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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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로마치 막부의 제15대이자 최후의 쇼군. 12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차남으로, 형은 1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테루.
2. 생애
처음엔 출가[1] 하여 카쿠케이(覚慶)라는 법명으로 교토 코우후쿠사 이치죠우원에서 살았다. 그러나, 형 요시테루와 어머니가 미요시 요시츠구와 미요시 3인중에 의해 살해되었고 자신 역시 가신 호소카와 후지타카, 와다 고레마사, 아케치 미츠히데와 함께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만다. 오미의 롯카쿠 요시카타, 와카사의 다케다 요시무네, 에치젠의 아사쿠라 요시카게등 여러 다이묘들을 거쳐 마침내 오다 노부나가에게 의지한다. 노부나가는 6만 대군을 일으켜 교토로 상경, 14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데(足利義栄)[2] 와 미요시 요리츠구, 미요시 3인중을 몰아내고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옹립한다.
그러나, 점차 노부나가가 자신을 꼭두각시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되자 대립하기 시작, 1571년경부터 마츠나가 히사히데, 아사쿠라 요시카게, 아자이 나가마사, 혼간지 켄뇨, 다케다 신겐, 미요시 3인중 등의 각 다이묘 들에게 서신을 보내게 된다. 이는 노부나가의 전횡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다이묘 들을 포섭하여 노부나가를 견제 및 대항하기 위한 세력을 구축하기 위함이었으며, 일반적으로 '''노부나가 포위망'''이라고 불린다.
1573년 다케다 신겐이 미카타가하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격파한 것에 고무하여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신켄이 급사한데다 포위망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아사쿠라 요시카게, 아자이 나가마사 연합군이 노부나가에게 멸망당하면서 전황은 요시아키에게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가신 호소카와 후지타카의 배신 역시 큰 타격을 주었다. 결국 야마시로 마키노시마성에서 최후의 저항을 벌인 끝에 아들 요시히로를 인질로 보내고 항복한다. 이로써 무로마치 막부는 15대 만에 멸망하게 된다.
이후, 교토에서 추방되어 모리 데루모토의 보호 아래서 계속해서 노부나가에 대한 저항을 벌였다. 비록 교토에서 추방되었지만 아직 조정에서 쇼군 해임령을 받지 않았기에 모리, 시마즈, 오토모, 우에스기 등 유력 다이묘들은 여전히 요시아키를 쇼군으로 인정하고 있었으며 지원도 계속하였다. 근래의 사료에 의하면 아케치 미츠히데와 계속적으로 편지 왕래를 하고 있었으며, 혼노지 포위망 전후에도 계속적으로 미츠히데에게 노부나가를 처단해야 한다고 바람을 넣는 편지가 발견되었다. 과연 요시아키의 편지가 얼마나 미츠히데의 심중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것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혼노지 사변에도 관여한 셈이다. 이후에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쥐게 되자 항복하면서, 완전히 무로마치 막부는 끝나게 된다.
요시아키 자신은 히데요시로부터 야마시로 근처에 1만 석의 영지를 받아, 다이묘 대우를 받았다. 1만 석의 소영주의 신분이긴 했지만 원래 쇼군이었던 인물인지라, 대우 자체는 거물급 다이묘보다도 좋았으며, 히데요시의 말상대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평민 출신인 히데요시가 정이대장군이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양자로 들어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히데요시는 10만 석의 영지와 아시카가 가문의 복권 등을 약속하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자신을 양자로 들여줄 것을 계속해서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평민 출신인 히데요시를 양자로 들이는 것을 끝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사실이 아닌 당대의 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코노에 사키히사의 양자가 돼서 칸파쿠 직을 얻은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쇼잔 도큐라 칭하며 살다가 1597년 향년 60세로 사망하였다. 무로마치 막부 역대 쇼군 중 가장 장수한 쇼군이다.
3. 대중 문화
노부나가의 야망에서는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의 적으로 얽히는 인물이니만큼 첫 작품부터 꾸준히 출연했다. 시리즈 전반적으로 지모와 정치가 높은 모사꾼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패왕전에서만은 지력 13이었다. 천도에서 92인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굴욕이라고 할 수 있다.
태합입지전5에서도 등장하는데 형이 죽고 없는 시나리오에서는 플레이캐릭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형이 살아있는 0, 1번 시나리오에서는 플레이가 불가능하고, 에이로쿠의 변 이벤트가 일어나기 전까진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이벤트가 끝나면 형이 죽든 살든간에 등장해서, 형이 살면 형의 부하가 되고 죽으면 자신이 쇼군을 노리는 이벤트가 이어진다. 매력이 99에 지모가 69인 걸 제외하면 나머지 능력치는 시궁창. 그나마 산술, 례법, 변설은 높은 편이니 앵벌이엔 도움이 된다. 여담이지만 주인공 카드를 얻는 조건이 엄청 까다로운데, 오다 노부나가로 무로마치 막부를 직접 멸망시켜서 막부멸망 이벤트를 봐야 카드를 얻어서 플레이 가능하다. 오다 노부나가의 주인공 카드는 방법이 2가지 있어서[3] 웬만하면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요시아키는 노부나가로 플레이해서 직접 막부멸망까지 시켜야 하니 귀찮다.
이케가미 료이치의 만화 노부나가에선 개인적인 무예는 뛰어나나 천하를 거머쥘 그릇이 아닌 인물로 나온다. 형인 요시테루가 당시 칼솜씨가 이름 높았는데 전해오는 말로는 죽을 때 필사적으로 싸워서 워낙 피해를 많이 입었던 탓에 다다미를 뒤엎어 요시테루에게 뒤엎어 앞을 못보게한 다음 수십여 명이 달려들어 긴 창으로 찔러 죽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이 만화에서도 요시아키도 상당히 칼이나 창 솜씨가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4] 그리고 만화에선 의도한 건지 몰라도 적군에 몰려 싸울 때 다다미에 긴 창을 여럿 박아서 다다미를 뒤엎지 못하게 하려는 모습이 나온다. 형처럼 죽지 않겠다는 뜻인 듯? 하여튼 마지막까지 노부나가군에게 맞서 싸워서 홀로 무쌍을 찍으며 잘 싸우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무예는 있어도 인덕이나 지배 능력치가 딸린 탓인지 부하 장수들이 하나둘 항복하거나 노부나가에게 귀순하는 통에 군사력을 잃는다.
그의 부하였다가 노부나가에게 귀순한 후지타카가 몇번이나 대들었다고 해도 그래도 쇼군인지라 그를 죽이면 노부나가공에게 다른 적을 만들 명분이 된다는 충언을 한 탓에 노부나가는 항복하면 영지와 같이 목숨을 보장한다고 하여 결국 그도 항복을 한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와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침을 뱉으며 분노했지만, 오다는 지배자 그릇이 못된다고 죽일 가치도 없다며 그를 멀리 한적한 영지로 보내 구금시키면서 이 작품에선 퇴장한다.
[1] 당시 쇼군가 or 다이묘의 아들들은 후계자, 대부분 장남 외에는 출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우선 권력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는 용도이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의 경우 승려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당시 사찰은 뛰어난 고등교육기관이었기에 만약을 대비한 예비 후계자 용도로도 길러질 수 있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출가자 출신이며, 사찰 출신은 부지기수 일 정도이다.[2] 사카이쿠보(堺公方) 아시카가 요시츠나의 장남.[3] 첫 번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플레이해서 혼노지의 변 이벤트를 본 뒤 일어나는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 군을 격파하면 얻고,(빨리 얻고 싶으면 1582년 시나리오를 추천한다. 다른 시나리오의 경우는 이벤트 발생조건이 잘 안 맞춰져서 이벤트가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1560년 시나리오의 구키 요시타카로 플레이해서 이벤트를 쭉 하다보면 중간에 구키의 해적거점 위에 있는 마을에서 타키가와 카즈마스를 만나 그를 구해주는 이벤트가 나오는데, 그 뒤 기후성(이벤트가 될 때쯤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기요스성에서 기후성으로 거점을 옮긴다)으로 가서 오다 노부나가를 만나면 획득 가능하다. 가장 빠른 루트.[4] 사실 형만큼은 아니겠지만 요시아키 본인도 검술에 뛰어났을 가능성이 있다. 양대 검성을 직접 사사한 요시테루 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시아키는 그 츠카하라 보쿠텐과 요시오카 나오타카 등을 직접 사사한 몸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