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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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의 배치도.
국립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 예술 기관이다.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700이고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곳에 있다. 부산광역시에 국립부산국악원이, 남원시에 국립민속국악원이, 진도군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광주광역시에 국립전통생활음악당이 개관할 예정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이 전통음악과 무용을 관장하고 있는 기관이라면, 미군정시기까지는 국립국악원의 자리를 '구왕궁아악부[1] '가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구왕궁아악부의 대표 이주환(李珠煥)이 아악원국영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이는 제115차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2]
이로서 1950년 1월 19일. '국립국악원직제'가 대통령령 제271호로 제정과 동시에 시행된다.[3] 아래는 국립국악원직제의 제정판.[4]
개원과 동시에 창단되었으며, 말 그대로 정악, 궁중음악, 제례악 등을 연주한다.
1981년 창단되었으며, 산조, 시나위 등을 연주한다.
2004년 창단되었으며, 창작곡, 양악 오케스트라 협연 등의 기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연주한다.
민속무용, 정재, 창작무용등 분야를 막론한 한국무용의 대부분을 모두 선보이며, 특히 궁중정재에 있어서 독보적인 무대를 자주 보인다.
국립국악원의 배치도.
1. 개요
국립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립 예술 기관이다.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700이고 예술의 전당과 같은 곳에 있다. 부산광역시에 국립부산국악원이, 남원시에 국립민속국악원이, 진도군에 국립남도국악원이 있다. 광주광역시에 국립전통생활음악당이 개관할 예정이다.
2. 역사
현재 국립국악원이 전통음악과 무용을 관장하고 있는 기관이라면, 미군정시기까지는 국립국악원의 자리를 '구왕궁아악부[1] '가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구왕궁아악부의 대표 이주환(李珠煥)이 아악원국영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이는 제115차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2]
이로서 1950년 1월 19일. '국립국악원직제'가 대통령령 제271호로 제정과 동시에 시행된다.[3] 아래는 국립국악원직제의 제정판.[4]
그러나 이 법이 1950년 1월 19일에 공포됐음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으로 인해 결국 1951년 4월 10일, 국립국악원을 드디어(!) 정식 개원한다. 그리고 이주환이 국립국악원의 초대 원장이 된다.[5]제1조 문교부장관 감독하에 국립국악원을 둔다.
제2조 국립국악원은 민족음악의 보존과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국립국악원에 좌의 공무원을 둔다.
학예관
사무관
주사
서기
전항의 공무원의 정원은 별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4조 국립국악원에 필요에 따라 촉탁을 둘 수 있다.
제5조 국립국악원에 원장 및 악사장을 둔다.
원장 및 악사장은 학예관으로써 보한다.
제6조 원장은 문교부장관의 명을 받어 원무를 통리하며 부하공무원을 지휘 감독한다.
악사장은 원장을 보좌하고 원장이 사고가 있을 때에는그 직무를 대행하며 주악에 관한 사항을 담당한다.
촉탁은 상사의 명을 받어 전문사항의 연구 및 교수에종사한다.
제7조 국립국악원에 서무과 및 장악과를 둔다.
각 과장은 학예관 또는 사무관으로써 보한다.
제8조 서무과는 각부처직제통칙 제3조 제2항 제1호 내지 제12호에 게기한 사항을 분장한다.
제9조 장악과는 음악, 무용의 연구와 연주, 악사양성 기관 및 국악보급에 관한 사항을 분장한다.
제10조 본령 실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문교부장관이 정한다.
2.1. 연표
2.2. 역대 원장
- 소남 이주환 (1951~1961)
- 관재 성경린 (1961~1972)
- 죽헌 김기수 (1972~1977)
- 녹성 김성진[*권한대행 ] (1977)
- 송방송 (1978~1980)
- 천영조 (1980~1983)
- 한만영 (1983~1985)
- 이승열 (1986~1993)
- 김광락 (1993~1994)
- 이웅호 (1994~1995)
- 이성천 (1995~1997)
- 한명희 (1997~1999)
- 윤미용 (1999~2003)
- 김철호 (2003~2009)
- 박일훈 (2009~2011)
- 이동복 (2011~2013)
- 김해숙 (2014~2018)
- 임재원 (2018~)
3. 악단
3.1. 정악단
개원과 동시에 창단되었으며, 말 그대로 정악, 궁중음악, 제례악 등을 연주한다.
3.2. 민속악단
1981년 창단되었으며, 산조, 시나위 등을 연주한다.
3.3. 창작악단
2004년 창단되었으며, 창작곡, 양악 오케스트라 협연 등의 기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연주한다.
3.4. 무용단
민속무용, 정재, 창작무용등 분야를 막론한 한국무용의 대부분을 모두 선보이며, 특히 궁중정재에 있어서 독보적인 무대를 자주 보인다.
4. 여담
- 최근 어린이 교육용 애니메이션 핑크퐁의 일부 컨텐츠 제작을 지원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 국악에 대한 전문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란 세대인 지금의 학부모 세대에게 국립국악원 존재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올 정도. 물론 중독성(?) 넘치는 컨텐츠를 만든 제작사 덕분일수도 있다.
5. 관련 문서
[1] 舊王宮雅樂部. 조선 시대 장악원(掌樂院)의 후신에 해당하는 일제 시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楽部)의 후신[2] 《국악진흥 발전방안 연구 - 국악원을 중심으로》중 13쪽., 김규원(저자), 전병태(저자), 사영미(저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발행., 2016년 8월 15일에 확인함. ISBN : 978-89-6035-266-7[3] 국립국악원직제 부칙 <대통령령 제271호, 1950.1.19> 본령은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4] 국가법령정보센터 연혁법령에서 국립국악원직제 2016년 8월 15일에 확인함.[5] 위에서 언급되었던 구왕궁아악부의 대표 이주환 맞다. 동일인물이다.[6] 초대 신입생 30명을 모집하여 개소됐다.(중학 과정 3년) 이후 1972년,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승격되면서 중학교 과정이 폐지되었다가 1991년, 국립국악중학교가 개교되면서 중학교 과정이 부활하게 되었다.[7] 당시 국악사양성소는 국립국악원의 부설기관 개념으로 분류가 되었기 때문에 양성소 시절 및 국악고 승격 초기 시절 당시 국악원 원장이 양성소 소장 및 국악고 교장을 겸직하였던 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