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옥장백

 


'''곡옥 2대 국군
곡옥장백
曲沃荘伯
'''
''''''
희(姬)
''''''
곡옥(曲沃)
''''''
선(鱓)
'''아버지'''
곡옥환숙(曲沃桓叔) 희성사(姬成師)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1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730년 ~ 기원전 716년
1. 개요
2. 치세
3.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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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곡옥의 제2대 백작. 본명은 희선(姬鱓). 곡옥환숙아들. 진무공곡옥무공의 아버지. 이 양반부터 곡옥대진(曲沃代晉) 사건 내에서 진후(晉侯)를 직접 죽이셨다.

2. 치세


곡옥환숙 14년(기원전 731년), 곡옥환숙이 죽자. 그가 뒤를 이어 곡옥의 백작이 되니 그가 바로 곡옥장백이다.
곡옥장백 7년(기원전 724년), 곡옥장백은 국력을 키워 의 수도인 익을 쳐서 진효후살해했다. 그리고 아버지 곡옥환숙처럼 진을 먹으려고 했으나 진나라 사람들의 반발로 인해 곡옥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진악후가 옹립되었다.
곡옥장백 13년(기원전 718년), 진 악후가 죽은 상중을 틈타 익을 다시금 쳤으나 주환왕이 곡옥장백의 곡옥 땅을 쳐서 곡옥 장백은 수비에 급급해야 했다.[1] 그리고 주나라 조정과 진나라 사람들은 그 아들인 희광(姬光)[2]을 진후로 올리니 그가 바로 진애후다.
곡옥장백 15년(기원전 716년), 곡옥장백이 사망했다.

3. 후일담


그 아들 희칭(姬稱), 즉 곡옥무공이 그 뒤를 이었는데, 진 애후를 유인해서 포로로 만든 뒤 진나라에서 진소자후를 즉위시키자 곡옥무공은 진 애후를 살해했고, 진 소자후 또한 곡옥무공에게 살해되었다. 그리고 진후민이 그 뒤를 이었으나 그마저도 곡옥무공에게 패해 축출되었다.[3] 그리고 곡옥무공은 진후가 되어 진 무공이 되었고, 그가 죽은 뒤 그 아들 진헌공이 뒤를 이어 강성함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국칠웅 중 하나인 한나라의 시조가 되는 한만은 바로 이 곡옥장백의 동생이다.
[1] 주나라 천자로서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었다.[2] 오왕 합려와 이름이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3] 일설에는 곡옥무공이 진후민을 살해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