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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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대표이사'''
권오현

'''권오현'''
'''윤부근'''
'''신종균'''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前''' '''IM부문장 · 대표이사 사장'''
'''신종균'''
'''申宗均 | Shin Jong-Kyun'''
'''출생'''
1956년 1월 16일 (68세)
'''본관'''
평산 신씨[1]
'''학력'''
영등포고등학교 (졸업)
인하공업전문대학 (전자계산학 / 전문학사)
광운대학교 (전자공학 / 학사)[2]
'''소속'''
삼성전자 고문
'''수상내역'''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글로벌경영부분 (2012)
글로벌 품질경영인 대상(2012)
제57회 정보통신의 날 정보통신대상(2012)
금탑 산업훈장(2013)
제 1회 한국 신뢰성 제조업 부문 대상(2013)
1. 개요
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평가
2.2. 이력
2.2.1. 주요 경력
3. 기타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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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삼성전자 부회장, 현 삼성전자 고문.

2. 상세



2.1. 업무 스타일 및 평가


‘조용한 CEO’로 통한다. 평소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한발 뒤로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꼼꼼한 일 처리만큼은 양보하지 않는다. 휴가도 가지 않고 업무의 3분의 1 이상을 해외 출장으로 보낸다. 삼성전자 휴대폰사업부의 한 엔지니어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빠르게 추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종균 사장 특유의 꼼꼼함과 성실함이 있었다”면서 “신종균 사장이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제품 개발을 주도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말했다.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신종균 부회장은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최 전 부회장을 도와 삼성의 휴대폰 1등을 견인했다.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최 전 부회장과는 업무 스타일에서도 서로 잘 통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제품 기술에 대해서 개발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해 왔다. 오죽하면 삼성 내에선, 신종균 사장보다 휴대전화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어려운 기술 용어도 척척, 구체적인 명령을 내려 부하 직원들의 시행착오를 줄인 것이 업무 효율을 높인 것은 덤.
섬세함의 신이라 불릴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출시일이 코앞에 다가온 제품도 최고의 수준이 아니면 원점으로 돌이키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알려졌다. 또한, 집념과 끈기의 대명사다. 그의 집념을 바로 말해주는 일화는 많다.
1984년 삼성전자 입사 전까지 외국인과 한 번도 대화하지 못한 영어 초보자였으나 이후 독학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단 앞에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실력을 끌어올린 일화는 유명하다. 젊은 시절 잠 한숨 안 자고 무려 72시간 동안 제품 개발에 몰두해 모두를 놀라게 하였으며, 1993년 삼성전자가 처음 정보통신 부문을 만들어 본격적인 해외 영업을 시작했을 당시 각국의 통신회사를 누비며 담당자를 찾아가 읍소했던 일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2009년 iPhone 쇼크로 업계가 요동쳤을 때 그해 9월부터 2010년 4월까지 갤럭시 S를 만들어내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1만 건이 넘는 소비자 사용 행태를 모두 분석하고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직접 구동시켰다는 후문이다. 잠도 자지 않고 주말도 없이 일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2.2. 이력


영등포고등학교(13회), 인하공전 전자공학과를 거쳐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편입, 졸업했다. 1981년 에코전자에 입사하여 4개월간 근무하다가 당시 새롭게 부흥하던 맥슨전자로 이직하여 4년간 전산기획을 맡았다. 그러던 중 1984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R&D 부문에 스카웃된다.
이후 이기태 전 부회장과 최지성 사장 밑에서 연구개발에 주력하면서 무선사업 부문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세계 최초 컬러폰을 개발했고''', 이후 제작하는 휴대폰들도 성과를 인정받아 '''초고속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리고 2009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으로 취임해서 삼성 갤럭시 브랜드를 만들어 노키아를 꺾고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급의 IT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CEO가 된 이후 삼성전자를 모든 분야에서 1등을 하는 것을 추구하던 방식에서, 다른 회사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고 글로벌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바꿔버린다. 그 성과가 바로 구글과 제휴하여 만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갤럭시 S다.[3]
마케팅 분야에서도 자질을 보였는데 기존의 난삽한 제품 코드에 의한 네이밍을 재분류하고 '''애니콜 브랜드를 폐지한 후''' 전 세계 모든 삼성 스마트폰의 브랜드를 '''갤럭시'''로 통일했다.[4] 또한 소리를 마케팅으로 활용하여 전설적인 브랜드 음악인 Over The Horizon 작곡을 지시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공을 들여 터치위즈를 내놓았다.
엔지니어로서 탁월한 분석력과 추진력을 갖춰, 모두가 반대할 때, 나 홀로 유럽 시장에 최적화된 휴대폰을 개발했고 그 결과, 유럽 시장에서만 960만대를 팔아치웠다고 한다. 또, '갤럭시 노트'라는 제품군을 통해 기존 스마트폰 시장을 분화시키며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2015년에는 삼성 언팩에서 구수한 된장 발음으로 대굴욕을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흠좀무한 명언을 남겼으니......하단 항목 참조.
2015년 12월 본인이 겸직하고 있던 무선사업부 사장 자리를 고동진 사장에게 넘겨주면서 최일선에서 물러나 'IM 부문장'만을 맡게 되었다.
2017년 11월 2일 2018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인재개발 담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의 우수 인재 발굴과 양성을 지휘할 예정이다. 대표이사 자리는 2018년 3월 15일까지 맡기로 했다.

2.2.1. 주요 경력


  • (2020년 1월 ~ 현재) 삼성전자 고문
  • (2018년 3월 ~ 2020년 1월) 삼성전자 인재개발 담당 부회장
  • (2017년 11월 ~ 2018년 3월) 삼성전자 인재개발 담당 대표이사 부회장
  • (2015년 12월 ~ 2017년 11월) 삼성전자 IM부문장 · 대표이사 사장
  • (2013년 3월 ~ 2015년 11월) 삼성전자 IM부문장 · 무선사업부장 · 대표이사 사장
  • (2011년 12월 ~ 2013년 3월) 삼성전자 IM부문장 · 무선사업부장 · 사장
  • (2009년 12월 ~ 2011년 12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 사장
  • (2009년 01월 ~ 2009년 12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 부사장
  • (2006년 1월 ~ 2009년 1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실장
  • (2004년 1월 ~ 2006년 1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팀장
  • (1996년 1월 ~ 2004년 1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그룹장
  • (1993년 12월 ~ 1995년 12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무선기술연구그룹장
  • (1993년 2월 ~ 1993년 12월) 삼성종합기술원 T-PROJECT실장
  • (1986년 11월 ~ 1993년 2월) 삼성종합기술원 정보3실 부실장
  • (1984년 12월 ~ 1986년 11월) 삼성전자 연구3실
  • (1981년 7월 ~ 1984년 11월) 맥슨전자 전산기획
  • (1981년 2월 ~ 1981년 6월) ECHO전자 전산기획

3. 기타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그룹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서 임직원들에게 직접 사과를 팔았다고 한다.
매우 긴 역사를 가진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조차 단연 넘버원 레전드라고 한다. 해당 학과 학생들 대부분이 신종균 사장을 롤 모델로 삼고 있으며, '''학과 내에서는 과 같은 존재이다. 편입생이라는 시선을 딛고도 크게 성공했다.'''[5]
갤럭시 S6를 공개한 삼성 갤럭시 언팩 2015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6]

"I may not be the best public speaker, that's because my first language is engineering."

저는 최고의 발표자는 아닐 수 있습니다. 제 모국어는 공학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설은 해외에서 전자회사 CEO가 한 최고의 명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오죽하면 삼성에 비관적인 기사를 자주 작성하기로 유명한 저널에서도 인정했을 정도이다.
묘하게 좋지 않은 의미로 삼성 갤럭시의 얼굴마담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 좋은 기사에는 십중팔구 이재용폰 등의 어구가 실리고 실적 하락에는 신종균폰이라는 말이 나오는 식... 그래서인지 이것과 관련된 글의 댓글에는 구원투수가 등판했다는 등의 드립이 흥했다.
갤럭시 S6 엣지 출시 당시 기자들 앞에서 골드 플래티넘 색상을 가지고 싶었는데 물량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화이트 펄을 쓴다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놨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평산 신씨 32세손 '均'자 항렬이다. 현재 살아있는 평산 신씨 사이에서 항렬이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한다. 신중현, 신현준, 신정환이 아들뻘, 고 신해철신대철이 손자뻘, 그리고 신동엽신승훈, 신성우가 증손자뻘(...), 농구선수 신기성이 '''5대손'''뻘, 前 정치인 신지호가 '''6대손'''뻘(...), 원로 배우 신영균이 형 뻘이고, 독립운동가 신익희가 아버지뻘이다.[2] 편입 후 졸업[3] 물론 구글의 OS 업데이트에 맞춰 로드맵을 짜고 수정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이것이 당시 부족했던 삼성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메꿔줬고 결국 성공했다.[4] 물론 갤럭시가 아닌 것도 있지만 주력으로 판매하는 건 갤럭시 브랜드다. 삼성전자/브랜드 미 포함 미국 출시 스마트폰, 삼성 대기 시리즈, 삼성 영세기함 시리즈, 삼성 심계천하 시리즈 문서 참조[5] 신종균 사장은 편입생인데, 일반적으로 편입생에 대한 시선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적으로 성공하니 재학생들이 그를 동경하는 것. [6] 동영상에 보이는 여성은 이영희 삼성전자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다. 로레알에서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있다가 삼성전자에 스카우트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