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image]
李大根
1943년 7월 1일 ~ (81세)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종교는 원래는 무종교였으나, 1979년에 개신교에 귀의했다. 집안이 나름 배우 집안이기도 한데 여동생 이용이 역시 배우이다. 매부, 즉 이용이의 남편이 90년대 한국 영화에서 여러 감초 조연을 맡았던 고인이 된 김일우이다.
어릴 때부터 복싱이나 레슬링 등을 하고 체격도 건장한 편이라, 데뷔 전엔 운동 쪽으로 진로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67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냈다. 그러던 와중인 1974년, 당시 대표적인 액션 영화 감독이었던 김효천의 실록 김두한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흥행에 대성공, 박노식, 장동휘의 계보를 잇는 '''70년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액션 배우'''가 되었다. 김효천은 원래 신인 배우를 파격적으로 기용하곤 했는데, 이대근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환경이 열악하여 스턴트맨 없이 찍었던 탓에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
그러나 사실상 1970년대는 한국 영화사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로, 70년대의 흥행작들은 이후 세대들에게 빠르게 잊혀져 갔으며 이대근의 70년대 커리어 역시 후세의 대중들에게 빠르게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1980년대가 되어 B급 영화 시장의 판도가 액션물에서 에로물로 바뀌는 과정 속에서, 이대근 역시 기존의 액션물과는 성격이 다른 뽕, 변강쇠 등의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것이 대중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결국, 그의 197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이대근은 '''미묘한 쪽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건장한 근육질 몸에[1] 골격이 두드러지는 남성적인 얼굴을 하고 서도 색마 캐릭터를 해학적으로 소화해내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위에 설명대로 대부분의 커리어가 액션 영화이고, 에로물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간혹 문예영화나 멜로물, 정극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본인은 독실한 개신교인이라고 하며 영화 속의 캐릭터와 실제의 이대근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 외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배우 협회 이사, 영화인 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남기남감독이나 정윤희와도 인연이 있다 고도 한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청소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과 농담 거리(...) 사이를 오간 인물이다. 당연히 청소년들이 봐서는 안되는 에로영화에 출연한 덕분으로 정력남의 상징이 된 까닭이지만... 또한, 이대근 특유의 말투는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개그맨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어쨌든 1990년대가 되어 액션이나 에로물의 열기가 식자 이대근의 커리어 역시 침체기에 빠지며, 낡은 B급 영화 배우로서 이미지가 박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대근의 90년대 커리어는 이미 애 저녁에 한물 간 B급 에로물이나 성인멜로물에 국한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더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자, 7, 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영화사에서 중요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영화계 후배들의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2006년에 사실상 이대근에게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 이대근, 이댁은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와는 달리 텔레비전 쪽의 커리어는 정극 연기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 배역들은 기존 에로 배우, 액션 배우 이미지와는 매우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배역은 공화국 시리즈의 차지철 역과 서울의 달의 영감님 역. 이것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1982년 <무역왕 최봉준>이라는 사극 전기물에서 주연을 맡은 적도 있다. 1970년대 중반 '''이장현'''[2] 이란 예명으로 활동하였지만 몇 년 안 가 다시 본명인 이대근으로 돌아왔다고 한다.[3]
공화국 시리즈 고정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영후 = 백범 김구, 박규채 = 이기붕, 김무생 = 장면, 노주현 = 장도영, 이창환 = 박정희, 이정길 = 김종필, 박용식 =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이대근 = 차지철 전담이었다.
[image]
1. 개요
李大根
1943년 7월 1일 ~ (81세)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서울특별시 출신이다. 종교는 원래는 무종교였으나, 1979년에 개신교에 귀의했다. 집안이 나름 배우 집안이기도 한데 여동생 이용이 역시 배우이다. 매부, 즉 이용이의 남편이 90년대 한국 영화에서 여러 감초 조연을 맡았던 고인이 된 김일우이다.
2. 생애
어릴 때부터 복싱이나 레슬링 등을 하고 체격도 건장한 편이라, 데뷔 전엔 운동 쪽으로 진로를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67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냈다. 그러던 와중인 1974년, 당시 대표적인 액션 영화 감독이었던 김효천의 실록 김두한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흥행에 대성공, 박노식, 장동휘의 계보를 잇는 '''70년대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액션 배우'''가 되었다. 김효천은 원래 신인 배우를 파격적으로 기용하곤 했는데, 이대근이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환경이 열악하여 스턴트맨 없이 찍었던 탓에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
그러나 사실상 1970년대는 한국 영화사의 암흑기로 불리는 시기로, 70년대의 흥행작들은 이후 세대들에게 빠르게 잊혀져 갔으며 이대근의 70년대 커리어 역시 후세의 대중들에게 빠르게 잊혀져 버렸다. 그리고 1980년대가 되어 B급 영화 시장의 판도가 액션물에서 에로물로 바뀌는 과정 속에서, 이대근 역시 기존의 액션물과는 성격이 다른 뽕, 변강쇠 등의 영화를 찍게 되는데, 이것이 대중들에게 큰 화제가 되었다. 결국, 그의 1970년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이대근은 '''미묘한 쪽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이미지가 각인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건장한 근육질 몸에[1] 골격이 두드러지는 남성적인 얼굴을 하고 서도 색마 캐릭터를 해학적으로 소화해내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위에 설명대로 대부분의 커리어가 액션 영화이고, 에로물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간혹 문예영화나 멜로물, 정극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본인은 독실한 개신교인이라고 하며 영화 속의 캐릭터와 실제의 이대근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 외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배우 협회 이사, 영화인 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남기남감독이나 정윤희와도 인연이 있다 고도 한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 청소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과 농담 거리(...) 사이를 오간 인물이다. 당연히 청소년들이 봐서는 안되는 에로영화에 출연한 덕분으로 정력남의 상징이 된 까닭이지만... 또한, 이대근 특유의 말투는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개그맨 성대모사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어쨌든 1990년대가 되어 액션이나 에로물의 열기가 식자 이대근의 커리어 역시 침체기에 빠지며, 낡은 B급 영화 배우로서 이미지가 박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대근의 90년대 커리어는 이미 애 저녁에 한물 간 B급 에로물이나 성인멜로물에 국한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더 세월이 흘러 21세기가 되자, 7, 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로서 영화사에서 중요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영화계 후배들의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2006년에 사실상 이대근에게 오마주를 바치는 영화 이대근, 이댁은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영화와는 달리 텔레비전 쪽의 커리어는 정극 연기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이 배역들은 기존 에로 배우, 액션 배우 이미지와는 매우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많은 관심과 호평을 받았다. 대표적인 배역은 공화국 시리즈의 차지철 역과 서울의 달의 영감님 역. 이것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1982년 <무역왕 최봉준>이라는 사극 전기물에서 주연을 맡은 적도 있다. 1970년대 중반 '''이장현'''[2] 이란 예명으로 활동하였지만 몇 년 안 가 다시 본명인 이대근으로 돌아왔다고 한다.[3]
공화국 시리즈 고정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영후 = 백범 김구, 박규채 = 이기붕, 김무생 = 장면, 노주현 = 장도영, 이창환 = 박정희, 이정길 = 김종필, 박용식 =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이대근 = 차지철 전담이었다.
3. 출연작
3.1. 주요 영화
[image]
- 협객 김두한 1974년 작
김효천 감독의 영화. 이대근의 출세작. 자세한 내용은 김두한/창작물에서 볼 것. 이대근은 여기에서 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이후 70년대 <김두한 시리즈> 전편에서 김두한 역으로 출연한다. 1970년대는 스크린 쿼터 제도 덕분에 제작비가 저렴한 B급 영화들이 부지기수로 쏟아지던 시절로 당시 이 영화와 비슷한 유형의 액션 영화들이 속출하였다. 실록 김두한의 성공 덕분에 이대근은 이후 개봉된 김두한 시리즈를 비롯, 이런저런 수많은 액션영화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70년대의 사람들에겐 "김두한 = 이대근"이었던 셈. 김효천이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던 이대근을 발굴한 까닭은 덩치와 외모가 김두한을 연상시켜서라고 알려져 있다. 덧붙여서, 이대근은 몇년 뒤 시라소니 영화에서 시라소니 역까지 맡았다.
오발탄의 유현목 감독의 영화. 윤흥길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5] 을 원작으로 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비극을 잘 다루었다. 이대근은 주인공인 나(동만)의 빨치산 삼촌 역할을 맡아 출연했다. 조연이었지만, 그의 커리어 중 몇 편 안되는 그럴듯한 정극 중 하나이므로 이 항목에 실리게 되었다(...).
정진우 감독의 영화로 정비석의 성황당이 원작이다.[6] 조선시대 말기, 두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원작과는 달리 여주인공 순이가 죽는 베드 엔딩이다. 정윤희가 여주인공 순이 역으로 나온다. 연출, 구도 모두 수준급이지만, 19세라서 청소년들은 극장에서만 못보았지만 어둠의 루트로 본 사람들이 많다(...) 포스터 # # 장면 # 장면2
[image]- 평양 박치기 1982년 작
- 아벤고 공수군단 1982년 작
영화돌아이와 앞서 말한 최후의 증인으로 유명한 이두용 감독의 영화. 이대근은 여기서 삼돌이로 출연한다.
[image]변강쇠 역. 이전해인 뽕과 더불어 2연타를 찍었고 이후 이대근은 영원한 변강쇠 옵빠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실존주의를 연구... 할리는 없고, 에로 코미디 영화.
- 코리안 커넥션 1990년 작
조갑제의 코리안 커넥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신성일[7] 이 형사로 나온다. 놀랍게도 형사가 UZI 기관단총을 들고나온다(...) 당시 영웅본색 류 영화를 따라잡는다며 홍보했지만 그야말로 7~80년대 유치한 총기음을 비롯하여 엉터리 고증에 원작자답게 결국은 반공 수준 줄거리로 흥행은 참패했다.
- 우묵배미의 사랑 1990년 작
장선우 감독의 90년대 대표작이자 흥행작. 이대근은 여기서 조연으로 출연. 그리고 이대근의 커리어 중 몇 안 되는 정상적인 영화인 까닭에 이 목록에 등재(..).
- 백백교 1992년 작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만연했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로 출연하였다. 백백교의 만행을 폭로하는 내용이 줄거리이지만 상당부분의 장면이 검열삭제. 그래도 이 영화는 신흥종교문제 연구소장이었던 고 탁명환의 자료제공 및 자문을 통해 만들어졌다.
- 해적, 디스코왕 되다 2002년 작
감독: 김동원, 주연: 이정진, 양동근, 임창정, 한채영, 조폭 큰형님역: 이대근
- 이대근, 이댁은 2007년 작.
이대근은 여기서 독거노인으로 나오는데, 아내의 제사날이 되자 자식들이 돌아오고 소동이 일어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배우 이대근에게 사실상 오마주를 바치며, 이대근 세대의 현재를 조명하는 영화. 그러나 코미디영화로 마케팅되었으며 딱히 흥행은 하지 못했다.
3.2. 드라마/시트콤
- 철이의 모험 1976년 작
- 사미인곡 1976년 작
고산자 김정호 역으로 열연을 보였다.
- 동기간 1991년 작
박민호 역을 맡았다.
방영 이후 20년이 지난 후까지도 걸작으로 회자되는 드라마. 이대근은 여기서 달동네 하숙집의 주인 영감 역으로 출연하였으며, 이대근의 연기는 많은 관심과 찬사를 받았다.
[image]한진희 초록시장의 아버지인 한대통 역을 맡았다.
- 좋은 걸 어떡해 1997년 작
- 그녀는 짱 2003년 작
하충식 역을 맡았다.
- 형사 2004년 작
극중 등장하는 이대근은 실제 이대근이 연기한 배역이 아니다. 거침없이 하이킥/기타 등장인물#s-1.5 문서 참조.
설노인 역을 맡았다.
[1] 전성기에는 몸이 거의 비시즌기 보디빌더 수준이었다. 강인한 남성미를 선호하던 당시 기준으로는 그야말로 섹스 심벌 그 자체.[2] 李章玄[3] 당시 비슷한 시기에 이대근과 같이 예명으로 바꾼 연기자가 변인철이었다. 당시 변인철은 변희봉으로 예명을 바꿨는데 그 변희봉 맞다![4]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제3지대" (1968년)를 이대근의 영화 데뷔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고 "속 제3지대"가 그의 영화 데뷔작이다.[5]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원작 소설 일부가 실려 있다. 7차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상)에도 결말부가 수록되었다.[6] 원작에서는 남주인공이 풀려 나오고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의 친구와 떠나다가 되돌아 오는 걸로 끝난다. 즉, 해피엔딩.[7] 강이 성이고,이름이 신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