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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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조의 장남 내외인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의 장남.[1]
혈통상으로는 조선의 왕이 될수도 있었으나, 끝내 정치싸움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갈등에 휘말려 비참히 살해당한 안타까운 인물이다.
2. 비극적 죽음
소현세자는 청나라 심양에서 8년만에 조선으로 귀국한 후, 인조의 후궁인 조 소용와의 권력 속에서 갈등하다가 의문사한다. 조 소용은 그때를 기회로 삼아 "민회빈 강씨가 세자를 죽이고 왕(인조)를 죽이려 한다"고 무고했다. 그 결과 어머니 강빈이 사사되고(강빈옥사), 1647년에는 할아버지 인조의 명으로 두 동생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된 뒤 이듬해에 13살의 어린 나이로 교살(交殺)되어 사망하였다.
유배지에서 사망한 후, 아버지 소현세자의 무덤 옆에 매장되었다. 일화로는 소현세자와 교분이 두터웠던 청나라의 장수 용골대가 경원군이 죽기 전 "경원군 이석철을 양자로 삼아 내가 기르겠다."며 청나라로 데려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인조는 '''죽었다!'''라고 이리저리 둘러대어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당시에는 유배를 갔을 뿐 '''멀쩡히 살아 있었는데''', 용골대가 원손 격인 석철을 꼭두각시 조선의 다음 임금으로 내세워 자신을 폐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내어주지 않은 거다.
인조 26년 3월 4일, 청나라의 사신이 소현세자의 세 아들의 행적을 묻는다. 조선에서는 "강빈(姜嬪)의 일에 연좌되었고, 조정에서 세 아이들을 죽이라고 청했으나 인조가 차마 죽일 수는 없어서 섬으로 유배 보냈는데, 그만 마마로 죽었다."고 또 둘러댄다.
3월 7일, 이 문제를 인조와 신하들끼리 상의하였다.
청나라 사신이 다녀간 지 6개월 만인 26년 9월, 마침내 이석철이 숨졌으며, 같은 해 12월에 둘째인 이석린도 끝내 숨졌다.인조: 죽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구실을 삼을 것이고, 죽지 않았다고 하면 화(禍)를 장차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니, "큰아이도 죽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자점: 저들이 기필코 데려가려 한다면, 차라리 편의(遍議)에 의해 처리할지언정 데리고 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3. 가계도
이 외에도 어렸을 때 요절한 두 누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