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이와 유지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제17~19대 가나가와현지사. 정계 입문 전에는 후지 테레비에서 기자와 앵커로 활동했다.
2. 생애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시야시립 세이도 소학교, 나다 중학교, 나다 고등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후지 테레비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영업부 사원으로 3년 간 근무하다가 보도국에서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다. 기자로 활동하던 중 앵커로 뽑혀 1988년 FNN 슈퍼 타임 휴일 앵커를 시작으로 보도 2001, FNN 슈퍼 뉴스, 신보도 2001 등 후지 테레비의 여러 뉴스 프로그램들의 앵커로 활약했다. 1997년부터 2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탁되어 워싱턴 지국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기자, 앵커로 후지 테레비 내에서 맹활약하는 와중에 응급 의료 캠페인 프로그램을 연출가로서 자신이 직접 연출했으며, 해당 프로그램 연출로 방송문화기금상과 민간방송연맹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후지 테레비에서 기자, 앵커, 연출가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다가 2009년 9월에 퇴사했다. 퇴사 후 국제의료복지대학 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근무했다. 상술한 응급 의료 캠페인 프로그램 연출과 관련된 업적으로 발탁된 듯 하다.
2.1. 가나가와현지사
국제의료복지대학 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근무하다가 약 2년 뒤인 2011년 3월 경에 치뤄진 가나가와현지사 선거에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 3당의 지원을 받아 출마해 당선되어 가나가와현지사에 취임했다. 이후 2015년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을 기록했으며, 2019년 선거에서도 당선되면서 3선을 기록했다.
2015년 경에 현지사 자격으로 가나가와현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한국의 경기도를 방문해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와 만났다. 관련 기사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당시 전시된 위안부 평화비에 대해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소녀상은)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다. 만일 가나가와현에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당시 크루즈선의 선상 격리 중 새로운 감염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답했다.[1] 이는 선상 격리 이전부터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후생노동성 입장과 반대되는 발언이었다. #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기자회견을 통해 주민들에게 주말 외출 자제를 촉구했다.# 또한 골든 위크에 앞서 관광객들의 유입으로 인한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외출이 목숨보다 중요합니까?”'''라고 발언하며 관광객들에게 가나가와현에 오지 말라고 호소했다.#
3. 기타
- 취미와 특기는 노래, 뮤지컬, 다이빙이며, 좌우명은 ‘우직’이다.
- 혈액형은 O형이라고 한다.
- 2019년 재산 공개에 따르면, 구로이와는 부동산으로 도쿄도 시부야구 히로오 4초메에 소재한 94.66제곱미터 규모의 맨션(아파트) 1채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가증권으로 후지미디어홀딩스, 소니, 도요타자동차 등 여러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정작 자신이 현지사로 있는 가나가와현에는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이 없는 것이다.
- 현지사로 근무하면서 받는 월급이 145만엔, 연봉으로 약 2200만엔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의 모든 도도부현 지사들 중 가장 많은 액수라고 한다.#
-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당시 요코하마에서 열린 자민당 가나가와현 연합 궐기대회에서 스가 요시히데[2] 를 가리켜 ‘레이와 아저씨’라고 말한 것에 자민당 가나가와현 연합이 항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