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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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보물 제187호


1. 개요


慶州 南山 茸長寺谷 石造如來坐像. 8세기 경 경상북도 경주시의 용장사터에서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 불상.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번지'에 소재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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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높이 4.56m, 불상 높이 1.41m.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매우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에서 8세기 경에 제작한 불상이다. 이 절은 신라 초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경덕왕 시기에 법상종(法相宗)을 열었던 고승 대현(大賢)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이 절에 있는 장륙상(丈六像)의 주위를 돌며 예배하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렸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훗날 조선 초에는 승려가 된 김시습이 절에 기거하면서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썼다 하여 이 때까지만 해도 용장사가 큰 문제 없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알 수 없는 이유로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원래는 남산의 능선을 따라 형성된 용장사지 빈 터의 삼층석탑형 대좌(三輪臺座) 위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발견 당시에는 삼륜대좌와 불상이 누군가에 의해 모두 분해되어 있었고 불상의 목 또한 예리하게 참수되어 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모두 찾았으나 불상의 머리 만은 끝내 찾지 못했는데, 참수 당시에 어딘가에 따로 묻거나 완전히 분쇄해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머리는 사라졌지만 불상의 목 아래 부분은 비교적 보존 상태가 좋다. 어깨는 좁은 편이지만 당당함을 보여 주고 있으며, 몸의 굴곡은 세세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균형 잡힌 신체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이한 점으로 오른손을 오른무릎 위에 올려놓고 왼손을 왼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놓아, 항마촉지인을 반대로 수인 짓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석굴암이나 8세기 중엽 불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특히 불상이 입은 옷은 매우 숙달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질서정연하고 부드러운 층단식 옷 주름은 신라시대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한국의 조각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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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는 기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탑(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총 삼층의 중첩된 원형 대좌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 원형의 대좌에는 아름다운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맨 아래에 자연석 기단부 위에 원형의 대좌 받침석과 원형 대좌를 교대로 중첩하였으며 최상단의 원형 대좌는 앙련 대좌로 장식하여 그 고대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여래좌상의 신광 왼쪽에는 조상명으로 보이는 명문이 세 줄로 10여 자 새겨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만들어진 신라시대의 석조 불상으로, 8세기 경 한국의 사실주의적 조각 미술계 경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에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