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왈기야 오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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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장꼬장한 노인 같지만 저래봬도 리즈시절에는 만주족 최고의 용장이라는 찬사를 받던 사람이었다.
구왈기야 오보이(Guwalgiya Oboi, 瓜爾佳 鰲拜, 과이가 오배)
1614~1669
1. 개요
2. 녹정기에서


1. 개요


중국 청나라 초기의 대신. 만주족으로 구왈기야(瓜爾佳) 씨족의 사람이며, 팔기(八旗) 중 양황기(鑲黃旗) 출신이다. 활약한 것은 어린 나이였던 후금 태조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愛新覺羅 努爾合赤) 치세 말엽부터. 뒤이어 태종 홍타이지를 섬기며 전장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정복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나서서 용맹하게 싸우는 그의 모습을 두고 홍타이지가 '최고의 용사'라고 칭찬했을 정도.
순치제가 일찍 죽고 강희제가 즉위했을 때 허서리 소닌(赫舍里 索尼, 혁사리 색니), 나라 숙사하(納喇 蘇克薩哈, 납란 소극살합), 니오후루 어빌룬(鈕祜祿 遏必隆, 뉴호록 알필륭)과 함께 4명의 보정대신 중 한 사람으로 권력을 휘둘렀으며 백성들의 땅을 빼앗아 사유지를 넒히고 숙사하와 그의 일족들을 죽이는 등의 방자한 행동을 했다.[1] 이때문에 그의 전횡에 분노한 강희제는 오보이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으나 효장태후의 반대로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강희제가 친정을 시작하자 오보이는 격분하여 자금성을 들이쳐 강희제를 죽이려 하였으나 오히려 반란군이 관군에게 전멸당하고 강희제에게 사로잡혔다.[2] 강희제는 그를 죽이려 하였으나 곧 구금으로 형을 낮췄다. 몇몇 기록에 따르면 오보이는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을 죽이려 하는 강희제보다도 어린 나이 때부터[3] 누르하치, 홍타이지를 따르며 선대 황제들을 온몸으로 지켜내며 얻은 수많은 상처를 보여줬고, 이 때문에 강희제는 마음이 흔들려서 형을 낮추었다고 한다.
오보이는 사후인 1713년이 되어서야 명예를 회복하였다. 환갑 직전의 장~노년이 되어서야 강희제는 젊은 자신에게 반항한 늙은 신하의 죄를 비로소 용서하였고 옹정제는 그에게 최고의 장군급 벼슬과 함께 초무(超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하지만 후에 건륭제가 그의 치적을 살펴보고 벼슬을 강등시켰다.

2. 녹정기에서


역사에서처럼 순치제 다음에 즉위한 강희제를 보좌하는 4인의 보정대신 중 1인.
작중 초반에 사송에게 언급되어지며 모십팔이 그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천하의 개망나니 위소보가 트집을 잡아 베이징으로 오게 만든 원인.
힘 하나는 장사여서 미친 소를 한 주먹에 때려 죽였다는 소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힘은 엄청난 듯하다.
강희제의 서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며, 보정대신 중 하나인 소극살합(나라 수크사하)의 일가를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강희제에 대해 흥분하여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고 강희제에게 달려들어 숨어있던 위소보가 튀어나와 큰소리를 쳐서 그를 뻘쭘하게 만든다.
그 뒤 황제가 미리 계획을 짜두고 열두 명의 소환관과 위소보와 함께 장난을 친다는 빌미로 불러들여 싸우게 되나, 처음엔 장난인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강희제가 그에 등판에 단검을 찌르는 걸 보고 황제가 자기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아채고 덤빈다. 그리고 몸에 엉겨붙은 소환관 여덟을 순식간에 죽였다. 하지만 강희가 그의 시선을 끄는 동안 위소보가 향로를 들고 그의 뒤통수를 내리쳐서 기절한다.
미리 준비된 포승으로 결박당하고 깨어나 억울하다고 소리치자 강희제의 명령에 의해 입 안에 칼질을 당하고 향로재를 머금는 굴욕을 당한다.
그 뒤 색액도(허서리 송고투)와 강친왕에 의해 호송되며 강친왕부의 지하감옥에 감금된다.
그 동안 색액도와 위소보에 의해 가산이 몰수되고 그의 일당들이 전부 숙청되어 몰락한다. [4]
해대부가 죽은 뒤 강희제에게 명령을 받아 승진하여 강친왕부로 오게 된 위소보가 그의 식사를 맡는 하인에게 젓가락이 더럽다고 하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약을 식사에 타서 그에게 주게 한다.
그걸 먹은 즉시 천지회 인물들이 지하감옥으로 쳐들어올 때 이미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고 먼저 오배가 갇힌 방 안으로 쇠창살을 떼내어 들어가려던 천지회 무사를 주먹으로 내리쳐 죽였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방 안에 들어온 위소보가 그의 등에 칼질을 하여 목숨을 잃는다.
천지회 청목당의 윤향주를 살해한 적이 있어 천지회의 큰 원수였는데 이로 인해 위소보는 청목당의 향주가 된다.
녹정기 실사영화에선 홍콩의 이대근이라 불리는 서금강이 열연, 원작보다 무공이 업그레이드돼서 뇌옥에 유폐되어 있었음에도 진근남을 위기에 빠뜨릴 정도의 포스를 보여준다. 가산 몰수시 첩들 취향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아서 위소보가 낼름. 투옥된 후 포탈라궁의 라마승들이 구출해줘서 가짜 태후의 음모로 감방에 던져진 위소보를 포로로 잡지만, 자금성에 잠입한 천지회와 결투를 벌이게 된다. 천지회 대부분을 척살하고 진근남도 위기에 몰아넣지만, 오배의 무공은 성기를 배안으로 집어넣어서 몸을 금강불괴로 만드는 것인데, 위소보가 성기를 발기시키는 혈을 찾아서 자극해서 오배가 발기하게 되고, 그 틈을 타서 진근남이 머리에 칼을 찔러넣어 죽인다.
여담으로 홍콩 배우 관지림의 조상이 바로 이 오보이가 속해있는 구왈기야 가문이다.
[1] 사실 그럴 수 있었던 건 소닌은 너무 늙었고 건강이 나빠 일을 할수 없었으며, 어빌룬과는 같은 팔기 출신이라서 오보이에게 포섭되었기 때문. 따라서 다른 팔기 출신이었던 숙사하를 숙청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2] 보통 대옥아라고 불리는 효장문황후 보르지기트 붐부타이는 몽골 출신으로 스스로가 청 태종의 정식 후궁인 '장비'에 순치제의 친모(親母)였으며, 순치제가 요절할 때 황실을 휘어잡아 강희제를 옹립하고 태황태후가 된 인물이다. 오보이가 권세가 아무리 높아도 이 여자가 살아있는 한 황실을 상대로 거병할 가능성은 상식적으로는 전혀 없었다. 오보이 따위는 그냥 무시하던 예친왕 도르곤조차도 순치 시절 이 여자를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참고로 강희제는 오보이 제거 전에 효장문황후를 찾아서 미리 이야기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명분에서부터 크게 밀리고 그런 할머니의 현명한 지도로 천고일제로 성장하던 강희제가 오보이의 숙청을 결심했으니 오보이가 아무리 도르곤 이래 최강의 권신이래도 별 수가 있는가.[3] 나이를 보면 알겠지만 오보이는 권력투쟁을 벌이던 시기가 많이 달라서 체감이 안될 뿐이지 도르곤보다 두살 어린 사실상의 동년배이다. 도르곤도 강희제가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던 14살 땐 엄마가 순장당하는걸 지켜보며 형과 동생의 목숨을 걱정하던 처지였다가 10대 후반부터 홍타이지의 지원으로 본격적으로 공을 세우고 실력을 기른 것이었는데, 오보이는 그보다도 어린 나이부터 전장을 누비며 고생하며 커온 것이었다.[4] 그 남은 재산을 보고도 강희제는 백성들을 얼마나 쥐어짰으면 이런 돈을 모았겠냐며 분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