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테츠 겐소

 


景轍玄蘇(경철현소)
(1537 ~ 1611)
1. 소개
2. 일생
3. 한국에서


1. 소개


전국시대와 에도 막부 시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승려로 종파는 임제종이다. 치쿠젠 국 출신으로 호는 센즈(仙巣).
한국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 밑에서 종군했던 '''겐소'''(玄蘇)로 잘 알려져 있다.[1]

2. 일생


에이로쿠 연간에 하카타 쇼후쿠지, 교토 토후쿠지 등에서 주지로 지내다가 1580년에 소 요시시게의 초청으로 쓰시마 섬으로 가서 암자 이테이안을 건립해 그 곳에 거주했으며, 이후 조선 관련 외교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80년에 소 요시토시와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선을 통해 명나라에 조공하려 했지만 거절당했으며, 1590년에 조선에서 선위사로 보낼 사람을 선발하려고 할 때 겐소는 문자를 알고 시 짓기를 좋아해 반드시 문장에 능해야 그에게 대응할 수 있으면서 그 나라에 전파되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했다. 1591년에는 대마도주의 끈질긴 요청 끝에 조선에서 일본에 조선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하자 조선 통신사와 동행하기로 한 겐소가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조선에 가서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에서 길을 내달라는 일본 본국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덕분에 조선에선 한바탕 난리가 나서 통신사의 임무에 일본이 전란을 준비하는지를 관찰할 것이 추가되었으며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일본이 명을 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렸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소 요시토시와 함께 고니시 유키나가의 휘하에서 참모로 종군했다. 고니시가 평양성 앞까지 진격한 후 상황이 안 좋아져 진군을 멈추자 6월 9일에 조선에 강화를 요청했고, 이에 조선 조정에서 이덕형을 파견해 겐소는 다이라 히라노부와 함께 회담을 했지만 조선측이 명나라를 침범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제안을 거절하자 협상은 결렬되었다. 1593년에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자 밤 중에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다이라 히라노부와 함께 얼음을 타고 대동강을 건너 철수했으며 이후에도 고니시 밑에서 명나라와의 강화 협상에 대해 논의하거나 통역하는 역할을 했다. 1595년에는 아예 명나라에 건너가 교섭을 했으며 1596년에 만력제에게서 본광국사(本光國師)라는 호를 받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에도 막부가 들어선 이래 일본에선 지속적으로 조선과 화해를 시도했고, 1609년에 겐소가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조선과 교역할 수 있도록 하는 기유약조를 받아냈다.

3. 한국에서


한국에서 아주 관심이 많은 임진왜란 시기의 인물이기 때문에 인지도가 그럭저럭 있는 편이지만 다들 이름인 겐소로만 알지 풀네임은 거의 모른다. 임진왜란을 다룬 사극에서 고니시, 소 요시토시와 붙어다니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방송에서 띄워주는 자막도 겐소 or 현소가 끝이다.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에서는 박인환이 맡았다. 자막은 한국식으로 읽은 '현소'로 표기.
2004년작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경영이 배역을 맡았다. 소 요시토시와 함께 조선에 건너와 도요토미의 망상을 슬쩍 흘려서 통신사 파견을 이끌어내거나 선조가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국서를 위조하는 등 전쟁을 막으려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 이후 고니시 밑에서 일본 측 협상단으로 종종 등장.
10년 뒤 방영된 징비록에선 박유승이 배역을 맡았다. 해당 작품에서 일본 측 등장인물을 죄다 한자음으로 표기했기에 겐소도 '현소' 자막으로 표기되었다. 불멸의 이순신때랑 행보가 거의 똑같지만 스님답게 살육당하는 조선인들을 보며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치며 탄식하는 모습이 조명되기도 했다.[2]
[1] 당시 조선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을 이름 부분만 떼서 행장, 청정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게이테츠 겐소도 같은 방식으로 '현소'라고 기록되어 있다.[2] 염불 외는 모습이야 불멸의 이순신때도 나왔지만 그때는 눈 감고 묵주 돌리는 장면만 잠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