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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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경 경주 남산의 한 이름 없는 사찰(학계에서는 유덕사(有德寺) 또는 이거사(移車寺)로 추측)에서 조성된 한국의 석조 불상. 현재 청와대 녹지원 내 누각식 보호각 안에서 보존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상 높이 108cm, 방형 대좌 93.5×91.1×24.5cm.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화강암 계열의 석조 불상으로,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처음 발견되어 1917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5권으로 본 석불좌상에 사진이 실린 것이 최초이다. 이후 1927년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특별한 한국의 국보를 관저에 함께 세워놓자는 의견에 따라 이 불상이 낙점되어 총독부로 옮겨졌다.
이 불상이 처음 발견된 경주 남산의 폐사지는 정확히 어떤 곳이었는지 현재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는 유덕사(有德寺)란 절로 추정하고 있는데, 유덕사는 고신라시대의 태부각간 최유덕이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경주 남산에 세운 절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 권 제3 유덕사조(有德寺條)에 전해지고 있다. 이 설은 따르는 사람들은 이 불상 또한 '유덕사(有德寺) 석가여래좌상'이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론 인정받지 못하는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한편 이 절이 유덕사가 아니라 이거사(移車寺)라는 절이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 '청와대 불상 원위치는 경주 이거사' 결정적 증거 나왔다
현재 석불좌상의 전체적인 외형은 세월이 흐르며 전체적으로 약간 풍화된 것을 제외하면 큰 손상이 없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고대 석불 가운데 파손 없이 이렇게 완전한 사례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특히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인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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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 일본도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이므로 천 년이 넘은 불상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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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과 함께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사진 출처 : 연합뉴스 - 2020년 5월 文 대통령-여야 원내대표 '靑 미남불' 앞 합장..."협치 다짐"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년 전에 경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신라의 석조 불상으로, 일제강점기 때 총독관저로 이동된 이후 지금까지 쭉 10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반도의 리더들로부터 영험한 불상으로 여겨지며 사랑받아온 보물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4일 문화재 지정명칭이 석불좌상(石佛坐像)으로 변경되었고, 최종적으로 2018년 4월 2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7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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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경주시의회 "일제강점기 이전 청와대 불상 반환하라"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의 시민단체들과 시의회, 국립경주박물관 등은 이 불상이 그동안 청와대에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에게 사랑받아왔던 역사적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본디 일제의 만행에 의해 무단반출된 것인만큼 이 불상을 원래의 고향인 경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태이다. 다만 원래 경주 어디에 있었는지 이거사지가 유력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설도 있는 등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는 없어서 반환이 쉽게 성사되지 못하는 듯. 만약 반환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 갈 가능성이 높다.
사진 출처 :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 청와대 미남석불과 쌍둥이 '불두', 왜 경주 남산에서 발견됐을까
2020년 6월 3일, 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똑같이 닮은 신라시대 석조 불상의 불두가 경주 남산에서 발견되었다. 청와대 불상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10m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불상의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지만 조선시대 때 유학자들이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상의 목을 친 후 내버린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1. 개요
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통일신라 시대인 9세기 경 경주 남산의 한 이름 없는 사찰(학계에서는 유덕사(有德寺) 또는 이거사(移車寺)로 추측)에서 조성된 한국의 석조 불상. 현재 청와대 녹지원 내 누각식 보호각 안에서 보존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보물 제1977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불상 높이 108cm, 방형 대좌 93.5×91.1×24.5cm.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화강암 계열의 석조 불상으로,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처음 발견되어 1917년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5권으로 본 석불좌상에 사진이 실린 것이 최초이다. 이후 1927년에 조선총독부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특별한 한국의 국보를 관저에 함께 세워놓자는 의견에 따라 이 불상이 낙점되어 총독부로 옮겨졌다.
이 불상이 처음 발견된 경주 남산의 폐사지는 정확히 어떤 곳이었는지 현재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다만 일부 학계에서는 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는 유덕사(有德寺)란 절로 추정하고 있는데, 유덕사는 고신라시대의 태부각간 최유덕이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경주 남산에 세운 절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 권 제3 유덕사조(有德寺條)에 전해지고 있다. 이 설은 따르는 사람들은 이 불상 또한 '유덕사(有德寺) 석가여래좌상'이라 부르지만 공식적으론 인정받지 못하는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 한편 이 절이 유덕사가 아니라 이거사(移車寺)라는 절이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연합뉴스 : '청와대 불상 원위치는 경주 이거사' 결정적 증거 나왔다
현재 석불좌상의 전체적인 외형은 세월이 흐르며 전체적으로 약간 풍화된 것을 제외하면 큰 손상이 없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고대 석불 가운데 파손 없이 이렇게 완전한 사례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특히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인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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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 일본도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이므로 천 년이 넘은 불상에 예의를 갖추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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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들과 함께 불상에 예를 표하는 모습.사진 출처 : 연합뉴스 - 2020년 5월 文 대통령-여야 원내대표 '靑 미남불' 앞 합장..."협치 다짐"
지금으로부터 약 1,200여년 전에 경주 지역에서 만들어진 신라의 석조 불상으로, 일제강점기 때 총독관저로 이동된 이후 지금까지 쭉 10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한반도의 리더들로부터 영험한 불상으로 여겨지며 사랑받아온 보물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6월 4일 문화재 지정명칭이 석불좌상(石佛坐像)으로 변경되었고, 최종적으로 2018년 4월 20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977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3. 경주 반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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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 경주시의회 "일제강점기 이전 청와대 불상 반환하라"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의 시민단체들과 시의회, 국립경주박물관 등은 이 불상이 그동안 청와대에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에게 사랑받아왔던 역사적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본디 일제의 만행에 의해 무단반출된 것인만큼 이 불상을 원래의 고향인 경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태이다. 다만 원래 경주 어디에 있었는지 이거사지가 유력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설도 있는 등 정확한 위치를 확신할 수는 없어서 반환이 쉽게 성사되지 못하는 듯. 만약 반환된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 갈 가능성이 높다.
4. 쌍둥이 석불 발견
사진 출처 : 이기환 기자의 흔적의 역사 - 청와대 미남석불과 쌍둥이 '불두', 왜 경주 남산에서 발견됐을까
2020년 6월 3일, 이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과 똑같이 닮은 신라시대 석조 불상의 불두가 경주 남산에서 발견되었다. 청와대 불상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10m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불상의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나오고 있지만 조선시대 때 유학자들이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상의 목을 친 후 내버린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 한겨레 : 청와대 불상 쏙 빼닮은 ‘신라 불상 머리’ 경주 남산서 발견
- 경향신문 : 경주 남산서 찾은 불상 머리…‘청와대 미남석불’ 빼닮았네
- 중앙일보 : 靑 미남석불 쌍둥이 '경주 남산 불상' 잃어버린 머리 찾았다
- KBS : 경주 남산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머리’ 발견…“청와대 석불과 같은 양식”
- 동아일보 : 통일신라 석조여래좌상 ‘머리’ 찾았다
5. 바깥고리
6. 보물 제1977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된 석불좌상으로, 1974년 1월 15일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이번에 문화재적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편단우견(偏袒右肩)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중대석과 하대석은 손실되었지만 다른 부분은 큰 손상 없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한다. 특히 비대하고 무겁게 보이는 형태와 일정한 간격으로 이루어진 평행선 주름 등은 9세기의 새로운 시대적 조형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불(石佛) 중 머리와 몸체가 일체(一體)로 완전하게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연꽃문양을 새긴 사각형대좌는 동시기 불상 중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이 동 석불의 문화재적 가치를 종합해 볼 때 9세기 통일신라 불상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조각으로 인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