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곤

 



'''전북대학교 총장'''
초대
김두헌

'''2대
고형곤'''

3대
정인승


[image]
[1]
[image]
[2]
'''성명'''
고형곤(高亨坤)
'''본관'''
제주 고씨#
'''출생'''
1906년 4월 16일
전라북도 임피군 남일면 상갈리
(현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상갈마을)[3]
'''사망'''
2004년 6월 25일 (향년 98세)
'''국적'''
대한민국
'''호'''
청송(廳松)
1. 개요
2. 기타
3. 선거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철학자. 2002년 불교신문 인터뷰. 아들 고건의 부친 회고. 회고가 아주 상세하다.
[image]
2002년 가족사진. 다복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전라북도 임피군 남일면 상갈리(현 군산시 임피면 월하리 상갈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 1933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38년에 연희전문학교에 부임, 1944년까지 연희전문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98세까지 장수하신 분. [4]
8.15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51년부터 학술원 회원으로 있으면서 도미경험 등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철학계에 서양철학을 소개하였다. 195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59년에 전북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학술활동에 힘썼다.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선거구에서 국회의원(민정당-민중당-신민당)을 역임하였다.
그의 아들이 고건 전 국무총리다. 고 총리도 젊은 시절에는 서울대를 다녔는데, 그렇다보니 한 수업에 부자가 같이 있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하지만 공과 사를 구분했기 때문인지 수업 중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고 한다.

2. 기타


고형곤 박사에 대한 일화들. 출처. 금강삼매경론 번역 일화.
  • 모르는 영어 단어가 있으면,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물어봤다. "나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너희가 가르쳐 달라"고.
  • 당시 서울대 문리대는 동숭동 캠퍼스에 있었다. 어느 날 김진규 씨와 김지미 씨가 동숭동 대학로에서 영화촬영을 했는데, 고형곤 박사는 수업에 들어와서 "자! 모두들 영화촬영 보러가자. 아주 멋진 러브 스토리라는데 그게 수업보다 더 중요한 거야"
  • 하루는 야외수업한다는 핑계로 철학과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로 나갔다. 그런데 막 비가 그친 참이었는데, 물에 젖은 땅위로 지렁이들이 한 뭉터기 기어나와 꿈틀거리고 있더란다. 고 박사 왈 "와! 저 지렁이들의 기쁨에 넘친 환희의 몸짓을 봐라!" 그 때 한 학생이 고 박사의 말씀에 초를 쳤단다. "저게 어떻게 환희의 몸부림입니까? 악착같이 살아 남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이지요." 그때, 고 박사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게 바로 관점의 차이란다. 오늘 철학 수업 끝" 하셨다고.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북도 군산시-옥구군)
'''민정당'''[5]
'''21,024(30.23%)'''
'''당선'''

[1] 1990년대[2] 2002년[3] 제주 고씨 집성촌이다.[4] 아들 고건이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것까지 보고 사망했다![5] 이 민정당은 전두환의 그 민주정의당과는 전혀 다른 당이다. 그 이전 박정희 정권기 민주당 구파(윤보선, 김영삼 등)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민주당계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