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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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지금의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용퇴 후에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까지 승진했고, 현재는 삼성전자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2. 상세
2.1. 업무 스타일
용장보다 덕장 또는 지장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끈기와 집념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래 일하는 것보다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 쉬는 '스마트워크'를 강조한다. 평소 직원들에게 “창의적 사고를 위해 일찍 퇴근해서 가정적인 가장이 되라”며 “가족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가정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고 한다. 실제로 본인도 일주일에 두 번은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일의 본질을 파악하면 이야기는 굉장히 단순해진다는 신념 때문에 번잡한 보고를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전무급 임원이 장황한 보고를 하자 다음부터는 간단히 하라면서 따끔하게 지적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는 신념을 지녀 토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한 것을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형식이나 의전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해외출장 때 불필요한 인원을 데리고 다니는 일도 없고 공항에 마중 나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둘 정도라고 한다.
반도체사업부를 이끌 당시 분기에 한 번씩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편하게 대화하는 막걸리 소통을 마련하기도 했다.
다양한 비유법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임원들 사이에서 완벽주의자로 통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사소한 것도 끝까지 잘못된 점과 책임소재를 규명한다.
삼성 CEO 중에서 회의가 길어지면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를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흡연을 자기관리 실패의 상징으로 생각해서 아주 싫어한다.[2]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당시 기흥 반도체 사업장의 직무실 책상 뒤 벽에 윤종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써서 선물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사자성어를 걸어놓았다. 격물치지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앎에 이른다’는 의미다.
1997년 당시 발령받은 시스템 LSI 본부는 적자 부서였다. 그리고 발령 전에는 박사 출신 연구원으로 개발을 진행했으나 발령 후에는 경영을 맡아야만 했다. 2010년쯤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부사장이 자살을 택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권오현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더 큰 조직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2.2. 주요 경력
- (2020년 1월 ~ 현재) 삼성전자 고문
- (2018년 3월 ~ 2020년 1월) 삼성전자 회장 겸 종합기술원 회장
- (2017년 11월 ~ 2018년 3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
- (2016년 5월 ~ 2017년 11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
- (2015년 12월 ~ 2016년 4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 (2012년 12월 ~ 2015년 11월)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 ·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 (2012년 7월 ~ 2012년 12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대표이사 부회장 겸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 부회장
- (2011년 7월 ~ 2012년 6월) 삼성전자 DS부문장 · 사장
- (2008년 5월 ~ 2011년 6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장 · 사장
- (2004년 1월 ~ 2008년 5월) 삼성전자 System LSI사업부장 · 사장
- (2000년 5월 ~ 2004년 1월) 삼성전자 System LSI사업부 LSI개발실장 · 부사장
- (1998년 1월 ~ 2000년 4월) 삼성전자 System LSI사업부 ASIC사업팀장 · 전무
- (1997년 2월 ~ 1997년 12월) 삼성전자 System LSI본부 LSI제품기술실장 · 상무
- (1996년 1월 ~ 1997년 1월)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제품기술센터장 · 상무
- (1988년 8월 ~ 1995년 12월)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제품기술담당 공정개발팀장
- (1985년 ~ 1988년) : 미국 삼성반도체연구소 연구원
2.2.1. 학력
- (1980년 ~ 1985년) : 스탠퍼드 대학교 전기공학과 박사 졸
- (1977년 ~ 1980년) :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연구원
- (1975년 ~ 1977년) :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석사 졸
- (1971년 ~ 1975년) :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학사 졸
- (1969년 ~ 1971년) : 대광고등학교(23회)
3. 기타
베스트셀러인 '초격차'의 저자이기도 하며, 중 고등학교 시절 입학 시험에서 낙방을 해서[3] 시련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
직장 생활 중 학교 후배를 8년이나 상사로 받아서 근무한 경험도 있다고 회고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그 후배가 임형규 아니면 황창규일 거라고 했다. 직속상관은 임형규, 그 위의 상관이 황창규였다.[4]
2020년 상반기 삼성전자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무려 '''92억 9000만원'''의 퇴직금을 수령했다.후배와의 경쟁에서 졌기 때문에 솔직히 기분도 나빴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제 부하들에게 먼저 밝혔습니다. 그때 제 부하들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일이 닥치더라도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함께 일하자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정작 본인에게 그런 일이 닥치니까 그만두시겠다는 겁니까? 그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뭡니까?”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부하 직원들에게 해왔던 말이 있었으니까요. 회사라는 조직은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다. 먼저 회사가 잘 되고, 그 다음에 부서가 잘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잘 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 있더라도 조직이나 회사가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 결국 제가 한 그 말이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늘 해왔던 말을 제가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동료와 직원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당신들 말이 맞다. 내가 늘 그렇게 말해 왔는데, 내가 그걸 어기면, 나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솔직히 기분 나쁘다. 하지만 우리 함께 실력을 키우자. 함께 더욱 더 노력하자.”
이런 각오로 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맡고 있던 반도체의 시스템 LSI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고, 다행스러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후배가 저를 제치고 상사로 임명되는 상황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고, 솔직히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난관이 있었기 때문에 더 분발할 수 있었고, 사업적인 측면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배에게 업무 보고를 해야 했던 인고의 세월은 8년이나 이어졌습니다 - <초격차, 권오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