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모보이급 장갑순양함

 


사진
1. 제원
2. 개요
3. 활동


1. 제원


전장
146.5m
전폭
20.9m
흘수
7.9m
기준배수량
12,359t
최대출력
14,500hp
최대속력
20.1kn
항속력
10kn로 8,100해리
무장
20.3cm 단장포 4문, 15.2cm 단장포 16문, 7.5cm 단장포 24문,
47mm 기관포 12문, 37mm 단장기관포 18문, 63.5mm 상륙포 2문,
맥심기관총 4정, 45.7cm 수중어뢰발사관 2기, 기뢰 200발
탑재기 수
없음
승원
815명
동형함
없음

2. 개요


그로모보이는 러시아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은 없다. 함명은 키예프 공국 시절의 대문호인 그로모보이의 이름에서 기인한 것이다. 1898년 5월 7일에 발트 공장에서 기공한 그로모보이는 1899년 5월 8일 진수 후 1900년 9월에 완공, 취역하여 발트 함대에 편입되었다.

3. 활동


1903년에 창설된 제 1 태평양함대 블라디보스톡 소함대에 소속된 그로모보이는 러일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에 이르는 일본의 해상통상로에서 통상파괴전에 종사했다.
개전직후인 1904년 4월 12일에는 <하기누라마루>, 4월 13일엔 원산으로 향하던 수송선 <킨슈마루>, 6월 2일에 3,900톤급의 대형수송선 <이즈미마루>와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육군소속 수송선인 <히다치마루>를 현해탄에서 격침했다. 이어서 7월 4일부터 19일까지 일본의 스쿠너선 6척과 영국의 증기선 <나이트 커맨더>, 독일 증기선 <테어>를 격침했다.
1904년 8월 14일에는 울산 앞바다에서 같은 장갑순양함을 주력으로 편성된 일본해군 제2함대와 조우하여 전투가 발생했는데(울산 해전), 이 전투에서 동료함 류리크가 격침당하고 중파된 그로모보이는 전사자 91명, 부상자 185명을 냈다.

1905년 2월말까지 수리를 받은 그로모보이는 1905년 5월 11일에 루스키 섬 연안에서 기뢰와 접촉폭발하는 바람에 9월까지 수리를 받았다. 1905년 4월 25일부터 28일까지 그로모보이는 4척의 일본상선을 격침시켰다. 러일전쟁 종결 후 그로모보이는 다른 함과 함께 발트해로 돌아갔다.

1907년부터 1911년에 걸쳐 크론슈타트 증기선 공장에서 오버휠 조정을 받은 그로모보이는 보일러를 교체하고 8문의 152mm 포와 선수 부분의 203mm 포에도 포곽을 장비했다. 수중어뢰 발사장치도 45.7cm의 2문으로 교체했다. 1914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그로모보이는 핀란드만에서 순항임무에 종사했다.

1915년 6월에 다시 개장공사가 이루어져 기관포와 고각포를 강화한 그로모보이는 1916년 6월에 통상파괴와 습격작전에 종사하다가 1917년 2월의 2월 혁명에서 러시아 임시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갔다. 10월 25일에 발생한 볼셰비키10월 혁명에서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의 관리하에 들어가 적색 발트함대에 편입되었다.

11월 26일부터 27일에 크론슈타트로 이동한 그로모보이는 1918년 5월 이후 크론슈타트 군항에서 장기보관상태에 들어갔는데 1919년에 152mm 포를 철거하고 리가를 방어하는 해군부대에 주어졌다. 1922년 7월 1일에 러시아와 독일의 합자회사인 독일 러시아 금속회사에 매각된 그로모보이는 10월 12일에 해체를 위해 독일로 예인하던 도중 30일에 폭풍을 만나 외항에서 침몰해 후에 인양 후 해체되었다.
출처:헤인사 <러시아/소련해군 순양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