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1. 개요
金鰲新話
김시습이 조선대에 지은 전기소설이자 조선 최초의 한문 소설집. 소설이란 장르로 치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소설'''이다.[1][2] 다만 최초의 한글 소설은 홍길동전.
한글 이름만 보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 신화와는 한자와 의미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신화는 귀신 신(神)자, 여기 이 금오신화는 새로울 신(新) 자.
novel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새로운 이야기, 참신한 이야기" 라는 것을 고려하면 소설이라는 조어보다도 더 정확하게 소설이라는 장르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소설집 제목이란 점을 고려할 때 흥미로운 부분.
2. 상세
금오(金鰲)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을 뜻하는데, 경주 남산(경주)의 한 봉우리이다.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 7년 간 은거하며 지은 새로운 이야기라 하여 금오신화(金鰲新話)라고 한다. 용장사는 조선 전기 이 때까지만 해도 절이 있었지만 21세기 현재는 터만 남았는데, 용장사지 석탑이나 석조여래좌상 등 보물이 다수 있다.
김시습 역시 조선시대 인물들이 그렇듯 본래는 유학자 출신이지만 세조의 집권 이후 세상을 버리고 출가해 산에서 도를 닦았기 때문에, 해당 소설들에는 유교와 거리가 먼 불교 및 도교적 사상관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귀신이 매우 자주 등장하고, 심지어 귀신과 맺어지기도 한다.(...)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 박생(朴生), 이생(李生) 이런 식인데 이건 이름이 아니라 당시 유생들을 생이라고 호칭한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박군, 이양과 비슷한 것이다.
이야기 구조들이 굉장히 비슷비슷하다. 주인공 남성이 우연히 기이한 존재와 접하거나 이계에 가게 되고, 마지막엔 종적이 묘연하거나 세상을 떠난 뒤 이계의 높으신 분이 되는 이야기. 어찌 보면 귀신에 홀려서 죽는 이야기들로 봐도 무방한 듯? 매회 중간중간엔 삽입시가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이런 구조는 한국 전통에서 역사의 신화화 과정과 흡사한 구조다. 한국 전통에서 역사상 자기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신격화되고 신격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마의태자, 최영, 남이, 사도세자 등이 그런 케이스. 김시습도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세조의 왕위찬탈이란 시대 한계에 절망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금오신화의 구조는 신화화 구조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금오신화 이야기가 5개 이야기 중 2개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나머지 2개는 세상을 등지고 승천했다는 이야기고 나머지 하나는 1개는 행방불명이 된다는 거였다. 처음 접한 사람들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충격적인 결말이다.
3. 전등신화의 영향
금오신화는 중국의 전등신화를 참고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금오신화가 베낀 작품으로 저평가를 받을 까닭은 없다. 한국, 베트남, 일본 모두 전등신화에 기반한 번안/번역 작들이 모두 있다. 당대 동아시아 최강대국이었던 명나라가 동아시아 전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으며, 전등 신화가 당대 '''명나라에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심지어 이시백의 건의로 금서로 지정되어 다 불태워 버려서 상당수가 소실되었다. 이유는 괴력난신을 다루지 말라는 현실주의적인 유가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시백의 말을 인용하자면 학문을 갈고 닦아야할 유생들이 다들 전등신화를 외우고 다니고 맨날 그 얘기만 해대면서 공부를 안하며, 심지어 서민들이나 유생들 중 일부는 '나도 미인 귀신이랑 연애할 거야!' 라면서 현실에서 벗어나 도사가 되는 놈들도 있으니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고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김영호 저 아사이 료이 문학의 성립과 성격 中) 이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보니 동아시아 전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심지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전등신화의 한 구절을 인용한 문구까지 있다.'''(정유년 5월 21일자 일기)
애초에 출간된 시기 자체가 금오신화보다 먼저였던 데다가 플롯도 꽤 비슷한 데다 김시습이 전등신화를 읽고, 요즘으로 치면 전등신화 독후감상문 정도로 볼 수 있는 '제전등신화후'를 적기도 했다는 점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 이 외에도 베트남의 전기만록(傳奇漫錄)이나 일본의 오토기보코(伽婢子) 모두 전등신화를 번안한 소설들이 있다. 전기만록과 오토기보코는 현재 남아 있는 전등 신화와 1:1 대응되는 작품들이 대개이기 때문에 전등신화의 모란등기라는 작품이 보탄토로[3] 로 대응되는 것을 보아 분명하다.
학계에서는 이런 것이 국가 간의 문화, 문학 전파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고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 일본, 베트남 삼국이 모두 전등신화와 금오신화, 오토기보코, 전기만록을 서로 비교하며 전등 신화와의 견련성을 연구한다. 문제는 삼국이 이를 학술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국수주의에 입각하여 '비교해 보니 내 나라 작품이 제일 우수하더라'라고 결론하는 것이 문제이다. 막상 중국에서는 전등신화 자체가 금서로 지정되어 소실된 부분이 많고 또 명 대의 다른 수 많은 서민 문학들이 존재하기에 막상 전등신화는 그다지 연구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전기만록의 경우 전등신화와 각 편이 1:1 대응되는 식으로 거의 모방하고 작가의 생각 하나를 추가한 수준이고, 오토기보코의 경우는 전등신화 의 각 편, 금오신화 중 2편[4] 를 1대 1 대응시켜서 센코쿠 시대 판으로 번안한 정도라 전등신화를 모방했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금오신화의 경우는 전등신화의 소설들을 여러 개 섞은 식이라 이야기가 조금씩은 차이가 난다.
특히 애정담의 경우는 금오신화가 조금 더 비극적이라고 해야 할까... 말하자면 저 두 작품이 번안, 번역본이라면 금오신화는 오마주내지 패러디 정도. 그 외에도 현재 내려오는 금오신화의 내용은 전등신화와는 다르게 악한 귀신이나 요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5]
반면 일본 측의 해석으로는 오토기보코의 문학성이 제일 우수하며[6] 또한 원문에 없는 와카 등을 추가하여 눈빛 한번에 반하던 원문에 비해서 문학성을 배가하였고, 또한 고증이 상당히 철저(?)해서 전등신화에 애경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내용이 한 유부녀가 전쟁 중 절개를 잃게 되자 자살하고서 유령이 되어 남편에게 돌아가 3년 동안 봉사하다가 3년의 시간이 되자 "저는 이미 죽은 몸이고 이제 3년의 시간이 다했으니[7] 이만 돌아가야 한다"는 여인의 절개를 비극이 있는데 이걸 기생 미야기노[8] 로 번안한 오토기보코에서는 다케다 신겐의 스루가 침공을 모티브로 삼았고 죽은 미야기노와 함께 3년을 도망다니다가 성불하고서 3년 후에 스루가로 돌아가는데 다케다 신겐의 스루가 침공+정리가 3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또한 서민들에게 읽기 쉽게 만들어져 이후 오토기보코를 원류로 한 수 많은 괴담 소설들이 등장했다. 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베트남의 작품의 경우, 명의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창작 시기가 '''명나라에 공격당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작가부터가 명에 매우 비판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게 어느 정도냐면 주인공이 열심히 여주를 찾아가더니 갑자기 장르가 바뀌어서 군담물이 될 정도. 전등신화의 취취전과 금오신화의 이생규장전, 베트남의 여랑전이 서로 대응되는 작품인데, 이생규장전과 취취전에서는 남주가 여주를 찾아가 우여곡절 끝에 모두 죽고 귀신으로서 다시 함께하게 되는 연애소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랑전의 경우는 명의 침략에 휘말려 여주가 사라지고 남주가 찾아가는 부분까지는 같으나 이미 귀신이 된 여주가 남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죽은 두 여성과 남기를 원해 하룻밤도 같이 하지 못하고 영원히 헤어지게 되며, 이후 남주는 영원히 결혼하지 않을 것을 결의한 뒤 베트남의 장군으로 명에 맞서 온갖 뛰어난 업적을 이룩하고 나라를 구하는 데 큰 보탬이 되었다더라.. 하고 끝난다. 이 외에도 뒤에 작가의 논평이 달려 있다거나(불쌍하긴 한데,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아 가문을 끊어놓았으니 작은 것에 집착하여 큰 것을 이루지 못했다 하겠다..는 식의 러브스토리고 뭐고 다 깨부숴놓는 논평이다) 앞의 세 나라 작품과 달리 주인공들이 평민이라는 점 등이 차이점. 더 자세한 내용은 너무 복잡해지므로 관련 전문 서적이나 논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5편뿐이지만 창작 당시에는 다른 소설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책이 발견되었을 때 하권 끝에는 이 책을 ‘갑집(甲集)’이라고 한 기록이 있어, 본래의 작품 수는 5편 이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위의 각주에 적혀진 전등신화와 연관해 보는 사람들도 있다.[9] 특히 전등신화의 경우 전체 4권이고 한 권당 5편으로 구성+부록 1권으로 21편인 것을 보면 여러 권 중에서 한 권만 보존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1999년 중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본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에서는 책 자체는 단편적인 문헌으로만 존재해 책이나 소설의 행방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초로 이 책의 목판본이 발견된 곳을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 일본에 있던 이 목판본을 최남선이 발견하여 잡지 ≪계명 啓明≫ 19호를 통해 1927년에 국내에 소개하였다. 문화재 약탈과 관련된 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애초에 이 목판본이 간행된 시기는 1884년 동경에서 간행된 것인 데다, 이 목판본 ≪금오신화≫는 1653년(효종 4)에 일본에서 초간되었던 것을 재간한 것이며, 초간의 대본은 오쓰카(大塚彦太郎)의 가문에 오랫동안 전하여 오던 자료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문화재 약탈과는 거리가 멀다. 책의 조상뻘 되는 책인 전등신화 목판본이 최초로 발견된 곳 역시 일본이었다. 이쪽의 경우는 명나라 국자감에서 국민들 정서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책 자체의 간행을 금지해 버렸기 때문에...(...) 대신 이 전등신화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 - 조선, 베트남, 일본 등 - 에서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조선의 경우에는 조선 초부터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사람들이 읽었다는 말이 있고, 일본 쪽에서도 중국에 없던 자료가 남아있었던 것이 발견된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황을 앞의 내용들과 연관지어서 문화의 전파 과정을 연구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4. 내용
4.1. 만복사저포기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만복사에서 홀로 살고 있던 양생은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을 서러워 하던 중, 부처님과 저포놀이[11] 를 해 이기고 제 짝을 찾아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부처님이 양생의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전쟁 중 살해당해 외딴 곳에 묻힌 처녀귀신(...)과 양생을 만나게 해 주고, 둘이 맺어지게 된다. 이 여인의 공양을 위해 찾아온 장인 장모와도 조우했으나, 여인을 볼 수 있는건 양생 뿐. 함께 잠깐 신혼을 즐겼으나 여인은 결국 다른 곳에서 남자로 환생하게 되었다며 사라진다. 양생은 여인을 그리워 하다가 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뒤 그의 소식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덧붙여 작중 묘사라는 양생의 아내의 나이가 15~16세 정도로 묘사되지만 당시에는 중고등학생 나이 정도되면 결혼하는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유난하다고 할만한 연령은 아니다 심지어 영조는 66세의 나이로 당시 15세였던 정순왕후를 새 왕비로 맞이했다.
여담으로 삼국유사에 실린 조신의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처나 보살 등에게 인연을 기원하는 사람이 결국 사랑 같은 속세의 행복은 덧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후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도 그렇고....
사실 이 소설의 가장 슬픈 점이라 하면, 양생이 죽어 저승에서 여인을 만나려 해도, 여인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양생은 어떻게 해도 여인을 만날수없다는 것이다.
소설의 배경인 만복사는 '''실제 전라북도 남원시에 존재했던 절이다.''' 지금은 절은 사라지고 터만 보존되어 있다. 남원시 왕정동에 만복사지가 있는데 만복사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만복사지 5층석탑. 고려 문종 때인 11세기에 건설된 탑으로 고려 초기의 탑이라 보물 3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전승으로는 도선대사가 창립한 절이라고 하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문종 때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5층석탑도 이 시기의 유적이라 절 자체가 이시기에 세워졌고 절의 권위를 높이려고 도선대사 창립설이 퍼진 듯 하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왜군에 의해 불태워져서 숙종 때 재건을 시도했으나 절이 너무 커서 포기하고 그냥 승방 한 채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야기 소재 자체는 수신기에 실린 부마 신도탁 이야기와 흡사하다. 자세한 내용은 부마 항목 참고.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 영역에 두 번째 지문(16~19번)으로 출제되었다.
4.2. 이생규장전
학당에 다니던 이생은 우연히 최랑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나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다. 둘은 그리움에 상사병을 앓고, 결국 부모가 두 손을 들어 결혼한다. [12]
그 뒤 곧 홍건적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다시 헤어졌으며 피난 도중 최랑은 도적떼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도적을 욕하며 도발하여 도적에게 죽임을 당한다. 마침내 전란이 끝나고 이생의 앞에 최랑의 혼이 나타날 때 이생은 아내가 귀신임을 알면서도 함께 살게 된다. 마침내 최랑의 혼은 저승으로 가게 되고, 이생은 아내의 뼈를 찾아서 묻어준 후 자신도 병을 앓다 최랑의 곁으로 갔다.
학계에서는 이생이 생육신, 최랑이 사육신을 비유한 것으로 전란은 계유정난을 의미하며, 뼈를 찾아 묻은 것은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찾아 매장한 것을 비유한 것으로 단순한 사랑 이야기처럼 포장했지만 사실은 계유정난을 비판하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생규장전으로 별도 항목이 개설되었다.
4.3. 취유부벽정기
상인인 홍생은 술을 마시고 평양 부벽루에 올라갔다가, 한 여인과 만나 서로 시를 주고 받는다. 여인은 홍생에게 하늘의 술과 육포 등을 내어 대접하며, 자신을 기자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의 딸이라고 소개하며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자살하려다가 단군[13] 의 도움으로 천녀가 되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정을 느끼다가 기랑은 다시금 천계로 올라가 버린다. 홍생은 기랑을 그리워 하던 중 자신이 상제의 명으로 선관이 되었다는 꿈을 꾸고 이를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죽고 나서도 시체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말끔했기에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선인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4.4. 남염부주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고 집에서 잉여로 지내던(...) 박생은 어느 날 저승사자의 인도로 염부주에 가게 된다. 그곳은 염마왕이 다스리고 있는 저승으로, 염마왕은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 있었다. 박생은 염마왕과 토론을 벌이고 그에게서 인정받는다. 염마왕은 박생을 염부주의 새로운 왕으로 지목한다.
이승으로 돌아온 박생은 집안일을 정리하고 어느 날 세상을 떠나는데, 이웃 사람들의 꿈에 저승사자가 나타나 그가 염부주의 염라왕이 되었음을 알린다. 박생과 염마왕의 토론 부분은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데 김시습의 방외인적인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4.5. 용궁부연록
글솜씨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한생이 용궁에 초대를 받아 가고 그곳에서 상량문을 지어 올리게 된다. 용왕은 그의 재주를 칭찬하며 연회에서 잘 대접한 후, 용궁 구경을 시켜주고 각종 진귀한 보물을 선물해 도로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꿈에서 깨어난 한생은 가산을 정리하여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여기서 한생은 어린 시절 뛰어난 글솜씨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방외인으로 남게 된 김시습의 모습을 나타내며, 용왕은 세종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금오신화》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7915 [2] 논자(김종철, 박희병, 임형택 등)에 따라 <<수이전>>에 실린 <최치원> 등을 우리 문학사의 최초의 소설로 보기도 한다.[3] 현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괴담이다. 김영호 - 《아사이 료이 문학의 성립과 성격》.[4] 놀라울 수도 있겠지만 작가인 아사이 료이는 승려이자 유학자로서 삼강행실도 등 조선의 문학 작품들을 많이 번역, 번안한 가나조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에도 시대 모든 서적은 조선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에도 시대 초기 조선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5] 군자는 괴력난신을 논해서는 안 된다는 유학 덕분이다. 명나라의 전등신화가 너무 요괴가 판치고 유령이 판쳐서 금서로 지정되어 불태워졌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수정.[6] 조선에서 들여온 삼강행실도 번역 등을 봤을 때, 아사이 료이의 번안 스타일이 심각한 의역과 문구 창조+원문 삭제를 통해서 글을 일관성 있고 말이 되게 정리하는 경향이 많다. 이걸 문학성이라고 보기에는 물론 이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뭐...[7] 3년 동안은 현세에 머물다가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다. 3년상을 생각해보자.[8] 기생이 절개?가 조금 이상하지만 당대 기생의 신분은 낮은 것이 아니었고, 순결을 지키는 것과, 결혼을 한 다음에 남편에 대한 절의를 지키는 것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요재지이 등에서도 기생이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순결을 문제 삼지 않는 작품들은 굉장히 많다.[9] 참고로 전등신화는 총 20편, 전기만록은 베트남 작가의 생각까지 합쳐저 총 21편, 가비자의 경우는 총 68편. 즉 금오신화 역시 적어도 20편 이상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0] 윤회[11] 주사위를 사용하여서 '''쌍륙'''이라고도 불린, 이 '''노름'''의 정체는 바로... 백개먼이다. 그런데 부처님 턴(...)에도 자신이 던졌다. 이 만화 생각나지 않는가?[12] 독특한 점은 여주인공 최랑은 고전소설의 여주인공과는 달리 이생에게 먼저 구애하는 적극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13] 직접 단군이라 언급되지는 않으나, 작중에서 이 나라(고조선)을 세웠으며 이후 신선이 되어 수천년을 산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