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노출을 허하라!
Free the nipple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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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에스코(Lina Esco) 감독의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다.
미국의 검열에 반대하기 위해 사회 운동가들이 변호사들과 힘을 합쳐 대중적 인식을 바꾸고자 분투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각종 폭력적이고 마초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미디어들은 검열하지 않으면서 유독 여성의 유두만 나오면 검열하는 이중적 행태를 비판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청소년들에게 여성의 가슴을 보여주는 것을 검열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주장까지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슴 노출을 허하라!''''는 제목으로 2015년에 개봉했다. 영화 정보
이 문서는 직역에 가까운 '젖꼭지를 허하라'는 이름으로 작성되었으나, 이 토론에 의해 정발명으로 표제어가 변경되었다. 다만, 이 영화로부터 유래한 사회 운동은 '젖꼭지를 허하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다.
2. 페미니즘 사회 운동의 하나
'젖꼭지를 허하라' 운동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설득하는 페미니즘 계열 사회운동이다. 발의 자체는 한국 1세대 페미니즘의 시기인 1996년, 당시 강성 페미니스트였던 신정모라가 거의 최초로 주장한 바가 있으며 2010년대 중순부터 인기를 끌었으며, 위에서 소개한 동명의 영화 제작과 함께 알려졌다.
이들의 생각을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 남성들은 못해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상의탈의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여성들은 심지어 민소매 셔츠가 교복 안쪽에 비치기만 해도 헛기침을 하는 어른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남성들은 대중매체에서도 상의를 벗는 것이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1] 여성이 상의를 벗는 것은[2] 방송사고 급의 상황이 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고, 자신의 육체를 사랑할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이다. 특히나 포르노 산업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들을 통해, 여성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는 가슴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정작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유를 주장하기 위해 가슴을 보여주는 것은 검열당하고 억압되었다는 것. 내 몸의 일부인데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꼭 숨기고 부끄러워해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토플리스나 브래지어 없는 날(No Bra Day) 같은 운동들과 함께 결합되기도 한다. 이렇게 엮일 경우, 설령 겉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서 젖꼭지가 튀어나와 보이게 되는 것 역시 문제삼으면 안 된다는 주장까지 포괄하게 된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와 엮일 경우, "내가 내 몸에 내 맘대로 옷을 걸치겠다는데 남들이 왜 나한테 상관임?" 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인스타그램의 음란물 규제 정책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인스타그램은 상당히 강력한 음란물 관련 방침을 견지하고 있는데, '''남성의 가슴 사진을 올린 게시물은 살아남고, 여성의 가슴 사진을 올린 게시물은 차단당하는 이중적인 상황'''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이용자들은 같은 여성의 가슴이더라도 측면에서 본 가슴(sideboob), 아래쪽 가슴(underboob) 사진은 차단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스타그램이 잡아내는 것은 결국 여성의 젖꼭지가 나오는가였던 것. 인스타그램 경영진의 확고한 입장을 고려해 보면, 적어도 2016년 현재로서는 이러한 방침이 바뀔 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시니컬한 이용자들은 "This Is a Male Nipple''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즉, '''여성의 상의탈의 사진을 올리되, 젖꼭지 부분만 남성의 젖꼭지를 찍은 사진을 오려붙여 가리자'''는 것.(…) 어쨌거나 같은 인간 젖꼭지이니, 게시하는 사람이 적당히 뽀샵질(…)만 잘 해서 올린다면 외견상 상관없을 일이고, 검열관들의 트집도 피할 명분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실험해 본 서양 페미니스트들에 따르면, 정말로 이게 효과가 있긴 있었다고 한다. 최소한 일 주일 정도는 차단을 면할 수 있었다고 카더라.(…) 적용 예시 (열람시 후방주...의...??)
이와 무관하지 않게, 서구에서는 도심 한복판에서 여성들이 상의를 벗은 채로 젖꼭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행진을 하는 경우도 적지않게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위에 딱히 반감을 드러내거나 하는 사람들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헐떡거리는 사람들도 의외로 없는 모양.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보다 좀 더 캐쥬얼한 방법으로는 "Free the nipple" 단어와 여성의 가슴 사진이 프린트된 셔츠를 구매하는 것이 있다.
마리아 샤라포바도 신문기사에서 가슴이 검열되는 사건으로 니플게이트라고 부르면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샤라포바는 유두가 강조되는 옷을 입은 적이 있는데, 패션 아이템으로 가짜 유두를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민망했던지 모 언론사에서 사진을 수정해 유두를 삭제했는데, 누리꾼들이 니플게이트(nipplegate)라며 빈정거렸다. '''다만, 이 사건은 절대로 샤라포바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1. 논쟁
상단에서 한 차례 주의를 주었듯이, "정말로" 이 주장과 메시지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사실 이곳 나무위키에서도 사진을 링크로 가리거나 성적요소 틀을 달아서 경고를 하거나 할 이유가 없다. 미성년자가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미성년자들이 남성의 젖꼭지를 TV에서 시청하는 것에 대해 별 생각 없는 기분이 들듯이, 그들이 여성의 젖꼭지를 목격한다 해도 마찬가지로 별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결론이 (페미니즘적 맥락에서) 도출되는 것.
물론 여기까지는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면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이것이 얼마나 일리가 있는지, 또 어디까지 사회에 반영되고 영향을 끼치게 될지 따져보려면 '''섹슈얼리티와 사회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고찰이 필요하다.''' 예컨대 페미니즘의 또 다른 한켠에서는 소위 시선 강간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 운동은 시선 강간 테마와 어디까지 양립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 제시가 가능하다.
이는 남녀의 신체차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는데,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젖꼭지는 흔적기관일 뿐이지만 여성의 젖꼭지는 성과 관련된 출산과 육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신체 기관중 하나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은 여성의 젖가슴에 대해 성적인 관심을 갖도록 설계되어있고 이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성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맥락에서 남성의 젖꼭지와 여성의 젖꼭지는 그 허용범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왜 유방이 아니라 굳이 젖꼭지냐에 대해서는 사실상 검열에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한데, 유방이 드러난 사진이라고 전부 검열한다면 노출이 있는 드레스나 윤곽이 드러난 옷은 전부 검열해야 하게 되는 것. 이 때문에 최대한의 자유를 위해 최소한의 범위를 설정하다보니 젖꼭지가 그 기준이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즉, 여성의 젖꼭지 노출은 사회적으로 남성과 구분되어 금지된 것이 아닌 생물학적인 이유로 성기의 일부처럼 취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기준은 남성의 성 상품화에 상의탈의가 이용됨으로서 남성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젖꼭지가 성적 기관이냐의 관계를 떠나 원래 옷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을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데, 위와 같은 기준 때문에 남성의 상의탈의와 그로 인한 성 상품화는 당연시된다는 것. 이 운동의 결과로 여성의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지 않게 되었을 때 지금의 남성들처럼 매체에 상의 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비춰지고 그것이 상품화된다면 대해 과연 Free the nipples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이냐는 문제에도 의문이 있다.
무엇보다 몇년전에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예능 등 대중매체에서의 '''여성의 과도한 노출을 성상품화라며 더욱 규제하라는 주장을 했었다.''' 그리고 이때 일부 남성측에선 남성의 상의 노출은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몸 좋은 남성 아이돌 등에겐 '''방송에서 탈의를 요구'''해도 성희롱은 커녕 당연히 벗어야하는, 남성스러움의 상징으로만 여겨지지 않냐며 이것도 규제하라고 반박했었다. 재범오빠 찌찌파티 문서 참조. 현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대로 둘의 가슴을 평등하게 대우한다면 여성 아이돌에게도 예능 방송에서 벗으라는 요구를 해도 상관이 없어야(...) 하는거다. 허나 페미니즘 논리 자체로는 모순은 아닐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상업적인 여성 노출이나 누가 시켜서 노출하는걸 반대하는거지 여성 개개인의 '''자발적''' 노출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성의 성상품화에 재범오빠 찌찌파티같은 반응을 보이는 면에선 이중잣대다.
결정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 때문에 사회적인 억압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성이 브래지어를 벗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브래지어는 불편하더라도 기능적인 역할이 있기도 하고, 이미 남성들의 인식과 관계 없이 '당연히 입어야 하는 것'으로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인식되어 있기도 하며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젖꼭지를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과연 공공연히 노출할 수 있게 된다 하여 성상품화 등에서 자유로워지느냐 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의 가슴 뿐 아니라, 공공연히 노출되고 또 그것이 별 문제시되지 않는 남성의 가슴 혹은 여성의 맨다리 등이 성적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쉽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1930년대의 미국같이 남성의 유두 노출을 막는 방향성도 있고, 또한 훨씬 현실성이 있을 텐데[3] 그런 쪽의 운동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는 어찌 보면 여성이 억압당하는 만큼 남성에게 똑같이 억압하자는 주장이며,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봐도 여성해방과는 외려 무관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여성의 자유가 비교적 억압된 조선시대에도 의외로 상민층 이하에선 가슴 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4]
2.2. 과거 조선시대에서
여성의 자유가 비교적 억압된 조선시대에도 의외로 상민층 이하에선 가슴노출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양반들은 해당사항 없다.
링크를 걸 필요도 없이 구글에 조선시대 가슴노출이라고 치기만 해도 어마무시한 사진들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살짝 보이는 게 아니라 아주 대놓고 가슴 부분만 뻥 뚫어놓은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강조하자면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다. 조선시대에 민간인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가 언제 등장했는지를 추리해보자. 즉 조선 후기에 상민 이하 계층의 여성들이 한복 저고리가 짧아지면서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이 모습을 항간에서는 남자아이를 낳은 여인들의 과시용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는데 출산과 상관없이 기생들이 가슴을 드러내는 일도 있어서 이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아직 부족하다. 이 모습을 보더라도 단순히 살갗을 보인다고 흥분을 고양시키기는 힘들어서, '''성적 대상의 기준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종아리 아래 맨발을 드러내는 건 현대인들은 그게 어쨌다는 거냐고 생각하겠지만 고대 중국이나 조선시대, 19세기 유럽 등지에선 음란하다고 불호령을 내릴 정도이니.
게다가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바깥에서 버젓이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어머니들을 볼 수 있었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더 지나야지 그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