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본좌
1. 개요
한때 대한민국 야동계를 뒤흔들었던 야동계의 본좌#s-1. 2006년 구속 당시 28세(1978년생)의 남성이었으며 '김본좌'라는 닉네임 외에 다른 신상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음란물 유포죄로 구속되었을 때도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다.
2. 음란물 공유
원래 '토토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kimcc란 닉으로 활동(일명 김C, 가수 김C로 오해받았다), 대한민국 야동의 선구자였던 stoangel[1] 의 제자이다. 라이벌로는 devine이 있었고 몽키스패너란 노모전문 업로더까지 해서 손발은 완성되었다.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2004년 하반기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업로더 활동을 개시했다.
토토디스크에서 2003년 11월부터 2006년 10월 구속될 때까지 거의 3년간 양질의 AV를 매일 수십 편씩 복제해 업로드하였으며, 일본 오픈냅에서 신작 AV가 립되어 공유되면 그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웹하드에 올렸다. 유료 웹하드인지라 이를 통해 돈까지 벌었는데 그 추정액이 약 5천만 원 이상이라고 한다.[2]
2005년 10월 세가디스크라는 웹하드에서 이익금을 반반으로 나누는 조건 하에 스카웃받아 토토와 동시로 AV를 올렸지만, 이익금을 제대로 못 받아 2006년 8월 10일에 업로드를 그만두고 2개월 뒤 구속됐다.(#) 구속 이후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에 퍼진 일본 AV들의 70% 이상을 홀로 대량 유통시킨 인물이라고. 김본좌가 유포한 동영상은 경찰청 기록상 1만 4천 편에 이른다고 한다.
김본좌의 구속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김본좌는 '''신작을 빨리 업로드해달라는 다운로더들의 성화 덕분에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고 한다.'''
3.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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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6년 10월에 부산 사상경찰서에 구속되었다. 후술할 기사에 따르면 당시 그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아버지가 부상으로 직장에 못 나간 데다 할머니의 눈 수술비도 필요하기 때문에, 돈이 궁해서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부질없는 짓"이라고 후회했다.
다만 이를 본 수많은 네티즌들은 김본좌를 응원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3] 그 이후 지못미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 물론 지못미는 어디까지나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나온 말이긴 한데, 지못미라는 줄임말로 퍼진건 이때이다. 이 참고로 음란물 공유의 경우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징역 2년이 판례라는 것을 볼 때 아마 곧 형기가 끝나고 석방될 듯했다. 그 외에 '본좌복음'이란 글도 유행했다.
2009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2007년 7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고 전해졌으며, AV 유포도 그만뒀다고 한다. 당시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아무리 업로더를 고소하고 처벌해도 음란물 유통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발언하였다.
4. 여담
사건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에 이 사건이 방송되기도 했다.
또 다른 유포자 정모 씨(26)가 김본좌의 기록인 1만 4천 편을 뛰어넘은 2만 6천 편을 공유하다가 구속됐지만 김본좌를 대체하기에는 지명도 면에서 약간 부족한 듯 싶다(이 경우는 성인PC방 유통만 했기 때문에 P2P랑은 상관이 없다). 후계자를 지칭하는 정본좌, 양본좌, 서본좌 등도 모두 김본좌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5대 본좌가 등장했다. 그것도 형제로.
김본좌 구속일 2006년 10월 19일
정본좌 구속일 2009년 12월 15일
양본좌 구속일 2010년 9월 2일
서본좌 구속일 2011년 2월 14일
박본좌 구속일 2012년 9월 21일
이후 2019년 4월 27일 법원 공식발표로 무려 53만 7천여 건으로 새로운 기록을 갱신한 고본좌(26)가 공개되었다. #
김본좌의 그녀로 유명한 AV 배우로 타치바나 리코가 있다. 김본좌 때문에 유명해진 배우는 아니고 원래 유명했던 배우지만.
싸우자 귀신아 시즌 2에서 임인스가 연옥 말아 처먹고 그 다음에 이 사람이 주연으로 나온다.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댓글란은 남성들의 울분과 공감이 가득했다.
사족으로 다이나믹 듀오의 3집 앨범 Enlightened 중 '해적'이란 노래의 1절에서 언급되기도 하였다. 다만 가사 중에 부적절한 것들이 섞여있기 때문인지 그중 김본좌를 포함한 일부는 보통 가사표시엔 삭제되거나 검열처리되어 보내지기 때문에 가사에서 볼 수는 없다. 이는 노래방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직접 들어볼 수는 있다. 문제는 정작 그러고도 19세 처리가 안 되어 있어 해당 앨범에 다른 19들과 비교해보면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2020년 n번방 사건 당시 김본좌의 이름이 언론에 다시 언급되어 재조명됐으나, 해당 사건과는 양상 자체가 달라 비교를 할 수 없다.
[1] 대한민국 야동의 역사를 열었던 시조격 인물로서, 그가 셀 계열과 렌탈 계열을 구분하고 오픈냅을 뚫음으로써 요즘 보는 야동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테크트리의 최상위에 위치한 인물. 더더욱 존경할 만한 것은 본디 섹스산업이란 상업성을 띠기 마련이거늘, stoangel은 그것으로 돈 벌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모아둔 포인트도 날아갔다고 한다. 그의 은퇴시기에 맞춰 김본좌의 본격적 활동이 시작된다.[2]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당시 토토디스크는 웹하드 중에서 복돌 야동이 가장 다양하고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김본좌 사건 이후 토토디스크가 검열을 강화하면서 왕좌의 자리는 넷폴더로 넘어갔다.[3] 그중에서 언론까지 탔던 리플은 ''''그는 음지의 슈바이처였습니다\''''라는 댓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