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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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前 삼성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즈 소속의 1루수이자 現 SBS,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이면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연수코치도 역임하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장타자'''이며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슬러거로 꼽힌다.[18][19] 더 나아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추신수, 강정호, 이대호 다음가는 강타자'''로 불릴만한 어마어마한 선수였다.
삼성의 이만수 - 양준혁 - 이승엽 본좌라인이며, 영결라인이다. 언론상에 주로 나오는 별명 겸 수식어는 국민타자. 인터넷 상에선 합법적 병역 브로커와 오푼이, 그리고 일본에서 부르던 애칭이던 승짱, 국민적(敵)[20] 등이 있다. 시민타자라는 표현은 대구내에서만 응원하라고 비하하려고 부른거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맞는표현. 당시 대구 운동장은 대구로만 불렸지 타지 사람들한테는 정식 표현인 '''대구 시민운동장'''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말그대로 홈구장이 시민구장에서 원정경기보다 많은 홈런을 쳤으므로 맞는 말이다. '''시민구장의 대표타자'''라고 하면 손색이 없다. 말그대로 이만수와 양준혁의 위에 올라가므로... 네이버에서 그의 선수 말년에 그의 안티들이 '개승삽'이라면서 비난하기는 했지만 그의 나이와 활약을 아는 삼성 올드팬들은 이승엽이 아무리 못하더라도, '''절대로 그런 모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21]
2008 베이징 올림픽 덕분에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중요한 순간 꼭 2점을 뽑아준다"라고 하여 "이점엽"이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또한, 슬럼프도 없이 부진하지 않고 언제나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친다고 해서 자칭 이름에다 호를 붙여서 "역시 이승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나씩 적어보자면 2000 시드니 올림픽 당시 일본과 치른 예선전에서 괴물투수로 불리던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렸고, 동메달 결정전에서 또 다시 마쓰자카를 상대로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날렸다. 2006 WBC 때 도쿄돔에서 일본과 예선을 치르며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2Round 멕시코전에서 결승 '''2'''점 홈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일본과 치른 준결승전 당시 8회에 결승 역전 '''2'''점 홈런, 쿠바와 치른 결승전에서도 1회에 선제 '''2'''점 홈런 등 2와 인연이 깊다.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1회 선제 '''2'''점 홈런에 2회 연타석 홈런까지.
또 다른 별명인 합법적 병역 브로커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붙은 별명이다. 이유는 지금까지 합법적으로 후배들에게 병역 특례 티켓을 쥐어준 것만 해도 엄청난 숫자에 이르기 때문.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6 WBC 4강,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40명 정도의 선수들에게 병역 특례를 선물로 주었다. 자신은 팔꿈치 수술로 면제가 되었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대인배적 면모를 보여준다. 2012년 국내로 복귀한 이후에는 기존 일본쪽에서 불리던 국민적 타자라는 걸 변형하여, 잘할 때부터 못할 때까지 '''처녀자리 초은하단적''' - '''국부 은하군적''' - '''은하적''' - '''태양계적''' - '''세계적''' - '''유라시아적''' - '''아시아적''' - '''국민적''' -'''경상도적''' - '''대구시민적''' - '''수성구민적''' - '''읍민적''' - '''면민적''' - '''가정적''' - '''개인적''' - '''분자적''' - '''원자적''' - '''나노적'''[22] 타자로 다양하게 변화하며 불린다. 하지만 타팀팬이라면 희화화 할 수 있겠지만, 삼성의 역사를 아는 삼성팬이 하는건 자살골이나 마찬가지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침몰시킨 장본인도 다름 아닌 이승엽이였고, 2006 WBC에서 미국을 1회 초구 홈런으로 관광시킨 장본인도 이승엽이였다. 결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로 구성된 팀마저도 이승엽을 고의사구로 골라내는[23]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일본에서 말하듯 정말 국민적인 타자.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칠고 터프한 스포츠 선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생활도 깔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2000년에 풍파를 불러온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건 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참여한 경력이 있어 이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깎이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승엽이 선수협 파동 당시 만 24세였고[24] , 나이에 비해 '''한국 야구계에서 비중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관계'''로 당시 어린 이승엽이 옳은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나 당시 삼성 구단의 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은 선수협 오적으로 유명한 김기태였고, 당시 양준혁과 주먹다짐까지 벌여가며 삼성 선수들을 선수협에서 발을 빼도록 주도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25] 이승엽의 참가는 무리였다는 점 때문에 비난 여론이 그리 많지는 않다.[26]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정작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 당사자들이 이승엽을 옹호했었다'''는 점[27] 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가 있는 셈. 이 후 2001년에는 결국 단독으로 선수협에 가입했고[28] 그 후로도 선수협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 가입 당시 기사 #1#2#3
그는 이른 나이에 유명해져[29] 나이가 들어서까지 대활약한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 나이 42까지 2할8푼에 20홈런.80타점을 기록했다.[30] 마지막 시즌은 왠만한 팀 6번에 갖다놔도 준수한 수준, 3년 후 기준으로 금강불괴라고 생각되었던 2020년 3살 연하였던 김태균과 동갑이었던 박용택이 얼만큼 출전했는지 돌아보자.
2. 선수 경력
3. 선수 은퇴 이후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평가가 매우 안좋아진 상태다. 그의 팬서비스 논란이 그 원인이었는데, 그의 인터뷰 발언 중 "싸인의 희소가치"라는 말이 재발굴되어 까였고, 또 평소에도 싸인을 잘 안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승엽이 언급되면 이젠 "팬서비스 안 좋은 선수"라는 평가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선수 시절 음주운전, 성폭행과 같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는데도 팬서비스 논란 하나로 은퇴 이후 급격하게 평가가 깎여나간 이례적인 상황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승엽 평가/팬 서비스 항목 참조
- 2018년 1월에 KBO 홍보대사로 임명되어서 2018 KBO 리그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본인의 자서전도 집필해서 출간도 하였고 본인의 이름을 딴 이승엽 야구장학재단을 설립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당시에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였다.[32]
- 2018년 3월 2일 오키나와 리그 SK:KIA전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 2018년 3월 25일에는 한화:넥센 경기가 펼쳐지는 고척돔을 방문하였다.
- 이승엽 홍보대사가 2018년 프로야구 홈런왕은 최정이 되지 않을까 공언했으나 실제 홈런왕은 어느 약쟁이가 차지했다.
- 2018년 시즌 종료 후에는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로 출장을 다녀왔다.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의 유네스코 방문.
- 2019년 본인의 이름을 건 이승엽기 전국 초청리틀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2019년 7월 1일 SBS Sports에서 결승전이 방송되었다.
- 2019년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 카메오로 출연하였다.
3.1. 해설위원
선수 시절이었던 2006년, KBS에서 2006 코나미컵의 특별 해설위원으로 투입되어 김현태-이용철 콤비와 함께 일본 현지에서 경기를 중계한 적이 있다.
이후 2015년 프리미어12 부터 SBS와의 인연을 쌓기 시작한다. SBS Sports 객원 특별해설로 정우영 - 이순철 콤비와 함께 거의 중요한 국가대표 경기일때 해설을 맡았다. 2018년 부터는 지상파의 KBO리그 중계에도 투입됐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 SBS 야구 해설위원으로 합류하게 되고, 포스트시즌 경기에도 모두 투입됐다.
해설위원으로서의 평가는 안 좋다. 팬 서비스 문제로 이승엽의 평가가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목소리 등의 말투가 좋은 것도 아니고 경상도 사투리도 심하기 때문. 팀 선배인 양준혁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사투리는 의식적으로 많이 고치려고 노력한 듯, 억양은 부자연스러워도 사투리는 예전보다 눈에 띄게 나아졌다.
또한 2018년 한국시리즈에는 이순철과 함께 두산 측에 유리한 편파해설을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로 두산 측에 편파적인 해설을 한 터라 그냥 도매금으로 같이 비판받았다.
2019년에는 이순철 해설과 김세연 아나운서와 함께 미국에 캠프를 차린 키움, KT, NC의 스프링캠프 취재를 다녀왔다. 객원 해설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다녀온 것을 보면 정식으로 공식 해설 위원 계약을 맺은 게 확실시된 상황. 그리고 2019년 개막전에서 정우영 캐스터가 정식 해설이 되었다고 언급하면서 확인사살. SBS의 지상파 해설은 물론 SBS Sports에서의 중계도 맡게 됐다. 주로 정우영 - 이순철 조합에 끼는 식. 이런 식으로 동반해설로 이제 정식 해설위원으로 맡으면 된다고 보면 된다. 2019년 5월 28~30일 롯데-NC 3연전에서는 최원호 위원과 공동해설을 진행했고, 그 이후에도 안경현 해설이나 이동근 캐스터와도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2020년 6월 9일 키움 히어로즈 -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데뷔 처음으로 단독 해설을 맡았다.
해설 빈도를 늘리다 보니 초기에 비해서는 나아졌다는 게 팬들의 평가. KBO를 대표하는 대(大)타자답게 주로 타격 메커니즘에 관한 내용이 호평을 받고 있다. 본인도 여유가 생겼는지 중계 도중 개그(...)를 하기도 한다. 특히 NC 다이노스 팬들에게 호평을 많이 받는데, 2020년에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는 강진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 2020년 7월 17일부터 19일까지 kt wiz와 NC 다이노스의 창원 경기 해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33] 8월 12일 NC - 롯데 전에서는 이동현과 처음으로 함께 해설했다.
4. 평가
5. 팬서비스
자세한 내용은 이승엽 평가/팬 서비스 항목 참조Q. 이승엽 선수는 싸인 잘 해주는 편이신가요?
이승엽: '''아뇨. 싸인 잘 안해줍니다.'''
Q. 이유가?
이승엽: '''제가 너무 많이 해 드렸던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예전부터 너무나 많이 해드렸기 때문에 싸인에 대한 노이로제. 예전에 지인들, 팀에서 원하는 것, 팬들이 원하는 것들을 해드리다보니까 '''싸인에 대한 희소가치가 아무래도 좀 떨어지겠죠.'''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직거래가 되는 걸 봤을땐 '아 내가 해줘서는 안되는 거구나' 그래서 웬만하면 안 해드리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린이 팬들이나, 공에다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분들에게만 해드리고, WBC 기념볼 같은 공에 요구하면 제가 좀 의심... 그래서 사실 좀 줄이고 있어요. 하지만 올해 다시 달리 마음을 먹어서 웬만하면 해드릴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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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승엽에 대한 말말말
뜨거운 '''아시아의 대포'''에 뜨거운 혼을 담았다. 이 노래여 전해져라, 홈런 이승엽
(熱きアジアの大砲に 熱き魂を収めた この歌よ届け, ホ―ムラン李承燁)
ㅡ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응원가
'''전설이 되어라'''
ㅡ삼성라이온즈시절 응원가
'''당신은 나쁠 때도 좋을 때도 거인의 4번 타자입니다.''' 모두를 끌어가는 선수이니 괴로울 때도
분할 때도, 잘 되지 않을 때도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모두가 뒤에서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말을 걸어와 주세요. 당신은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위대한 순간의 증인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ㅡ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KBO리그 최초 개인통산 400홈런을 쳐낸 후 정우영 캐스터의 멘트. 52초부터.
'''"걷어 올렸습니다! 뻗어갑니다! 600호를 향해! 담장! 넘습니다! 담장을 넘습니다! 1995년 5월 2일 통산 첫 번째 홈런, 7806일의 기다림! 담장을 넘었다는 600번째 외침! 이제 대한민국에도 600홈런 타자가 있습니다! 전설로에서 전설로 가는 600호 홈런을 쏘아올린 전설의 타자 국민타자 이승엽, 우리는 이승엽의 시대를 함께 살았습니다!"''''
ㅡ 김민수 SPOTV 캐스터(9월 14일 이승엽의 한일통산 600호 홈런 후 멘트)
홈런 하나 치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안 그랬거든요. 하나를 쳐도 더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더 노력할 수 있었죠. 이젠 달라졌더라구요. 홈런 하나 쳤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정말 은퇴해야 하는 구나'하고 느끼게 됐습니다. 이제 홈런 하나로 만족이 되더라구요. '''됐다고 하는 순간 나태해지는거라 생각합니다.''' 나태한 모습으로 시간을 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은퇴 시기를 참 잘 잡은 것 같습니다.
ㅡ 은퇴 시즌인 2017시즌 22호 홈런을 친 뒤 인터뷰에서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
ㅡ 선동열
'''승엽아, 삼성 올래?'''
ㅡ 류중일
'''왜 운동 안하냐? 열심히 해봐라. 하다가 안 되면 이제 손 놔야지?'''
ㅡ 2013년 극도의 부진을 겪던 중 류중일감독이 이승엽에게
'''이승엽은 본인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역시 이승엽이었습니다.'''
-이승엽이 마지막 홈경기 첫타석 투런 홈런을 치고 난 후 공격 이닝을 마무리 할 때 MBC SPORTS+ 한명재 캐스터가 남긴 멘트
'''우리 세대의 타자!'''
'''우리와 함께 데뷔했고'''
'''우리와 함께 웃었고, 울었고,'''
'''기뻐했고 슬퍼했던 타자입니다.'''
'''우리 세대의 선물을'''
'''오늘 우리는 우리 가슴속에 새깁니다.'''
'''정말 우리에게'''
'''이 많은 추억을 안겨줘서 고맙습니다.'''
'''당신은 라이언 킹이 아닌'''
'''우리에게는 베이스볼 킹이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당당했고'''
'''자신 있는 선수였는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땀과 눈물,'''
'''그리고 그 가치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당신이 함께한 역사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우리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승엽'''
ㅡ한명재 캐스터의 은퇴식 클로징 멘트
'''요시! 그란도 시즌!'''
-백인천-
7. 이승엽에게 당한 피해자들
8. 은퇴 투어
대구 은퇴식 이전에는 KBO와 10개 구단이 합심해 이승엽의 구장별 마지막 원정 경기를 기념하는 사상 최초의 은퇴 투어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승엽을 위해 구단이 준비한 선물.
2017년 10월 3일 오후 5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삼성의 마지막 경기 종료 후에 은퇴식을 열었다. 출처 화려한 은퇴식을 위해 경기 시작 시간마저 오후 2시에서 5시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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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 팬서비스와 관련하여 한 야구팬이 올린 제보가 있었는데 당시 19살이었던 제보자는 경기 전에 몸을 풀고 있던 이승엽을 발견하고는 이승엽에게 다가가 사인을 요청했는데...이승엽의 대답은 저리 가라, 이 새끼야. 이승엽의 대답을 들은 제보자에게 근처에 있던 양준혁이 다가와서는 대신 이승엽의 사인을 받아줬다고 한다. 이 제보로 인해 이승엽에 대한 비난여론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 썰은 이대호한테 똑같은 말을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어떠한 증거자료도 없고, 차후에 작성자가 주작이라고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싸인의 희소성 발언도 그렇고, 평소에 팬 서비스가 안좋았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평소 불만이 있던 사람들이 불탄 상황이긴 하다. 작성자가 주작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현재도 이승엽의 기사마다 이와 관련된 정당한 비판과 무분별한 악플이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 본인이 따낸 병역특례 대상 타이틀만 무려 4개인 탓에[37] 병역특례자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은 상태. 정확한 사유는 알려진 없는데, 척추 분리증이라는 설과 경북고 3학년 때의 팔꿈치 인대 부상이 원인이라는 설 2가지가 지배적이다. 다만 경북고에서 좌완 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프로 무대에서는 타자만 했던걸 보면, 아무래도 이쪽이 유력한 듯.
- 김제동과 과거 대구구장 장내 아나운서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서 유명 스포츠 선수인 자신의 결혼식 사회를 수많은 연예인들을 다 뒤로 밀어 버리고 당시 듣보잡이던 김제동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김제동은 이것을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고마워하며 자신의 결혼식 사회를 꼭 이승엽에게 맡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워낙 방송에서 김제동이 이승엽과 친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김제동이 이승엽 이야기를 하면 '또 이승엽 팔이 하네.'라고 악플이 달릴 정도가 되자 이승엽을 언급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다만 친분은 여전해서 2012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직후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이승엽을 섭외할 수 있었다. 2017년 이승엽 은퇴식 때도 김제동이 사회를 보았다.
- 등번호 36번은 장종훈이 썼던 35번에 1을 더한 것으로, 장종훈을 뛰어넘는 타자가 되겠다는 다짐으로 36번을 달았다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원래 이승엽이 달고 싶어한 번호는 경북고와 청소년 대표팀에서 쓰던 27번이었지만, 삼성에서 27번은 타자가 받는 번호였기 때문에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은 원래 투수가 받던 번호인 36번을 받았다. 그래서 이승엽 이전에 삼성에서 36번을 달았던 선수는 모두 투수. 이승엽에게는 등번호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본인은 별로 애착이 가지 않는 번호였는데, 36번을 달고 1997년에 MVP를 받고 나서야 정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1 출처2 36살까지 야구하다가 은퇴하고 싶다는 말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말이다.
- 잘 알려진 기록은 아니지만 한국 프로야구 1호 무관심 도루(무관심진루:Indifference advance) 기록자다. 야구 규칙에 무관심 도루와 관련된 조항이 있긴 했지만 그 판정을 내려야 할 기록원들이 판정하기를 주저하여 무관심 도루를 주는 경우가 없었다. 이유는 판단의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연봉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성적에서 일부를 헛된 기록으로 만든다는 게 기록원들로서는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2년부터 이승엽에게 1개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첫 피해자가 하필이면 이승엽이 되긴했지만 덕분에 진기록을 하나를 추가한 셈이다.
- 일반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지만, 2007년 손가락 수술을 하고 팔에 깁스를 한채로 하네다 공항 비즈니스 대기실에서 당시 히로시마 카프의 에이스 쿠로다의 메이저리그 진출 기자회견을 보고 있었다. 약간 처연한 표정으로 넋을 잃고 화면을 바라보는 이승엽의 얼굴에서 정말 메이저리그를 동경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38]
- 주니치 드래곤즈의 포수 타니시게가 은퇴후 해설을 하면서 해설 도중에 가장 무서운 타자중 한 명으로 이승엽을 뽑은 적이 있다. 타율이 얼마건 간에 이승엽을 안 쓰는 건 바보짓이라고, 이승엽 같은 선수가 벤치에 앉아있으면 상대편 배터리로써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는데, 캐스터가 이승엽의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하자 이승엽같은 대포[39] 는 존재자체가 공포이기 때문에 성적과 아무 상관없이 포수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원초적인 공포이기 때문에 논리로 설명이 안 된다고.. 에이스 카와카미가 나고야 돔 5층에 박히는 홈런을 이승엽에게 맞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 이승엽은 간첩도 안다. 사실 '모르면 간첩'이라는 표현이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인물' 이라는 의미로 쓰는 말이긴 한데, 문제는 진짜 간첩이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했단 거다. 그래서 한동안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해당 기사.
- 2003년,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시즌 종료 후, 12월 18일, 해피투게더에 직접 출연했다. 같이 출연한 도전자들은 장나라, 윤도현인데 가장 쉬운 5번 자리를 뽑았다. 그런데 저번 주와 마찬가지로 짧은 노래임에도 계속 틀리는 바람에 진도를 더럽게 나가지 못했고 이대로 실패하면 노래도 못 부르고 쓸쓸히 돌아가야 했지만 마지막 시도에서 4소절 장나라 파트의 가사가 기적적으로 맞았고 비로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또한, 지바 롯데로 이적한 후, 120회 방영분(2004년 2월 26일)에서는 전화기를 꺼놔서 못 받은 이효리의 대안으로 이승엽에 전화를 해서 이승엽이 쟁반 맞을 사람을 선정하는 찬스 도우미로 나서기도 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야구의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4번 타자로 등장해 결승 홈런으로 일본을 격침시켰는데 이후 일본을 향해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인들은 "왜 우리가 이승엽에게서 사과를 받아야 하지?" 라고 반응했다고 한다.[40]
- 2013년 6월 23일 LG 트윈스전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시타를 맡았다. 그 이유는 암에 걸린 아버지가 이승엽의 팬이라며 이승엽 선수가 시타를 맡고 자신 아버지가 시구를 하게 해달라고 사연을 보낸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만큼은 승빠, 승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폭풍감동이라며 이승엽을 칭찬했다.해당 영상
- 2012 시즌 후 SBS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아내 이송정과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때마침 힐링캠프 MC가 김제동이어서 섭외에 기꺼이 응한 듯한다.
- 라이선스 문제로 이승엽의 본명을 야구게임들이 못 쓰고 있다. 때문에 장남식, 이태산때 처럼 간혹 본명대신 게임내에서 쓰이는 이름이 별명대신 불리고 있다. 이런 이름중 가장 유명한건 이영웅과 이국민. 누가봐도 국민타자 또는 국민영웅에서 따온 이름인듯 하다. 그러다가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에서는 4월 16일 업데이트로 이승엽 선수카드가 본명으로 전환되었다.
- 1999년 이승엽이 당시 한국타자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하자 MBC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승엽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41] 이때 이승엽이 양준혁은 이미 타격기술이 최정상에 오른 선배인데도 한밤중에 타격연습을 했다는 일화를 말하며 자신이 가장 많이 본받은 선수로 양준혁을 뽑았다. 당시 집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 방송을 보던 양준혁은 자신의 유니폼을 입은 대역배우가 한밤중에 배트를 휘두르며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놀랐다가 이후 이어진 이승엽의 인터뷰를 보며 상당히 뿌듯해 했다고 한다.[42]
- 한창 주가를 달리던 1999년 말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 노래도 여러모로 레전드. 문제의 노래가 바로 거리의 시인들의 빙이다. 뮤직비디오 중간에 뒷골목에서 학생들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혼내 주는 청년 역할로 나온다.
- 2014년 5월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누워있던 도중 병실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가족들이 TV로 야구 중계를 보고 있던 도중 이승엽 선수의 홈런 소식을 전하던 캐스터의 홈런~~~!!!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고 한다. 그 때문에 이례적으로 대표이사가 와서 이재용 부회장의 감사인사를 구단측에 전했다. 해당 기사 덧붙히자면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두사람 다 야구광이다. 이재용 문서 참고.
- 프로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교과서에 실리게 됐다. 진로와 직업이라는 교과서로 오랜 기간 다양한 연령층의 팬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이승엽 선수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야구 선수의 삶과 직업으로서의 모습 등 정보를 제공하고자 기획했다고 한다.#
- 2014년 8월 24일 베이브 루스의 예고홈런에 맞먹는 예고홈런이 나왔다. 해당 기사 이날 경기 전 자신을 만나길 소원하던 시각장애 학생 공민서 군에게 큰 선물을 선사했다. 이승엽은 경기 전 이날 시구자로 나선 공민서 군의 시구 도우미로 나섰다. 이후 사인을 해주는 등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공민서 군은 이승엽에게 "이날 경기에서 꼭 홈런을 쳐달라"고 부탁했고 이승엽은 그 약속을 지키며 공민서 군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했다.
-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종목에서 해설자로 발탁되었다!! 선수시절의 경험담을 잘 엮어 좋은 입담를 보여줄 수 있을지 벌써 뭇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 2017 시즌후 은퇴 시점을 잡고 있는듯 하며, 그안에 프로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 해당기사 시점까지 통산 안타는 1757개. 그리고 2016년 9월 7일, 대구 KT전에서 역대 8번째로 2000안타를 달성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식사, 필기 등 일상생활을 오른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이다.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것.
- 국민타자라는 별명은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90년대 후반 IMF로 실의에 빠졌던 국내에서 엄청난 홈런 레이스로 분위기를 살렸고, 주요 국제 대회에서 중요한 순간 한 방을 쳐낸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삼성팬을 넘어서 90년대를 버텨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까지. 그는 야구인을 넘는 야구인이었다. 게다가 그는 무리하다 싶었던 그 역할을 지금까지 훌륭하게 수행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흠잡을 데 없는 자기 관리로 본받을 만한 스타의 모습을 아직까지도 보여준다.
- 2015년 초, 중학교 교과서에 이승엽의 인터뷰가 실렸다. 삼양미디어의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 나온 각계 직업 종사자 17명 중 한 명으로 뽑혀 실린 것으로 관계자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이승엽을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 2015 WBSC 프리미어 12 개막전에서 일본 선수들과 통역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해서 일본어 실력도 이정도면 수준급인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표현할 수 있고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한다. 실제로 통역이 필요없는 수준. 프리미어 12를 앞두고 히로시마 카프의 왕년의 강타자 마에다가 한국을 방문해 박병호에 대해 이승엽과 인터뷰하는 모습
- 2015 시즌 이후 2년 36억에 FA 계약을 체결하였고 2017 시즌 이후에 은퇴를 하겠다고 미리 예고를 했다.
- 2016년 성우로 깜짝 데뷔했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의 대공원역(대구) 안내 방송을 맡게 된 것. 안내 방송은 2월 25일부터 열차 내에 방송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7년부터는 안내방송이 중단되면서 원래 성우로 회귀했다.
- 2009년에 서울의 에스콰이어 빌딩을 293억원에 구매해 건물주가 되었다. 당시 대출을 통해 샀으며 2014년에 모두 대출금을 모두 상환했다고 한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대부분이 일부 금액은 본인 돈으로, 나머지 액수는 대출을 받는 식으로 건물을 구매하는 일이 자주 있는데, 연예인(특히 아이돌이나 배우 등 비주얼로 활동하는 쪽)이나 운동선수는 직업 특성상 근무수명이 매우 짧기에 미리 노후를 대비하는 차원. 비슷한 케이스로는 서장훈이나 효린이 있다.
- 경북고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단순히 놀러오는 게 아니라 모교 야구부 후배들이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애정어린 조언도 제법 한다고.[44]
- 술담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45] 또한 흡연을 하는 선수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하기도 한다.
- 燁(빛날 엽)이라는 한자가 일본에서는 상용한자가 아니라서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엽' 부분만 가타카나로 표기한 '李承ヨプ'이란 표기가 표제어로 되었다. 북한 정치인 리승엽도 똑같이 표기한다.
- 2016년 시즌 종료 후 이 팀의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한때 함께 뛰었던 형님분은 감독되고 동갑내기 친구분과 먹성좋고 든든한 아우 그리고 독일에서 1년간 뛰다 돌아온 아우가 코치로 오면서 본인이 느낄 심적 부담이 가볍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평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잘 안하기로 한 김응용당시 삼성감독은 당시 이승엽 선수의 한시즌 아시아 최다홈런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시점에서 만약에 이승엽이 기록을 세운다면 하이파이브를 하겠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승엽이 56호 홈런을 치고 이승엽선수와 하이파이브하려고 앞으로 나왔는데 이승엽은 김응용 감독을 못보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 취미로는 인터넷 장기 라고 한다.
- 현역 프로선수로 활동하면서도 석사학위를 따낼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야구선수다. 이승엽/선수 경력 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고3 시절에는 한양대학교로 진학하려 했으나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프로 진출을 하는 쪽으로 선회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아들이 대학진학을 했으면 하는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고자, 프로 데뷔 4년차인 1998년에 대구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한다. 2002년에 대구대 학부 졸업과 동시에 성균관대학교 스포츠마케팅학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수료했다. 2005년에 영남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 체육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2012년에 졸업했다. 프로야구선수들은 일반적으로 공부와 담을 쌓고 야구만 하는 경우도 많으며, 고졸 야구선수들 중에는 군 문제 때문에 입영을 늦추고자 대학에 이름만 걸어두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이승엽의 경우는 군 문제와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대학 진학을 선택했으며, 프로선수로 활동하면서 석사과정까지 마치는 학구열을 보여주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공부하는 야구선수'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프랑스의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과 비슷한 면이 있다. 지네딘 지단과 이승엽은 각각 소속팀인 유벤투스 내지 레알 마드리드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전설급의 활약을 선보였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각각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조국의 우승을 이끄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며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도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고 떠난 것까지 매우 유사하다. 이승엽이 은퇴하자 삼팬들은 망했어요를 외치고 있다. 러프나 구자욱말고 20홈런을 넘게 칠수있는 선수가 이승엽밖에 없는것 올해도 이승엽은 홈런을 24개나 쳤다 반응들도 은퇴하기 아깝다는 반응.
- 국민타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20여 년 동안 한 종목을 대표하는 국민적인 스타치고는 의외로 TV에 잘 나가지 않는다. 예능 출연프로그램이라곤 결혼 직전 서세원쇼 밖에 없었으며, 결혼 후에도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스타가 된 김제동의 고정출연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대부분 나왔다. 지상파 방송으로 해피투게더(KBS)-쟁반노래방, 일밤-불가능은 없다, 힐링캠프(SBS) 등에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며, 다큐멘터리로는 성공시대, SBS 스페셜 등에 출연하였고 종편은 은퇴 후인 2017년 12월 7일 JTBC 뉴스룸이 되서야 출연하였다. 2021년에도 예능 출연은 하지 않겠다는 글을 올리는 걸로 봐선 본인이 방송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 현역 시절에는 SNS를 하지 않았으나, 은퇴 후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픈하여 SNS를 시작했다. 이승엽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은퇴 후 골프나 일상생활 등 본인의 근황을 자주 올려주는 편이며, 후배 구자욱이 본인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자, "인스타할시간에 스윙해라 난 은퇴해서 하는거다 ㅋ" 이라고 답글로 쓴소리를 해주기도 했다. 역시 국민타자라는 수식어 답게 계정이 오픈된지 1달도 안되는 시점에서 팔로워수가 1만명을 돌파했다.
- 원년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출처. 다만 나중에 삼성 어린이 회원으로 갈아탔다고 한다. 어린시절 박철순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이승엽의 어린시절 우상이자 롤모델이 박철순이었고, 박철순과 같은 투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
- 향후 삼성 감독직도 고려하는 듯 하다. 허나 삼성 팬들은 레전드의 명성이깎이는 것을 우려하는지 부정적이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국기 전달자로 나왔다. 올림픽 출전 기록(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2008 베이징 금메달)도 있다.
- 한때 야구팬들에게 국민타자라고까지 불렸던 불멸의 슈퍼스타였지만, 은퇴 후 현재는 그 칭호를 인정하는 팬의 수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 다름 아닌 팬서비스 때문으로, kbo 역대 최악급의 팬서비스로 인해 현재 이승엽 관련 기사는 죄다 희소성 드립이나 사인 관련 언급이 댓글을 점령할 정도로 이미지가 떨어져 있는 상태. 물론 본인의 자업자득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다만 현역 은퇴후에는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를 중심으로 팬서비스를 받았다는 후기가 올라오면서 잘해준다는 소문이 도는 편. 본인도 각종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자신이 현역 때 팬 서비스에 관해 잘못을 많이 했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긴 하다.
- APBC에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하는 구자욱이 36번을 달려고 원 주인인 이승엽에게 허락 받으러 전화를 걸었는데, 안 달면 가만 안둔다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 2018년 8월 16일, 4시 30분부터 5시 40분까지 능인고등학교 학교 체육관에서 특별 강의를 했다. 능인고등학교에 특강을 온 기념으로 본인의 두번째 수능을 능인고등학교에서 치렀다는 TMI와 함께, 학생들의 질문을 추첨으로 뽑아 답변을 하고 본인의 친필 싸인볼을 총 12명에게 전달했다.
Q: 야구를 그만 둔 이유
A: 후배들과 한국 프로야구를 위한 것이고 현역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해왔으며 그만큼 힘들었던 시기를 다시 보내기 싫기에 다시 야구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Q: 야구를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냐는 질문
A: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Q: 본인에게 삼성 라이온즈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질문
A: 본인의 꿈이었던 구단이며 앞으로 지도자가 된다면, 삼성 이외의 유니폼을 입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운동으로 성공하는데에는 재능과 노력,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 본인의 재단[46] 을 통해 2월 26일,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코로나19 예방과 방역, 긴급생계지원 등을 위한 성금 5000만원을 전달했다.
- 주장으로 임명된적이 단 한 차례도 없는 특이한 케이스로 2016년도 주장인 박한이도 본인의 추천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물론 김한수 시절에 양준혁이 최고참+군기를 담당한만큼 본인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 뻉코이다. 500원짜리 동전이 콧구멍에 그대로 들어간다고.
- 이승엽 은퇴이후 이원석과 구자욱이 중심타선을 이끌어간다. 장타문제와 1루자리 대체 할만한 선수가 없어서 오재일을 영입해서 그의 빈자리를 매워주고 있다
- 오재일의 롤모델이 이승엽이고, 존경하는 선수도 이승엽이고 좋아하는 선수도 이승엽이다. 그 이유 때문에 FA로 4년 50억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고 등번호도 이승엽의 만 나이인 44번으로 선택했다.
10. 가족관계
- 아내는 고등학교때 부터 모델로 활동했었던 이송정(1982년생). 2001년, 이승엽(당시 만 25세)이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이때 만난 모델 이송정(당시 만 18세)을 보고 대시했고,[47] 1년 간의 열애 끝에 대학교 1학년이던 2002년에 결혼했다. 당시 중앙대 연극학과에 재학중이었기에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고.[48]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이다. 현재 세 아이의 엄마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 스포츠스타 부인 중 가장 출중한 미모를 자랑한다는 평이 많다. 여담으로 이승엽이 아내를 부를때 "애기 엄마"라고 부르는데 이송정이 집사람, 와이프라는 말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 아들로는 이은혁, 이은준이 있다. 여담으로 첫째인 은혁이는 야구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 욕심이 있어서 인지 셋째도 가지고 싶고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49] 그리고 2021년 1월 4일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
- 본래 서강대 출신 동갑내기인 신수경씨와 약혼을 한 사이로 스포츠투데이 1면에 보도될 정도로 유명한 사이였으나, 결국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도중 파혼하였다. 자세한 이유는 불명. 이후 만난 것이 지금의 아내 이송정 씨.
- 모친인 김미자 씨는 2007년 1월 6일에 향년 58세로 사망했다. 김미자 씨는 2002년에 뇌종양을 진단받고, 5년동안 투병했지만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이승엽은 평소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을 항상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은퇴식 때도 현장에서 상영된 과거 동영상에 모친의 얼굴과 목소리가 등장하자 오열하기도 했다.
- 2021년 1월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셋째 아들의 탄생 소식을 전했다.
11.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푸른 글씨는 KBO 리그 역대 최고 기록.
12. 주요 기록
1997년
- 당시 역대 최연소 MVP[50] (만 21세)
2000년
- 인천 SK전, 최연소-최소경기 통산 500타점
2003년
- 대구 SK전, 세계최연소/최단 경기 통산 300홈런
- 한 시즌 최다 홈런 한국 최고기록(56개)
- 56호 상대투수 이정민
- 8월 1일 일본 도쿄돔 한신전, 한/일 통산 400홈런 달성
- 만 29세 11개월 13일, 상대투수 1회 이가와 케이
- 5월 8일 사직 롯데전 한/일 통산 2,000안타 달성[51]
- 상대투수 송승준
- 6월 29일 대구 넥센전 최소경기 1,000타점 달성
- 7월 29일 목동 넥센전 한/일 통산 500홈런 달성
- 만 35세 11개월 11일, 상대투수 4회 앤디 밴 헤켄
- 6월 14일 최연소/최단기간 개인 통산 350홈런
- 만 36세 11개월 27일/1320경기, 상대투수 5회 찰리 쉬렉, 기존 - 삼성 양준혁, 40세 1개월 18일, 2057경기
- 6월 20일 개인 통산 최다 홈런(352개)
- 상대투수 윤희상
- 6월 3일 포항 롯데전 한국프로야구 최초 400홈런
- 상대투수 구승민
- 8월 24일 통산 최다타점(1,390타점)
- 상대투수 김광현
- 9월 7일 최고령, 최소경기 KBO 통산 2,000안타
- 상대투수 이창재
- 9월 14일 대구 한화전 한/일 통산 600홈런 달성
- 상대투수 이재우
- 5월 2일 통산 최다득점(1,300득점)
- 상대투수 이용찬
- 5월 21일 통산 450홈런
- 상대투수 송창식
- 7월 29일 통산 4,000루타
- 상대투수 김성민
- 9월 1일 통산 최다2루타(459 2루타)
- 상대투수 윤희상
- 10월 3일 대구 넥센전 역대 최초 은퇴 경기 홈런 & 연타석 홈런
- 상대투수 한현희
12.1. 통산 홈런 일지
13. 영광의 순간들
14. 관련 문서
- 8회의 기적[52]
- 베이징 올림픽/야구
- 이마양
- 2002년 한국시리즈
- 2012년 한국시리즈
- 승빠
- 승까
- 오푼이
- 팬 서비스
- 합법적 병역 브로커
- 은퇴 투어
- 경북고등학교[53]
- 이승엽 와도 자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