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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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在鳳
1899년 2월 3일 ~ 1992년 6월 14일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본관은 장흥(長興)[1].

2. 생애


1899년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출신.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효고현 고베시 칸세이가쿠인대학 신학부를 졸업했으며#, 귀국 후 미국감리교회 주일선교부 직원으로 근무했다. 8.15 광복대한적십자사 총무를 지냈다. 1949년 이기붕의 추천으로 경무대비서실장을 지냈고, 1953년 서울시 부시장, 1954년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같은 해 서울시장이 되었다. 임기기간 동안 6.25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시의 복구에 힘썼으며 특히 서울시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수도 정비사업에 매진했다.
4.19 혁명 이후 부정축재자로 몰려 1961년부터 9년간 법정투쟁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었으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던 자택을 소송비로 탕진하는 통에 가세가 기울어졌다. 그 사이 1964년 백내장을 앓아 일본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다시 악화되어 결국 실명하기에 이르렀고 부인 장류덕도 1966년 고혈압으로 쓰려져 반신불수가 되는 등 고통을 겪었다. 또 1975년에는 외아들이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1979년 11월 27일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약물 과용으로 중태에 빠졌다가 치료를 받는 소동도 있었다.#

[1] 23세 '''재(在)''' 규(圭)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