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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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長沙(长沙) / 장사 / Changsha
중국 후난성의 성도. 인구는 2016년 기준 731만 명이다.
중국의 제 2대 주석 류샤오치와 엑소의 레이가 이 지역 출신이다.
모택동의 고향인 소산(韶山, 샤오산)이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홍색관광지가 많아서 창사를 들렀다 가는 관광객들도 많다.
2. 역사
중간에 담주라고 한번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고대의 이름이 현대까지 계속 내려오는 몇 안되는 중국 도시로 춘추전국시대부터 이 이름이 계속 쓰였다. 원래는 묘족의 땅이었고, 춘추전국시대에는 초나라 땅이었다.
진나라가 초나라를 멸하고서, 군국제를 실시하면서 초나라의 강남 지역을 떼어내 장사군을 세웠다. 이것이 지명으로서 장사의 기원이다. 이후 한나라에서 장사국을 제후국으로 두었으며, 장사군에서 영릉군과 계양군을 분할했다. 이후에도 장사군을 계속 분할하여 장사군의 직할지는 계속 축소되었다. 장사군은 둥팅 호 이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고, 이 지역에 설치되는 상주 등 군의 상급 기관의 관청 소재지(치소)가 있었다.
삼국지에서는 형주 남부(형남) 4군(영릉, 무릉, 계양, 장사) 중 하나로, 은근히 주인이 자주 바뀐 흥망성쇠를 가진 성이다.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던 시기에는 손견이 다스리고 있었고 손견이 황조에 의해 암살당한 후에는 장선 등의 태수들을 거쳤고, 이어 한현이 다스렸다가 한현이 유비에게 항복한 이후에는 촉한의 땅이였다가 익양대치로 인하여 오나라의 땅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옛 주인을 다시 찾아간 셈이다. 어쨌든 삼국지연의만 봐도 손견, 황충, 위연[1] 등 굵직한 무장들이 여기를 근거로 활약했다.
수나라에서 군을 폐하고 주로 대신하면서는 담주(潭州)를 설치하고 장사현 · 익양현 · 형산현 · 소양현 등을 두었다. 담성(潭城)이라고 부르다가 명나라 홍무제 시절 담주부를 장사부로 개칭하면서 "장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이후 750~1100년까지 장사는 중요한 상업 도시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청 왕조 하에 1664년부터 호남성의 성도이자 주요한 미곡 시장이었다. 도시는 태평천국 운동 때 포위당했으나 후난성 출신 의병들의 활약으로 함락되지 않았다.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는 모택동이 처음으로 봉기한 장소이기도 하다. 1927년 9월 마오쩌둥은 추수폭동을 기획했다가 참패하고 후난성 남부의 징강산에 들어가 게릴라전을 폈다. 마찬가지로 펑더화이도 1931년에 창사 폭동으로 창사를 일시적으로 점령하지만 이후 국민당군에게 참패하고 물러난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의 중일전쟁의 주요 전장으로 잠시 일본군에 점령되기도 했다. 국공내전때 이곳을 지배하던 국민당 군벌들은 대세가 공산군에게 기울자 모두 동향인 마오쩌둥에게 투항했고, 공산군은 1949년 5월 창사시에 무혈입성했다. 1949년 이래로 재건되어 도시는 현재 주요한 항구이자 상업 공업 중심지이다.
지금은 창사 시의 메이시(Meixi) 호수를 주변으로 신도시 건설이 활발히 진행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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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쇼와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후난위성TV와 그 자회사인 망고TV의 본사가 여기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 중국 예능과 쇼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3. 언어
중국어 방언인 상어(창사화)가 사용된다.
4. 관광
창사 IFS 타워
5. 교통
시내 교통으로는 버스와 택시 그리고 창사 지하철 등이 있다.
공항은 창사 황화 국제공항이 있으며, 인천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중국동방항공, 중국남방항공이 인천 ↔ 창사 직항을 운항 중이다. 수도권에서 장가계로 갈 때는 창사에 내려서 이동하거나 김해국제공항으로 이동하여 에어부산 직항편을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