네팔 산가 마을이 2000년대 와선 자동차가 넘쳐나고 쓰레기도 많이 버려지면서 에베레스트 및 히말라야 고산 날씨와 기온이 제멋대로 달라져 환경이 더 나빠지고 엉망으로 변하면서 등정이 더더욱 힘들어졌다고 회술했다. 결국 보다 못한 네팔 정부가 2014년 4월부터 등산객 한 명당 8kg의 쓰레기를 의무적으로 가지고 내려와야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6. 관광 자원
청소비뿐 아니라 방문하는 관광객들 상대로 오랫동안 네팔의 독점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냉전 이전에는 티베트를 통해서도 많이 갔으나 중국이 티베트를 먹으면서 이 길이 막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네팔이 여전히 에베레스트에 대한 입산비를 많이 차지한다. 냉전만큼은 아니지만 외국인이 티베트 들어가기는 여전히 어렵고[38] 중국이 개방해도 산이 네팔 쪽에 더 많이 몰려서 사람이 몇 배는 더 많이 오기 때문에 네팔이 여전히 많은 입산비를 챙기고 있다. 또한 네팔에서 올라가는 것이 노멀 루트라 훨씬 쉬워서이기도 하다. 티베트에서 출발할 때의 입산료는 비교도 안되게 싸지만(네팔의 절반) 등정을 목적으로 한다면 돈 몇천만원 더 주더라도 노말루트로 가는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에베레스트는 네팔을 통하여 초등정이 이뤄졌고 유명세도 네팔이 강해서 네팔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를 두고 중국은 아쉬워한다.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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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남쪽 계곡에 있는 루클라 공항은 착륙이 매우 위험하기로 유명하다. 고어라운드가 정의되어 있지 않은 공항이라 착륙은 단 한 번의 시도만에 성공해야 하며, 실패하면 그냥 끝이다. 흔히 "에베레스트의 관문" 이라고도 불린다.[39] 위 사진은 루클라 공항에 막 착륙하는 여객기.
- 그 큰 크기 때문에 마리아나 해구에 빠진다든가 그동안 팔린 물건과 높이가 비교되는 등의 굴욕을 많이 당하고 있다.
- 산 곳곳에 와이파이존이 존재한다. 2018년을 기해 정상에도 공유기가 설치되어 모바일 네트워크를 쓸 수 있다. 즉, 폰만 있으면 조난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이다. 단, 위치가 위치인지라 속도가 매우 느리며 영상 스트리밍 같이 통신량을 많이 요구하는것은 사용이 어려우며 SNS나 문자메시지같은 간단한것만 쓸만하다는 평이 있다. 또한 우리나라같이 모든 지역에 전파가 도달하는게 아니라 미도달 지역에서는 쓸 수 없다.
- 2005년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헬리콥터가 이착륙하여, 세계 최고 고도에서의 이착륙이라는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헬기 조종사는 프랑스의 테스트 파일럿인 델살르(Didier Delsalle). # 2005년 5월 14일에 정상에 착륙했고, 그 다음날인 15일에 또 착륙했다. 전날 착륙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음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기종은 유로콥터 AS350/355였으며 상용 그대로였고 승객의자 같은 불필요한 부분을 떼내서 120킬로그램 정도 무게를 줄이는 것 외에는 일체 개조가 없었다고. 네팔 정부에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인정하지 않았지만 촬영도 제대로 해놨고 각종 계기기록도 다 있기에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조종사는 착륙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착륙지가 온통 눈밭인데 바위 위에 쌓인 눈위에 착륙하는 것인지 아니면 눈으로만 쌓인 허공 위에 착륙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 인도 아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지각 운동으로 인하여 매해 0.5~1cm 정도씩 해발고도가 상승하고 있다.[40] #
- 이곳에는 2011년에 한국의 후원으로 설립된 병원인 "한국 자선 토토 하얀병원"이 위치해 있다. 부산의 무료 급식봉사단체인 '아름다운 사람들(대표 권경업)'과 스포츠토토, 전유성 등이 힘을 합쳐 셰르파를 위한 병원을 설립한 것. 조립식 건축자재와 의료장비 12톤을 컨테이너에 실어 현지로 보냈고, 7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난 6월 말 히말라야 체풀룽(2,880m)에 연면적 115㎡ 규모(병상 2개)의 국내 의원급 건물을 준공했다. 기사.
- 장거리 국제선 노선들은 한국발의 경우 네팔행 노선 외에는 이쪽으로 지나다니지 않는다. 다만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분을 지나다니기는 한다. 홍콩 국제공항발 노선은 홍콩-카타르 도하 간 캐세이퍼시픽이 이 산을 지나간다.
- 영화 <에베레스트>에 관해 본 문서를 참고해 작성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에 사는 30대 커플이 2017년 3월에 에베레스트 산 1만7천500피트(약 5천334m) 지점에서 '산상 결혼식'을 올렸다. #
- K2가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 말의 시초는 1986년에 나온 발표로 오류 때문에 곧바로 정정되었다. 1986년인걸 감안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여담이지만, 기존에 측정된 값이 잘못된 지오이드[41] 를 썼기 때문에 틀렸다느니 하는 루머도 있는데, 지오이드 측정을 아무리 잘못했어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오이드가 찌그러진 정도는 200미터를 못 넘는다. 구글 어스로도 확인해볼 수도 있다. 지오이드 보정된 GPS 측정에서는 K2와 에베레스트의 높이 모두 알려진 높이에서 10미터 안팎을 오르내리는데 이는 GPS 자체의 오차에 가까운 수준이다.
- 국제선 항공기들은 에베레스트 근처를 지나지 않는다. 만약 추락하면 찾으러 갈수도 없는곳이고 해발고도 때문에 이쪽으로 지나가봤자 겨우 통과 가능할 수준이라 항행 안전에 위험이 되기 때문. 따라서 인도에서 동북아시아로 가는 항공기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으면 빨리 갈 것을 태국, 방글라데시 쪽으로 빙 둘러서 간다. 당장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 항공로도 카트만두 인근 TUMLI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B345말고는 없다.
- 이름 자체가 워낙 유명해선지 인도 요리점들 중에도 이름이 에베레스트인 경우가 세계적으로 많이 있다.
8. 동명의 영화
[1] 8,850m가 더 정확하다는 의견이 있으며 여기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일단 해수면의 기준이 나라마다 달라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의 높이는 장기적으로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2] [t͡ɕʰǒ˩˧.mô˥˥ lɑŋ˥˥.mɑ˥˥\]로 발음한다.[3] 티베트어 초모랑마를 음역한 것이다.[4] 산의 높이는 해발고도뿐만 아니라 땅 위의 기준원점(기반지역)으로부터 봉우리 자체가 얼마나 큰지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지형학적 상대높이(topographic prominence)를 사용하기도 한다. 모체가 되는 봉우리의 기반으로부터 독립적인 봉우리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뻗어올라가는지를 측정하는 척도이다. 예를 들어 해발 8,586m로 세계 3위봉인 칸첸중가의 지형학적 상대높이는 3,922m에 불과하다. 모체 봉우리는 '''에베레스트'''.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한해서 에베레스트의 모체를 이룰 봉우리가 없기 때문에 에베레스트의 지형학적 상대높이(topographic prominence)는 해발고도와 동일한 8,848m로 정의되었다.[5] 당연히 제일 높으니까.[6] 지형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모든 산의 모체로 정의되어 있다.[7] 본명은 남걀 왕디(Namgyal Wangdi)였으나 어린 시절에 개명.[8] 아무리 높이에 비해 쉽다 해도 코스가 덜 개발되고 장비도 부실했던 90년대 이전만 해도 10명 중 4명은 영원히 산에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리다.[9]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10] 에베레스트 산맥은 대륙판이 만나는 경계에 있어서 지금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11]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 따르면 캘커타 지부에서 파견나와 있던 벵골 출신 라다나트 시크다르가 최고봉임을 알아낸 유력한 직원이라고 한다.[12] 철자와는 달리 /ˈiːvrɪst/로 발음한다.[13] 대표적으로 영어 매킨리 산이 알래스카 현지어 데날리로 바뀌는 등[14] 비슷하게 산을 반반 차지한 나라끼리 의견통일 안 되는 사례로 레닌 봉이 있다.[15] 하와이제도 중 하와이섬(빅아일랜드)에 있는 마우나케아 산의 해저부터의 높이는 10,203m이며,(이 전체 높이는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다) 해수면 위로만 쟀을 때에도 4,206m나 된다. 만약 마우나케아 산이 해수면 위로의 높이가 10,203m라면 대류권을 돌파할 것이다. 바다 위로 솟아오른 이 산은 윗부분 중 절반이 하와이 섬을 이루고 있고, 나머지는 바다 밑바닥에 감추어져 있다.[16]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고, 자전의 영향으로 적도 부분이 더 불룩한 타원형이기 때문에 적도 인근의 침보라소 산이 지구 중심으로부터 가장 멀다. 침보라소 산의 정상은 지구 중심과 6,384.4km 떨어져 있다.[17] 지구 중심으로부터 재도 '''세계 5위'''다.[18] 여기서 남벽이라 칭해진 부분 대부분은 사실 눕체와 로체의 남벽이다. 에베레스트의 진짜 남벽은 사진에서 로체 너머에 있는 부분이다. 로체의 남벽은 전설적인 등정가 예지 쿠쿠츠카의 목숨을 앗아간 난벽이다. 히말라야의 난벽 중 단연 첫 손으로 꼽히는 곳. 일본 등반대가 벽 등정에는 성공했으나 로체 정상까지는 가지도 못했다.[19] 1924년의 조지 말로리&어빈 루트의 등정여부는 지금도 산악계의 논란거리이다.[20] 두 번째로 높은 K2의 등정 난이도가 훨씬 높다. 진짜 산을 좋아하는 산악인들은 K2 등정을 훨씬 높게 쳐주며, 이쪽은 엄청난 난이도 때문에 일반인의 상업 등반도 거의 없다고 한다. 수치로만 봐도 K2의 동계등정은 최초 등반 시도 후 119년이 지난 2021년에 처음 나왔으며, 2개 벽도 역시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21] 등정중 조난사망의 분석 [22] 시신 회수에 1500만 원, 현지 화장 등 처리에 다시 1500만 원 등 경제적인 부담이 큰 데다, 산을 좋아하던 등반가가 에베레스트에 묻혔으니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3] 비극적이게도 박무택은 3대 독자라 그의 죽음으로 대가 끊어졌다. 박무택의 부모를 찾아간 엄홍길에게 부모는 "산에 올라가는 놈들은 후레새키야! 산가서 뒈지고 시체도 못 찾아올, 천하에 어리석은 짓을 하는 멍청이들이지!"이라고 분노를 담아 울부짖었다고... 그러나 말은 이래도 박무택이 입던 유품에서 등산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24] 1970년에 형 메스너와 함께 낭가파르바트 정상 등정 후 하산 중 눈사태에 휩쓸려 실종되었다.[25] 그나마 귄터의 시신은 실종 35년 만인 2005년에 눈이 녹으면서 떠내려와 현지인들에게 발견됐고, 이후 시신이 착용한 등산화로 신원을 확인한 메스너가 수습할 수 있었다. 메스너는 귄터의 시신을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화장하고 재를 히말라야에 뿌렸다.[26] 이 두 사람을 잘 알던 만화가 허영만도 당시 식객 연재를 잠깐 멈췄으며 단행본 19권 바지락 칼국수 에피소드 후기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참고로 이현조는 후술하는 김창호와 함께 2005년에 극강의 난이도로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중앙립 루트를 메스너 형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정한 바 있다.[27] 물론 반대로 움직일 기력이 떨어져서 죽어가는 고객을 놓아두고 혼자서 내려올 수도 있지만 죽어가는 고객을 버리지 않고 함께 사망한 직업정신이 투철한 가이드도 있다.[28] 이러면 그 산소통의 원래 주인이 필요할 때 없기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29] 엄홍길 대장이 2005년에 에베레스트를 등반할 때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개탄하고는 '''옆의 빙벽을 타고 슥슥 혼자 올라가 버렸다.'''[30] 사진은 텐징 노르가이다. 정상에서 힐러리의 모습은 없다. 그 이유는 텐징이 카메라의 조작 방법을 몰랐기 때문.[31] Edmund Hillary, 1919~2008. 뉴질랜드 5달러 지폐에 얼굴이 들어갔다. 생존하고 있는 인물이 지폐에 들어간 몇 안되는 사례. '지식채널 e'에서 '초몰룽마의 두 이방인' 편에서 백인이지만 영국인이 아니란 이유로 차별받던 힐러리의 처지를 소개한 바 있다. 어쨌든 영국 등반대 소속으로 에베레스트에 올랐기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32] Tenzing Norgay, 1914~1986. 이 사람도 네팔인 셰르파 사이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우습게도 그의 국적을 두고 네팔 말고도 당시 인도와 중국과 티베트가 서로 자기들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으로 네팔 사람으로 더 알아준다. 참고로 그의 아들도 네팔에 살면서 "아버진 네팔 사람이다"라며 다른 나라의 주장을 무시했다.[33] 그래서 세월이 지난 뒤 일본 소설가 유메마쿠라 바쿠는 <신들의 봉우리>라는 소설을 써서 말로리의 시체를 일본인 등산가 하부 조지가 발견한다는 가상 설정을 넣어 쓰기도 했다. 이 소설이나 이걸 만화로 그린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모두 한국에서도 정발되었다.[34] 현상하지 않은 필름은 서서히 화학물질이 변질되면서 상이 흐려진다. 유메마쿠라 바쿠는 신들의 봉우리에서 카메라가 없었다고 오류를 저지르며 혹시 왕홍보가 가져간 거 아니냐는 무리수적인 서문을 쓰고 있다. 이에 대하여 중국에선 무척 불쾌해했는데 왕홍보는 정말 시체를 대충 보고 올라갔으며 그게 말로리인지 죽을 때까지 아예 몰랐다고 한다.[35] 그런데 이 말을 힐러리가 한 말로 아는 이들도 많으며, 책자나 여러 글귀에서도 그렇게 표기한 게 꽤 있다. 훗날 영국군 공군 대장이 된 트래퍼드 리맬러리는 이 사람의 동생.[36] 1948년생. 1979년 미국 데날리 산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으나 하산 중 사고로 사망한다.[37] 당시 제9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었다.[38] 티베트에 가려면 중국 비자를 따야 할 뿐만 아니라 티베트 입경허가서를 받고, 또 라싸나 시가체 등 개방지역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추가로 공안이나 군에서 발급하는 여행 허가서가 필요하다.[39] 공항의 이름은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등정한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텐징 노르가이-에드문드 힐러리 공항이다. 착륙보다 더 큰 문제는 날씨가 안 좋거나 그러면 비행기가 아예 안 뜨고 내린다는 것이다. 심하면 며칠이 넘도록 비행기가 왕래하지 않으며, 그렇게 되면 세계 각지에서 온 고립된 트레커들로 온 마을이 북적거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국제선 비행기를 놓쳐버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해발 3,000m에 있는 이 마을은 바깥으로 통하는 교통수단이 말과 비행기 뿐. 차가 다니는 가장 가까운 도로까지만 나가려 해도 며칠씩 걸어야 한다.[40] 즉 1924년 맬러리&어빈 등정대가 올랐을 때보다 대략 1m 더 높아졌다.[41] geoid, 해발 0미터의 기준이 되는 타원체에 가까운 삼차원 도형. 평균 해수면을 육지까지 확장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지구의 형태로, 이론적으로 중력 방향에 수직인 평면 중 평균 해수면과 일치하는 면을 가리킨다. 이는 지구 형태를 대표하는 면으로서 지구 타원체와 가장 가까운 면이다.[42]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 '희박한 공기 속으로'가 원작[43] 유메마쿠라 바쿠의 소설 '신들의 봉우리'가 원작[44] 다른 제목이 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어 이름)이며, 국내 개봉 때 에베레스트란 제목을 사용했다.[45] 그러나 이 영화는 중국 외에는 크게 히트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중화사상도 중화사상이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중국산이라며 주장을 담은 영화이다. 해당 중국영화의 주장은 에베레스트는 티베트와 네팔사이에 있는 산→티베트는 중국 정부가 다스리는 지역이고 티베트 민족은 중국의 소수민족→그런 티베트와 네팔 사이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산은 고로 중국의 산이라는 매우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내세운 셈이며 심지어 홍콩 국적이자 친중파인 성룡을 내세웠으며 영화 내용 중 티베트 현주민과 중국인과의 로맨스를 넣은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