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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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일
1. 개요
2. 역사
3. 성향
4. 여담
5. 대주주 현황
6. 관련 기업

讀賣新聞 / 読売新聞
よみうりしんぶん
Yomiuri Shimbun
웹 사이트

1. 개요


讀賣新聞
일본신문. 일본 전국지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며, 세계 최대 발행부수 신문이기도 하다.[1] 물론 이건 일본보다 훨씬 인구가 많은 미국이나 인도, 중국에서는 어디까지나 지방 신문이 신문 시장의 주류이기 때문에 요미우리보다 발행부수가 많은 전국 신문이 없는 것이다. 한때는 발행부수가 천만부를 넘기도 했지만, 일본도 스마트폰 보편화 등으로 전통 신문지의 위상이 많이 줄어들면서 발행부수도 점점 감소하는 추세이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조간신문 약 851만 부, 석간신문 약 242만 부를 발행하고 있다.

2. 역사


1874년에 신문사가 창설되었는데 창설 이전에 신문을 팔 때 노래가락을 붙여 신문기사를 읽어주면서(讀) 팔았다(賣)고 하여 요미우리라는 이름이 되었다.
역사가 제법 오래된 신문이지만 한땐 아사히 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의 위상에 밀려 2류 신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다 1924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경찰 관료 출신인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 1885-1969)[2]가 인수하며 친정부적인 논조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쇼리키는 당시 다른 신문사가 하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란을 신문에 게재하거나 일요일 석간을 발행하는 등의 상술로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 수도권 내 최대의 전국지로 떠오르게 된다. 1945년 미군이 일본에 들어서자 한자를 폐지하자며 상용한자 제한과 약자 사용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2020년 지금도 요미우리는 은근히 한자 사용에 부정적이다. 이른바 ‘어려운 한자’는 쓰지 않고 히라가나나 카타카나로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로마자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좌파 성향의 기자들이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장이었던 쇼리키는 면담을 거부했고 오히려 기자들 중 선두격인 5명을 퇴사시킨다. 그러나 일본 공산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 문제 등에서 전범들을 몰아내는데 몰두하던 GHQ도 관심을 보이면서 GHQ-공산당 합작에 일은 커지고 쇼리키가 A급 전범으로 기소되면서 감방에 가는 바람에 경영진과 직원은 합의를 한다. 그러나 1948년에 이르러 GHQ가 중국 공산당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다시 재무장하는 방침을 잡으면서[3] 레드 퍼지가 이뤄지고 요미우리 쟁의는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이후 신임 사장은 좌파 성향의 직원들을 솎아내 퇴출시킨다.

3. 성향


중도우파성향의 언론으로, 다분히 자민당 친화적 성향이다. 산케이신문우파 성향은 아니지만, 자민당 내 주류적 보수파의 의견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중국 등에 대해선 논조가 대체로 냉담한 편이다.[4] 한편, 미일관계를 중시해 미국의 의중을 잘 표현하는 신문이란 평도 있다. 그래서인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하다.[5]
1920년대에는 아사히 신문도쿄니치니치 신문이 인기를 끌자 좌익 성향의 아카(アカ)[6]를 채용하기도 했으나 쇼리키 가문이 사주가 된 후 대체적으로 친정부적인 성향을 보였다. 물론 딱히 요미우리 뿐만 아니라 1930년대 들어서 일본 전체가 군국주의로 치다르며 대부분의 언론이 군부의 나팔수로 부역한 흑역사가 있다. 전후엔 상술했듯 기자와 사장이 대립하면서 좌익 성향의 기자들이 퇴출됐지만 그래도 일단 1970년대까지는 자유주의 논조에 가까웠다. 보수적인 리버럴이란 말도 있었는데, 1979년에 이르러 와타나베 츠네오(渡邉恒雄, 1926-)[7][8]가 논설 위원이 되면서 친미 보수 성향으로 변화한다.
전반적으로 일본경제단체연합회[9], 신자유주의, 자위대의 국군화를 옹호하며, 노조, 평화 운동, 원전 반대 운동 등에 반대할 때가 많다. 다만 와타나베 츠네오의 경우 2차대전에 참전하기도 한 사람이라 그런지 전범 문제에 있어선 부정적이라 2천년대 고이즈미 준이치로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기도 했다. 2013년엔 아베 신조 2차 내각의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데 대해 미국존 케리 국무장관 등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묘지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아베가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자 이를 대차게 까기도 했다.

4. 여담


  • 프로 스포츠에서 지역명을 붙이는 걸 상당히 싫어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보듯 자이언츠 원정유니폼에 도쿄를 빼버려 오히려 자이언츠 팬들에게 욕을 먹은 사례는[10] 매우 유명하다. J리그도 마찬가지인데, 1993년 J리그 출범시 요미우리가 운영하던 요미우리 축구단의 팀명에서 요미우리 대신 지역명으로 바꾸라고 하자[11] 이에 강력히 반대하다가 1999년 J리그에서 손을 떼버린 사례를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대한민국 프로야구단 비롯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구단들처럼 요미우리 역시 운영비 적자를 모기업 홍보비 내지 광고비로 보전하기 때문에 기업명을 붙이는 것이 상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 프로야구와 달리 J리그에서 팀명에 기업명 사용이 중지되자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 하고 철수하였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팀이 바로 도쿄 베르디로, 요미우리 산하이던 시절에는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었으나 요미우리에서 손을 뗀 후에는 최약체로 전락한 상황이다.
  • 한국일보와 1960년 이후 제휴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 신문발행부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도 자본력 자체는 꽤 건실한 편이라 신문 자체의 매출액만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12] 자회사인 니혼TV와 합치면 NHK와 비슷한 정도로 돈을 벌어들인다고 한다.
  • 바둑 분야에서, 1976년 창설된 일본 기성전(Kisei, 키세이)을 매년 후원하고 있다. 일본 국내기전이다. 요미우리신문 단독 후원으로 우승상금이 5,000만 엔(약 5억~5억 5천만원 정도). 전 세계 모든 바둑 대회에서 일본 기성전 이상의 우승상금을 주는 대회는 없다. 국제대회응씨배도 40만 달러로 기성전에 못미치며, 제2의 응씨배라 불리는 신아오배도 32만 달러밖에 안 된다. 총 상금은 거의 2억 엔에 가까운 그야말로 돈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기전.(...) 한국은 언론사가 대회를 주최할 경우 후원사가 끊기면 바둑 대회를 없애는 경우가 많은데, 요미우리신문은 자체 돈이 제법 많은 모양.[13]
  • 보수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서브컬쳐와 관련된 기사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물론 자회사인 니혼TV에서 명탐정 코난이나 이누야샤같은 애니메이션을 방영한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얘기는 아니다. 한 예로 경제면에 수록된 "5분 비지니스 칼럼"에서는 늑대와 향신료를 언급하며 "이 책은 경제 서적으로써의 가치가 있다.(本書にビジネス書としての価値がある。)"라고 평하기도.

5. 대주주 현황


이 부분은 일본어 위키페디아의 요미우리그룹본사 항목의 대주주의 현황란에서 가져왔다.
2012년 3월 31일 시점
1.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임원지주회(読売新聞グループ本社役員持株会)[14] 31.69%
2. 공익재단법인 쇼리키 후생회(公益財団法人正力厚生会)[15] 20.96%
3. 사단복지법인 요미우리 빛과 사랑의 사업단(社会福祉法人読売光と愛の事業団)[16] 9.78%
4. 세키네 다츠오関根達雄(正力松太郎の孫))[17] 7.83%
5. 학교법인 요미우리 이공학원(学校法人読売理工学院)[18] 6.03%
6. 쇼리키 겐이치로(正力源一郎(正力松太郎の孫、正力亨の子))[19] 4.97%
7. 쇼리키 미오(正力美緒)[20] 4.94%
8. 고바야시 우메코(小林梅子(正力松太郎の娘、小林與三次元社長の妻))[21] 4.25%
9. 고지마 아키(小島あき) 2.77%
10. 쇼리키 미네코(正力峰子)[22] 1.96%
주식 지분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대주주가 전부 쇼리키 가문의 일원 또는 요미우리 신문 산하의 재단, 또는 임원진으로 요미우리 신문의 오너는 쇼리키 가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관련 기업


  • 니혼 TV[23]
  • 요미우리 자이언츠
  • 요미우리 TV 방송

[1] 한때는 러시아 신문인 프라우다가 발행부수가 더 많은 적도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발행부수가 급감하면서 요미우리 신문이 1위를 차지했다.[2] 경찰 간부로 재직하던 당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한다. 후에 요미우리 신문을 경영하며 193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직업 야구단을 창단하는 등 일본프로야구의 성립의 기여를 많이 했는데 일본프로야구 최고권위의 상 이름이 쇼리키 마쓰타로상인 것에서 그의 입김을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전범으로 기소돼 스가모교도소에 들어갔다가 1947년에 공직추방의 형태로 석방됐다. 그후 일본 최초의 상업방송인 닛폰 방송을 운영하며 원자력의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홍보하며 일본에 원전을 들여오는데 힘을 쓰는 공로로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로 알려졌는데 일본에 미국 원자력을 수출하려는 CIA와 협력했다는 설이 있다.[3] 자위대의 형성 배경과도 일치한다.[4] 일단 요미우리는 중도우파 내지 우파 언론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다.[5] 요미우리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아베조차 총리퇴임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자 스승인 고이즈미처럼 요미우리한테 까였다.[6] 한국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빨갱이(...) 정도 된다.[7] 자기 입으로 자긴 독재자라고 하는 양반이다.(...) 도쿄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정계와 재계에 고루 연이 닿은 사람이다. 또한 일본야구팬들에게는 일본야구계의 꼰대로 매우 악명 높은데, 요미우리 신문의 대표라는 지위를 무기로 일본야구기구(일본프로야구 운영기구)의 총재보다도 사실상 위에 군림하여 리그의 운영을 좌지우지한다.[8] 그런데 이런 와타나베 츠네오조차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선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강도높게 비판했었다. 참고로 와타나베 전 회장은 일본 우익들이 가미카제 특공대를 '천황을 위한 자발적인 순교자'로 미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사람이다. 요미우리 신문 회장 “무식한 고이즈미, 역사도 철학도 몰라”, “무식한 고이즈미 공부도 하지 않아”.[9] 일명 경단련. 일본 발음으로는 게이단렌. 전경련이 처음엔 이 경단련을 모델로 만들어졌다.[10] 정확히는 YOMIURI를 앞에 넣은 것. 12구단 골수팬들은 팀을 요미우리라고 줄여 부르는 걸 비하 명칭으로 인식한다.[11] 다만 J리그 수뇌부가 요미우리가 기업명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투자로 슈퍼클럽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당시 의사결정에 대해 일본 축구팬들은 요미우리가 언론 장악력으로 리그 입김을 거세게 불어넣는 수도의 슈퍼 클럽이 되어 리그를 지배하면 유럽 대부분의 리그처럼 몇개의 슈퍼구단이 지배하는 그런 리그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긍정론이 존재하지만, 근래 J리그 수뇌부가 J리그 부흥의 마지막 한큐로 스타들이 즐비한 도쿄 연고의 슈퍼클럽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전세계 모든 프로스포츠 리그에 자연스럽게 리그 전체 인기를 좌우하는 슈퍼클럽이 출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막아서 결국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몇십년 후에 힘들게 돌아가게 만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비판론도 존재한다.[12] 한국의 주요 신문사들이 한창 신문시장이 호황이었던 1990년대에도 매출액의 대다수를 광고비로 채운데 반해, 요미우리 신문은 매출액의 대다수를 구독료로 채웠다. 그만큼 광고 주는 기업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적다는 소리.[13] 일본 대형 신문사들의 신문 판매 영업익은 매출 대비 1% 수준이지만, 부동산 임대업 등을 통한 전체 이익이 많은 편이다.[14] 그룹이사들이 보유한 주식을 관리한다.[15] 암치료재단을 운영하고 있다.[16] 요양원, 각막기증재단, 장학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17]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외손자[18] 전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19]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손자, 쇼리키 쿄우의 아들[20] 쇼리키 마쓰타로의 손녀, 쇼리키 쿄우의 딸[21]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딸[22]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며느리[23] 이 방송국을 만든게 이 신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