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성

 



[image] '''중화인민공화국
云南省(Yúnnán Shěng''' (雲南省)
윈난성 | Yunnan Province

'''좡어 독음'''
Swngj Yinznanz
[image]

'''성정부 소재지'''
쿤밍시 우화구 화산난로 78
(昆明市 五华区 华山南路 78)
'''지역'''
시난
'''면적'''
394,000km²
'''하위 행정구역'''
8지급시 8자치주 14구 14현급시 72현 29자치현
'''인구'''
4,742만명
'''인구밀도'''
198명/km²
'''시간대'''
UTC+8
'''한국과 시차'''
1시간
'''서기'''
천하오(陈豪)
'''성장'''
롼청파(阮成发)
'''HDI'''
0.666 (2017)
'''GRDP'''
$3,268억 1,900만 (2019)
'''1인당 GRDP'''
$6,950 (2019)
'''행정구역 약칭'''
'''云 | 滇'''
'''ISO 3166-2'''
'''CN-YN'''
'''홈페이지'''

[image]
사진은 윈난성 성도인 쿤밍쿤밍역.
1. 개요
2. 지리 및 기후
3. 특산물
4. 역사
5. 민족
6. 기타
7. 출신 인물


1. 개요


윈난성(운남성, 雲南省)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성급 행정구역이다. 윈난성을 가리키는 중국 내 약칭은 뎬츠(滇池, 전지) 호수에서 따온 전(滇, dian, 뎬). 혹은 운(雲, yun, 윈). 성 이름인 '운남(雲南)'은 한나라 대에 이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인 운남군(雲南郡)에서 유래했다. 서북쪽에는 티베트 자치구, 북쪽에는 쓰촨 성, 동쪽에는 구이저우 성, 동남쪽에는 광시좡족자치구베트남, 남쪽에 라오스, 서남쪽에 미얀마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직접 경계를 접하진 않지만 태국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1] 동남아시아와 가까우며 면적 394,100제곱km[2], 2010년 기준으로 인구는 약 4600만명.[3] 성도는 쿤밍(昆明, 곤명) 시.##

2. 지리 및 기후


[image]
윈난성의 행정구역 지도
이곳은 90% 이상이 고원, 구릉, 산지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곳의 지형은 대체로 북고남저, 북쪽의 해발고도가 높고 남쪽이 낮은 지형으로, 대만, 미국플로리다 주의 남부, 쿠바 등과 비슷한 위도[4]에 있지만 해발고도가 대체로 높은 편이라 대부분의 지역이 고산고원지대에 해당되어 덥지 않은 편이다. 쿤밍[5]만 해도 사계절이 과 같다 하여 춘성(春城)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남쪽 끝의 시솽반나 다이족 자치주는 고도가 낮아 그냥 열대기후이고[6] 고도에 따라 기후가 달라져서 아열대기후, 온대기후, 냉대기후인 곳도 있다. 쿤밍과 다리, 리장 등이 온대기후, 그 중에서 아열대 고원기후에 속하고, 서북쪽 지역(샹그릴라)이 냉대기후에 속하며 이곳을 통해 티베트 고원과 연결된다. 메콩 강살윈 강 상류가 윈난성에 속한다. 그 외에도 홍강(훙허, 홍하) 상류, 주강의 지류인 난판강의 상류, 양쯔강(진사강)의 상류, 중류도 윈난성을 지난다.
[image]
메이리쉐 산 혹은 매리설산(梅里雪山)은 윈난성에서 가장 높은 으로, 최고봉의 높이가 무려 6740m나 되는 산이다. 티베트 불교에 있어서는 4대 신산 중 하나이며, 그 중 으뜸인 성지다. 순례자들은 메리설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멘츠무'(선녀)봉 꼭대기 근처까지 수시간을 올라가 신성한 폭포에 몸을 씻고 온다. 그리고 매리설산의 최고봉인 '카와커보'[7]봉은 1902년부터 1996년까지 10여차례가 넘는 등반 시도가 있었지만, 전부 실패하고 눈사태 등으로 2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8] 1996년 이후로는 중국 정부는 위험성과 성지라는 이유로 최고봉의 등반을 금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중 하나다. 미정복 봉우리 참조.
기후조건도 괜찮고[9]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거리도 가까워 교역 거점, 교통의 요충지로서 괜찮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 치고는 개발이 많이 되진 않은 듯하다. 지역총생산 순위도 중국 전체에서 하위권이라고 한다. 31개 성중 24위. 그래도 위안인건 티베트보단 낫다는 것과 미세먼지에 거의 시달리지 않는다는 점.
해발고도가 높지만 서북부 일부를 제외하면 적도에 가까워 눈이 내릴 일이 거의 없는 윈난 성이지만 2016년 한파 및 폭설 사태 당시에 성도 쿤밍에 2016년 1월 25일 눈이 내릴 정도였기 때문에 한파를 완전히 비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추위가 약했다(지도 참고).

3. 특산물


차마고도가 이곳에서 시작하며, 특산물로는 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보이차의 주산지로 유명하다. 같은 공법을 사용한 후발효차라고 해도 윈난성에서 생산된 차가 아닐 경우 보이차라는 상표를 붙일 수 없을 정도.
또한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열대 고원기후라는 특징을 살려 커피도 생산되고 있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아라비카종만을 생산하는데다가 생두의 품질이 뛰어난 편이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의 커피 소비량이 높아지자 차에 비해 단가가 높은 커피를 심기 위해 오래된 교목 차나무 등을 베어버리거나 차나무 자생지를 훼손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커피 수출 규모가 차 수출 규모를 앞질렀다고 한다. 윈난성에서 충칭으로 집결된 수출용 커피가 불과 15일만에 독일까지 운송된다고.#

3.1. 요리




4. 역사


춘추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장군 장교가 여기를 정벌했다가 초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눌러앉아 이곳 풍속을 따르고 전왕을 자처한 것이 중원 세력과의 첫 접점 기록이다. 한국사위만조선과 비슷한 케이스. 이후 한나라 한무제 시기 처음으로 중국의 통일왕조 치하에 들어왔고 익주에 편입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맹획이 왕으로 나오고 정글과 독천으로 뒤덮인 남만이라고 부르는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10] 칠종칠금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촉한의 남만 토벌은 사실이지만 독사가 드글드글대는 정글로 묘사된 연의의 서술은 나관중의 창작인데, 중세까지 중국인들이 윈난을 어떤 이미지로 생각했는지(...) 정도는 참고할 수 있다. 실제로는 연의에서 한족 관리 출신으로 나오는 고정이 월수군 수족의 왕이었고, 맹획은 원난성 일대에서 가장 영향력과 세력을 갖춘 호족으로서 독립 국가를 세우려고 반기를 들었다가 225년 촉한제갈량에 의해 평정되면서 남중은 촉한의 통치에 들어온다. 일종의 준자치구가 됐다고 보면 될 듯.
이곳은 서진 시기인 271년에 익주에서 영주(寧州)로 나뉘었고 옛 촉한 남중 지역의 4군을 거느렸는데, 그 땅은 대략 현재의 윈난성 지역에 해당한다. 동진, 유송, 남제 영주 관할에는 지금의 윈난성 전역, 구이저우성 중서부 지역이 있다. 중기 이후 폐지되었다가 서위(북주)가 554년 남영주(南寧州)를 세웠다가 수나라 초에 남영주총괄부를 두었다 폐지하고, 그 땅은 남조의 전신인 육조가 차지했다. 한편 당나라는 이 지역의 남영주총괄부를 이어받아 남은 지역을 남영주(南寧州)라고 칭하고. 치소를 미현(지금의 윈난성 취징시 서북쪽)으로 했으며 634년에는 낭주(郎州)로 개명했다가 717년 남영주로 다시 개칭했고 당현종 천보말년인 754년 이곳도 남조에 점령되어 석성군으로 바뀌었다.
중세에는 남조, 다리 왕조(대리국)가 있었던 곳인데 몽골 제국이 멸망시킨 후 운남등처행중서성(雲南等處行中書省)을 세웠다. 원나라는 이 지역에 이후 부하라 출신 색목인 관리 아잘 샴숫딘 우마르를 파견하여 쿤밍시를 건설시켰다. 아질 샴숫딘은 쿤밍 시를 다스리는 동안 모스크를 두 개 건설하였는데, 한동안 이 지역은 원나라 무슬림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원나라 말기 운남에 고립되어 있던 몽골 괴뢰정권인 양왕(梁王)의 정권을 명나라 홍무제가 멸망시켰을 때, 이 지역에서 몽골 황족들을 도우면서 정권을 잡고 있던 대리 단씨는 양왕국을 배신하고 명나라에 붙어 그 공으로 재독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대리의 은광산에 눈독을 들인 홍무제 주원장은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운남등처승선포정사사(雲南等處承宣布政使司)를 세워 1390년에 직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명나라는 대리 단씨를 비롯한 바이족을 귀속시킨 이후로도 대리국의 왕족들에게 계속해서 총독, 진무 같은 벼슬을 주면서 현지의 토사(土司)로 삼았다고 한다.
그 밖에도 명나라 대에는 이 지역 먀오족야오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반란 진압 구실로 몽골족 포로들을 대거 파견하여 열대성 질병으로 죽게 만든 적도 있고(...) 당대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자로 올라선 미얀마의 따웅우 왕조의 침략을 받았으나, 이 지역 후이족들이 자체적으로 격퇴하였다. 청조 말에는 할아버지 대에 한족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한 두문수(杜文秀)가 바이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평소 바이족과 사이가 나쁘던 나시족을 학살하고 잠시나마 윈난 성을 거점으로 술탄(...)으로 즉위하는 등 세우는 등, 우리가 생각하는 '중원'의 역사와는 사뭇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윈난성은 중국의 세력이 약한 지역이었고, 확실하게 중화제국에 편입되어 중국의 영토로 인식된 역사는 원나라 이래로 꽤 짧은 편이다. 그리고 윈난 서북쪽 고지대는 티베트인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민족, 역사, 지역색이 뚜렷하게 다른 소수민족 지역에 비해서는 한족을 비롯해 수많은 민족이 섞여있기 때문에 분리주의는 거의 없다.
위안스카이 집권, 호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탕지야오가 창시한 전계군벌이 지배했고 북양정부에 노골적으로 적대하며 맞서는 반독립적인 지역으로 남았다. 이후 룽윈(용운)이 지배권을 잡았으나 장제스(장개석)가 영도하는 국민정부의 영향력이 강대해지면서 중앙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중일전쟁 중에는 중앙에 복종하여 항일전을 수행했으며 일본군버마를 점령했을때 버마와의 접경 지역 일부가 점령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국공내전 중에 룽윈을 비롯하여 전계군벌 세력이 숙청되면서 중앙에 반감을 품고 공산당에 투항하게 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지배하게 되었고, 일부 중화민국군 병력이 국공내전 이후에도 버마로 넘어가 이곳을 공격하는 게릴라전을 이어가서 1950년대에는 충돌이 자주 벌어지기도 했다.

5. 민족


각종 문화권에 걸쳐있는 지역인 만큼 소수민족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중화민족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56개의 민족들 중 무려 2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11] 서북부의 디칭 자치주에는 샹그리라#s-1라는 이름의 현이 있는데 거기에는 티베트족이 거주하며, 그 밖에도 나시#s-3족, 하니#s-9족, 바이족[12](다리 시에 거주) 등등이 있다. 또한 현재 라오스의 라오족들과 미얀마의 버마족, 태국의 타이족들도 인도차이나에 정착하기 이전에는[13] 윈난성에서 살았다고 하며, 현재도 윈난성 일대에 남은 타이족과 버마족, 라오족들이 소수 살고있다고 한다.
이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을 큰 계통, 어족으로 나눠도 중국티베트어족, 태국어와 같은 어족(타이카다이어족), 먀오-야오어족(Hmong-Mien language family),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등으로 다양하다. 윈난성의 민족들 중 한족을 제외한 나머지 소수민족들의 인구가 성 전체 인구의 약 1/3을 차지한다고 한다. 비록 지리적으로 수도 베이징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윈난 성의 한족은 오어광동어가 아닌 보통화, 또는 같은 계열의 북방방언에 속하는 중국어를 쓴다. 이것은 쓰촨 성과 비슷한데, 이곳과 쓰촨 성의 한족이 중국의 북부 지방(관화 사용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 또는 그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에 거주하는 중국계 무슬림(후이족) 판사이(Panthays)도 윈난 성이 기원이다. 원나라 때 부하라에서 윈난성에 정착한 무슬림들이 버마와 중국 쓰촨성을 잇는 무역로를 개척한 것이 그 기원으로,[14] 판사이는 미얀마어로 “페르시아인”을 의미한다. 미얀마에 거주하는 중국계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6. 기타


성룡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대병소장>이 여기서 촬영했다고 한다.
윈난 돌연사 증후군(Yunnan sudden death syndrome)에서 윈난이 바로 이 곳을 말하는 거다. 이 곳에서 장마철만 되면 학명이 Trogia venenata인 독버섯에 중독되어 돌연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데서 그렇게 부른다. 다만, 그 원인이 버섯 자체의 독 때문인지 아니면 버섯에 축적된 바륨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 아무튼 이 때문에 현지민들은 외지인들에기 윈난성에서 버섯은 함부로 먹지 말라고 경고한다.[15] 2016년엔 윈난성에서 딸의 의대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 엄마가 버섯 요리를 했는데 그 버섯이 독버섯이어서 딸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2014년 3월 1일,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인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최를 불과 이틀 앞두고 쿤밍 철도역에서 10여 명의 괴한들이 무차별 칼부림을 자행해 29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구르 분리독립세력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수사에 착수하고 독립운동단체에 의한 추가 테러 가능성을 염려해 전국의 보안을 강화했다.참조 기사
일본 시마네현운난시(雲南市)와 한자가 같지만, 운난시의 도시명은 구 이즈모국(出'''雲'''国)의 남부('''南'''部) 지역에 위치하는 데에서 유래한다.
홍하(紅河)에는 하니족 이족자치주가 세워져있다. 본래 장가군의 서남부지역이었는데 촉한에서 그쪽을 흥고군으로 분리하면서 만들어졌다. 청말부터 국민정부시절까지 광산업으로 잘나갔던 적이 있었다. 개구(个旧)에선 1910년대부터 아연채굴이 이뤄졌는데 지금도 아연이 많이 나오고 있다. 몽자(蒙自)에서는 주석채굴이 이뤄진다.
자오퉁시 옌진현이라는 도시는 산과 강옆에 평지도 없이 그냥 만든도시라는 점이다.#

7. 출신 인물


  • 양쩡신: 휘하 부하 중에 같은 윈난성 회족이 많아서 신장성 통치에 많은 도움[16]을 받았다.
  • 탕지야오
  • 주페이더
  • 룽윈
  • 양시민
  • 저우바오중
  • 전서소가: 중국의 요리 전문 유튜버.
  • 마젠
  • 야오안나

[1] 현대의 태국인들의 조상은 중국 윈난성에서 남쪽의 태국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도 다이족이라는 태국계 거주민들이 시솽반나(西双版纳) 등에 거주하며 자치구까지 존재한다. 실제로 윈난성 징홍(景洪)에서 태국국경까지 메콩강을 따라서 운행하는 선박들이 있다.[2] 남한 면적의 4배로 일본보다도 땅이 넓다.[3] 스페인, 또는 남한과 비슷한 인구이다.[4] 북쪽부터 플로리다 주 남부≥윈난성 북부≥대만≒윈난성 중남부≥쿠바[5] ##. 타이베이와 거의 비슷한 위도.[6] 시솽반나, 허커우, 루이리 같은 남쪽 국경도시들은 그냥 중국의 동남아라고 봐도 될 정도로 풍경이 흡사 동남아 밀림도시에 온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날씨 또한 동남아 국가들의 일반기후처럼 덥고 습하다.[7] 티베트어로는 카와 까르뽀(ཁ་བ་དཀར་པོ།, kha-ba-dkar-po)라고 한다. '카와'는 눈(雪), '까르뽀'는 흰색이라는 뜻.[8] 특히 1991년에 중일합동등반대가 6700m 지점에서 눈사태로 17명 모두 사망하였다.[9] 1년 내내 , 가을 같은 기후조건이면서 해발고도도 1800m~3000m 사이라서 고산병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적응에 큰 어려움도 없고 적응만 잘 되면 정말 살기 좋은 기후인 곳이 대부분이다.[10] 남만이란 개념 자체는 중국 남부 및 남방의 지역, 나라를 통틀어 일컫는 개념이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남만 세력'이 이곳이다.[11] 영어 위키백과,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12] #1, #2 [13] 의외로 인도차이나에서 거주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옆동네인 광시 좡족 자치구에 다수 존재하는 좡족이 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있다.[14] 사천성과 버마를 연결하는 무역로는 전한 시절에도 존재하긴 했으나 원주민들의 무관심으로 규모와 수익이 적어 주목받지 못했다.[15] 이때문에 윈난성에서는 버섯 조리 시간이 타지에 비해 월등하게 길다.[16] 양쩡신은 자신의 동향 출신 회족들이 위구르인들과 덜 충돌할 줄 알았으나, 자신이 부하로 데려온 회족 중 일부가 카슈가르에서 위구르인 여성들을 데리고 하렘을 만드려던 게 발각되어, 위구르인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 직접 처형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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