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군

 



'''조선 인조의 손자'''
'''경선군
慶善君'''

'''군호'''
경선군(慶善君)
'''시호'''
효헌(孝憲)
'''본관'''
전주(全州)
'''이름'''
백(栢)
'''초명'''
석철(石鐵)
'''생부'''
소현세자
'''생모'''
민회빈 강씨
'''자녀'''
양아들
'''출생'''
1636년 4월 30일 (음력 3월 25일)
'''사망'''
1648년 11월 2일 (음력 9월 18일)
(12년 6개월 3일 / 4,569일)

1. 개요
2. 비극적 죽음
3.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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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조의 장남 내외인 소현세자민회빈 강씨의 장남.[1]
혈통상으로는 조선의 왕이 될수도 있었으나, 끝내 정치싸움과 할아버지아버지의 갈등에 휘말려 비참히 살해당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2. 비극적 죽음


소현세자청나라 심양에서 8년만에 조선으로 귀국한 후, 인조후궁조 소용와의 권력 속에서 갈등하다가 의문사한다. 조 소용은 그때를 기회로 삼아 "민회빈 강씨가 세자를 죽이고 왕(인조)를 죽이려 한다"고 무고했다. 그 결과 어머니 강빈이 사사되고(강빈옥사), 1647년에는 할아버지 인조의 명으로 두 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 뒤 이듬해에 13살의 어린 나이로 교살(交殺)되어 사망하였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 아버지 소현세자의 무덤 옆에 매장되었다. 일화로는 소현세자와 교분이 두터웠던 청나라의 장수 용골대가 경원군이 죽기 전 "경원군 이석철을 양자로 삼아 내가 기르겠다."며 청나라로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인조는 '''죽었다!'''라고 이리저리 둘러대어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당시에는 유배를 갔을 뿐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용골대가 원손 격인 석철을 꼭두각시 조선의 다음 임금으로 내세워 자신을 폐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내어주지 않은 거다.
인조 26년 3월 4일, 청나라의 사신이 소현세자의 세 아들의 행적을 묻는다. 조선에서는 "강빈(姜嬪)의 일에 연좌되었고, 조정에서 세 아이들을 죽이라고 청했으나 인조가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섬으로 유배 보냈는데, 그만 마마로 죽었다."고 또 둘러댄다.
3월 7일, 이 문제를 인조와 신하들끼리 상의하였다.

인조: 죽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구실을 삼을 것이고, 죽지 않았다고 하면 화(禍)를 장차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니, "큰아이도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자점: 저들이 기필코 데려가려 한다면, 차라리 편의(遍議)에 의해 처리할지언정 데리고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청나라 사신이 다녀간 지 6개월 만인 26년 9월, 마침내 이석철이 숨졌으며, 같은 해 12월에 둘째인 이석린도 끝내 숨졌다.

3. 가계도


  • 조부: 조선 16대 국왕 인조 이종(李倧)
  • 조모: 인열왕후 한씨
    • 아버지: 소현세자 이왕
    • 어머니: 민회빈 강씨
      • 경선군 이석철 (원손, 원자)
        • 양아들: 임성군(臨城君) 이엽(李熀)[3]
          • 양손자: 밀남군(密南君) 이감(李堪)[2]
      • 남동생: 경완군 이석린
      • 남동생: 경안군 이석견
      • 여동생: 경숙군주[4]
      • 여동생: 경녕군주
      • 여동생: 경순군주
이 외에도 어렸을 때 요절한 두 누나가 있다.
[1] 경선군 손위로 두 누이가 있어 출생순서론 셋째이다,[2] 임성군의 친형인 임창군(臨昌君) 이혼(李焜)의 차남이다.[3] 1665년생. 경안군의 차남. 경선군 사후 그에게 입양되었으나 그 또한 아들을 얻지 못하고 요절했다.[4] 군주(郡主)는 세자의 적녀, 즉 세자빈에게서 얻은 딸이다. 세자의 서녀는 현주(賢主). 아버지가 즉위하여 왕이 되면, 신분이 저절로 공주/옹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