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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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īga. 라트비아의 수도. 라트비아 인구의 1/3이 모여 사는 명실상부한 라트비아의 종주도시이며, 발트 해안의 저지대에 위치한 항구다.
북유럽답게 한랭하면서 습한 날씨를 보인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 ''Dfb''이며 1월 평균기온은 −5.1℃, 7월 평균기온은 +17℃이다.
리가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2014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던 경력이 있다.
행정구역은 중구(Centra)와 쿠르제메구(Kurzemes), 북구(Ziemeļu)의 3개 구(rajons)와 젬갈레구(Zemgales), 비제메구(Vidzemes), 라트갈레구(Latgales)의 3개 교외구(priekšpilsēta)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58개 동(apkaime)이 있다. 현재의 6개 구 중 3개 구(중구, 비제메구, 라트갈레구)는 1941년에, 나머지 3개 구는 1969년에 현재의 영역으로 정해졌다. 각 구의 이름은 중구와 북구를 제외하면 라트비아의 각 지방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는데, 소련 시기에는 레닌그라츠키·레닌스키·프롤레타르스키·옥탸브리스키(스탈린 시기엔 스탈린스키)·모스콥스키였던 구 이름이 1990년 현재와 같이 각각 쿠르제메·젬갈레·비제메·북구·라트갈레로 바뀌었다.
2. 역사
1201년 독일의 주교였던 알베르트에 의해 건설되었고 1282년에 한자동맹에 가입했다. 1621년 스웨덴에 점령되었다가 1721년부터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1917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일 제국군이 진주하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가 독립하면서 1918년에 그 수도가 되었다. 1940년 6월 소련이 점령하여 라트비아 SSR의 수도였다가, 1년 후인 1941년 6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2만 명이 넘던 리가의 유대인들은 거의 학살되었다. 1944년 10월 소련이 탈환한 이후 다시 라트비아 SSR의 수도가 되었다. 발트독일인들은 모두 추방되었으며, 러시아 SFSR을 비롯한 다른 소련 공화국들로부터의 이주자로 인해 러시아화가 촉진되었다. 2차 대전으로 파괴되었긴 했지만 고건축물들의 복원이 잘되어 있던데다가[3] 근처에 해수욕장도 있던지라 소련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이름을 날렸고, 발트 지역 최대의 도시로 중요했다. 1991년에 소련의 상태가 나빠지면서 그 해 9월 라트비아의 독립과 함께 다시 수도가 되었다.
3. 인구
중세 시절부터 발트 해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한 리가는 발트 3국 최대의 도시이다. 하지만 저출산, 해외 이주(특히 러시아인) 등으로 1990년대 이후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소련 붕괴 직전의 인구는 90만이었으나, 2020년인 지금은 63만 정도이다. 라트갈레 지역과 함께 비교적 높은 러시아인 비율을 보이고 있으며, 대다수의 주민들이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기본으로 구사할 수 있다.
사실 리가는 원래 독일인, 라트비아인, 러시아인들이 모두 살던 도시였으며, 19세기 중반에는 독일어 사용자가 다수를 차지하여(1867년 기준으로 독일어 사용자 42%, 러시아어 사용자 25%, 라트비아어 사용자 23%), 독일어가 시청의 공용어로 사용될 정도였으나, 1891년 러시아 제국에 의한 러시아화가 시행됨에 따라 러시아어로 교체되었다. 또한 시골의 라트비아인이 리가로 이주함에 따라 19세기 후반에는 라트비아어 사용자가 다수(라고는 하지만 절반 이하)를 차지하게 되었다. 1897년 리가는 인구 28만으로 제국에서 6위의 인구를 차지하는 대도시였으며, 제국 말기인 1913년에는 인구가 47만 명에 달하였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라트비아가 독립하면서 혼란 때문에 인구는 1920년에 19만까지 감소하였으나, 이후 라트비아인이 인구의 60%를 넘는 다수가 되었으며 1935년 39만으로 회복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2차 세계 대전의 혼란이 지나가고 라트비아가 소련에 병합되면서, 러시아인의 이주로 소련 시절 리가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였으나(1945년 23만, 1989년 92만) 러시아 등 타 공화국으로부터의 이주자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2006년까진 라트비아인보다 러시아인이 더 많았다. 라트비아가 다시 독립한 이래 러시아인이 빠져나가면서 인구도 감소하였으며, 2014년에는 라트비아인 42.8%, 러시아인 39.5%의 인구 구성을 보이고 있다.
4. 교통
시내 교통은 버스, 전차(트램), 트롤리버스가 담당한다. 2017년 기준 1회권이 1.15유로로 비싼 편은 아니지만 1회권으로는 환승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같은 번호의 버스, 전차, 트롤리버스의 운행 구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대중 교통을 이용할 일이 있으면 어떤 교통 수단인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1970-1980년대에 인구증가에 따라[4] 도시철도를 건설할 계획이 세워졌지만, 지반 문제와 함께 도시철도 건설로 인하여 러시아계 이주자가 더 몰려올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에 반대가 심했다. 결국 소련이 해체되면서 도시철도 계획은 백지화되었고 이후로 라트비아와 리가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앞으로도 건설될 계획은 없는듯하다.
국제공항으로 리가 국제공항이 있고, 발트 3국 중 최대 항공사인 에어 발틱이 이곳을 허브로 쓰고 있다. 시내까지는 버스로 약 40분 걸린다. 한국에서 리가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항은 없다. 아니, 아시아 주요 공항에서 여기로 가는 직항이 없다. 아에로플로트, 핀에어, 터키 항공, 루프트한자 등의 환승편을 이용하면 올 수 있다.
5. 기타
김기덕(1960)이 이곳에서 사망했다.
6. 대항해시대 시리즈에서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 유일하게 슬라브어'''만''' 통하는 도시라 기묘한 대접을 받고 있다. 슬라브어를 사용하는 도시는 세 곳인데, 라구사는 이탈리아어, 카파는 터키어가 동시에 통한다.[5] 또 정작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슬라브어를 안쓰고, 노르웨이어[6] 와 정체불명의 북극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정작 라트비아어는 슬라브어파가 아니라 발트어파다. 뭐 발트어파와 슬라브어파는 발트-슬라브어파에서 분파된 어파라 좀 가깝긴 하지만…
주요 생산 품목으로는 감자, 왁스, 호박 정도가 있다. 상업 투자로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으므로 꼭 상업 투자를 하도록 하자.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검은머리 회관 같은 일부 건물은 소련이 독일인들의 잔재라며 건물 잔해들까지 모두 철거한 것을 독립 이후 복원하기도 했다.[4] 당시 소련은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에서 지하철을 건설했고 그 이하인 도시에서는 전차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교통망을 확충했다.[5] 실제로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어만 할 줄 알아도 의사소통하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6]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언어를 노르웨이어 하나로 합쳐놨다. 그래서 스웨덴어는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