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카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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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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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
영어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
(Kyoto, Uji and Otsu Cities)
일본어
古都京都の文化財
(京都市、宇治市、大津市)
프랑스어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
(villes de Kyoto, Uji et Otsu)
국가·위치
일본 교토부 교토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4년
등재기준
(ii)[1], (iv)[2]
지정번호
688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しょう( / 자조사 / Jishō-ji
(ぎん(かく( / 은각사 / Ginkaku-ji
1. 개요
2. 찾아가는 길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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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교토에 있는 절. 원래 이름은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 혹은 줄여서 지쇼지(慈照寺). 금각사(킨카쿠지)와 자주 비교되는 절이다. 헤이안 시대 조토지(정토사)라는 절이 있었지만 오닌의 난으로 소실된 상태였다.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그 자리에 별장을 지어 거처할 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가 끝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특히 은각으로 불리는 관음전은 할아버지 요시미츠가 세운 금각사의 금각을 흉내내어 지었다. 당시에는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라고 불렀으며, 전체적으로는 요시마사가 좋아하던 절인 사이호지(西芳寺)를 상당히 모방했다고 한다. 히가시야마 문화를 받아들여 선종의 선(禪) 정신에 입각해서 세워진 건물이기 때문에 고요함과 간소함의 미를 가지고 있다. 요시마사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사찰로 바뀌었다.
쇼군이 직접 거처한 적도 있는 만큼 무로마치 시대에는 중요한 사찰이었지만 막부가 기울어 감에 따라 쇠퇴를 면치 못했다. 1550년에는 미요시 나가요시와 마지막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 사이의 전투 도중 은각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홀랑 불타 버렸으며 오다 노부나가가 니조성[3]을 쌓는다고 정원의 돌들을 빼내간 적도 있다. 에도 시대 초기 복원된 모습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금각사와는 다르게, 은각사의 누각은 은칠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런 기묘한 모습을 보러간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큰데, 요시마사가 훗날 은으로 씌울 계획이 있었다고 하지만 돈이 없어서 못하였다는 설도 있고, 다 지어지기 전에 요시마사가 죽어서 은박을 입히지 않았다는 설, 은박이 있었는데 떨어져나갔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2007년 조사에 의하면 처음부터 은박을 입힌 흔적은 없었으며, 아울러 당시 문화의 풍조를 생각하면 은박을 입히려 했으나 돈이 없어서 못했다는 설도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
ㄹ 모양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진입로와 모래로 물과 후지산을 형상화한 가레산스이 정원 그리고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누각과 나무들의 어우러진 모습은 금각사보다 깊은 맛이 있다고 할 수 있다.[4] 절의 면적 자체는 작은 편이나 이끼와 소나무로 꾸며진 정원은 일본식 정원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은각사의 누각은 1층은 쇼인즈쿠리(書院造)식이며 2층은 선종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적인 헤이안 귀족양식이었던 신덴즈쿠리(寢殿造)가 방이 없이 큰 공간에 천을 통해 공간을 나누고, 앉는 자리에만 다다미를 깔았다면, 쇼인즈쿠리는 방 전체에 다다미를 깔고, 문 등을 설치해 공간을 나누는 양식이다. 현대의 일본식 저택은 쇼인즈쿠리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봄과 여름에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으나, 여름에 가면 상당히 덥고 습한 날씨인지라 고생할 것이다. 5월만 넘어가도 땅에서 열기가 올라올 정도. 다만 겨울에도 운 좋게 눈이 올 때 간다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하계(3/1~11/30)에는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영업한다.
칠색조가 나오는 방울탑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가는 길목에 철학의 길이 있다.


2. 찾아가는 길


교토역에서 5번, 17번, 100번 버스를 타고 긴카쿠지미치(銀閣寺道)에서 내려서 걷다 보면 넓지 않은 길이 끝나는 곳에 수수한 긴카쿠지 문이 있다. 입장료는 500엔이다.
교토카와라마치역에서는 32번 버스를 타도 된다. 이것 역시 가축수송.

3. 관련 문서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세계유산인 니조성과는 다르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쇼군의 거처를 일컫는 보통명사 정도로 사용되었던 듯.[4]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금각사보다 은각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