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동당

 


[image]
'''Partido Acción Nacional'''
'''약칭'''
PAN
'''한글명칭'''
국민행동당
'''상징색'''
하얀색
'''창당일'''
1939년 9월 6일
'''이념'''
보수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 우익
'''주소'''
Av. Coyoacán No. 1546 Col.
Del Valle, Delegación Benito
Juárez, D.F. 멕시코시티
'''당수'''
마르코 안토니오 코르테스 멘도사
'''당원 수'''
234,450명(2020년 기준)
'''정당 연합'''
Va por México
'''국제 조직'''

'''아메리카 조직'''
아메리카 기독민주 조직
'''청년 조직'''
젊은 행동당
'''슬로건'''
''Por una patria ordenada y generosa
y una vida mejor y más digna para todos''
질서 있고 관대 한 고향과
모두를 위해 더 좋고 품위있는 삶을 위해
'''상원 의석 수'''
'''24석 / 128석'''
'''하원 의석 수'''
'''79석 / 500석'''
'''웹사이트'''

1. 개요
2. 창당
3. 성향


1. 개요


멕시코의 보수우파 정당.

2. 창당


1939년 마누엘 고메스 모린에 의해 창당되었다. 당시에는 중도좌파로 분류되던 제도혁명당이 집권 중이었는데, 이 당시 제도혁명당 정권의 "사회주의식 교육정책"에 반대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모린 본인은 "좌우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멕시코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이 되었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의 1당 독주체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1970년 대선까지는 그 어떠한 후보도 15%를 득표하는데 실패했다.[1] 1976년에는 '''후보 선출에 실패'''해 제도혁명당의 후보로 나간 호세 로페스 포르티요가 단독출마했다.
허나 제도혁명당에 실망감을 보이는 유권자들이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인지 1982년 대선 때는 파블로 에밀리오 마데로 후보가 16.4%를 득표해 비로소 15%를 넘겼으며, 이것이 오히려 졌지만 잘 싸웠다로 비춰졌는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당대표를 지냈다. 물론 그래봤자 미약한 건 여전했으며, 1988년에는 제도혁명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선명 좌파 인사들이 민주혁명당의 전신인 국민민주전선을 창당한 덕에 제도혁명당 표를 분산시키기는 했으나, 정작 국민행동당은 6년 전보다 0.4%만을 더 득표한 것도 모자라, 득표수는 오히려 50만 표가 더 깎이면서 당세를 키우지 못한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 선거는 부정선거라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입증한 선거이기 때문에[2] 실제로는 이 보다 더 득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제도혁명당이 주기적으로 흔들리고, 선거개혁도 어쩔수 없이 받아들인 덕택에 제도적인 민주화가 시작되면서 지자체장을 하나둘씩 내기 시작하며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해갔다. 그리고 1994년 대선 후보로 나간 디에고 페르난데스 데 세바요스가 25.9%를 득표해, 비록 큰 표차로 떨어졌지만 오히려 이를 바탕으로 제도혁명당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0년에는 비센테 폭스 후보가 42.5%를 득표해 당선됨으로서 극적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다만 국민행동당이 마냥 기대를 받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폭스 본인이 과반 득표를 한 것도 아니었고, 총선 또한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도 못해 개혁에 큰 난항을 겪었으며, 결국 제도혁명당과 상당부분 타협을 해야했다. 그리고 경제정책에서도 제도혁명당과 큰 차이점을 보인것도 아니기 때문에 많은 실망을 얻어 2003년 중간선거에서는 의석 수가 대폭으로 깎이기에 이르렀다.
이후로 오브라도르가 유력후보로 떠오르자 제도혁명당과 손잡아 망신을 샀다. 이 상황에서 2006년 대선에서 펠리페 칼데론을 앞세워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선거에는 문제가 많았다. 국민행동당은 선거에서 오브라도르를 우고 차베스와 연관짓는 네거티즈 캠페인을 통해서 꾸역꾸역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그러고도 오브라도르와는 득표율 차가 1%도 안 되었다. 더불어 금권선거 논란이 제기되고, 전면 재검표가 무산되는 등의 상황으로 인해 오브라도르가 대선에 불복하여 한동안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다.
따라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정통성이 약했다. 칼데론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마약 갱단들을 퇴치하기는 커녕 오히려 멕시코 내의 마약 카르텔들의 무장화만을 가속화시켰다는 평을 들으며 멕시코 역사상 최악의 실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고, 성과없이 지속되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과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치안은 멕시코 시민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서 제도혁명당에 대한 향수가 다시 자극되기 시작했고. 결국 2012년, 호세피나 바스케스라는 여성 후보를 앞세워 나름의 반전을 시도했지만, 역으로 3위를 기록하는 참패를 당한다.
때마침 민주혁명당의 후보로 나갔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재수에도 실패하자, 당 내에서 기반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이후 탈당해 자신의 정치운동이었던 국가재건운동을 정당으로 확대·개편하면서, 민주혁명당이 급속하게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에 민주혁명당은 2018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국민행동당과 전적으로 연대를 해 나름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리카르도 아나야가 양당의 단일후보로 출마했지만, 오브라도르에게 큰 표차로 밀리며 떡실신했다. 다만 이후로는 야당 가운데서는 그나마 상태가 좋은 편으로 평가받으며 지지율이 아주 나쁘지는 않은 수준이다.

3. 성향


중도우파 ~ 우파로 분류된다. 애초에 중도좌파인 제도혁명당에 대항하는 차원으로 만든 정당답게 우파이기는 하지만, 제도혁명당이 시간이 흘러서 우경화하데다가 1980년대 이후로 경제정책면에서 제도혁명당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받아들인탓에 차이가 별로 없어지다보니 양당의 성향 차이가 희미해졌다는 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 및 실용주의, 민영화를 추구하며, 사회적으로는 낙태 및 동성애 반대를 주장한다. 또한 당의 이념 중 하나로 기독교 민주주의가 명시되어 있는데,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좌우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를 명시하고 있다.
당의 전반적인 이념은 드골주의 및 페론주의에 가깝다는 평이 나온다.

[1] 이를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대입할 경우,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기 위해서는 최소 15%를 득표해야 한다.[2] 민주혁명당 후보가 제도혁명당 후보를 앞지르던 도중에 정전이 일어났고 그 뒤로는 다시 제도혁명당이 앞서나갔다. 누가 봐도 수상해보이는 정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