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옥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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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곡옥의 초대 백작. 본명은 희성사(姬成師).[1] 시호는 환(桓)이다. 그는 진문후(晉文侯)의 동생이며, 그 뒤를 이은 진소후(晉昭侯)의 숙부였기 때문에 곡옥환숙이라 불린다. 곡옥대진(曲沃代晉) 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2. 곡옥백으로서
진 소후 원년(기원전 745년), 진 소후는 진 문후가 죽고 진후가 되었는데, 희성사의 세력이 강성했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한 진 소후는 희성사를 곡옥의 백작에 봉했다. 그 때 희성사의 나이는 58세였다.
곡옥환숙 5년(기원전 739년), 이때는 희성사가 곡옥의 백작이 된지 약 5년째 되는 해였다. 진의 대신 반보가 진소후를 시해하고 곡옥환숙을 맞아들이려고 했다. 곡옥환숙 또한 진 소후가 죽은 틈을 타서 진을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진나라 사람들이 진 소후의 아들인 희평(姬平)을 진후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효후다. 이것이 곡옥대진 사건의 시작이다.
곡옥환숙 14년(기원전 731년), 곡옥환숙이 죽었다.
3. 후일담과 가정사
곡옥환숙이 죽은 뒤 그 아들 희선이 곡옥의 백작이 되니, 그가 바로 곡옥장백이다. 그리고 곡옥장백도 진나라를 적극적으로 차지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희선의 아들 희칭(姬稱), 즉 곡옥무공이 진후민을 죽이고, 주나라의 재가를 진무공을 칭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시조로 알려진 한무자는 이 곡옥환숙의 아들이다.
[1] 이름에 이룰 성자가 들어가는 희성사는 좋은 뜻이고, 형인 진문후의 이름인 희구(姬仇)는 별로 좋지 않은 뜻이기 때문에 진나라 본국이 곡옥의 백작인 희성사에게 먹힌다는 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