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량학
'''Scientometrics'''
나무위키에 한정하여 "과학계량학" 이라고 임시로 번역하였으나, 아직 생소한 개념인 만큼 그 음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이언토메트릭스" 라고 읽기도 한다.
한 마디로, 과학자의 연구업적 평가 또는 대학의 랭킹 등을 가능한 한 공정하면서 뒷말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학문.(…) 기존의 출판계량학(bibliometrics)[1] 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문헌정보학[2] 을 바탕으로 하여 경영학의 실적주의적 접근, 통계학적 측정 등이 가미된 복합영역 학제이다. 이 주제만을 다루는 동명의 저널 《Scientometrics》 이 존재한다.
과학계량학은 물론 어느 학문이나 간접적인 혜택을 보긴 하겠으나 자연과학 및 공학 분야의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편이다.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임의로 나누어 보자면) '''1)''' 어떤 과학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하여 학계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2)''' 어떤 저널이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출판하여 학계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3)''' 어떤 대학이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추진하여 학계에 어떻게 공헌했고 연구비 후원자들에게 보답했는지, '''4)''' 그리고 과학자끼리, 저널끼리, 대학끼리 비교는 어떻게 할 것이며 '''5)''' 이렇게 얻어진 통계적 정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결론은 무엇인지 등이다.
학문 자체의 역사는 절대 길지 않다. 해당 저널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1978년의 일. 학문명 자체부터가 인용색인(Citation Index) 및 임팩트 팩터, 출판계량학 등에서 일당백으로 기초를 닦으며 '''연구출판 분야에서 원맨쇼를 펼쳤던''' 언어학자 유진 가필드(E.Garfield)가 제안한 신조어다. 그러다가 미국 정부가 학술분야에 예산 지원을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09년의 ARRA 법과 관련하여 특히 강조되기도 했다.
이 개념이 처음으로 고안되고 동조를 얻은 동네가 다름아닌 미국인데, 이쪽은 "논문을 출판하든지, 아니면 말라죽든지"(Publish or Perish)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미국 특유의 강경한 성과(performance)주의적 평가와도 무관하지 않았다.[3] 그런데 엄격한 양적 실적평가는 필연적으로 엄밀한 정의와 측정 척도의 확보, 객관화와 계량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결여되었을 수 있는 평가를 가지고 한 과학자가, 한 저널이, 한 대학이 섣불리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또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특히 단행본이나 논문의 수는 20세기 후반부터 거의 수직상승에 가까울 정도로 지수함수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던지라,[4] 연구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연구활동의 평가 외에도, 연구 자체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학술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한 셈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자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논문들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원자들 입장에서도 자신이 학계에 후원한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관심이 있었다. 특히나 후원 기업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관심이 있었고, 그들의 후원이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 가시적이고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짧게 말해, 기업들은 투자자본수익률(return on investment)에 대한 숫자가 필요했다. 고학력자가 많아지고 과학에 대한 후원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후원자들의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그만큼 과학계량학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을 보여주는데, 누군가가 이 총대를 메려면 해당 학문분야에도 통달해야 하고, 출판업계의 사정에도 통달해야 하고, 경영학적 성과평가의 논리에도 통달해야 하는 등의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그런 게 있었어?'''
학술연구 성과평가 자체는 예전부터 암묵적으로 개념은 존재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경제 관료들이나 대학의 높으신 분들이 미국의 가혹한 성과주의 체제에 자극받아서 너도나도 국내도입을 하는 통에 수요 자체는 발생한 상태이다. 특히 테뉴어를 따고 나서 연구실적이 떨어지면 언론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이 분야만을 위한 전문인력은 양성되지 않았으며, 전문인력을 만들 수 있는 과정도 확립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위 "묻지마 연구" 관행을 일소하겠다고 호령하고, 대학은 연구자들에게 4~5년마다[5] 한 번씩 논문발표 성과나 실적을 체크하며, 연구자들은 학과 통폐합의 위협 속에서 장기적이고 실험적인 연구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히 찍어낼 수 있는 연구들을 주로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 과학계량학의 도움을 통해서 모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계량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여기까지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상태. 한국의 실적위주의 성과평가는 오히려 폐단을 발생시키고 있는 측면 또한 있는데, 질적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양적요소만을(EX.인용지수) 주된 위주로 평가하여 학문 간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다는 비판 또한 받는다.
1. 간략한 설명
나무위키에 한정하여 "과학계량학" 이라고 임시로 번역하였으나, 아직 생소한 개념인 만큼 그 음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이언토메트릭스" 라고 읽기도 한다.
한 마디로, 과학자의 연구업적 평가 또는 대학의 랭킹 등을 가능한 한 공정하면서 뒷말 나오지 않는 방향으로 평가하기 위해 고안된 학문.(…) 기존의 출판계량학(bibliometrics)[1] 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문헌정보학[2] 을 바탕으로 하여 경영학의 실적주의적 접근, 통계학적 측정 등이 가미된 복합영역 학제이다. 이 주제만을 다루는 동명의 저널 《Scientometrics》 이 존재한다.
과학계량학은 물론 어느 학문이나 간접적인 혜택을 보긴 하겠으나 자연과학 및 공학 분야의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편이다.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몇 가지가 있는데, (임의로 나누어 보자면) '''1)''' 어떤 과학자가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하여 학계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2)''' 어떤 저널이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출판하여 학계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쳤는지, '''3)''' 어떤 대학이 얼마나 가치 있는 연구를 얼마나 많이 추진하여 학계에 어떻게 공헌했고 연구비 후원자들에게 보답했는지, '''4)''' 그리고 과학자끼리, 저널끼리, 대학끼리 비교는 어떻게 할 것이며 '''5)''' 이렇게 얻어진 통계적 정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 있는 결론은 무엇인지 등이다.
학문 자체의 역사는 절대 길지 않다. 해당 저널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1978년의 일. 학문명 자체부터가 인용색인(Citation Index) 및 임팩트 팩터, 출판계량학 등에서 일당백으로 기초를 닦으며 '''연구출판 분야에서 원맨쇼를 펼쳤던''' 언어학자 유진 가필드(E.Garfield)가 제안한 신조어다. 그러다가 미국 정부가 학술분야에 예산 지원을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2009년의 ARRA 법과 관련하여 특히 강조되기도 했다.
2. 필요성
이 개념이 처음으로 고안되고 동조를 얻은 동네가 다름아닌 미국인데, 이쪽은 "논문을 출판하든지, 아니면 말라죽든지"(Publish or Perish)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미국 특유의 강경한 성과(performance)주의적 평가와도 무관하지 않았다.[3] 그런데 엄격한 양적 실적평가는 필연적으로 엄밀한 정의와 측정 척도의 확보, 객관화와 계량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결여되었을 수 있는 평가를 가지고 한 과학자가, 한 저널이, 한 대학이 섣불리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또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특히 단행본이나 논문의 수는 20세기 후반부터 거의 수직상승에 가까울 정도로 지수함수적인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던지라,[4] 연구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결국 연구활동의 평가 외에도, 연구 자체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학술정보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 필요한 셈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연구자들은 산더미처럼 쌓인 논문들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원자들 입장에서도 자신이 학계에 후원한 결과가 어떻게 돌아오는지 관심이 있었다. 특히나 후원 기업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관심이 있었고, 그들의 후원이 어떠한 성과를 냈는지 가시적이고 관찰 가능한 방법으로 확인하고 싶어했다. 짧게 말해, 기업들은 투자자본수익률(return on investment)에 대한 숫자가 필요했다. 고학력자가 많아지고 과학에 대한 후원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후원자들의 요구는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그만큼 과학계량학의 역할이 중요해졌음을 보여주는데, 누군가가 이 총대를 메려면 해당 학문분야에도 통달해야 하고, 출판업계의 사정에도 통달해야 하고, 경영학적 성과평가의 논리에도 통달해야 하는 등의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3. 국내의 인식
'''그런 게 있었어?'''
학술연구 성과평가 자체는 예전부터 암묵적으로 개념은 존재했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경제 관료들이나 대학의 높으신 분들이 미국의 가혹한 성과주의 체제에 자극받아서 너도나도 국내도입을 하는 통에 수요 자체는 발생한 상태이다. 특히 테뉴어를 따고 나서 연구실적이 떨어지면 언론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이 분야만을 위한 전문인력은 양성되지 않았으며, 전문인력을 만들 수 있는 과정도 확립되지 않았다.
정부는 소위 "묻지마 연구" 관행을 일소하겠다고 호령하고, 대학은 연구자들에게 4~5년마다[5] 한 번씩 논문발표 성과나 실적을 체크하며, 연구자들은 학과 통폐합의 위협 속에서 장기적이고 실험적인 연구보다는 안전하고 무난히 찍어낼 수 있는 연구들을 주로 선택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 과학계량학의 도움을 통해서 모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계량적 기준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여기까지는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상태. 한국의 실적위주의 성과평가는 오히려 폐단을 발생시키고 있는 측면 또한 있는데, 질적요소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양적요소만을(EX.인용지수) 주된 위주로 평가하여 학문 간의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다는 비판 또한 받는다.
4. 관련 문서
[1] 브래드포드의 법칙(Bradford's Law)이나 롯카의 법칙(Lotka's Law) 등이 이쪽 용어로 문헌계량학이라고도 번역하곤 한다.[2] 특히 계량정보학(informetrics)[3] 애초에 분야를 막론하고 처음으로 근대적 성과평가 아이디어가 나온 게 1912년의 미국 태프트 위원회다.[4] 특히 1957년의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정부는 과학연구에 엄청나게 예산을 퍼붓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연구출판물들이 폭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IF가 개발된 배경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5] 분야에 따라서는 이만큼의 기간은 정말 터무니없을 만큼 단기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