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이 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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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 포지션은 초기엔 투수였지만 이후 외야수로 전향했으며, 등번호는 7번.
컨택, 수비, 주루(+선구안, 갭파워)를 모두 갖춘 2010년대 퍼시픽리그 최고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평가받았다.
2. 프로 입단 전
교토부 요사군 요사노정 출신으로 부친은 전직 트라이애슬론 선수, 모친은 국민체육대회 출장 경험이 있는 전직 배구선수, 조부는 전직 체육교사[1] 로 그야말로 체육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투수로 뛰었으며, 외계인 기질은 이때도 어디 안가서 중학교 시절 연습중 벤치에서 멍때리고 있는 걸 본 고문 교사가 "돌아가!" 라고 호통치자 진짜로 집에 가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딱히 주목받는 선수도 아니어서 강호교가 아닌 집근처의 미야즈 고교에 진학했고, 무릎이며 어깨를 치료하느라 고교시절엔 4개월밖에 뛰지 않았다. 드래프트될 확률은 높지 않다고 생각해 대학진학을 선택, 긴키 대학으로 진로를 정한다. 대학 시절엔 3학년 때 추계리그 데뷔전을 가졌고 4학년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춘계리그 전에서 5승 무패(2완봉승)의 대활약으로 최우수 선수,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고 세 차례의 베스트 나인을 획득했다. 통산 성적은 9승 1패.
2003년 가을,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자유 획득 범위로 투수로서 입단하게 되었다. 입단 시 등번호는 26번[2]
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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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cm의 건장한 체격에서 뿜어대는 최고속도 151km/h의 강속구로 주목받았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에 애를 먹었고 은근히 유리몸이었기 때문에 프로 적응은 영 좋지 않았다. 2004년부터 2년동안 1군 등판은 한차례도 없었고 2군에서도 36경기 8승 9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4.86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렇 듯, 투수로서는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당시 닛폰햄의 단장이었던 다카다 시게루는 이토이의 타격센스와 50m를 5초안에 끊는 준족, 강견에 주목했기 때문에 이토이를 외야수로 전향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3]
외야수로 전향한 첫 시즌인 2006년엔 1군 출장은 없었지만 2군에서 타격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타율 3할 6리, 8홈런, 8도루를 기록했다.
2007년엔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개막 로스터에 합류했지만 이내 부진하면서 다시 2군으로 떨어졌고, 9월에 다시 승격되면서 프로 첫 안타와 도루를 기록했고 2008년엔 개막전에 좌익수로 첫 선발출장하지만 또 부진하면서 2군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1군으로 복귀한 이후 5홈런을 때려내면서 잠재력을 발산했다.
2009년엔 드디어 '''포텐셜이 폭발했다.''' 개막전부터 모리모토 히초리를 누르고 주전 중견수 자리를 차지, 시즌 초반엔 모리모토와 플래툰으로 나오기도 했지만 이내 타격감을 끌어올리면서 6월 월간 MVP를 수상, 닛폰햄의 레귤러 중견수로 정착하면서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영광을 맛본다. 시즌 최종 131경기 타출장 .306 .381 .520 15홈런 58타점 24도루 40 2루타를 기록하면서 골든글러브와 베스트 나인을 싹쓸이했다.
이후엔 그야말로 퍼시픽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자리매김했는데, 2010년 .309 .407 .482 15홈런 26도루, 2011년 .319(우치카와 세이이치에 이어 리그 2위) '''.411(리그 1위)''' .448 11홈런 31도루, 2012년 .304 '''.404(리그 1위)''' .410 9홈런 22도루로 특히 2011년부터는 새로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극도의 투고타병이 된 NPB에서 변함없이 좋은 활약을 보여줌에 따라 그의 가치는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되었다. 정상급 수비력으로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은 덤.
2012 시즌 종료 후 연봉협상에선 구단에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할 의사를 전했다.
4.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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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한 이토이를 닛폰햄 구단은 안고 갈 생각이 없었는지, 이대호를 받칠 타자를 알아보고 있던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대형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이 트레이드에서 닛폰햄은 오비키 게이지, 기사누키 히로시, 아카다 쇼고를 받는다.
닛폰햄 팬 입장에선 '''프런트 ㅅㅂㄻ'''라 평가받았고 오릭스팬 입장에선 그야말로 '''신의 한 수'''라 평가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시즌에 이대호 앞에 3번타자로 나오던 선수가 출루율 3할을 넘지 못하는 막장 타격의 소유자 고토 미츠타카였기 때문. 출루율 4할을 찍을 정도의 선구안과 적당한 장타력을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외야수 이토이의 가세로 이대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이 많았다. 고토 의 밥상 뒤엎기 타격으로 안구에 테러를 당하던 국내팬들에게도 적잖은 희소식이 되었다. 시즌 전엔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시즌 중에는 잔부상에 시달리면서도 .300 17홈런 61타점 33도루로 맹활약하며 5년 연속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으나, 팀은 별다른 반등 없이 5위에 그쳤다.
2014 시즌에는 .331 .424 .524 19홈런 81타점 31도루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타격왕을 차지하긴 했는데... 그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아서 욕을 먹었다. 감독이 이토이의 타격왕을 밀어주기 위해 시즌 막판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타격 2위를 기록하고 있던 라쿠텐의 아카미나이 긴지에게 '''무려 5연속 고의사구'''를 작렬한 것. 이토이는 이 경기에 결장했다.[4]
2015년 시즌에는 드디어 노쇠화가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인지 .262의 타율로 시즌을 마감하며 7년 연속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다. 선구안은 아직 날카로워서 타율보다 1할 이상 높은 .377에 예년만큼이라 할 수 있는 17홈런을 기록했지만 장타율은 전년도에 비해 1할 이상 떨어지며 4할대 초반. 팀 야수진의 절대적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이토이의 이러한 부진은 오릭스의 추락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2016 시즌에는 .306 .398. 451 163안타 17홈런 70타점을 기록하면서 추락했던 작년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작년에 11개에 그쳤던 도루가 올해에는 무려 '''53개'''로 폭등하며 세이부의 가네코 유지와 함께 도루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36세에 도루왕을 차지한 것(그것도 개인 최초로)은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시즌 후 FA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오릭스에 잔류할 가능성은 낮아졌는데, 언론에서는 이토이의 영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팀으로 한신 타이거스를 지목하고 있다
11월 20일 한신행이 정해졌다. 참고 원래 7번을 달고 있던 니시오카 츠요시의 양보로 등번호는 계속해서 7번을 달게 되었다. 단 우익수 자리에는 후쿠도메 고스케, 좌익수 주전으로는 신예 다카야마 슌이 자리잡은 팀 사정 상 무슨 일이 생기지 않으면 이토이는 중견수를 볼 것이 예상되는데, 아무리 이토이의 운동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30대 중반의 나이인데다 오릭스 시절 우익수 수비 지표들도 하락세를 보였던 터라 불안 요소가 있다.
5. 한신 타이거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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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과의 계약은 4년 총액 16억엔(추정).
중간에 부상으로 한번 이탈하긴 했지만, 8할대 OPS를 찍으며 밥값은 그럭저럭 하고 있는 모습. 초반엔 중견수로 출장했으나 부상복귀 후에는 우익수로 이동했다. 좌익수 자리는 그 다카야마가 제대로 망하며 40세의 후쿠도메가 차지했다. 8월 30일 야쿠르트전에서는 프로데뷔후 첫 끝내기 홈런을 쳤다.
2017년 시즌 최종 성적은 114경기 출전, 타율 0.290(리그 10위), 장타율 0.447(리그 9위), 출루율 0.381(리그 7위), 427타수 124안타 17홈런 62타점 21도루.
2018시즌에도 여전한 타격 기량을 보여주며 팀의 중심타선을 치고 있다. 6월 30일 오른쪽 종아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도 3주만에 복귀해 복귀전에서 홈런을 쏘아올리는 초인적인 모습도 보여주었다. 다만 팀은 최악의 타격 생산성을 보여주며 순위싸움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중이다. 12경기가 남은 시점에서 타율 관리만 잘한다면 2년만의 3할 복귀도 가능해보인다. 그리고 9월 28일 경기에서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하며 사실상 시즌을 마감하게 됐다. 성적은 119경기 출장, 타율 0.308, 장타율 0.480, 출루율 0.420, 419타수 129안타 16홈런 68타점 22도루.
다만 우려되는점이 있다면 수비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 2015시즌 UZR지수가 -7점대였던것이 한신 이적후에는 -17점대까지 폭락했다. 2018년에도 전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16.8을 기록중. 이 수치보다 더 나쁜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블라디미르 발렌틴 단 1명 뿐이다. 즉 양대리그 합쳐서 이토이의 수비력이 뒤에서 2등이라는 셈.
2019년에는 빈타에 허덕이는 팀 안에서 그나마 3할 타율을 기록중이었지만, 두자릿수 언저리는 쳐주던 홈런이 5개로 폭락했다. 8월 3일 도루를 시도하다 왼쪽 발목을 다쳤는데, 당초에는 곧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9월까지도 복귀하지 못하며 이대로 시즌아웃이란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그때까지의 성적은 103경기 출장에 타율 .314, 출루율.416, 장타율.403 5홈런 42타점.9 도루. 결국 복귀하지 못했다.
2020년도는 시즌초 주전 우익수로 출장하고 있으며 3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타격으로 3번타자에 임하고 있다. 2할5푼이상의 성적을 내주고 적시타를 종종 치면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치카모토 코지의 부진으로 인해 톱타자로도 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와 체력 문제, 요오카와 나오마사의 성장으로 중반부터는 백업 및 플래툰 기용으로 물러났으나 여타 외야수들의 성적부진시에는 1순위로 쓰이는 백업 외야수.
다만 확실히 노쇠화가 역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2할 7푼의 타율은 백업 외야수로서는 훌륭하지만 본래 이토이는 다들 알다시피 좋은 백업 정도가 아니라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치는 선수였기 때문. 또한 장타력 역시 폭락해 10월 중순 기준 출루율이 .374인데 장타율이 .371에 2홈런으로 출루율이 장타율보다 높은 똑딱이가 되었고, 도루도 2개로 발도 죽어서 말 그대로 딱 방망이만 잘 친다. 타출갭은 1할 가까이 되어 선구안과 컨택은 아직 살아있는, 전형적인 눈은 보이는데 몸이 말을 안듣는 노장의 스탯.
일단 2020년 기준으로 한신과의 4년 계약이 끝났다. 지속적으로 빈타가 약점인 2010년대 후반 한신의 중심타선에서 그나마 좋은 활약을 하긴 했지만, 수비력의 저하와 계약 3, 4년차에 역력히 보여준 노쇠화로 인해 4년 16억엔이라는 거액에 걸맞는 활약은 아니었다는 것이 총평. 계약 첫 해 나이가 만 37세였으니 어느정도는 예상 가능했던 궤적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백업 외야수, 대타요원으로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기에 40세가 되는 내년에도 현역속행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결국 4억엔에서 2억 1500만엔이 삭감된 1억8500만엔에 싸인하며 2021년에는 후쿠도메 코스케와 노우미 아츠시, 후지카와 큐지 등의 대 베테랑들이빠져나간 구단의 최고참으로서 현역을 이어가게 되었다.
2억 1500만엔은 구단사상 최고 삭감액으로, 이토이는 "나는 이제 주전이 아니며, 다시 한번 컨디션을 끌어올려 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겸손한 인터뷰를 남겼다.
6. 이토이 요시오의 이모저모&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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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야구계에 돌아이 투수에 이가와 게이가 있다면 타자에는 이 선수가 있다.(...)
- 아버지는 트라이애슬론 선수, 어머니는 배구 선수의 체육인 혈통을 타고난데다가 본인이 단순무식하고 성실한 성격이라 그냥 놔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않고 훈련만 한다는 모양. 그 덕분인지 그야말로 탈아시아급 떡대를 자랑한다. 체지방률은 8%. 거기다 50m 달리기 5.76초, 서전트 점프 87cm, 악력 70kg, 시력 2.0[5] 등등 흠좀무한 운동능력의 소유자라고. 그에 대해 메이저 스카우트는 "하반신이 안정된 타격은 메이저 투수들한테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발도 빠르고 어깨도 강하며 수비범위도 넓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와도 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다르빗슈 유도 '이상적인 신체'라며 부러움을 표하기도 했다.
- 다만 대졸 출신인데다 투수로 2군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 야수로 전향하는 등 시간을 많이 까먹어서 FA를 취득하려면 30대 후반이나 되어야 해서, MLB에 진출하려면 현실적으로 포스팅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나 소속팀인 닛폰햄 파이터즈에서는 이미 32세였던 이토이의 포스팅피가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낮은 가격에 선수를 잃느니 트레이드를 선택해 이토이를 트레이드했고 오릭스 입장에서도 나름 크게 대가를 치르고 데려온 선수였고 팀의 기둥으로 자리잡은 선수였기 때문에 포스팅을 시켜주지는 않았다. 결국 구단들의 이해관계 속에 이토이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36세에 FA권한을 취득하게 되어 일본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 동료들 사이에선 우주인이라고 불리거나, 기타 관계자들에게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알 수 없다'는 등으로 언급되며 괴짜 취급을 받는 듯 하다. 드래프트 후에 구단 관계자와의 회식에서 "어땠습니까?"라고 묻는 기자에 질문에 "새우튀김이었습니다"라며 먹은 메뉴를 말했다고...
- 대학 시절 등판했을 당시 상대팀에게 엄청 두들겨 맞고, 보다 못한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와 한대 쥐어패려고 손을 치켜들었는데, 이토이는 이걸 하이파이브라고 생각하고서 감독의 손을 쫙하고 후려갈겨버렸다.
- 야수 전향 첫 날, 타격 후 3루를 향해 뛰었다고 한다.
- 대타로 출전후 삼구삼진을 당한 이후 기자들이 어떤 공을 기다리고 있었냐는 질문에 진지한 얼굴로 "스트라이크입니다" 라고 대답.
- 프로 입단 5년 차에 구단 직원에게 "우중간이 뭐죠?" 라고 물었다.
- 프로 입단 6년 차에 고의사구 이후 대주자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1루로 가지 않고 벤치에 들어가려고 했다. 다음 타자였던 카네코 마코토가 엄청 화를 냈다고... 경기 후에 한 말이 "규칙 하나 배웠습니다".
- 퍼시픽 리그 대표로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당시, '센트럴 리그 선수 중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선수가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엥? 저 센트럴 리그 대표로 출전하는 거에요?'라고 대답.
-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공을 치면 달리도록하겠습니다!'라고 대답.
- 영어는 할 줄 모르지만 외국인 선수들과 텔레파시로 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
- 계약변경을 위해 구단과 협상하는 자리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으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꺼내든건 도장이 아니라 립크림이었다는 모양.
- 가끔씩 아웃카운트를 까먹는다. 2아웃에 주자로 나간 상황에서 뜬공을 쳤는데도 터치업 전력질주로 슬라이딩까지 한다든가, 수비에서도 2아웃에 상황에서 뜬공을 잡아놓고도 진루방지를 위해 공을 던진다든가.
- 홈런을 쳐놓고도 전력질주를 한다든가, 3루에서 헤드 슬라이딩을 하기도 한다.
- 2015년 시즌을 앞두고 오릭스의 주장으로 발탁되었는데, 주장이 된 소감을 듣는 인터뷰에서 기자가 "그 주장 마크의 무게를 느낍니까?"라고 묻자 "꽤나 가벼운 소재라서요(무게가 느껴지지는 않네요)"라고 대답하여 사람들을 빵 터지게 만들었다. 게다가 노리고 한 농담이 아니라 진짜 천연 보케같은 느낌이었던지라(…).
[1] 노무라 카츠야가 그의 제자였다고 한다.[2] 2004 ~ 2010까지 단 뒤 2011 ~ 2012년에는 7번을 달았다.[3] 투수로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구용품회사로부터 야수용 글러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후에 외야 전향 후 "그 때 이미 (야수전향이) 결정되어 있었네요. 회사도 알고 있었군요." 라고... 물론 회사 측의 단순한 실수.[4] 오릭스는 바로 전날 라쿠텐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1승 차이로 시즌 우승에 실패'했고, 이 고의사구까지 겹치면서 오릭스와 라쿠텐 양팀 팬덤간의 분위기는 일촉즉발 상태까지 가게 된다. 해당 시합에서는 양팀 응원단이 서로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을 정도.[5] 원래는 1.0였으나 라식수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