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코 치히로

 

[image]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No.19
카네코 치히로(金子弌大/Chihiro Kaneko)[1]
'''생년월일'''
1983년 11월 8일
'''국적'''
일본
'''출신지'''
니가타 현 산조 시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4년 자유 획득 범위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 (2005~2018)'''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9~)
'''SNS'''
인스타그램
'''2014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가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마에다 켄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다나카 마사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가네코 치히로
(오릭스 버팔로즈)'''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 개요
2. 선수시절
2.1. 프로입단 전
2.2. 프로입단 후
2.2.1. 2013시즌
2.2.2. 2014시즌
2.2.3. 2015시즌
2.2.4. 2016시즌
2.2.5. 2017시즌
2.2.6. 2018시즌
2.2.7. 2019 시즌
2.2.8. 2020시즌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연도별 성적


1. 개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소속의 프로야구 선수. 과거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중 한 명이자 버팔로즈의 에이스'''였다'''.
한국에서는 앞자인 金子를 따서 금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일본에서의 별명은 고양이(네코).

2. 선수시절



2.1. 프로입단 전


니가타 현 산조시 출신이나 초등학교 4학년때 나가노시로 이사를 가 고등학교는 나가노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봄 고시엔이라 불리는 선발고등학교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으나 2회전에서 현재 같은팀에 소속되어있는 히라노 요시히사가 속했던 도바고등학교에 패배하고 말았다. 선발고등학교대회(봄 고시엔)라든가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여름 고시엔) 본선 진출에 실패해 한신 고시엔 구장을 밟아 보지 못했고, 프로팀의 지명을 못 받아 사회인야구토요타 자동차[2] 입사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구원으로 부상하더니 도시대항야구대회[3]에서 호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2004년 자유 획득 범위로 당시 팀을 합병하고 있던 오릭스 버팔로즈로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이 당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인수 합병, 본인의 입단 과정, 부상으로 계약 철회 등 논란이 많은 시기였다. 후에 본인 인터뷰에선 드래프트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일본프로야구의 어려움을 피부로 느낀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2.2. 프로입단 후


그리고 데뷔시즌은 부상의 여파로 1군등판기록은 없으나 2군에서 좋은 모습을 기록했으며 그 모습을 바탕으로 2006년에는 중간계투로 나와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선발로도 전환이 이때부터 시도되었으나 선발 등판에서의 모습이 이땐 영 좋지 않아 1경기만 선발로 등판했다. 그리고 2007년에도 중간계투로 계속 등판했으나 시즌 중반부터 선발투수로 등판하기 시작해 前 시즌과 달리 좋은 모습을 보여줘 선발자리가 고정되었고 6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 했다.[4] 성적 향상의 원인은 아마도 사회인 야구 시절엔 썼으나 부상을 이유로 쓰지 않았던 커터를 레퍼토리에 추가하면서 생긴 듯. 시즌이 끝난 뒤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개막전 선발투수에 등극하기도 했으나 시즌 초반부터 교류전까지 부진에 빠진 모습을 보여줘 다시 불펜으로 강등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류전이 끝난후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본인도 시즌 첫 10승을 거두고[5] 안습의 소속팀도 오랜만에 A클래스에 올라갔다.. 다만 피안타와 피홈런을 너무 맞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였던 시즌이였다.
2009시즌에서는 前 시즌에 보여줬던 약점을 보완했는지 감독 추천으로 첫 올스타에 나오기도 하고 올스타전에서 좋은 피칭을 보여줘 베스트 피쳐상을 수상하고 팀 12년만에 2년 연속 10승을 달성한 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성적이 추락 했으며 특히 마무리 상태가 안습이였다보니 9월달엔 본인이 자청해서 마무리로 등판하기도 했다.[6] 그리고 다음시즌인 2010시즌에선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중반에 대량 실점을 여러번 하는등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7월부터 3경기 연속 완봉승을 하는등 13연승을 기록했으며, 최종적으로는 개인 최다승인 17승을 달성하면서 동시에 첫 200이닝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시즌에 스프링캠프부터 통증을 호소하더니 결국 개막전 선발 등판을 하지 못했고 6월에 시즌을 시작했다.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 규정이닝을 넘겼고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챙겼다 다만 본인의 소속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을 해 팀을 패배로 몬 것이 흠이라면 흠 그리고 2012시즌에선 스프링 캠프에서 부터 오른쪽 손목 통증과 허리 통증을 호소하더니 개막전 등판도 하지 못했고 팔꿈지 염증으로 장기간 결장하는등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당연히 팀은 하위권행...


2.2.1. 2013시즌


2013시즌에서도 시범경기 등판을 하지 않아 이번에도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는가 했으나, 개막전 선발로 등판했으며 그 후에도 뛰어난 피칭을 보여줬다. 하지만 타선이 안습이다 보니 득점 지원이 심하게 안 좋아서 승수를 많이 쌓지는 못했고, 하필 그 시즌에 웬 아이돌 덕후가 말 그대로 미친 피칭을 보여주는 바람에 평균자책점도 2위로 밀렸다. 덕택에 사와무라 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상은 무패의 에이스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사와무라 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함에도 이 상을 못 받은 건 텍사스의 그 분이후 2년만이자 3번째 투수다.[7]

2.2.2. 2014시즌


그리고 2014시즌에서 캠프도중에 플루에 걸려 캠프에서 잠시 떨어지는등 설마 또... 라는 불안감이 조성되었으나 개막전 선발에 등판했으며 4월부터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前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여파인지 이때부터 MLB 스카우터들이 가네코의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MLB를 노리는 마에다 켄타와의 맞대결에서도 이기고 요미우리 전에선 9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8]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트리플 크라운은 탈삼진 부문에서 노리모토 타카히로(라쿠텐)에 밀려 2위로 밀려나면서 실패했지만 16승과 1.98의 방어율을 기록했으며 前 시즌에 못받은 사와무라상을 기어코 받아냈다. 이 사와무라상은 오릭스의 첫 사와무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압도적인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에서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고 오릭스는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광탈하고 말았다. 그리고 시즌 후에 미국에서 월드시리즈를 관전하는 모습이 잡혔고링크~~근데 평범한 유학생같다 다만 스포트라이트는 노히트노런에 도움을 줬던 노리모토가 가져갔다~~
하지만 11월 29일 오른쪽 팔꿈치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고, 결국 소속팀인 오릭스와 4년 20억엔+에 재계약을 맺었다. 해외진출 권리까지 보장했던 한신 타이거스를 포함한 타팀 팬들 중 일부는 어차피 잔류할 거면서 왜 FA선언을 하며 쇼를 했냐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2.2.3. 2015시즌


지난 시즌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어깨 근력 저하에 시달려 16경기 7승 6패 1홀드 ERA 3.19에 그치며 3년만에 두자릿수 승수 달성에 실패했다.

2.2.4. 2016시즌


5월 20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 선발 등판해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전년도에 자신을 괴롭혔던 오른쪽 어깨 통증 때문에 엔트리에서 잠시 말소되기도 했지만 복귀한 뒤에는 다시 꾸준히 로테이션을 돌았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경기 7승 9패 ERA 3.84로, 2년만에 다시 규정이닝을 채우긴 했지만 이름값과 연봉을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운 성적. 더불어 데뷔 이후 가장 많은 볼넷을 기록한 시즌이었다.(59개)

2.2.5. 2017시즌


27경기 등판(모두 선발), 12승 8패, 방어율 3.47, 184 1/3이닝, 141탈삼진을 기록했다. 여기까지 보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지만 리그 최다인 21피홈런과 56개의 볼넷을 기록해 만족스러운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2.2.6. 2018시즌


6월 29일 기준, 11경기(모두 선발 등판) 3승 5패 방어율 3.50을 기록 중이다. QS를 7회나 기록했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상으로 8월달에 시즌을 조기에 마치며 17경기 4승7패 방어율 3.87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그쳤다.
올 시즌이 FA 마지막 해였는데 부활에 실패, 결국 오릭스 측으로부터 기존 연봉 6억엔에서 5억엔 삭감된 1억엔을 제시받았다.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을 받으면 전년도분 소득세를 내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봉은 -1억엔 이상이 되는 셈이라 이에 가네코는 FA선언을 했다. 2월 2일자로 자유계약선수 공시될 예정.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주니치 드래곤즈 등 여러 구단에서 가네코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중 주니치는 2년 3억엔(추정)의 다년계약을 제시할 의중을 내비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12월 3일, 닛폰햄과 처음 교섭을 가졌고 바로 다음 날인 4일에 닛폰햄과 계약을 발표했다. # 닛폰햄으로 이적하면서 등록명을 金子弌大로 변경했다.
당연하겠지만 오릭스 팬들의 분노는 상당한 상태. 오릭스 자체가 역사도 짧고[9] 대부분 외부영입으로 꾸려나가는 팀이라 프랜차이즈 스타로는 투수는 가네코, 야수는 T오카다 정도였는데 가네코를 후려치려다 내쫓아버린 셈이니.

2.2.7. 2019 시즌


26경기 19선발 109.2이닝 8승 6패 2홀드 ERA 3.04를 기록. 전성기만큼은 못해도 2018년보다 좋아졌다. QS 횟수는 4회뿐이지만 이건 19번의 선발등판 중 오프너로 나온 경기가 꽤 된 게 크다. 노쇠화가 슬슬 가속화될 시기와 제대로 치는 놈 얼마 없을 정도로 발암물질 수준의 타선을 생각해보면 나름 선전한 시즌.
특이사항으로 친정팀인 오릭스 상대로 7경기에 나와 ERA 0.49에 5승 무패를 기록(...)하면서 복수를 제대로 했다.

2.2.8. 2020시즌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은 아니었고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10점대의 무서운 방어율을 기록하며 시즌 시작부터 헤매고 있다. 그 이후 적응을 어느정도 했는지 방어율이 5점대로 내려가며 반 가까이 줄이고 있다
결국 불펜으로 34시합 1승3패 5.11의 부진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연봉은 무려 80% 삭감으로 1억 4500만이 깎여 3500만엔에 재계약했다.#올해의 불펜기용은 본인의 희망이 있었다고 하며, 내년에는 선발로 재전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 쓰리쿼터의 폼에서 나오는 평균 144km/h,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지만, 2014년부터 장기 계약을 맺은 이후 부상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함과 동시에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 탓에 구속이 급감했다. 2018년 기준으로 평균 141km, 최고 146km 정도.
위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커브, 투심, 커터,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여러 구질을 던지지만 최대의 장점은 역시 빠른 공. 볼배합을 직구 구위를 살리는 쪽으로 하다보니 2014시즌은 패스트볼 피안타율이 2할대를 밑돌 정도고 제구력도 뛰어나 볼넷이 적은 편이다. 그리고 폼이 안정적이다 보니 수비력도 뛰어나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그러나 장기계약과 동시에 맞은 팔꿈치 수술 뒤로는 직구 구위가 감소했고, 직구 구사율을 낮추고 변화구 비중을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볼넷 수가 급증했고 제구력 자체도 많이 감소한 상태.
여담으로 좌투우타인 류현진과는 정 반대로 우투좌타다. 땀을 싫어하는지 왼쪽 소매가 긴 특수한 언더셔츠를 쓰기도 한다. 다만 이 언더셔츠를 쓸 때 투구하기 전에 볼을 만지고 던지면 스핏볼을 쓰는거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어 주의도 받는 편이다. 본인도 그걸 아는지 셔츠에 전혀 닿지 않는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만지고 있다고 한다. 한 때는 기복이 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대오각성한 2013시즌부터는 그런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하드웨어(180cm 77kg)가 그리 큰 편이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때문에 최고의 성적을 찍은 뒤에도 늦은 데뷔로 인한 나이 문제와 함께 하드웨어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고, 결국 2014년 오프시즌에 팔꿈치 수술을 받고 오릭스와의 연장계약을 수락하며 메이저리그 진출은 물건너가게 되었다. 오릭스와의 장기계약 이후에도 구위 저하와 내구성 문제가 두드러진 것을 보면 어느 정도 현실화된 문제.

4. 여담


2014시즌 등판곡이 G.DRAGON의 노래인 삐딱하게다.링크 카네코는 이후에도 2015년에는 BANG BANG BANG, 2016년에는 iKON의 Dumb&Dumber를 등장곡으로 사용하는 등 K-POP에 관심이 많은 듯.
KPOP에 관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유행가나 최신 유행, 패션 등에 관심이 많은 젊게 사는 사람으로 단연 일본야구계 넘버원 패셔니스타. 젊은 시절부터 머리를 염색하고 다녔고 30대 중반에도 탈색해서 그라데이션을 주고 펌을 한 머리를 하고 다니며 투블럭, 펌, 소프트 모히칸 등 상당히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유니폼이 아닌 사진을 보면 거의 매 사진마다 머리스타일과 머리색깔이 다를 정도로 패셔너블하고 수염도 길러서 소화한 적도 있는 등 스타일을 굉장히 자주 바꾸며 또한 사복 센스도 좋은 편이다.
운동선수치고 잘입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연예인 급으로 옷을 굉장히 잘 입는 편. 이런 패션 좋아하는 인싸들이 한국 스타일이나 KPOP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만큼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있다. 머리스타일이나 옷 스타일에서 한류스타일이 약간 느껴지기도 하고...여담으로 일본에서는 월드컵 당시 조현우가 나왔을 때 가네코치히로 닮았다는 반응이 인터넷에서 잠시 돌았던 적이 있다. 실제로 닮았고.
가네코라는 성이 재일한국계에 많은 성씨인 점, KPOP을 꾸준히 등장곡으로 사용하거나 한류아이돌스러운 스타일을 하고 다니는 점으로 한국계 의혹이 있는 선수 중 하나다. 조선적이라는 소문도 있고, 구글 연관검색어에 가장 먼저 가네코 치히로 한국이 뜰 정도. 물론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애초에 가네코, 아라이, 가네다, 가네모토 등 좀 한국스러운 성씨를 가진 유명인이면 항상 따라붙는 것이 재일 의혹이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말자. 가네코라는 성씨는 한국계도 있지만 니이가타를 본관으로 하는 가네코도 있다.[10]
스즈키 이치로 의 일본시절 응원가가 오릭스 시절 카네코가 타석에 섰을 때의 응원가로 사용되었다.
다른 선수는 전광판에 풀 네임이 아닌 성만 표시되는데,[11] 가네코는 金子千尋(오릭스 시절)-金子弌大(닛폰햄 시절)로 네 글자 풀네임이 모두 표시된다. 본래는 타 선수와 같이 성만 표시하였으나 2010년 4월 성이 같은 내야수 가네코 케이스케가 트레이드로 오릭스에 입단하며 이름 첫번째 글자까지 표기하게 되어 '金子千'로 표기하였는데, [12]글자 모양이 밸런스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풀네임으로 써줄 것을 요구하여 풀네임 金子千尋로 표기하게 되었다. 가네코 케이스케는 2년동안 활동하고 오릭스를 나가서 다시 팀의 유일한 가네코가 되었지만 金子千尋 풀네임 표기는 고치지 않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실 다시 되돌려도 곤란한 것이 이렇게 되면 공식기록이 찾아보기 굉장히 힘들어지기 때문. 시기별로 金子-金子千(약 1개월)-金子千尋(1년6개월)-다시 金子가 되어버리면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번 표기가 바뀌면 공식기록을 보는 사람이 헷갈리기 쉽기 때문에 배려한 것. 상술했듯 닛폰햄으로 이적한 현재는 등록명을 金子弌大로 바꿨지만 여전히 金子가 아닌 풀네임 金子弌大으로 전광판에 표기된다.[13]
정말 여담으로 오른손잡이인데 벨트 버클을 왼쪽으로 오게 맨다.

5. 연도별 성적


NPB 통산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오릭스 버팔로즈
21
28.0
1
1
0
1
0.500
3.54
20
4
20
22
13
11
1.36
2007
36
84.0
6
2
1
2
0.750
2.79
75
4
21
68
31
26
1.13
2008
29
165.0
10
9
0
0
0.526
3.98
185
19
42
126
78
73
1.33
2009
32
171.2
11
8
4
0
0.579
2.57
149
15
38
165
54
49
1.07
2010
30
'''204.1'''
'''17'''
8
0
1
0.680
3.30
184
17
47
190
'''85'''
75
1.12
2011
20
155.1
10
4
0
0
0.714
2.43
126
9
40
123
45
42
1.06
2012
9
63.2
4
3
0
0
0.571
2.40
65
2
16
56
19
17
1.26
2013
29
'''223.1'''
15
8
0
0
0.652
2.01
166
10
61
'''200'''
55
50
1.00
2014
26
191.0
'''16'''
5
0
0
0.762
'''1.98'''
157
7
45
199
48
42
1.04
2015
16
93.0
7
6
0
1
0.538
3.19
85
8
18
79
34
33
1.11
2016
24
162.0
7
9
0
0
0.438
3.83
143
13
61
125
71
69
1.25
2017
27
184.1
12
8
0
0
0.600
3.47
160
'''21'''
58
141
80
71
1.17
2018
17
100.0
4
7
0
0
0.364
3.87
97
11
38
72
47
43
1.32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9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6
109.2
8
7
0
2
0.533
3.04
106
10
40
75
42
37
1.33
<color=#373a3c> '''NPB 통산'''
<color=#373a3c> 342
<color=#373a3c> 1935.1
<color=#373a3c> 128
<color=#373a3c> 85
<color=#373a3c> 5
<color=#373a3c> 7
<color=#373a3c> 0.601
<color=#373a3c> 2.97
<color=#373a3c> 1718
<color=#373a3c> 150
<color=#373a3c> 545
<color=#373a3c> 1641
<color=#373a3c> 702
<color=#373a3c> 638
<color=#373a3c> 1.15
[1] 2018년까지의 등록명이자 본명은 한자만 다른 金子千尋. 닛폰햄으로 이적하며 지금의 등록명으로 변경했다.[2] 명포수 후루타 아쓰야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 전 이 팀에서 뛰었다.[3] 일본의 사회인야구 문서 중 4.1.1 참조[4] 그 사이에 완봉승 2번이 섞여있었다.[5] 덤으로 이닝은 팀내 2위에 탈삼진은 전체 8위였다.[6] 정확히는 스프링캠프에서 선발들에게 물어봐 불펜으로 뛸 수있는 사람을 물어봤는데 가네코만 가능하다고 했다.[7] 나머지 한 투수는 에가와 스구루[8] 경기가 연장으로 넘어가고 본인이 내려가서 승리는 없었다.[9] 오사카 구단으로써의 역사. 오릭스 프랜차이즈 역사는 80년이 넘을 정도로 매우 길다.[10] 애초에 귀화한 경우는 관보에 기록이 남기 때문에 반대로 관보에 기록이 없다는 것은 재일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같은 성을 쓰는 세이부의 카네코 유지(金子侑司)는 생일과 사는 지역이 똑같은 金侑司라는 사람이 귀화한 기록이 관보에 있다는 말이 있으나 해당 관보 기록이 인터넷에서 만들어낸 주작이라는 말이 있는데다 본인도 전혀 말한 적이 없고 언론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도 전혀 없다.)[11] 이름이 清原 和博라면 보통은 성 清原만 표시된다. 성이 같은 선수가 있을 경우에는 이름 첫번째 글자까지 표기하는 것이 관례.[12] 마찬가지로 가네코 케이스케는 '金子圭'.[13] 비슷한 사례로 풀네임 山本 昌広나 성 山本이 아닌 山本昌까지가 정식 등록명이자 전광판 표기명이던 야마모토 마사의 사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