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미

 


'''정(鄭)나라 7대 국군
공자 미
公子 亹
'''
''''''
희(姬)
''''''
정(鄭)
''''''
미(亹)
'''아버지'''
정장공(鄭莊公) 희오생(姬寤生)
'''어머니'''
옹길(雍佶)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94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94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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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춘추시대 정나라의 제7대 군주. 정장공의 아들. 정소공, 정여공의 동생. 공자 영의 형. 본명은 희미(姬亹). 달리 정자 미(鄭子亹)라고도 불린다.[1] 그가 정나라 백작에 오른 배경은 정나라의 경사인 고거미(高渠彌)가 정 소공과 사이가 좋지 않아[2] 고거미가 정 소공을 시해가 친분이 두터운 공자 미를 군주로 추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하지 못하고 제양공(齊襄公)에게 쌍으로 살해당했다.

2. 생애


공자 미 원년(기원전 694년) 7월, 처음부터 공자 미의 무리를 죽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제 양공은 위(衛)나라의 수지 땅에서 회맹을 하려 했다. 그것을 알 리가 없던 무리 땅에서 공자 미는 고거미와 함께 제 양공이 주관하는 회맹에 참여했다. 그 곳에서의 분위기가 화기 애애하기에 그들은 잘 풀릴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것은 당연히 제 양공의 함정이었다. 제 양공은 공자 미와 고거미에게 욕설을 퍼붓고서는 공자 미를 죽이고, 고거미는 거열형에 처해 둘은 세트로 생을 마감했다.
[1] 군주로 인정하지 않아 붙이는 호칭인 듯하다. 아무려면 자작일리는 없고......[2] 정 장공의 생전에 정 장공이 고거미를 경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정 소공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 장공은 그걸 쿨하게 씹고 경으로 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