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알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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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io Conrado Álvarez Armelino, 1925.11.26 ~ 2016.12.28
우루과이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
몬테비데오 인근의 라바예하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 15세의 나이로 군 사관학교에 지원해 기병대로 졸업했다. 1962년 공화국 수비대로 임명되었으며 1971년 장군으로 승진한다.
그가 장군으로 승진했던 당시, 우루과이는 극렬한 좌우 대립으로 혼란을 겪던 때였다. 좌익 게릴라 단체인 투파마로스의 지속적인 테러 등이 반공주의자였던 그를 분노케 했다.
1972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안 마리아 보르다베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었고, 결국 무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바레스는 이를 틈타 1973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결성하여 종신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다만 타국의 군사 독재자들과는 달리 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장기집권을 하지 않음으로서 겉으로라도 잘 보이려는 꼼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대통령들을 바지사장으로 전락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예가 보르다베리 외에도 알베르토 데미첼리와 아파리시오 멘데스가 있다. 그러나 이 중 보르다베리의 경우는 매우 자발적으로 꼭두각시 행세를 벌였으며, 멘데스의 경우도 유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1]
더 문제는 집권기에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이었는데, 민주화 인사들을 투옥하고 고문하는 등 명백한 '''독재'''정치를 펼쳤다. 1970년대에는 3명의 바지사장 대통령들을 내세우며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이 만든 악법들을 어떻게든 시행하고자 대통령들을 협박해 시행함으로서 일부러 대통령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1976년 9월 1일 멘데스가 취임했던 당일에도 멘데스를 협박해 야당 인사들을 탄압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대한 민중의 반발이 심해지자 1980년 새로운 민주화 헌법을 작성한 뒤 국민투표를 부쳤다. 하지만 결과는 되려 '''부결'''이었는데 뻔하겠지만 저 신헌법이 진짜 민주적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되려 국가분열이 일어나면서 군부에 비상이 걸렸고, 1981년 멘데스가 사임[2] 한 뒤 본인이 아예 진짜로 대통령을 해먹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실권자를 해먹기 시작하면서, 일단 37명의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학살을 지시했다. 그리고 국가 안보를 핑계로 이런저런 독재를 강행했으며, 야당의 활동을 상당히 억제했다. 그러나 민중의 걷잡을 수 없는 반발로 서서히 야당과 타협하면서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1984년 대선을 치러 민주화를 이행했다. 물론 여기도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일부 주요 야당에 대한 억제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민주화는 진행되었고, 결과는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의 승.
1985년 2월 12일 대통령에서 사임했고, 이후 라파엘 아디에고 브루노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가 3월 1일 상기네티에게 넘겨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우루과이에서는 군사 독재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 군사정권 청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인권을 운운하는 앰네스티조차 우루과이의 군사 독재 문제를 묵인했다.
그러나 2005년 타바레 바스케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알바레스는 결국 2006년 구속되었고, 이후 2009년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비참한 말년을 살다가 201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이후 2016년 12월 28일 새해를 단 4일 앞두고 조용히 숨졌다. 향년 9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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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io Conrado Álvarez Armelino, 1925.11.26 ~ 2016.12.28
우루과이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
1. 생애
몬테비데오 인근의 라바예하에서 태어났으며, 1940년 15세의 나이로 군 사관학교에 지원해 기병대로 졸업했다. 1962년 공화국 수비대로 임명되었으며 1971년 장군으로 승진한다.
2. 독재
그가 장군으로 승진했던 당시, 우루과이는 극렬한 좌우 대립으로 혼란을 겪던 때였다. 좌익 게릴라 단체인 투파마로스의 지속적인 테러 등이 반공주의자였던 그를 분노케 했다.
1972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안 마리아 보르다베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었고, 결국 무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알바레스는 이를 틈타 1973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으며,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결성하여 종신 사무국장에 취임했다. 다만 타국의 군사 독재자들과는 달리 바로 대통령으로 취임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장기집권을 하지 않음으로서 겉으로라도 잘 보이려는 꼼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실상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대통령들을 바지사장으로 전락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예가 보르다베리 외에도 알베르토 데미첼리와 아파리시오 멘데스가 있다. 그러나 이 중 보르다베리의 경우는 매우 자발적으로 꼭두각시 행세를 벌였으며, 멘데스의 경우도 유사한 의혹을 받고 있다.[1]
더 문제는 집권기에 저질렀던 온갖 악행들이었는데, 민주화 인사들을 투옥하고 고문하는 등 명백한 '''독재'''정치를 펼쳤다. 1970년대에는 3명의 바지사장 대통령들을 내세우며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자신이 만든 악법들을 어떻게든 시행하고자 대통령들을 협박해 시행함으로서 일부러 대통령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1976년 9월 1일 멘데스가 취임했던 당일에도 멘데스를 협박해 야당 인사들을 탄압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대한 민중의 반발이 심해지자 1980년 새로운 민주화 헌법을 작성한 뒤 국민투표를 부쳤다. 하지만 결과는 되려 '''부결'''이었는데 뻔하겠지만 저 신헌법이 진짜 민주적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되려 국가분열이 일어나면서 군부에 비상이 걸렸고, 1981년 멘데스가 사임[2] 한 뒤 본인이 아예 진짜로 대통령을 해먹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인 실권자를 해먹기 시작하면서, 일단 37명의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학살을 지시했다. 그리고 국가 안보를 핑계로 이런저런 독재를 강행했으며, 야당의 활동을 상당히 억제했다. 그러나 민중의 걷잡을 수 없는 반발로 서서히 야당과 타협하면서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1984년 대선을 치러 민주화를 이행했다. 물론 여기도 심각한 결함이 있어서, 일부 주요 야당에 대한 억제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민주화는 진행되었고, 결과는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의 승.
1985년 2월 12일 대통령에서 사임했고, 이후 라파엘 아디에고 브루노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가 3월 1일 상기네티에게 넘겨준다.
3. 말년
하지만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우루과이에서는 군사 독재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 군사정권 청산 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인권을 운운하는 앰네스티조차 우루과이의 군사 독재 문제를 묵인했다.
그러나 2005년 타바레 바스케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알바레스는 결국 2006년 구속되었고, 이후 2009년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비참한 말년을 살다가 2015년,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이후 2016년 12월 28일 새해를 단 4일 앞두고 조용히 숨졌다. 향년 91세.
[1] 다만 훗날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원치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데미첼리와 멘데스는 1980년대에 세상을 떴다는 점을 보면, 진실은 저 너머에?[2] 헌데 이 사임에는 알바레스가 시켰다는 의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