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성곽 출토 신라 해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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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1. 개요


일제강점기이던 1930년, 경상북도 경주시서라벌 경주성터에서 출토된 6세기~7세기 경 신라시대의 화강암해시계. 현재 한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시계 유물이며, 원본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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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모습. 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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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에 경주시 옛 서라벌 경주성곽터에서 발굴된 6세기~7세기 경 해시계로, 연구 결과 재질은 화강암이고 원형판 위에 선을 그어 시각 표시를 한 원반형 해시계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물의 반경은 약 33.4cm, 최대 두께는 약 16.8cm인데 현재는 자시(子時: 오후11∼오전1시)에서 묘시(卯時: 오전5∼7시)까지의 부분이 남아 있다.신라에도 원방형의 해시계가 있었다
이 해시계는 원을 24등분하여 24방향에 24자가 새겨진 시반(時盤)과 그 주위에 8괘를 기호로써 새겨 8방위를 나타내고 있으며, 중심에 그림자가 나타날 막대기(시표)를 세웠고 밑면에 선을 그어 24등분(시반)하여 놓았으므로 햇빛 받는 면을 수평으로 놓지 않고 적도(赤道)에 평행하게 설치하였다. 시반면에 수직으로 세워진 시표는 북극을 향해놓았다.
이런 형태의 해시계는 훗날 고려를 통해 조선시대로 계승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고려시대의 해시계와 물시계 등은 문헌기록에 전혀 나와 있지 않고 어떠한 유물도 현존하지 않는다. 인터넷 상에서는 고려시대의 해시계라며 떠도는 유물들이 한두개 정도 있으나 실제로는 조선 세종때 만들어진 것을 현대에 복원한 것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 시간측정기 연구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해시계보다는 향시계(香時計)를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참나무에서 나는 버섯을 잿물에 삶은 뒤 가루를 내어 돌 따위에 글자 모양으로 파놓은 홈에 채워 놓은 후 여기에 불을 붙여 그 타들어가는 정도에 따라 시각을 판별했던 것으로, 햇빛이 없는 밤에도 사용할 수 있었고 고즈넉한 운치를 자극하는 1회용 향을 사용하는 특성상 당시의 고려 귀족문화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신분 구별 없이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해시계와는 달리 향시계는 먹고 살기 힘든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데다, 1회성인 특성상 현대까지 유물이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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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시대에는 세종 시기에 앙부일구,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 규표 등의 해시계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역시 세종대의 원본 유물들은 현존하지 않으며 현재 내려오는 것들은 조선 후기인 17, 18세기에 이르러 복원된 것들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해시계(─時計) 따라서 이 신라 해시계는 기존 한국에 현존하던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해시계 유물들보다 1,000여년 더 이전부터 이미 한민족이 고도의 천문학과 시간측정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3. 바깥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