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겸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權謙
(? ~ 1356)

1. 개요


고려의 정승 권부의 아들. 본관은 안동이다.

2. 생애


충숙왕 초에 사복부정에 임명되고 1321년 대언을 거쳐 민부전서에 오른다. 1327년 충숙왕을 연경에서 보좌한 공으로 2등공신에 책봉되며 곧 동지밀직사사가 된다. 충숙왕이 폐위되자 서하군 임자송과 함께 국인을 받들고 에 가며 고려에 돌아와서는 충혜왕으로부터 밀직부사 관직을 받는다.
권겸은 전에 합포만호를 지낸 바 있는데 또 만호가 되고 싶어 복위한 충숙왕에게 여러 차례 만호 임명을 부탁한다. 충숙왕은 권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권겸은 이에 원에 가서 권세가에 의탁해 순군만호 관직을 얻고 돌아온다. 충혜왕이 복위한 1343년 압령관 권겸과 나영걸을 필두로 여러 만호들이 권세가의 집을 수색하며 국사를 바로잡으라는(整治)[1] 명을 받는다. 부원 세력인 권겸에게 개혁을 맡기고 환관 고용보와 친했던 이들은 처벌을 면하니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1344년 충목왕이 왕으로 임명돼 귀국하니 정승 기철 등과 국새를 가지고 행궁으로 나아간다. 곧 찬성사에 올라 시강에 임명되고 이듬해 1345년에는 판삼사사에 올라 밀직부사 유탁과 원 혜종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다. 충정왕이 즉위한 뒤에는 1350년 오자순과 원에 다녀온다.
공민왕 즉위 후 1352년 복안부원군으로서 원 황태자 아유시리다라[2]에게 딸을 바쳐 원에서 대부감대감에 임명된다. 1354년 혜종이 장사홍건적 토벌 지원을 명령할 때 출전을 요구한 장수의 목록에 권겸도 이름이 올라있으니, 7월에 원으로 출병한 40명 장수의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정남만호 권겸과 인당은 1355년에 고려에 돌아와 공민왕에게 홍건적이 세력이 날로 커지고 고려군은 육합성을 함락하고 회안로에서 방어하고 있음을 전한다.
그렇게 고려에 있던 태감 권겸은 1356년 병신정변으로 대사도 기철, 경양부원군 노책과 마찬가지로 살해된다. 부원배 일당이 궁궐에 불리고 권겸은 기철과 함께 먼저 도착했는데, 매복해 있던 장사들에게 습격당한다. 고려사에서는 기철이 쓰러지고 권겸은 도망쳤지만 궁궐 자문(紫門)에서 잡혀 살해당하니 문에 피가 낭자했다고 전한다.

3. 가족관계


소종에게 시집간 딸 권씨가 낳은 공주는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이수데르(또는 예수데르)와 결혼한다.

[1] 이후 충목왕 때 정치도감(整治都監)이 만들어지고 권겸의 형 왕후가 판사가 돼 개혁을 주도한다.[2] 원 혜종과 기황후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