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홀트 메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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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17일~
1. 이력
Reinhold Messner.
이탈리아 국적의 산악인, 탐험가, NGO활동가 겸 작가이자 전 유럽의회 의원이다. 이탈리아어로는 레이놀드 메스네르. 이름이 독일풍같아서 독일인으로 많이 아는데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인이다. 다만 메스너의 고향은 지금도 독일계가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고 심심하면 오스트리아로 복귀하겠다는 쥐트티롤(알토-아디게) 지방이다. 1944년 브레사노네(Bressanone)[2] 에서 태어났다.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급 고봉 14개를 모두, 그것도 '''무산소'''로[3] 등정한 전설적인 산악인이자 수퍼 알피니즘의 살아있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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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필뇌스(Villnöß)의 전경.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와 같이 첫 정상정복을 경험한 것이 겨우 '''5세'''(...) 때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 그대로이다. 형제는 무려 10남매. 그 중에 13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등반을 시작하여 네임드 산악인이 된 귄터 메스너가 있었다.
1970년 낭가파르바트의 '''루팔 남벽'''을 귄터와 같이 초등정하면서 고산등정계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기 시작했다. 이 루팔 남벽이 '''수직으로 3,500m가 꽂혀있는 히말라야 3대 난벽'''이고, 당시에는 낭가파르바트 등정시도 대비 '''사망률이 70%를 넘는 최악으로 위험한 산'''이었다. 처음으로 등정한 8,000m급이 최악의 난이도인 낭가파르바트고, 그 중에서도 최악의 코스를 첫 시도에서 인류 최초로 초등정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업적이다. 그러나 이 도전의 대가는 혹독했다. 루팔 벽으로 정상에 오른 뒤 반대편에 있는 디아미르 벽으로 하산하던 중에 라인홀트는 눈앞에서 귄터가 눈사태에 휩쓸려 실종되는 것을 보아야만 했고[5] 그 자신도 동상으로 발가락을 6개나 절단해야 했다. 게다가 당시에 함께 갔다가 정상 부근에서 메스너 형제들과 연락이 두절됐던 산악인들은 이미 고산병 증세가 심했던 귄터를 라인홀트가 기록을 위해 무리하게 위험한 루트로 내려 보내다 죽였다며 혹독하게 비난해댔다. 결국 라인홀트는 "나는 결코 내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자신을 비난한 산악인들을 고소했다.
참고로 라인홀트와 귄터 메스너 형제가 초등했던 중앙립 루트는 극강의 난이도로 악명이 높다. 메스너는 2004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벌거벗은 산"에서 향후 이 루트를 오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그 이듬해인 2005년에 김창호, 이현조로 구성된 한국팀에 의해 35년만에야 비로소 재등정이 이루어졌다. 여담이지만 초등정 당시 파트너이자 동생을 잃은 라인홀트 메스너와 달리 김창호는 이현조와 함께 무사히 하산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재등정 성공을 보도하며 이 점을 은근히 높게 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라인홀트 메스너는 2006년에 친인척과 함께 간 낭가파르바트 트레킹에 김창호를 특별히 초청해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동생 귄터를 잃은 충격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지 못했다. 1970년대에 귄터를 찾기 위해 수차례나 낭가파르바트를 오갔는데 설상가상으로 저 무렵에 이혼하는 불행을 겪자 1978년에 귄터를 잃은 디아미르 벽으로 낭가파르바트를 단독으로 등정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김창호와 이현조가 2005년에 중앙립 루트 재등정에 성공했을 당시에 카메라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이들은 메스너가 1978년에 재등했을 당시에 정상에 증거로 남겨 둔 타임캡슐을 등정의 증거로 가져왔으며, 라인홀트 메스너를 한국에 초대해 이 캡슐을 가져다 주겠노라고 발표했다. 또한 2005년에 엄홍길이 에베레스트에서 조난사한 후배 박무택과 장민의 시신을 수습하러 원정대를 조직해 등정하려 하자 자신 역시 동생의 시신을 찾으려 했으나 불가능했다고 얘기했는데 엄홍길은 저때 라인홀트 메스너가 무척이나 착잡한 얼굴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귄터의 시신은 2005년에 실종 35년만에야 떠내려와 인근 주민들에 의해 발견될 수 있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시신이 착용하고 있던 가죽 등산화를 보고 그 시신이 귄터임을 확신했다고. 수습된 귄터의 시신을 낭가파르바트 베이스 캠프 인근에서 화장해 그 분골을 히말라야에 뿌렸다고 발표했고,[6] 가죽 등산화는 아래 후술할 메스너 산악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 후 16년간 끊임없이 등정을 계속해서 1975년에 실패한 바 있던 로체를 1986년에 등정함으로써 '''인류 최초로 8,000미터 14좌를 모두 등정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특기할 만한 점은 모두 '''무산소'''로 올라갔다는 것. 무산소로 올라갔다는 것은 산소통이나 호흡 보조도구 없이 순수하게 인간의 호흡능력에만 의존해서 등정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8,000미터가 넘어가면 공기압이 해수면에 30%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생각해봤을 때 진정한 초인.[7]
같은 해에 남극의 빈슨 산을 정복함으로서 세계 3번째로 7대륙 최고봉 완등자가 됨과 동시에 세계 최초 7대륙 최고봉 무산소 완등자가 되기도 했다.[8]
그 후 그 경력을 바탕으로 60편이 넘는 수기와 탐험서적[9] 을 출간했다. 그는 그 명성에 안주하여 탐험도 그만두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남극을 스키로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2004년에는 고비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다.
그 밖에 활발한 NGO활동가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의 산악지역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Mountain Wilderness>[10] 라는 NGO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적으로 이탈리아 녹색당 당원이기도 하며, 해당 정당 소속으로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임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현재는 고향인 볼차노에 <메스너 산악 박물관>[11] 을 세워서 운영하는데 전념하고 있다.[12] 2016년 9월 30일에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울주세계산악영화제 개막식 참석 및 강연, 국립산악박물관 방문 등의 일정과 더불어 설악산도 둘러봤다. EBS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 산골기행편(2018년 8월 6일 ~ 8월 9일 방영)에 출연했는데, 해당 회차의 큐레이터였던 산악인 임덕용이 볼차노에서 만나 함께 암벽을 타고 메스너 산악 박물관에서 본인과 인터뷰했다.
2. 탐험/등반사
(8,000m급은 ★로 표시, 7대륙 최고봉은 ◈로 표시함)
3. 기타
이탈리아어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영어도 네이티브급이라고 한다. 나고 자란 이탈리아 북부의 볼차노가 독일어권이고[24] 세계 각지를 다녔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1988년에 티베트에 예티를 찾아서 혼자서 탐험하고 다닌 적도 있다. 실제로 본인이 발자국도 찾았고, 탐험 결과 히말라야 갈색 곰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직접 곰이 서서 다니는 것도 관찰하고, 또 자고 있는 곰한테 20미터까지 접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등반가들 간에 통용되는 7대륙 최고봉 리스트를 선정했다. 나무위키의 7대륙 최고봉 리스트가 바로 '''메스너 리스트(Messner's List)'''로 되어 있다. 이 최고봉 리스트 중 오세아니아의 최고봉은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메스너는 오세아니아의 최고봉으로 뉴기니 섬에 있는 푼착 자야를 꼽았는데, 이 푼착 자야는 그 위치가 참 애매해서 확실하게 오세아니아의 최고봉으로 봐야 하는지 논란이 생겼다. 지질학으로 볼 때 뉴기니는 넓은 의미의 사훌(Sahul)대륙에 속해서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와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뉴기니의 푼착 자야 또한 오세아니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면에선 푼착 자야가 있는 서파푸아 지역은 아시아에 속하는 인도네시아이다. 기준의 충돌이 생긴 것.
메스너보다 한 발 앞서서 7대륙 최고봉을 세계 최초로 모두 정복한 리처드 배스(Richard Bass)는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 있는 코시우스코 산(Mount Kosciuszko)을 오세아니아 최고봉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 산은 2,228m밖에 안되고 게다가 그냥 생김새도 큰 언덕배기여서 난이도랄 것도 존재하지 않는 산이라 조금 묻힌 감이 있다. 물론 한국에 있는 산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 산도 큰 산은 맞긴 하다. 하지만 한국 산들과 마찬가지로 암벽같은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산이고 난이도는 위 리스트에 있는 산들에 비하면 완전히 바닥으로 수렴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소개하는 가장 쉬운 루트가 '''"Walk(Dirt Road)"'''(...)라고 써 있을 정도. 그나마 푼착 자야를 제외해도 다른 오세아니아 지역의 산 중 코시우스코보다 높은 산들이 당장 여럿 있다. 반면 푼착 자야는 위치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리학상 오세아니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 등정 난이도도 코시우스코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라서 다른 대부분의 등반가들도 푼착 자야를 최고봉으로 인정한다. 참고로 메스너가 코시우스코 산을 리스트에서 빼버렸지만 사실 본인이 안가서 뺀게 아니다(...) 1983년에 올라간 바 있다.
이분조차도 아쉽게 못 간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북극점. 1995년에 '''시베리아에서 북극점을 통과해서 캐나다까지 스키로 가려고 했는데 아쉽게 실패했다.''' 성공했었으면 세계 최초로 트루 익스플로러스 그랜드슬램[25] 달성자 타이틀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북극점 도전에 실패한 후 "에베레스트보다 10배이상은 어려운듯(...)"이라고 엄살(?)을 부렸다.#[26] 그리고 이 메스너조차 갖지 못한 그 타이틀을 마침내 인류 최초로 거머쥔 사람이 바로 대한민국의 박영석 대장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위의 길고 긴 리스트는 성공한 기록만 적은 것이다. 저럼 엄청난 업적을 남긴 뒤에는 수없는 실패가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친동생과 수많은 동료들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성공'이 아니라 '시도'를 기준으로 리스트를 꾸몄더라면 5배이상 길어졌을 것이다. 마칼루만 하더라도 4번 이상 실패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부분이지만 메스너 본인은 동등하게 가치 있게 판단한다고.
그리고 이런 세계 최초의 기록들을 세우면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박영석 대장도 실수 한번에 사망할 정도로 힘든 등반들을 처음으로 해내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업적이라고 할수 있다.
오은선 대장의 14좌(칸첸중가)등정 의혹에 대해 '등정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네팔 셀파 사회뿐만 아니라 대산련을 비롯 한국의 산악계에서도 오은선 대장의 등정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 출처: Wikimedia Commons[2] 독일어로 브릭센(Brixen)이라고 한다.[3] 산소통이나 보조호흡도구 없이 인간에게 부여된 폐와 산소교환능력에 100% 의존해서 등정했다는 의미다.[4] 출처: Wikimedia Commons[5] 귄터 메스너 역시 루팔 벽을 초등정할만한 실력이 있었으므로 만약 이때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형인 라인홀트처럼 산악계에서 또다른 전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6] 참고로 이미 2001년에 낭가파르바트에서 발견된 산악인의 시신이 2004년 1월 말에 유전자 검사 결과 귄터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독일 매체에 난 바 있었다. 물론 저 시신이 2005년에 떠내려와 수습된 시신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7] 8,000미터 14좌 무산소 등정자는 현재도 전세계에서 15명정도에 불과하다.[8] 사실 7대륙 최고봉 중 에베레스트 정도만 산소통이 필요하다. 그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무산소로 등정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타이틀.[9] 이 때문에 좀 까이긴 하는데 어디까지나 막대한 원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10] 유럽 국가들을 지부로 하는 단체다.[11] 방문기, 오은선 대장이 14좌 완등때 사용했던 블랙 다이아몬드 피켈과 동생 귄터의 시신 발견당시 신고있던 등산화가 전시중이다[12] 1944년생이므로 2015년에 71세가 되었다. 산에 관심이 많고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할 일이 있으면 메스너 산악 박물관에도 꼭 들러보자. 운이 좋으면 라인홀트 메스너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13] 아마존 강 발원지[14] 하산길에 동생 귄터 메스너 사망[15] 동료 프란츠 야거를 잃었다.[16] 알파인 스타일은 포터나 셰르파 없이 혼자서 식량부터 텐트까지 싸그리 짊어지고 올라가는 형식의 등정법이다.[17] 베이스캠프부터 혼자 출발한 것을 의미한다.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으므로 엄청나게 위험하다. 그걸 다른데도 아니고 낭가파르바트에서 했다(...)[18] 2908m면 백두산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기에 별거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사진을 보면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막장급 난이도의 절벽을 올라야 한다.참조[19] 텐트가 날아가서 죽을뻔 했다. 아메바성 간농양 증세까지 와서 동료의 도움으로 겨우 구사일생함.[20] 초오유까지 등정하려다 동계등정이어서 실패했다고 한다. 이 분야는 현재 1년에 5개 등정이 최고기록.[21] 베이스캠프를 떠나서 한번에 정상 2개를 모두 정복.[22] 침보라조 정상은 지구 중심에서 가장 먼 지점이다.[23] 나일 강 발원지[24] 이탈리아는 19세기 후반에 워낙 여러 나라가 뭉쳐서(...) 만들어진 나라라 이탈리아라는 하나의 정체성은 아직도 약한 편이다. 그리고 조상이 독일계이니. 게다가 이탈리아 영토인 걸 빼고라도 이 주에서는 독일어를 공용어로 지정해놓고 있다.[25] 8,000미터 14좌, 7대륙 최고봉, 남극점, 북극점 모두 정복[26] 실제로 북극점은 정말로 어렵다. 일단 불안정한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는 것이라 엄청 많이 방문했을 것 같지만 2015년 현재 아직 인류역사를 통틀어도 113명밖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걷거나 스키로 간 사람만 센다.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차를 타고 가거나(...)하는 것은 카운트해주지 않는다. 애초에 항공기는 하루 수백편씩 북극 항로를 경유하며(뉴욕발 인천행만 해도 북위 85도까지 올라갔다 내려온다.), 홍콩-뉴욕, 두바이-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노선 등은 아예 북극점 상공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