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누키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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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No.78'''
'''기사누키 히로시 (木佐貫洋)'''
'''생년월일'''
1980년 5월 17일
'''국적'''
일본
'''출신지'''
가고시마현 사츠마센다이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2009)
오릭스 버팔로즈 (2010~201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3~2015)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투수코치 (2019~ )
'''프런트'''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카우트 (2016~2018)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신인왕'''
이시카와 마사노리
(야쿠르트 스왈로즈)

'''기사누키 히로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카와시마 료
(야쿠르트 스왈로즈)
1. 개요
2. 선수 생활
3. 그 외


1. 개요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前 프로야구 선수.

2. 선수 생활


아지아대학 시절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였고, 2003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루키시즌인 2003년에 두 번의 완봉승을 포함해 10승을 거두며 신인왕에 오르는데, 이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된 모습을 보였으며, 2005년에는 14경기 등판에 1패 5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무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7월에 오른쪽 견갑골 수술까지 받는 등 시련을 겪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신인 투수들에게 가혹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만큼 기복이 심한 투수였다. 2007 시즌에 12승 9패 방어율 3.09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다시 조명을 받았지만, 그 다음 시즌은 심한 기복에 시달리며 후반기를 2군에서 보냈고, 2009 시즌은 아예 2군에만 머물렀고 결국 시즌 종료 후 오릭스의 다카기 야스나리와 트레이드되는데, 2010 시즌에 오릭스에서 10승(12패)을 거두며 부활했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오릭스의 에이스인 가네코 치히로가 어깨 부상으로 전반기를 뛸 수 없게 되자, 개막전 선발투수를 놓고 새로 합류한 박찬호와 경합을 벌였고, 최종적으로 개막전 선발투수로 발탁된다. 그리고 개막전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9이닝 2실점이라는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였지만 오릭스 물타선이 와다 츠요시에게 철저하게 막히는 바람에 간신히 패전만 면했다. 하지만 이후 들쭉날쭉한 피칭으로 2군에 두 번이나 내려가는 고난을 겪었으며 결국 2승 7패 평균자책점 4.60의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에는 이제 아예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나오지 못하게 된 에이스 가네코를 대신해 팀의 에이스로 152이닝을 던지면서 2.60의 평균자책점으로 퍼시픽리그 평균자책점 9위[1]에 랭크되면서 분전했지만 정작 승은 '''5승'''밖에 못 거두면서 한국의 류현진과 미국의 클리프 리와 같은 아픔을 느껴야만 했다.
시즌 종료 후 2013년 1월 23일, 니혼햄의 호타준족 외야수인 이토이 요시오를 포함한 3대 2 트레이드의 주요 선수에 포함되어 니혼햄으로 팀을 옮겼다.
트레이드로 이동한 전력만 보면 풀타임 출장 시즌마다 3할에 10홈런/20도루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는 이토이가 테이블세터진 혹은 3번 타자로 합류하게 될 오릭스가 이득을 본 셈이지만 이토이가 2013시즌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에 가능한 트레이드라는 평가. 그래도 니혼햄으로서도 1,2선발인 요시카와 미쓰오와 다케다 마사루를 받쳐줄 선발이 더 필요했고[2] 이토이는 다르빗슈와 달리 FA로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기 때문에 포스팅비를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어서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트레이드이다.
2015년에는 계속 2군에 머물러 있다가, 9월 29일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경기를 위해 다음 날인 9월 30일에 1군 등록이 되었고, 같은 날 열린 삿포로돔 지바 롯데전에 구원 등판하여 1이닝 2탈삼진을 포함한 삼자범퇴로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했다. 현재는 요미우리에서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다.
통산 성적은 219경기 63승 73패 10세이브 평균자책점 3.75.

3. 그 외


전형적인 우완 정통파 투수로 145km까지 나오는 직구와 더불어 수준급의 포크볼을 가지고 있어 이 조합으로 꽤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겸손하고 친절한 성격인데다 노력가로 알려져 있어 야구 팬들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NPB에서 뛰었던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인데, 이승엽, 박찬호, 이대호와 같은 팀에서 뛰었으며 상술했듯 박찬호와는 개막전 선발투수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관계였다. 이 당시 기사누키는 박찬호에게 체인지업을 배웠고, 박찬호는 기사누키에게 포크볼을 배웠다고 한다. 포크볼을 가르쳐준 보답으로 박찬호가 기사누키에게 한국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1박 2일 시즌1에서 폭포 특집 특혜로 일본으로 갔던 이승기와 이수근을 만나기도 했다.
일본 야구계에서는 유명한 철덕이라고 한다. 경기장으로 갈 때 전철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며, 2004년 큐슈 신칸센의 부분 개통식 때는 센다이역의 일일 역장을 맡기도 했다.
[1] 이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가 13명밖에 없었던걸 감안하면 다소 낮지만 기사누키는 그 전엔 한번도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해본 적도 없었다.[2] "손수건 왕자"라고 불리며 주목받았던 신인인 사이토 유키의 부진이 특히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