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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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가수, 싱어송라이터, 음악 • 음반 프로듀서, 라디오 DJ이자 사회운동가. 2014년 의료사고로 사망하였다.'''"정말 좋은,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는 거... 너무 안타깝습니다."''' (2014년 신해철 사망 직후)
- '''조용필'''
N.EX.T의 리드보컬.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인물'''로, '''마왕'''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있다.
록 음악부터 시작해서 일렉트로니카(테크노), 재즈, 국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했고, 전공을 살려 일반적 대중가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철학적 노랫말을 많이 지었으며, 평단의 호평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뮤지션이다. 또한 작사, 작곡, 편곡, 악기 연주는 물론 프로듀싱과 엔지니어링 및 음악 작업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까지 한 만능의 뮤지션이었다. 또한 대한민국 컴퓨터 음악(소위 미디 음악)의 선구자 겸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19] 싸이, 서태지 등도 신해철에게 샘플러를 비롯하여 각종 미디음악 장비 사용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20]
1988년부터 활동했으며 데뷔 이후 30년이 넘도록 결론은 대부분 "현실은 시궁창",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고 가고 있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초월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공존하긴 한다. 성드립이나 자조적인 블랙유머도 심심찮게 구사하는 편이다. 데뷔 10주년까지 나온 노래의 대부분은 위와 같으며, 데뷔 10~20주년 사이에는 진지하던 가사에 많은 공격성과 약간의 유머를 섞는다. 데뷔 20주년이 넘은 뒤에 나온 노래들은 대개 자조적 유머나 특정 세력을 향한 블랙유머가 꽤 있는 편이다.
본인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FM 음악도시에서는 "시장"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후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 및 팬들 사이에는 마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영어로는 보통 Demon Lord(데몬 로드)로 번역된다. 다만 마왕이라는 신해철의 별명은 고스트스테이션보다 훨씬 전인 1998년 6월 25일, 동아일보 25면의 기사에 이미 마왕이라는 별명이 언급되어 있다.[21]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왕이라는 별명은 지상파 TV 등지에서도 심심찮게 소개되곤 했다. 라디오와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다루는 인터넷 기사에서조차 '마왕'이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기도. 사실상 마왕이라는 말은 현재 신해철의 호나 다름없다.
한편 신해철은 크롬(Crom)이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는데, 올리버 크롬웰에서 따왔으며, 넥스트 4집~모노크롬 작업을 위해 영국에 체류하던 시절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그의 이름 대신 엔지니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그래서 그의 트위터 계정도 Crom Shin.
가족 관계로는 1남 1녀 중 둘째이자 막내로 2살 위의 누나를 두고 있다.[22] 이후 신해철은 미스 뉴욕 출신의 방송인 윤원희와 결혼하여 마찬가지로 1남 1녀의 자녀를 두게 된다.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2살 터울의 누나-남동생 남매라는 점도 같다. (신하연 양 - 신동원 군)
한편 신중현의 아들이나 신대철의 동생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도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을 쓰다 보니 이러한 오해가 더 심해진다. 실제로 시나위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신대철이 록씬에서 맹활약한 덕에 같은 장르를 종사하는 신해철과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방송 관계자들 역시 이러한 혼동은 마찬가지인지라 실제로 신인 시절 음악 방송 녹화를 마치고 내려오는 신해철에게 PD가 '''"아버지 잘 계시냐"'''라고 묻고, 그가 지칭한 아버지가 신중현이라는 걸 알게 된 신해철이 '''"우리 아버지 아닙니다"'''라고 답했음에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두드리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담으로 신해철의 아버지는 약사였으며, 신해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신대철이 출연하여 둘을 혼동한 이야기[23] 나 서로 의형제를 맺으면서 지낸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24]
이외에 그가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참고하면 신해철이 어떠한 인물인지를 보다 더 잘 알 수 있다. 다만 해당 에세이가 1집 활동 중이었던 1990년에 연재되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즉 데뷔한 지 채 5년도 안 된 그 당시의 신해철과, 대마초 사건을 한 번 더 겪고, 새 밴드인 넥스트와 비트겐슈타인의 해체를 겪고, 모노크롬으로 수준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다시 넥스트를 뭉쳐 로열필과 협연하고 데뷔한 지 20주년이 넘었으며(현재는 30주년) 사회운동가로서 발돋움했던 말년의 신해철과는 철저히 다를 수 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남긴 에세이도 참고하면 좋다. 링크 출처는 1998년에 출간된 <무라카미 류는 도대체?>라는 책인데, 당시 우리나라에서 무라카미 류가 화제가 되자, 류의 팬인 신해철이 그에 대한 생각을 에세이로 남긴 것이다. 글 내용에 그의 성장과정이 언급되어 있으며, 사회에 대한 관점도 엿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을 발표한 후 신해철은 대마초 비범죄화를 주장했는데, 이 글의 내용에 비춰 보면, 대마초를 권장하는 의미의 비범죄화가 아니라,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자는 의미의 비범죄화임을 알 수 있다. [25]
2. 음악 활동
3. 앨범
4. MC 활동
- 신해철의 데미지 (2008, 코미디TV)
5. 논객 • 소셜테이너 신해철
신해철은 진보주의나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활동하며[26] 100분 토론에 가장 많이 출연한 연예인이었다. (밑의 TV 출연 항목 참조). 100분 토론에 수차례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 간통죄 폐지 • 체벌금지 등을 주장하였다. 또 100분 토론 300회, 400회 특집에서는 '최고의 비정치인 논객'으로 선정돼 참석하기도 했다. 400회 특집에선 ''''국회를 유해매체로 지정하고 뉴스에 내보내지 말자'''' 라는 발언을 함으로서 비판을 이어갔다.
이처럼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대마초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비범죄화), 체벌금지 등 자칫하면 수많은 안티를 양상해낼 수 있을 수도 있는 주장을 한 것과 관련하여[27] 신해철은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이처럼 신해철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주장이 일부 현실화되었다.'''. 체벌금지는 2010년 이후 각 지역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함으로써 현실화되었고[28] 간통죄 비범죄화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4개월 뒤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림으로써 실현되었다. 결국 발언 당시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던, '''지는게 당연한 3번의 싸움에서 2승을 거둔 것.'''현실적으로 바뀔 수도 없고, 질 수밖에 없는 문제에 왜 뛰어드냐고 주변에서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영악하게 지는 싸움을 피해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저는 지는 싸움도 때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고 하였다. 출처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며 선거유세에 참여하였다. 당시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훗날 문성근은 “대통령 선거 TV 지원연설에서 대본없이 20분간 할 말을 한 사람은 백기완과 신해철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출처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TV 찬조 연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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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삭발을 하고 추모 공연에 참석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에 반대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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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해철은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서며 “깡패가 칼질할때, 나는 칼을 안 쥐었다고 하더라도, 뒤에서 칼 갈아주고, 심부름해주고, 뒤처리해준다고 해서 나는 책임이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설령 힘의 논리에 의해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지금 당장의 국익을 위해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하고 파병까지 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도덕적 부담감을 남기는 죄악을 저지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
2004년에는 '체벌 금지 법제화 추진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학교 내 체벌 금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해철은 해당 카페에,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어 2006년에는 체벌 금지를 주제로 100분 토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해댱 토론에서 신해철은 "폭력은 전염되면 점점 강해지고 그 효과는 약해진다. 폭력 이외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신해철의 이러한 캠페인은 2010년 10월 경기도교육청의 '경기학생인권조례' 공포를 시작으로, 이후 광주광역시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 전라북도교육청이 차례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함으로써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출처"훗날 제가 눈을 감을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음악을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체벌을 금지시키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단순히 체벌을 받는 학생들에 대한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체벌이라는 독버섯의 밑에 우리 시대의 거대한 부조리와 사회악의 상징들이 상상보다 커다란 규모로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파악하고 알리며 싸워나가달라.". 출처
한편 2009년 2월에는 입시학원(하이스트)의 전면광고에 출연하였는데, 이를 두고 신해철에 대해 이율배반적 행동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평소 진보적인 (정작 신해철 본인은 자신을 진보주의자로만 규정하지 말아달라고 했었다. 혹자는 신해철 사후 신해철에 대해 회고하면서, 신해철은 오히려 자유주의자에 가까웠다고 평가 한 바 있다)[29] 주장을 한 신해철이 어떻게 사교육 학원 광고에 등장할 수 있냐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와 더불어 신해철이 광고 슬로건인 "개인별 맞춤형 교육"이란 말을 진짜로 믿었던 것과 24시간 운영 학원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는 것은 본인의 사전조사와 주의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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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신해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서 입장을 밝혔다. 해당 글에서 신해철은, 이 사건을 "왜곡의 메카니즘"으로 칭하면서, 그동안 자신은 "공교육의 총체적 난국을 비판해 왔지만 사교육과는 거의 무관한 얘기였다"라고 하는 한편, "신해철은 평소 교육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자세를 취했으니 ‘마땅히’ 사교육에 강경히 적대적인 입장을 취했어야 한다"라는 일부 언론 보도를 비판하였다.
사실 신해철은 공교육절멸론자이다. 이는 신해철이 최초로 주창한 이론은 아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주창한 것인데,[30] 신해철 역시 이에 동의함을 늘 밝혀왔었고, 미래에 공교육의 대안은 홈스쿨링과 사교육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었다. 즉 신해철은 오히려 사교육찬성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싸이렌 음악원이라는 사교육업체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두 자녀를 모두 대안학교에 진학시킨 바 있다. 그리고 모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공교육절멸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 적도 있다. 출처
신해철의 공교육 불신에 대한 발언은 그가 싸이렌음악원을 세우기 한참 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초창기 시절부터 라디오 등을 통한 그의 발언을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전부터 해온 새로울 것 없는 발언이었다.신해철: "나는 공교육이 사멸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의료민영화는 반대해도 교육은 민영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공교육은 수습될 수 없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수많은 정권들이 들어서서 입시 제도를 수도 없이 뜯어고치고, 엄청나게 많은 짓을 했는데도 그 누구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도 성공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본다. 물신주의 패러다임 아래서는 교육 문제는 해결 안된다. 내가 너무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공교육은 지금까지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했다.
(중략)
사교육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 과연 몇이나 사교육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교육은 무조건 악인가. 권력이나 부의 세습을 강화하고 빈자들을 고립시키는 대표적인 악으로만 이야기될뿐이지 사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공교육의 미래에 대해서는 다름 아닌 앨빈 토플러가 이야기했다. 21세기의 조직 가운데 제일 먼저 사라질 게 학교라고. 우리는 학교가 소멸하는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학교가 나쁜 짓을 많이 한 나라에서는 학교를 빨리빨리 없애야 한다.
홈스쿨링이 빈약한 대안으로서가 아니라, 대단히 강력한 교육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사교육이 그런 진화 단계를 밟게 될 것이라고 본다. 사교육 시장이 동네 학원에서 거대 학원으로 진화하고, 온라인 툴을 갖추고, 공교육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또 그 다음엔 같은 사교육 업자들끼리 경쟁을 통해서 가격을 밑으로 내리게 되고. 미래의 사교육은 저렴한 가격으로, 온라인을 통해 가난한 민중들에게도 얼마든지 공급될 수 있는 형태로 재편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공교육이 빨리 몰락해야 한다는 게 제 사고방식이니 (나를) 과격하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해당 사건이 일어난 후 1년 정도 흐른 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출처
나중에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 유희열이 후회하는 광고 없냐고 물었을 때 "아파트 광고를 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그 아파트에서 살 필요는 없지만 학원 광고는 자식이 학원 갈 나이가 돼서 같이 힘들어하게 되기 전까지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기도 말한 바 있다. 또 김구라의 '진실의 순간'에 출현했을 때도 학원광고를 찍은 걸 후회하냐는 질문에 "내가 대처를 잘못 하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해도 변명 밖에는 안되는 상황이 되고말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사교육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허리가 휜다고 날 비난하지만 10년 후에 보자."라고 하면서 또 앨빈 토플러를 인용했지만 이미 10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기자: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면서 학원 광고에 등장하고 학원을 운영하는 건 어폐가 있는데.
신해철: 입시 위주 공교육을 비판했지, 지금껏 내 발언 중 사교육에 부정적인 시각은 없다. 학생 때부터 내게 학교는 시간 낭비였다. 중고등학교 때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고 참고서로 공부했다. 인성적으로 감화되지 않는 선생들에게 고개 숙이는 위선도 짜증났다. 지식을 가르치는 전문가에게 '하드하게' 배우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생활을 갖고 싶었다.
기자: 사교육 과열이 가져오는 문제점도 있지 않나.
신해철: 사교육의 기능과 비용 문제를 구분 못한 것이다. 사교육이 악인 것은 가정경제를 압박하고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사교육 문제를 지적하려면 비용 문제를 짚어야 한다. 학원이 영세업에서 벗어나 전국 체인화된 대기업이 되면 박리다매가 가능하다. 입시 학원 광고를 한 것도 그 학원이 대형 체인이었기 때문이다. 앨빈 토플러가 21세기 소멸할 첫 번째로 꼽은 게 학교였듯이 난 공교육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학교는 대중을 통제하고 정권에 맞는 인간형을 만들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북한 미사일 관련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09년 4월 8일, 신해철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이 합당한 주권과 적법한 국제절차에 따라 로켓을 발사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축하한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던 것.
이에 신해철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출처
2011년 승승장구에서 "독설가로서의 나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내가 죽었다. 이제 새로 시작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SNL에 출연했을 때도 유희열이 욕설과 막말을 후회하느냐고 묻자[31] "누굴 가르치려고 들면 안 되는데, 기술적으로 서툴렀다."고 고백했다."안보 이슈는 대국민 겁주기용으로 사용된다. 로켓 발사 상황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적법하다고 생각한 국가도 많다. 정보가 차단되니 대중은 바보가 된다. 내 의도는 '북한이 인민군복을 입은 늑대'라는 반공 포스터 세대에서 벗어난 사람들, 북한을 동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표시였을 뿐이다. 보수단체도 애국한다고 뛰고 있으니 나와 방법이 다를 뿐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글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세상을 노무현 대통령 때 살았다. 집과 차는 한 단계 내려 못 살듯이 자유도 내려 못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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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현 19대 대통령을 지지하는 트윗을 올린 바 있다. # 이런 성향 때문에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좌파 연예인'으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와 탄압받았다. #
2015년 10월. 사망 후 1년이 됐을 때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 아내 윤씨가 출연했는데, 손석희는 신해철의 죽음을 듣고 한 명의 음악가보단 한 명의 좋은 논쟁가가 떠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도 생전 남편이 손 앵커가 잘 이끌어주셨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번은 신해철이 한 손에만 하얀 장갑을 끼고 이대로 방송해도 되냐고 해서 그러시라고 했단다.[32]
6. 괴짜 신해철
6.1. 서강대 중퇴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대학 중퇴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떠드는 것처럼 명문학교 지향적인 현실의 작태를 비판하는 것 따위는 절대 아니고, 자기가 게으르고 학점이 안 돼서 퇴학 되기 전에 때려치고 나오는 '''명예'''로운 방향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학사경고를 1번만 더 받으면 퇴학이었다고. 이후에 서강대에서 명예졸업장을 주려고 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가 말하길, "내 주변에도 12학기까지 학점이 1점을 넘지 못한 학생은 신해철이 유일했다"라고 하였다. 본인 말로도 선동열 방어율급 학점이라 했으니... 어쨌든 대학은 그냥 관둔 것. 원래 서강대학교가 공부를 매우 빡시게 시키는 대학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서강대가 빡센 것은 마찬가지지만, 1980~1990년대 당시엔 다른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널널한 데 반해 서강대만 빡센 것으로 유명했다. 1980~1990년대는 명문대, 지방대 할 것 없이 데모로 인한 휴강,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취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당시는 경제 성장기이자 호황이라 그렇게 놀면서 대학 생활을 해도 명문대 출신이면 대기업 몇 군데 씩은 복수 합격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굳이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다. 때문에 서강대생으로서의 학교 생활은 음악인인 그에게는 안 맞았을 지도 모른다.
위쪽에 링크되어 있는 신해철이 당시 쓴 에세이 1편에는 학업과 음악활동을 하느라 너무 바빴고, 1시쯤 활동이 끝난 후에 컴퓨터를 사용한 음악 공부 내지는 연습을 하느라 하루에 4-5시간 밖에 못 자고 9시에 학교로 향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에세이만 보면, 음악 활동으로 바빠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신해철이 서강대 밴드부에 안 들어간 건(사실은 '''못 들어갔다''') 위의 2.1 문단에서 설명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운동권에 약간 관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에 소수파였던 CA와 관련이 있었고 교련 반대투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NLPDR들은 어중이 떠중이 모여있어서 최루탄이 터지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도망가기 바빴는데, CA들은 소수정예로 전투력이 잘 다져진 투사들이어서 최루탄 연기를 헤치고 화염병과 짱돌로 응수하는 능수능란함이 있어서 더 괜찮아 보였다나...
6.2. 라디오 진행
2014년 11월 3일 MBC 다큐스페셜 방송 중. 신해철의 음악도시 방송 음성이 나온다.
그가 유명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중간에 MBC FM으로 옮겨 '고스트네이션'이란 이름으로 진행하기도 했다)이었다. 당시 신해철 본인은 존댓말을 썼으나, 심야방송의 특성상 존댓말을 생략하여 시청자들은 반말을 쓰는 형태. 그러나 전화 연결 등 일부 시청자에 한해서 대화를 나눌 때에는 신해철도 반말을 쓴다. 가식 따위 집어던져버린 사연들을 마구 소개하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모습에서 가히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이전에 MBC FM의 '''신해철의 음악도시'''[33] 로 전국 중고등학생들의 밤잠을 부족하게 만든 적이 있다. 오죽하면 한 중학교의 국사 선생님이 '''애들이 그거 듣느라고 수업시간에 존다'''고 성질을 냈다고...
신해철은 자신의 후배라고 할 수 있는 인디 뮤지션들에 대해서도 아낌 없는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의 라디오 방송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일반적'''으로 트는 노래는 외국계 밴드의 노래와 인디밴드의 노래다. 아무튼 더 나아가 인디밴드들을 게스트로 부르고, 아예 인디밴드들만의 인기 차트인 인디 차트도 진행한다. 이 인디 차트는 인디 계열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 인디 차트의 상위권에 랭크된 밴드는 이쪽 계열에서 나름대로 유명해진다. 또 자신의 라이브 공연에 인디밴드를 게스트로 부르거나 아예 '''밤에 전차 끊기는 시간에 콘서트를 시작해서 첫 전차 다니는 시간까지 인디 밴드들이 라이브를 하는''' 밤샘 공연 같은 것도 할 정도.
방송 시작 전에 홍대 모 클럽에서 번개가 있음을 공지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 뒤 한 시간 동안 청취자가 들을 수 있었던 건 음악 뿐(...) 시간에 맞춰 홍대로 가면 정말로 넥스트를 볼 수 있었고, 댄스클럽에서 신해철과 '''메가데스'''에 맞춰 '''부비부비'''를 추는 경험을 할 수도 있었다.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각종 변칙적인 선곡을 했는데 40분짜리 삼태기 메들리를 틀고 방송을 날로 먹는다든가, 한 방송에 같은 곡이나 같은 뮤지션의 왜 여러번 틀면 안 되냐며 같은 노래를 7번 틀어버린다든가. 한국 라디오 선곡의 불문율을 정면으로 깨는 전무후무한 구성을 많이 보여주었다.[34] 대표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듣고서는 완전히 꽂혀 1시간 동안 싸구려 커피 평론을 하며 3연속 틀어 제끼기도 했다.[35] 보통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프닝 로고가 나온 후 오프닝 멘트를 히고 음악이 나가는 형태로 시작하곤 하는데 고스트스테이션은 바로 건너뛰고 고스 식구들의 방송 후기나 자신이 할 말을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해외 밴드 하나를 집어서 방송 내내 트는 건 정리가 무의미하다. 유명한 해외 락 밴드는 거의 다 건드렸을 정도. 메탈리카 앨범 트랙리스트를 틀고 1시간을 날로 먹은 적도 아주 많았다.[36]
방송 형식도 인터넷과 지상파를 오가면서 갖가지 시도를 하였다. 방송 시간대가 심야이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하는 정기 전파 점검 때문에 방송을 쉬게 되면 인터넷으로 대피해 방송을 했다. 이는 지상파에서 폐지되고 난 이후 인터넷으로만 송출하며 복귀 때까지 버티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자신을 비롯해 몇몇 음악가들의 방송 녹음본[37] 을 자신의 인터넷방송국에서 푸는 형태로 2010년대의 팟캐스트 방식과 가장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병원이나 개인 녹음실에서 편집 녹음한 내용을 방송국으로 전송해 틀게 했는데[38] , 개인 장비를 이용해 라디오 방송을 만들어 본 경험들을 통해 개인 방송 장비가 방송용으로도 적합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아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방송국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하게 믿는다면[39] 미래에는 개인 방송들이 경쟁력을 갖춰 기존 거대 방송국들의 경쟁 상대로 떠오를 수 있다는 예측을 방송에서 했다.[40]
6.3. 신해철 닷컴 폐쇄사건
2011년 5월 15일에 한 회원이 신해철 닷컴에 다수의 여성 사진을 올려놓고 외모를 비하하자, 그 회원의 행동을 '''강간범이나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다'''란 표현을 쓰면서 그 범죄의 장소가 다름 아닌 '''내 집'''이라는 것에 슬퍼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는 말과 함께, 비하의 목적으로 게재된 8명의 소녀들과 가족에 대한 사과 표시로 48시간 후 신해철 닷컴의 폐쇄를 명령했다.
5월 17일에 진짜 폐쇄, 정확히는 자유 게시판이 완전히 닫혀서 글을 쓸 수도 볼 수도 없다. 확실히 분노가 느껴지고 있다.[41]
6.4. 유사 나치 복장, 밀리터리 룩
1994년 넥스트 2집 활동 때는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차병 군복과 친위대 군복을 믹스한 듯한 스타일의 의상에, 왼팔에는 나치당 완장을 연상케 하는 빨간 완장을 착용하여 논란이 되었다.
6.5. TOP밴드 코치 거부 논란
그의 괴짜 행위는 TOP밴드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패자부활전에서 부활시킨 밴드 번아웃하우스에게 맨처음 경연곡으로 레이디 가가의 'Poker Face'를 하도록 지도했으나, 불과 경연 1주일을 앞두고 느닷없이 카라의 '미스터'로 변경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번아웃하우스로서는 기껏 열심히 준비해왔던 곡을 하루아침에 포기하기란 쉽지 않은 터. 번아웃하우스는 경연곡을 'Poker Face'로 강행했고, 신해철은 일방적으로 코치 거부를 문자로 통보했다. 타협점을 보기 위해 번아웃하우스는 대화를 권했으나 신해철은 완강히 거부를 했을 뿐.
이에 대해서는 시청자 간의 의견이 설왕설래하다. 강압적으로 지시한 신해철이 잘못했다는 편과 코치가 구상했던 방향을 따르지 않았던 번아웃하우스가 잘못했다는 편이 나뉘었다. 실제로 TOP밴드의 심사위원이었던 유영석은 "(신해철이) 아무리 싸가지 없는 이미지를 가졌다 할지라도 음악 경력이 20년이 된 뮤지션이다. (번아웃하우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선곡와 연습 과정을 무시했으니 부족한 티가 날 수 밖에"라는 심사평을 했다. 전반적인 상황으로 봤을 때 큰 틀을 짜주지 않고 갑자기 경연곡을 바꾸고 제대로 연습을 이행하지 않았단 이유로 코치를 거부한 신해철의 잘못도 있지만, 번아웃하우스도 코치의 지도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잘못도 있다.
어쨌거나 경연을 앞두고 코치 거부라는 초강수 폭탄발언을 한 신해철의 행동은 두고두고 떡밥이 될 듯.
7. 신해철의 오덕력
생전에 게임이나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방송에서도 서브컬쳐계 소재를 종종 인용하곤 한다. 절친한 남궁연의 증언에 의하면 집에 만화책이 3천 권쯤 있는 것 같다고. 라디오에서 건담 프라모델 샀다는 자랑을 한 적도 있다.
'Starcraft Game Music Vol.1'[42] 라는 한국 가수들이 낸 스타크래프트 관련(?) 앨범에서 'Zerg are coming' 이라는 곡을 직접 써서 부른 적이 있다. 가사 내용은 테란과 프로토스를 까는 내용인데 본인 말로는 자신이 기타를 쳐서 사운드가 시궁창인데 가사는 좋다고 했다.
처음 PC방에 갔을 때 약간 화가 났었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던 어린 학생들이 '야, 해처리부터 까'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한 해설자가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를 하던 중 해처리가 새롭게 생기자 캐스터에게 "그럼 저건 '신 해처리'인가요?"라는 드립을 쳤다.
PS2(후에 X-BOX로도) 정발된 길티기어 샤프 리로드의 오디오 트랙을 담당했으며, 캐릭터인 테스타먼트의 더빙도 했다. 특유의 저음에서 나오는 사악한 포스가 절절히 느껴진다. 물론 성우는 아니다보니 약간 미묘하다.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라는 사람도 있고, 테스타먼트가 나오면 아예 음소거로 게임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팬들 사이에선 좀 굴욕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평균적인 평은 '전투 대사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스토리 모드 대사는 영 아니다'. 명대사는 "'''너에게 주마!'''"
사운드트랙의 경우 원판과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재미. 원판을 듣고 '재해석' 한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롭게 만든 트랙이기 때문에 느낌이 꽤 다르다. 한국에서는 게임 한정판에 동봉하여 판매했고 일본에서는 아예 한국판 사운드트랙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다만, '인기가 있으니 정식 발매를 했겠지'라는 팬들의 생각과 달리[43] 현지 기존 팬들의 반응은 긍정 반 부정 반으로 갈린다. 캐릭터의 이미지와 동떨어지는 곡들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원판은 '''게임 설정 담당 및 게임 제작자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의도적인 복고풍 곡조를 지향했고, 한창 밴드민주주의(?) 실험하던 넥스트 5기 멤버 시절이다 보니 곡들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튜브 등을 살펴보면 일본 외 타국가 길티기어 덕후들의 평가는 극상급이며[44] 일본에서도 초반의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판매량이 상당히 나왔고, 아크 시스템 웍스에서 대단히 만족했기에 이후 시리즈의 OST 제작을 요청했으나 자신의 스케줄이 빠듯해 거절하게 된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거절한 것을 후회한다고 나중에 밝혔다. 후에 출시된 엑스박스용 일판에서는 한국판이 역수입되어서 본체 언어를 한국어로 해놓으면 한글 텍스트, 한국어 음성, 넥스트 BGM으로 플레이가 가능하다. 단, 인게임 옵션이 아니므로 일본어 음성+넥스트 BGM 등의 일부 조합으로 플레이 가능한 타이틀은 PS2용 한국 정발판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 뒤 나온 음반의 수나 활동이 별로 없었다. 여기서 사용된 곡 중 일부분이 동일하게 5기시절 발매한 넥스트 5집에서 재활용되기도 했다(감염, Dear America, Laura,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45] 등). 여담으로 SBS 스포츠의 EPL에도 하프타임 때 이 사운드 트랙에 수록된 곡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간혹 원판 사운드 트랙 곡도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방송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옛날 넥스트 3집 앨범이 발매 연기된 적이 있는데, 당시 언론에서는 '''건강 문제'''라든가 하는 식으로 발표가 났지만, 실상은 ''''김세황과 게임하느라 정신없어서'''' 였다고 라디오에서 밝혔다. 그 게임이라는 게 발매 이전 나왔던 워로드 체험판이었는데, 체험판에 50턴 제한이 걸려있어서 깨는 게 무리였던 것을(땅따먹기 게임을 50턴 안에 끝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결국 엔딩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건강을 걱정하여 찾아간 소속사 매니저는 그러고도 재클리어를 위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마왕과 김세황을 보았고 디스크를 부숴버린 뒤 넥스트 멤버 전원을 감금하여 3집 앨범을 완성시키도록 했다고 한다.
약간의 오덕성 소문을 추가하면, 가장 재미있게 했던 게임은 동급생. 일정 기간마다 한 번씩 클리어한단다.
차 트렁크에는 팬이 보내준 세라복이 있으며[46] 그러나 강호동의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아세요?"'''에 결정타 맞고 데꿀멍했다. 그래도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집 안에서 동물이 되면 된다고 소신은 굽히지 않았다[47] .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AV 배우라 했다. 이유는 합법적으로 아내 이외의 여자를 안을 수 있어서라고 했다. AV용 예명도 생각해 놨다고 했다. 방송에서 AV 배우의 이름을 언급하기도 했다. 후배들이 집에 놀러와서 자기가 방에 없는 사이 컴퓨터를 뒤지다가 나와서 "형도 하세가와 이즈미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봤다는 내용.
새로지은 해처리는 신해철이라고 한다. 이건 뭐... '새로지은 해처리'는 예전 온게임넷의 게임캐스터 최상용이 챌린지리그에서 "새로 피는 해처리는 '''신해철'''이겠죠"라는 농담을 한 데서 따왔다. 참고로 라디오 방송에서 밝힌 내용인데 신해철은 스타크래프트의 발매 당시 영국에 공부차 유학가 있었고, 스타크래프트의 해처리를 보고 "''''하체리''''겠지. 그래 하체리일 거야. 설마 해처리('''해철이''')일 리가 없어"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단다. 그러나 한국에 귀국해 스타크래프트 경기 중계를 보다 "'''해처리 터져요 해처리 터집니다 아 해처리 터졌습니다~!'''" 등의 중계에 아연실색해서 할 말을 잃었다고.
DJ DOC가 케이블 TV 'e채널'의 '독한민박'에서 소개한 일화 중에도, 멤버인 정재용이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저그 유저에게 "저기 해처리(Hatchery: 부화장) 있잖아, 해처리. 해처리 거기다 짓지 말라고. 해처리 빠개진다."라고 외치던 것을 공교롭게도 같은 PC방에 있는지도 몰랐던 신해철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뭐라고, 임마?"라고 발끈하는 바람에 난감했다고 했다.
8. TV출연
2014년 11월 3일 MBC 다큐스페셜 방송 중. 그의 100분 토론 방송장면과 아래 나온 악플진화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100분 토론[48] 에 가장 잘 섭외되는 연예인. 다른 연예인은 찔러도 끝까지 고사하지만 본인은 '''이빨 좀 까주면''' 어느새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출연하게 된단다. 의외로 귀가 얇을지도. 그런 그가 2008년 12월 18일에 방송된 100분 토론 400회 특집의 패널로 '''또''' 출연하였다. 이번이 무려 여섯번째 출연. 아마도 '''비 정치인중 최고의 논객으로 선정'''이라는 말에 넘어간 듯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것에 따르면 백분 토론에 나갈 때마다 악플이 진화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이런 리플을 재기발랄하다 하여 오히려 좋아한 듯 하다.대마초 토론 이후: 신해철 대마초나 피워라
간통죄 토론 이후: 신해철 대마초나 피우고 간통이나 해라
체벌 토론 이후: 신해철 니 아들내미 딸내미가 대마초 피우고 간통하든말든 때리지 마라
특집 토론 이후: 신해철 네 자식이 대마초 피우고 간통하더라도 때리지 말고 혼자 영생해라.[49]
많은 인터넷 언론들이 그의 팬 사이트(신해철 닷컴) 혹은 방송에서 그가 한 이야기의 한 꼬투리만 잡아서 낚시성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기자는 아무나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그가 내놓은 고민은 '사람 얼굴을 못 알아봐요'.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손석희를 봤는데 '키 크고 안경 끼고 잘 생긴 사람 = 성시경' 이라는 결론이 도출돼서 왜 얘가 인사를 안 하나 고민한 적도 있다고.
가수들이 버라이어티 쇼에 나와서 흔히들 말하는 피에로가 되는 것을 보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하는데, 그런 그가 MBC 심야 시트콤인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충격적인 등장을 하기도 했다. 훗날 과거에 학옷 입고 춤췄다가 대판 혼난 싸이가 이를 추궁하자 그는 '''"시끄러!"'''라고 했다고 한다(상상 플러스 싸이&신해철 출연 당시 싸이의 증언).
아무튼 그의 연기는 회가 지나면서 조금씩 자연스러워지긴 했으나 초반엔 상당히 안습했다. 이 또한 팬들 사이에선 '마왕의 굴욕'이라 칭하며 서로 기회만 있으면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신해철과 팬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두고두고 회자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교양 프로그램 나오기를 굉장히 꺼리는 듯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기꺼히 얼굴을 비치곤 한다.
특이경력이 있다면 KBS 스타 골든벨 초대 골든벨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 현재 스타 골든벨과 다르게 초창기 스타 골든벨은 도전 골든벨과 포맷이 거의 같았다. 2011년 3월 26일부터 tvN에서 방송 예정인 서바이벌 프로그램 오페라 스타 2011에 출연. 심사위원들도 많이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2011년 하순에 TV 출연이 잦았다. TOP밴드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승승장구에서 아내 윤원희와 함께 출연한 것에 이어 KBS 2TV 이야기쇼 두드림과 SBS E! 시간여행 메모리의 MC로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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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3년 8월부터 KBS 1TV에서 새로 시작한 프로그램인 'K소리 악동'에서 코치로 등장했는데, '''마왕은 어디로 가고 웬 후덕한 동네 아저씨'''가 나와서 이전까지의 신해철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였다. 2011년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는 동갑의 김승우와 비교해 어느 정도 동안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후덕해지고 체격이 좀 큰 탓에 노안도 된 것이다. 즉, 김광규처럼 동안과 노안의 속성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참고로 비슷한 나이의 뮤지션들과 비교해보면 '''6촌인 서태지보다 3살 형, 김종서, 이승환보다 3살 동생, 신승훈보다 실제로 2살 동생이다!'''
2013년 말에 MBC에서 했던 파일럿 프로그램인 '우리집 막둥이'[50] 에 가족들과 출연했는데, (신해철은 이 프로그램에서 미니피그를 길렀다)집안 서열 '''4위'''에서 '''5위'''로 밀려날 것 같다는 소리를 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파일럿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2회'''만에 종방되었다는 것(...)
TV는 아니지만 김아중이 나온 영화 나의 PS 파트너에 카메오로 잠깐 나왔다. 김아중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데[51] 노래는 본인 노래인 "일상으로의 초대". 신해철 본인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의 음반 작업에도 참여했다고. 그러고는 라디오 DJ로 또 나온다. 진행하는 프로그램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뮤직 스테이션이다. 결혼식 파토 사건 이후 작곡가로 변신한 남주인공과 함께 방송 진행하다 방송사고가 터지자 막 당황해하는 마왕을 볼 수 있다. 하던 일(DJ)을 연기해서 그런가 연기가 뭔가 자연스러워진 거 같기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마왕이 친다.
2014년 7월 5일에는 SNL 코리아에 출연하여 유희열에게 따귀를 맞았다. 상술했던 음악의 선후배 관계를 떠나 두 사람 각기 빼놓을 수 없는 음악도시 선후배이자 라디오 스타로 나름대로 괜찮은 캐미를 보여주기도. 특히 출연진 놀리기의 대명사인 SNL에 신해철이 출연했다는 데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괄목할 만한 건 약간 오버하는 면이 없잖아 있어도 연기력이 안녕 프란체스카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아졌다는 점. 또 중2병학교에서 막판으로 나와서 '''인생이라는 이름의 과목을 공부 하고 있지'''라고 하였다. 마침 같은 회의 다른 코너인 극한직업 신해철 매니저 편에서 유병재가 악플을 단 초딩과 경찰서에서 말싸움을 하던 중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울면서 외친 '''"사람은 다 죽어!!! 사람은 언젠가 다 죽는다고!!!"'''라는 말이 약 3개월 뒤 갑작스러운 신해철의 사망과 겹쳐 보여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라온 해당 클립을 보며 슬퍼하기도 했다.
같은 달 21일에는 비정상회담 3회 한국 대표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예고편 당시 엄청난 포스를 지닌 마왕의 출현을 예고했으나 방송 본편에서는 마실 나온 cute한 동네 아저씨로 컨셉이 잡혔다. 과거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본인이 진행했던 토크 프로그램에서처럼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병풍 논란 아닌 병풍 논란을 겪기도. 하지만 이후 조세호나 장미여관이 겪은 논란을 생각해보면, 신해철은 오히려 방송 프로그램의 성질을 잘 이해하고 출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외국인 패널들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좋은 충고와 교훈을 말해주며 엔딩 전의 발언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9월 4일에는 라디오 스타에 노목들 컨셉으로 출연하게 된다. ...그러니까 외모 리즈 시절에 비해 살이 쪄서 목이 없어진 가수들 특집으로. 실제로 SNL 코리아에 출연해서도 살찐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던 신해철인데, 같이 출연한 노유민의 역변에 다소 묻힌 면이 없잖아 있다. 역변의 아이콘 노유민. 일단 머리도 기르고 살도 꽤나 뺀 모습이어서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대신 딸바보로서의 면모를 뽐내고, 아내 자랑을 하는 팔불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당 방송에선 월간 신해철을 기획했었는데, 그걸 윤종신이 먼저 실행해서 아쉬웠다고. 그래서 계간 신해철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는데 사실 미스틱89에서 계간 박지윤을 실행중이다... 아무래도 이러한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에는 오랜만에 출연하는 것이라 방송의 트렌드 변화에 적응을 못해 쩔쩔대는 모습을 보이며 웃음을 주었는데, 혁신적인 방송의 선구자격이었던 신해철이 나이가 먹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도.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속사정 쌀롱에 출연했으며 사후에 그의 유작 중 하나로 조명받았다. 그의 죽음으로 방송이 잠정 보류되다가 결국 11월 2일 방송이 나왔다.
9. 음악적 평가
해철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글쎄요,
''''작지만 속이 꽉 찬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을지 않을까요?
음악적인 모험 정신이나 욕심이 대단했던 친구다.
음악적인 대화를 많이 했는데, 나에게 묻기도 하고 '''내가 경청하며 배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는게 안타깝다."''' (2014년 신해철 사망 직후)
- 조용필
실제로 제가 데뷔하기 전부터 해철이 형은 아마 재즈 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이런 명곡들을 만드셨고,
저도 그걸 듣고 자란 세대 중에 한 명이죠.
근데 아마 '''누구보다도 (제가 해철이 형한테서) 더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가사 같은 부분은 제 마음을 너무 흔들어 놨었어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가사를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다.'''' 하는 게 너무 신기했었고...
(중략)
저도 그래서 '''"나도 이런 가사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의) 시작이 아마 해철이 형이었을 거예요.'''
- 서태지
저는 그가 진정 '''천재라고 생각했고, 마치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한 우주에 사는 사람'''이란 느낌?
이미 20대에 세상에 대해 통찰이 있었던 친구 같고...
- 이승환
신해철 선배님의 음악은 '''다른 노래에서 말하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유일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제 생각에는...
- 하현우
9.1. 프로듀서 신해철
생각보다 훨씬 많은 가수들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엄정화[52] , 이승기[53] , 싸이, 김동률[54] , 문차일드[55] , 변재원[56] 등.
프로듀서로의 신해철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독재자 스타일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는 후진 양성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며, '''그가 프로듀싱하는 싱어 또는 밴드를 파트너로 대우'''한다. 그래서 앨범 한 장으로 최대치의 성과를 뽑아내기 보다, 그 가수나 밴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생력을 키워주는 것을 지향한다. 대표적인 케이스 위에서 언급한 전람회, 그리고 그 개인적으로 흑역사가 바로 문차일드가 되겠다.
전람회 같은 경우 김동률이 대학가요제 등장부터 워낙 역량이 뛰어났기에 신해철은 음악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 김동률의 음악적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나마 전람회 1집 이후에는 김동률이 스스로 프로듀싱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기에 신해철은 뒤치다꺼리만 했다고 하며 이런 케이스를 프로듀서로 행복한 경우라고 언급했다.
정반대로 문차일드는 최악의 경우이다. 신해철은 남궁연에게 문차일드를 소개 받았고, 때마침 문차일드의 기획사 사장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해서 그들의 음반 작업을 돕게 된다. 그 때 신해철은 조건으로 몇 가지 사항들을 요구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문차일드 멤버 스스로 곡을 쓸 수 있도록 악기 등을 포함해서 그들이 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줄 것이었다. 후배를 사랑하고 키워주려는 마음이 선명히 보인다. 그러나 그 곡 작업의 결과가 좋지 않았고[57] 기획사 사장은 조급함에 (신해철이 가장 싫어하는) 작곡가랑 세션맨을 투입시켜버렸다. 이런 행동은 신해철의 밴드 음악에 대한 애정에 비춰보면 최악의 수였고, 신해철은 그 사장과 인연을 끊어버렸다. 물론 문차일드 멤버들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예를 들면 음악밖에 모르고 살던 어린 멤버들에게 PC방에 데려가 스타크래프트를 줄기차게 가르쳐줬다고 멤버 제이윤이 신해철 사후, 그를 추억하며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또 이러한 애정은 훗날 엠씨 더 맥스로 개편된 뒤까지도 이어졌다."야, 돈 걱정은 너네가 하는 거 아니니까 그냥 해!"
전람회 1집, 2번 트랙 '여행'에서 브라스를 직접 써서 녹음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들 거 같다고 걱정하는 김동률과 서동욱에게.
예시로, 본인의 홈페이지에 엠씨 더 맥스의 팬들에게 글을 남겼다. '엠씨 더 맥스 팬들에게 고함'이란 글에서 "이수가 오토바이 탄다는 사실을 어제 알았다"며 "오토바이로 많은 후배들을 잃었다. 당신들이 진정한 팬임을 믿는다. 데모를 하든, 집에 쳐들어 가서 바이크에 불지르든, 혈서를 쓰든 바이크를 뺏어라"고 말했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라며 "이수까지 바이크 타다 죽으면 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는데, 넥스트 공연 당시 코러스를 담당했던 여성 두 명이 버튼이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했는데, 앨범 프로듀서에는 신해철의 이름이 올라갔었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이 허접한 앨범에 모든 책임을 신해철에게 돌리듯 비판했는데, 정작 신해철은 꼴랑 두 곡 작업해서 줬던 것 뿐이었다고. 한마디로 '''신해철의 이름을 팔아 먹은 것.'''
불독맨션 이한철은 신해철이 자신의 앨범을 프로듀싱할 때 신해철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물론 이한철은 후자를 택했으며 이것이 자신의 음악적 방향에 영향을 끼친 것을 언급한 적이 있다."돈 많이 벌고 싶냐? 니가 하고 싶은 음악 하고 싶냐?"
하지만 '''예외적으로 그가 주도적으로 컨셉을 잡고 신인 가수를 프로듀싱한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엄정화'''다. 신해철과 엄정화는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의 OST에서 프로듀서와 가수로서 정식으로 조우했다. 엄정화의 데뷔를 앞두던 1990년대 초반 당시만 해도 섹시와는 거리가 먼 청순한 모습에 가까웠고, 엄정화의 소속사 측에서도 당시 대세였던 청순가련 컨셉의 여가수로 데뷔 앨범을 준비했으나 '''엄정화의 잠재된 섹스어필의 끼를 포착'''한 신해철이 소속사를 설득하여 기존 계획을 모두 뒤엎고 OST곡을 타이틀곡인 '눈동자'를 베이스로 섹스어필의 컨셉으로 방향을 수정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 실제로 청순한 이미지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외적 부분에서 섹스어필과는 거리가 멀었던 엄정화의 잠재된 끼를 끌어내기 위해 신해철이 녹음실에서 윽박도 지르고 북돋아 주는 등 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덕분에 엄정화는 이 데뷔곡을 통해 당시에는 드물었던 섹시 컨셉의 여가수로서 포지션을 제대로 잡으면서 데뷔 때부터 군인들을 중심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며 섹시 디바로서의 가능성이 돋보였고, 결국 한국 가요계의 섹시 디바로 대성공하게 된다. 엄정화 본인도 훗날 '눈동자'라는 곡을 가수로서 컨셉을 잡아준 가이드라인 같은 곡으로 상당히 애착을 가진다고 회고하며, 신해철의 장례식 때에도 신해철이 아니었으면 가수 엄정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고인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그의 모노크롬 앨범이나 N.EX.T 시절 앨범을 보면 결코 저평가 될 수 없는 수준의 프로듀서가 바로 신해철이다. 독설에 가려져서 그렇지 음악성으로는 사실 '''현재도 적수가 없는 원탑의''' 뛰어난 인물.
인디 음반 기획사인 싸이렌 엔터테인먼트(이후 루씨엔 엔터테인먼트로 바뀜)를 설립, 후배 양성에 힘쓴 바 있다. 스키조, 피터팬 컴플렉스, 뷰티풀 데이즈, 도그테이블, 윈터그린[58] 등 소속. 특이하게 임요환의 그분인 배우 김가연이 이 회사에 있었었다. 문제는 크게 말아먹어서(...) 빚더미에 올랐다고... 현재 싸이렌의 이름은 음악원에 남아 있긴 하다.
밴드 피터팬 컴플렉스가 그룹 해체를 결심했을 때 이를 만류, 그룹 해체를 철회케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신해철은 이들의 앨범을 프로듀싱해 주었고, 피터팬 컴플렉스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지 신해철의 곡 '안녕'을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다. 곡 중반의 영어 랩 부분은 신해철이 담당.
현재 그가 '조련'한 5인조 여성밴드 '스핀'이 앨범 작업 준비 중이다. 2009년 8월에 키보디스트를 영입하며 5인조를 완성, 거쳐간 사람들만 40명 이상에 지금의 멤버를 완성하는데 꼬박 8년이 걸렸다고. 참고로 과거 고스트스테이션 작가인 '양송이버섯'(은가은)이 보컬이다. 스핀은 넥스트 6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현재까지 소식전무.
2014년, 스핀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그리고 진중권의 문화다방 팟캐스트에서 2010년대에 6년 넘게 잠수를 타고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밝혔다. 다름아닌 자동작곡 알고리즘을 짜고 있었던 것. 신해철 특유의 SF적 상상력과 엔지니어링에 관한 높은 이해력으로 인해 작곡에 조예가 깊지 않은 개인이라도 적당한 느낌을 주면 그에 맞는 멜로디를 뽑아내는 알고리듬을 만드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충공깽. 아직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완성시키지는 못했으나, 작곡 과정에 뮤지션의 기술적인 수고를 덜어주는 시스템까지는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장르든 자주 쓰이는 양식(소위 프레이징)이 있고 코드를 입력하면 반주를 자동 생성하는 알고리즘 이른바 '아르페지에이터'는 이미 한참 전에 개발되어 그냥 신디사이저나 미디 프로그램의 기본 옵션 구석탱이에 하나씩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신디사이저 덕후였던 신해철이 몰랐을 리는 없고, 뭔가 신해철스러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려고 했던 듯. 자동작곡 알고리즘 자체는 딱히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래방의 '디스코' 리듬 변환이 자동작곡 알고리즘이다.
9.2. 악기 덕후 신해철
일단 생전의 신해철은 음악 뿐만이 아니라 악기에 관심 많은 걸로 유명하다.
신디사이저 같은 경우는 무한궤도의 대학가요제 출전 영상을 보면 신디사이저가 여러 대가 있는데, 이게 신해철이 신디사이저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고, 당시 문화 개방도 안 되어 있었던 데다 당시에 한국에 정식 진출한 신디사이저 브랜드가 거의 없어서 구하기도 힘들었고[59] 당시 신디사이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60] 그리고 몇 안 되는 신스팝 음악이었던 "그대에게"를 연주를 한 적 있고, 이후 신해철은 90년대 초반 한정으로 광범위하게 쓴 적 있다. 이 항목 어딘가에 있는 동영상을 보면 "Waldolf"(신디사이저 회사명)[61] 라고 적혀있는 신디사이저를 봤을 것이다. 이 회사도 당시에 진짜 알기 힘든 회사인데도 불구하고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신디사이저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또 한 사례로, 데뷔 이후 서태지가 샘플러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신해철에게 찾아간 게 둘 사이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일 정도로, 신해철의 선구자적 기질은 초창기부터 유명했었던 모양.[62][63]
그리고 신해철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신디사이저는 'SEQUENTIAL CIRCUITS'社[64] 에서 1986년에 출시한 'Prophet VS'[65] 라는 모델인데, 당시 650만원[66] 이라는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VS의 음색에 반해 2대씩이나 사서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영국 유학을 떠날 때에도 그 2대를 다 갖고 갔는데, 한 대가 영국에서 완전 사망(...)했다고 한다. 자세한 건 2000년에 했던 인터뷰 영상 참고. Prophet VS 외에 2000년 당시 그가 사용했던 악기들(기타 포함)에 대해 알 수 있다. 그리고 남아있던 한 대는 '''지현수'''가 넥스트 가입할 때 계약금이라며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리고 신디사이저 뿐만이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에도 관심이 있었다. 무한궤도에서 그의 파트가 보컬리스트 겸 기타리스트 였고, 대학가요제 출전 영상에서도 중반부 신해철의 잘 짜여진 기타 솔로를 들을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서강대 그룹사운드 '킨젝스'에 들어갈 때도 기타로 들어갈려고 했다가 피우던 담배를 기타에 꽂는 퍼포먼스를 했다가 선배가 건방지다고 해서 퇴짜를 맞은 적이 있었고, 원래 보컬이 아니라 기타리스트를 하려다가 손에 땀이 많이 차서 보컬로 전향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신해철이 사용한 적 있는 기타들을 보면 스타인버거 GL-2T, 뮤직맨 EVH[67] (현재 판매되는 AXIS 모델의 전신 격인 모델) 등등이 있는데, 특히 저 두 기타는 중고 시장에서 나름 고가에 거래되며 명기로 대우받는 기타이다. 그리고 김세황이 넥스트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해철이 기타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속주가 가능했던 김세황을 보고 '이 사람이 내가 찾던 기타리스트구나'하고 그의 역량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 외 생전에 솔로 마지막 앨범에 아카펠라에 도전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몇 안 되는 광범위한 신디사이저 이용자였다. 그대에게, 도시인 등 그외 N.EX.T의 대다수곡들을 들어보면 신디사이저 음이 당시 다른 아티스트곡과 달리 튀고 화려함과 동시에 신디사이저를 평범하게 다루지 않는다. 신해철이 악기덕후란 소리와 신디사이저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9.3. 작사가 신해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만큼이나 가사에서 다양한 소재를 다루었다. 보통 한국 가요에서 많이 쓰이는 남녀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고[68] 삶을 사는 이유, 존재의 자각, 자아성찰, 사회비판, 가족 등 세상의 수 많은 소재들로 가사를 쓰고 노래하였다.신해철 선배님의 음악은 '''다른 노래에서 말하지 않은 말을 하고 있는 유일한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제 생각에는...
- 하현우
이것은 솔로 2집부터 시작하여 N.EX.T의 초기 앨범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N.EX.T의 앨범명을 살펴보면 신해철이 생전에 음악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1집 Home에서는 현대 사회에서의 가정 변화와 인간 소외 현상을, 2집 The Being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3집 The World에서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신해철은 다른 가요처럼 연애나 사랑을 읊조리거나 피상적인 사회 비판을 하기보다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학을 논한다. 신해철의 진정한 재능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내용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능력에 있으며 그 전달매체가 되는 작사에 관하여 작곡만큼이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신해철의 곡들을 살펴보면 이상주의적인 가사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위로가 항상 그 중심에 서있다. 그 가사들은 날아라 병아리에서처럼 작고작은 인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기도 하고 hope에서처럼 말그대로 삶을 이겨나가는 희망과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했다. 또한 here I stand for you에서는 현대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변하지 않는 가치의 소중함을 되새겨주었다. 현재 30대 후반~50대 초반의 대한민국 국민의 가치관이 신해철의 이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유튜브에 올라가있는 그의 곡들엔 끊임없이 인생의 조언자로서의 고마움에 대한 댓글이 달리고있다.
10. 특이 사항
11. 사망
2014년 10월 22일 심장 이상으로 인해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며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이 멈추었고 눈은 뜨지만 대화는 안 되는 상태라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한다.일어나라
제발
너와 난
해야할 일이 많다...
KCA 엔터테인먼트가 23일 의료진의 소견을 인용하면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하는 전문. 출처
계속되는 찌라시성 기사와 근거 없는 루머 확산으로 소속사 측에서 10월 24일 다시금 공식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현재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이며 알려져있는 패혈증은 언급되어있지 않다. 5년 전 받은 위밴드 수술과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공개된 날짜별 내•퇴원 일지로 상태 경과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그 뒤 뇌사에 준하는 상태라는 기사가 떴으며 # 뇌사라는 기사의 후속 기사도 떴다.
결국 그는 2014년 10월 27일 오후 8시 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이때 심장이상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알려졌었으나, 최종 사인은 뇌 산소결핍에 의한 뇌손상이라고 소속사가밝혔다.
2014년 10월 31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미사가 진행되었다. 원래는 성당에서 치러야 하지만, 냉담자였고 또한 부검으로 인해 장례일정이 지연된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아산병원 가톨릭 발인식장에서 치렀다.
그가 떠난 뒤인 2014년 11월 3일 진행된 국과수의 부검결과, 뇌 산소결핍에 의한 허혈성 뇌손상이 아닌 복막염 및 심낭염 그리고 이로 인해 합병된 패혈증에 가깝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가족의 의뢰로 집행된 부검인 만큼 의료사고 논란이 종료되면, 소속사가 다른 발표를 내놓을 확률이 크게 올라갔다.
11월 5일 비공개로 천주교식 가족장을 치렀다. 가족들은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노래 같았던 민물장어의 꿈 대신 Here, I Stand For You를 대신 선곡했고, 실제 묘비에도 Here, I Stand For You를 새겼다.
신해철은 사망 직전 심장제세동기를 이용한 심폐소생술 도중 왼쪽 눈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을 흘린 그 직후 사망하였다고 한다.
11.1. 추도
'''해철아, 사랑한다. 보고싶다.'''
'''나의 힘들었던 시절, 형님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들으며 위로받던 때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 날을 꿈꾸던 내게 친구가 되어 준 그 노래.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 줘.''''
'''내 마음 속 영원한 마왕, 그대에게... '''
사망 이후 정치인부터 전 밴드멤버들을 포함한 선후배 및 동료 뮤지션, 방송인, 작가 등 각계각층에서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특히 맨 위에서도 서술했다시피 대한민국 가요계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조용필 또한 빈소를 찾아 '''훌륭한 뮤지션을 잃었다'''는 말로 신해철의 사망을 애도했을 정도.'''지구의 별이 되어 살다 우주의 별로 돌아가다'''
팬들도 조문을 할 수 있도록 오후 1시부터 9시 이전까지 개방되어 있었으나, 조문 마지막 날은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시간제한 없이 조문을 허용하였다. 소속사의 발표에 따르면 총 조문객은 1만 5천여명이라고 한다. # 과거 신해철이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이 고스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조화를 바치기도 했다. # MBC라디오는 2014년 10월 31일 기준 과거 신해철이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 홈페이지를 통해 추모 메시지를 받고 있다. #
또한 생전에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고 언급했던 민물장어의 꿈이 7개 음원사이트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SBS 중계 제작진은 중계 마지막 배경음악으로 이 날 작고한 고인의 대표곡 중 하나인 그대에게를 삽입하여 고인을 추모 하였다. 영상
MBC 라디오와 SBS 라디오는 라디오스타였던 그를 기리며 28일 추모방송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과거 신해철은 MBC FM4U의 대표방송 프로그램이었던 음악도시의 초대시장이었으며, 고스트네이션으로 새벽 시간대에도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라디오스타로 맹활약했다. SBS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릴라는 과거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스테이션의 후신격 프로그램인 남궁연의 고릴라디오에서 따온 것이며, 남궁연은 신해철이 진행했던 고스트스테이션이 쌓은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을 정도.
신해철이 고스트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진행했던 SBS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신해철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SBS파워FM과 러브FM, AM 등 라디오 방송 대부분을 신해철 추모 방송으로 진행된다"며 의견을 밝혔다. #
신해철이 처음으로 라디오를 진행했던 우리는 하이틴, 그를 대표하는 음악도시와 고스트네이션을 방송했던 MBC는 28일 방송되는 두시의 데이트와 오후의 발견, 배철수의 음악캠프[74] 를 신해철 추모 방송으로 꾸몄다. 그 외의 방송에서도 신해철 개인에 대한 조의를 표하는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써니의 FM데이트에서는 지난 8월 출연하였던 신해철의 방송분을 들려주었고,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에서도 코너 하나를 취소하고 조의를 표하는 차분한 분위기로 방송을 진행했다. 이외에 "신해철이 DJ로 활약했던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긴급 편성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의견을 밝혔고 편성시간대는 과거 고스트네이션이 방영되었던 새벽 시간대가 유력하는 의견까지 흘러나왔지만 # 결국 분량 문제로 편성우 불발되었다. 대신 추모방송을 하는 프로그램에서 음악도시와 고스트네이션의 녹음분을 일부 들려주었다. #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임시DJ직을 마치며 청취자에게 건네는 작별인사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써니의 FM데이트는 배캠 임시 DJ 진행 1주일 후의 방송이어서 신해철의 마지막 라디오 출연분에 해당한다.
표준FM 고스트네이션과 같은 시간 대에 경쟁했던 FM4U 이주연의 영화음악에서는 11월 1-2일 이틀간 신해철의 인생을 조명하는 특집, 그가 음악을 맡았던 영화 '정글 스토리'의 김홍준 감독과 함께 신해철을 추억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인터넷 방송으로 시작한 고스트스테이션을 처음으로 정규 지상파 프로그램으로 방송하게 한 SBS에서도 호흡을 맞춘 프로듀서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은 뮤지션 DJ가 많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추모 분위기 방송이 이루어졌다. 김창렬의 올드스쿨은 화요일 정규코너와 보이는 라디오를 중단하고 방송분량 2시간 전체를 신해철 특집으로 꾸며 진행했고, 고스트스테이션의 인디뮤지션 코너를 통해 신해철과 연을 맺은 장기하도 대단한 라디오에서 추천앨범을 정해 틀어주는 코너인 '기하네 집'에서 넥스트 1집 Home을 선정해 1주일 동안 들려주었다.
EBS는 연이어 세상을 떠난 두 뮤지션 신해철과 색소폰 연주자 정성조를 기리는 의미에서, 30일 12시 30분 스페이스 공감을 긴급 편성하고 방영하였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의 작가 유영태는 2014년 10월 29일 고스트스테이션을 패러디 한 사야이 스테이션이라는 회차로 추모했다.
SBS 한밤의 TV연예는 29일 장장 15분에 달하는 신해철 추모 특집을 마련하여 방영하였다. 신해철의 후배이자 절친한 사이기도 했던 진행자 윤도현이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전날인 28일에는 SBS MTV는 신해철 추모특집 REST IN PEACE를 마련하여 다양한 그의 음악들을 방영하였다.
MBC 라디오스타는 11월 1일이 기일인 유재하 특집을 준비하면서, 프로그램 말미에 신해철에 대한 추모 메시지와 함께 일상으로의 초대 뮤직비디오를 방영하였다. # 또한 MBC다큐스폐셜을 통해 11월 3일 신해철과 관련한 특집 다큐 '신해철, 마왕이라 불리운 사나이'를 준비하여 방영하였다.
KBS연예가 중계는 11월 1일 50여분의 방영분중 18분이 넘는 시간을 통해 신해철을 추모하고 그의 사망에 대한 여러 사실들을 조명하였다. 마찬가지로 신해철과 친분이 있었던 진행자 신현준[75] 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인터뷰에서 신해철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추모했다.
tvN은 과거 SNL코리아에서 호스트로 출연했던 신해철을 신성우 편에서 추모하며 당시 그가 유희열과 하며 남겼던 "아프지만 마세요."라는 말 등을 방영하였다. "당신의 열정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최고의 호스트로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그곳에선 아프지 마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애도의 뜻을 전하기도.
대학가요제는 11월 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2014 대학가요제 포에버 콘서트'를 통해 고인을 기릴 예정이다.
Mnet은 28일 오후 11시부터 30분간 '굿바이 마왕' 특집을 편성하였으며, 30일 엠카운트다운은 생방송이 아닌 신해철의 앨범 메들리를 방영하며 추모를 이어갔다. 엠카운트다운 방영시 조연출의 "넥스트의 기타리스트가 되어 이 곡을 함께 연주하는 게 꿈이었다. 넥스트의 멤버는 되지 못했지만 엠카 조연출이 됐다"는 내용의 텍스트가 삽입되기도. #
2014년 11월 2일엔 신해철이 마지막으로 출연한 JTBC의 속사정쌀롱이 방영되었다. 촬영은 10월 초에 이뤄졌지만 방영 이전 사고가 있어 계속해서 미뤄지다 그의 마지막 모습이 보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과 제작진이 유족과의 협의를 하여 방영이 결정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해철의 음악이 곳곳에서 들려졌고, 방송 말미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함께 그에대한 팬들과 제작진의 추모 메시지가 방영되었다. 방송 중엔 신해철이 제작진이 가장 공들여 섭외한 MC라는 이야기가 진행자인 윤종신의 이야기가 있었고, 첫 출연진들 역시 신해철과 이런 저런 관계가 있어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는 멤버들이었다. 신해철의 역할은 산만하거나 너무 깊어진 이야기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정리정돈. 방영 이전 속사정쌀롱과 관련하여 뒤풀이 장면이 공개되어 갓 친해진 장동민과의 격의없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4년 11월 7일에는 서강대에서 87학번인 신해철을 기리며 축제기간 추모공연을 하였다. #
이외 KBS 우리동네 예체능, MBC의 나혼자 산다,SBS 자기야 백년손님 등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도 민물장어의 꿈이나 그대에게 같은 곡 등을 BGM으로 선곡하며 신해철을 떠올릴 수 있게 하였다.
12월 27일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밴드의 멤버들은 물론 신해철과 친분이 있던 뮤지션, 역대 넥스트 멤버들 그리고 신해철과 음악적 작업을 했던 이들이 넥스트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으로 추도 콘서트를 열었다. 본래 11월 말에 넥스트로 컴백하여 활동하고 12월 31일 콘서트를 예정해두고 있었던 것을 조금 앞당긴 것으로 게스트 보컬 출연진만해도 신해철과 사적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신성우, 신해철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엠씨더맥스의 이수, 신해철을 공공연히 존경한다 이야기해왔던 홍경민, 사적 친분은 물론 콜라보를 하기도 했던 김진표, 90년대 신해철과 함께 활동했던 김원준, 신해철과 김영석이 추천한 멤버들로 이뤄진 프로젝트 그룹 에메랄드 캐슬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지우, K2의 김성면, 신해철이 토이에 추천하고 또한 솔로 앨범의 프로듀스를 맡았던 변재원, 넥스트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으로 함께 보컬로 활동 하기로 했던 트윈 보컬의 한 사람인 이현섭,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로 활동하였던 크래쉬의 안흥찬 등이다. 또한 역대 넥스트 멤버들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김영석, 김세황, 지현수, 이수용, 데빈, 김동혁, 쌩, 쭈니, 정기송 등이 함께 한 것. 넓은 음악 스펙트럼 덕에 많은 뮤지션들이 3부의 구성속에 넥스트의 음악을 보여준 알찬 구성으로 좋은 반응속에 마무리 되어 1회 계획된 콘서트가 전국 콘서트로 진행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
이외 신해철의 유작 앨범에 실릴 것으로 알려졌던 '핑크 몬스터(Pink Monster)'가 수록된 베스트 앨범과 한정판 음반이 발매되어 수량이 부족할 정도의 인기를 끌었다.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에 불후의 명곡과 히든 싱어가 동시에 신해철 편을 방송했으며 1주기를 앞두고 후배 가수들과 그의 팬들이 고인의 노래를 부르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다.
2015년 10월 25일 추모식 및 봉안식이 25일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진행됐다. 그리움의 편지와 퍼플 리본 달기 등 식전행사에 이어 추모 미사와 추모사 낭독, 기제사 예식이 이어졌으며 유토피아 납골당에 안치된 유골을 야외 안치단으로 옮기는 봉안식과 장지 헌화식 등을 끝으로 자유 참배로 마무리 되었으며 고 신해철의 장례를 치를 당시 생전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일반인들의 조문이 자유롭게 이어졌었듯이 추모식 역시 자유로이 이루어졌다.
2019년 10월 26일 MBC에서 방송된 놀면 뭐하니?의 '유플래쉬' 코너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히든 무대가 공개되었다. 미발표곡이었던 '아버지와 나 파트3'를 기초로 유재석의 드럼에 이승환과 하현우가 릴레이로 힘을 보탰다. 이승환은 '서태지와 이승환, 신해철이 함께 한 마태승 콘서트라고 팬들이 기획해서 성사될 뻔했던 공연이 있었다. 서태지의 설득으로 공연 참여를 결심했는데 일주일 쯤 있다가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 이후 아내분을 뵈었을 때 공연이 결정되어 (이승환이)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 기뻐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내가 너무 늦게 결정했다는 미안함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음악인이었는지 다시 각인시켜주고싶다.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밝게 자라나게 해주고 싶다.' 라며 참여의사를 밝혔다.
이후 이승환에게 릴레이 바톤을 넘겨받은 하현우는 "초등학생때부터 (신해철의) 완전 팬이었다. 새 앨범 나오면 선물로 꼭 드리면서 뵙겠다고 했는데 앨범이 나오기 직전 선배님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게 저한테는 되게 슬픈 일이었다. 지금도 공연장에서 선배님 노래를 부른다. 음악적으로 저에게는 선생님이자 락스타다." 라며 참여했다.
공연 당일 유재석은 추모의 의미로 유고스타 분장을 모두 지우고 검정색 정장을 입고 공연에 임했고 신해철의 생전 목소리와 이승환, 하현우의 연주와 코러스가 어우러진 공연은 많은 감동을 안겼다. 공연을 함께 보던 팬들과 그와 친분이 있던 연예인들은 공연 도중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쏟으며 그와의 추억을 기렸다.
11.2. 의료과실 논란
12. 저서
13. 여담
- 어렸을때 꿈은 번데기 장수였다고 했다. 아주 어린 시절에 골목길에 번데기 장수가 오는 소리를 나면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한 다음에 바로 달려가 사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에서 장래희망이 번데기 장수라고 해서 잠시동안 왕따가 됐었다고...
- Into the Arena (2002년 붉은악마 주제곡, 작곡, 편곡: 신해철) 월드컵 시기만 되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대~ 한민국! 짝짝짝짝짝"의 음원 소유권자이다. # 사실 신해철이 만든 음원 중 널리 쓰였지만 대중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인데, 신해철은 2002년 당시 이 음향을 녹음하기 위해 극장 한 관을 빌려 울림 정도와 파형을 분석해 음향설비를 세팅한 다음 안양 LG 치타스 서포터스들을 모아놓고 녹음했다. 그런 뒤 오버더빙 등의 후반작업을 거쳐서 완성된 것이 'Into the Arena'에 나오는 "대한민국" 구호. 그냥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소리지른 것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음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깨끗한 "대한민국" 소리는 신해철이 녹음/제작한 이 음원이 거의 유일한 것이다. 때문에 몇몇 대기업들은 월드컵 특수를 노린 광고를 제작방영 하면서, 신해철이 만든 이 음원을 피치만 조절하는 수준으로 조작해 무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78] . 인디나 사회 소외 문화계통 예술가들에게는 "허락만 구한다면" 자신의 음원을 무료로 사용하도록 하는 신해철이지만, 이런 대기업들의 치졸한 행태는 참기 힘든 것이어서 법적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79] . 단순한 이벤트성 음악으로 가볍게 취급되는 것과는 달리, 'Into the Arena'는 모노크롬 때부터 신해철이 열중해오던 테크노와 국악을 결합하는 실험의 "완성체"로써, 신해철 본인의 곡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아끼는 곡이라고 밝힌바 있다. 다만 이것이 응원 구호 자체의 저작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호 자체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 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본인이 스스로 자신은 응원 구호에 대한 권리는 없고 해당 음원에 대한 권리만 갖는다고 해명하였다. 즉, 직접 해당 응원구호를 녹음해서 사용할 경우에는 신해철이 보유한 음원 저작권과는 무관해지는 셈.
-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제법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인증한 건 다름아닌 200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K리그에 복귀했던 안정환이 서울과의 2군 경기에서 부인에 대한 욕설을 퍼붓던 서울 서포터 수호신 쪽과 충돌하다 퇴장당한 사건에서였다. 이 사건 직후 신해철은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 연고이전 때문에 엄청나게 까이는 건 알아도 주제가 때문에 마음속으로 가깝게 생각하고 응원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한 앞으로 절대 그럴 일 없을 것이다, FC 서울의 사과를 촉구한다."고 제대로 디스했기 때문. 그리고 안정환 선수에 대해서는“안정환 선수가 아무리 많은 야유가 있어도 묵묵히 참고 끝까지 경기를 치르고 경기 후에 제소를 하거나 상대팀 팬들의 나쁜 점을 지적했으면 전 안정환 선수를 존경했을겁니다. 하지만 경기 중에 가족과 아내에 대한 모욕을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전 안정환 선수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아마 '북패' 멸칭 사용 썰은 후대에 FC 서울 안티팬들이 신해철의 명성에 기대어 FC 서울에 대한 이미지를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과장했고, 그 후 나무위키 내용 등을 근거삼아 이 사건에 대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던 네티즌들이 단순하게 서포팅 포기 선언 이 정도로는 밋밋하니 더 자극적으로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사용하면서 퍼진 것으로 보이는데 신해철이 고인이 되어 앞으로 확인할 수가 없는 점을 악용하여 실제로 하지도 않은 발언을 자신들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아무 증거도 없이 사실인양 퍼트리는 행태는 경우에 따라 사자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으며 인간적인 도리상 신해철의 경우뿐만 아니라 모든 고인들에 대한 예우와 존중 차원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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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이 FC 서울에 대한 서포트를 포기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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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MBC 표준 FM <고스트네이션>을 통해 "서울 구단에 응원가를 제공하는 등 응원을 보냈지만 안정환(31, 수원 삼성)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없는 한 더이상 서울을 서포트할 수 없다"며 "응원가는 다시 회수할 수 없는 것이지만 앞으로 넥스트를 통해 서울 구단의 공식 행사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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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새벽 2시부터 방송된 이 프로를 통해 신해철은 "안정환 뿐만 아니라 박찬호(34, 휴스턴 트리플 A)에 대해서도 지금 부진하다고 해서 그 누구도 비난할 권리가 없다"며 "박찬호와 안정환은 이미 영웅이며 우리를 열광시켰기 때문에 그들로서 임무를 다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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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또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뒤 탈세를 했다든지 본래의 영역에서 벗어난 행위를 했을 때는 비난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대해서는 영웅 대접을 해야한다"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수원 감독도 선수시절 영웅이었는데 그를 비난하는 누를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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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신해철은 "박찬호, 안정환 등 스타들에게 꽃을 뿌리고 화관을 씌워주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을 모욕하고 짓밟는다면 스포츠에 대한 의미는 없는 것"이라며 폭언을 퍼부은 서울 구단 서포터들의 공식 사과와 처벌이 이뤄진 이후에 안정환의 행동에 대해 비난하라고 요구했다.
FC 서울 구단에 대한 서포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신해철은 그동안 'We are FC SEOUL'이라는 응원곡을 만드는 등 그동안 서울 구단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한편 신해철이 작고한 후 FC 서울 구단 측에서 2014년 11월 2일 홈경기에서 추모 행사를 진행하였다.
- 2007년부터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KBS 스포츠의 시그널 음악도 신해철의 작업이다. 특히 야구중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다.
- 옛날 옛적 PC통신이 활발했을 때 넷 상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인 이석원이 넥스트를 깠다. 원래 이석원은 하이텔의 모소모(모던락 소모임)에서 독설 평론가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언니네 이발관이 고스트스테이션에 출연했을때 이 에피소드를 즐겁게 이야기하였다.
- 한때 박철과는 함께 철철 브라더스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낸다고 헛소문이 돌았지만(자기들이 흘렸다) 시작이 그러했듯 그냥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애초에 박철이 고스트 스테이션에 게스트로 나왔을 때 한 마디 한 걸로 청취자들이 오오 한 것이다.
- 2005년 7월 30일에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이 일어난 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조차 인디밴드 멤버들을 섭외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때가 있었는데, 당시 MBC FM4U의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 정도가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인디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소개했다. 당시 해당 사건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10년쯤 뒤로 후퇴시킨 쓰레기'라고까지 표현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이게 저항 정신이라며 떠받드는 놈들이 있을 거"라며 착잡해 하기도 했으며, 동료들과 인디음악 팬들의 등에 칼을 꽂은 격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아울러 생방송 음악 방송을 종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해철 "생방송 음악프로그램 폐지하자"
- 2009년 3월, 엠씨 더 맥스의 이수가 오토바이를 탄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팬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팬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나서서 갈비뼈든 다리든 부러뜨릴 것이라고 선언. 결국 이수는 팬들의 문자공세에 괴로워하다 어머니한테 들켜(확실하게는 신해철이 일렀다.)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앨범을 통해 데뷔하다시피 했던 먼데이키즈의 김민수가 2008년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 영향을 준 듯 하다.
- 2010년 2월 6일에는 외톨이야 표절논란이 터졌을 무렵 신해철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팬들과 대화를 하다가 씨엔블루가 인디밴드면 파리가 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와전되더니 '씨앤블루가 밴드면 파리가 새다'로 잘못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와전에 대해서 신해철이 사망 직전에 인터뷰한 것이 있다. 아래 인터뷰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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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미디어의 사냥감이 돼 버렸다는 생각이었어요. 6년 잠복기 직전 상황이죠. 인격살해가 일어나더라고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한 이야기들이 기사화됐어요. 그 사람이 한 모든 이야기들이 보도된다는 건 그 사람 말의 가치가 0이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라디오에서 하는 자잘한 이야기를 다 끄집어 내면 처음엔 왜곡되고 그 다음엔 하지 않은 말이 등장하기 시작해요. 그 걸로 난도질을 당했고요. 씨엔블루 논쟁이 대표적이죠. 팬들과 채팅하는 창에서 '씨엔블루가 인디밴드면, 파리가 새다'라는 말을 했어요. 처음에는 정확한 보도가 나가더니, 어느 순간 '인디밴드'에서 '인디'가 빠지더라고요. 인격살해라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 한 방송에서는 개그맨이 그 때 이야기를 또 꺼내더니 이번에는 씨엔블루에 FT아일랜드까지 붙여서 얘기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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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
- 선술했듯이 고스트스테이션에서도 라디오 방송에서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인디 음악을 정기적으로 소개하기도 했고, 특히 사건의 중심이 되어버린 와이낫이 자신의 곡인 '일상으로의 초대'를 리메이크 했을 때 기꺼이 피쳐링 참여하기도 했을 정도. 어찌보면 이 정도로 까이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 평소 인터넷의 파급력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런 파급력을 남용하는 일부 몰상식한 기자와 개티즌을 향해 반감을 가지고있는 그이기에, '인터넷으로 엿먹는 게 뭔지 너네도 함 처먹어 봐라'라는 의미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생명을 창조하게 된다. 2007년 6월 19일 새벽2시,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던 그는 돌연 청취자들에게 어떤 미션을 부여하게 된다. 이것의 시작은 한 사연이었는데, '화장실을 같이갔던 친구가 눈이 가렵다며 눈에 이물질이 들어갔는지 대신 봐달라 부탁했고, 속눈썹같은 것이 어설프게 눈두덩이에 걸려 있는 거 같아서 손톱으로 뽑아봤더니 엄청난 길이의 머리카락이었다' 라는 그로테스크한 사연이었다. 이것을 신해철은 장난스런 말투로 '그거 사실 기생충'이라며 너스레를 떨다가 '그 친구 빨리 병원 가봐야 할듯'하며 겁을 주더니 '움베르 파르가스 리코타시움'이라는 학명까지 만들어냈고 청취자들에게 "이 기생충을 내일 아침까지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로 띄워놓아라" 라는 명을 내리고 방송을 마친다. 방송 이후 이 기생충은 화려한 글귀와 광클로 무장되어 여러 커뮤니티에 퍼날라지며 떡밥의 크기를 불려나가게 되고 오전부터 정오가 살짝 넘어갈 때까지 네이버 급상승 검색어에 올라가기도 했다. 거짓 정보임을 알아챈 일부 네티즌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스트스테이션을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사건 발생 3일 후 신해철이 라디오에서 '여러분이 자랑스럽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기생충 창조에 크게 일조하여 마땅히 그 공을 인정받아야 할 두 사람'을 선정 후 자신의 콘서트 티켓을 무료로 보내주었고, '그래도 우리가 벌린 일이니 우리가 수습하자'는 의미로 유포했던 모든곳에 수습글귀를 올릴 것을 명하여 사건이 일단락 되었다. 아직도 포털사이트에서 '움베르'를 검색하면 자동완성 기능으로 뜨는 이 기생충의 정보를 열람할수 있다.
- 2012년 2월에는 극심한 복통으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했다. 이유는 담낭염. 수술 직후 자신의 복부에 있던 검은 덩어리를 사진으로 찍어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MBC 고스트스테이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인 말로는 마귀의 권능인 흑사리가 나온데다 검은 예언이 곧 이루어져 온 세상이 짜장면으로 뒤덮힐 것이며, 토마토 케첩을 만드는 기적을 행했다고 하는 둥 농을 쳤지만, 본래 한 시간 걸릴 수술이 다섯 시간이나 걸릴 정도로 꽤 큰 수술이었던 듯하다. 고스트스테이션 진행은 잠시 스폐셜편으로 대체되었고,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2시부터 4시까지 대체 편성되어 방송했다. 일단 신해철이 라디오 DJ에서 하차한 건 아니지만 6월이 된 시점에도 복귀하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7월, 20여일이 지나 드디어 라디오에 복귀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MBC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기에(해당 방송국 PD 역시 파업에 참여중이었다) 쉬는 김에 푹 쉰 듯. 복귀 후엔 놀라울 정도로 착실하게 방송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정규편성되었던 신해철의 마지막 라디오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후 라디오방송에 대해서 본의 아니게 그만두게 되었다는 뉘앙스의 트윗을 몇 번 했지만 라디오가 없는 삶을 몇 년 동안 살아보니 그것도 괜찮더라고 트윗했다. 비록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나 지상파 라디오에서 받은 상처가 없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 2014년도 8월 15일 전후로 일주일 가량,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대타 DJ로 들어와서 차분한 진행을 선보였다. 그런데 PD와 작가의 농간으로 예전 고스트스테이션에서 TTS를 동원한 헤비메탈 제국의 역습이라는 녹음본을 그대로 가져와 재방송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중간 광고 때, '본인의 의사와 상관 없이 재방송이 이루어진다'는 안내 메시지 겸 애드립을 29만원 성대모사로 한 걸로 봐선 순전히 강요당한 건 아닌 듯하다. 또한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노래가 잘리자 미안하다~ 드립을 치는 등 방송 순간순간 개드립 본능이 튀어나왔다. 프로그램의 주인인 배철수는 귀여운 정도로 평가를 한 듯.
- 과거 신해철과 같이 방송을 했던 SBS 라디오 PD의 말에 의하면 락소맥을 즐겨 마셨다고 한다. 방송 편집을 PD에게 맡겨놓고 먼저 고깃집 가서 고기를 구으며 야 빨리 와! 를 시전해서 헐레벌떡 가면 락커가 어떻게 일반인이랑 같은 소맥을 먹냐며 락소맥이란 걸 마시는데... 정확히 맥주와 소주의 비율이 반대인 소맥이라고 한다.
- 싸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했고 서로 친했다고 한다. 2014 올나잇 스탠드에선 추모곡으로 조용필의 '친구여'를 불렀다. 싸이 7집 수록곡 'Dream'을 발표 할때 신해철 형을 위한 곡이라고 발표했다.
- 국카스텐에게 "앨범 좀 빨리 내라 이 새끼들아" 라며 애정 섞인 디스를 했다. "장수 한 명이 앞장서서 성문을 뚫어야 병사들이 진격하듯, 뛰어난 밴드 하나가 성문을 뚫어줘서 후배 밴드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며 국카스텐을 독려하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해철은 생전에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고스트스테이션)에서 "이 정도 연주에 이 정도 외모에 이 정도 음악에 뭘 더 해야 밴드가 잘 될 수 있는 건가", "국카스텐 같은 밴드면 못해도 지금쯤 200~300만 장 쯤은 팔렸어야 되는 게 아닌가?" 라고 할 정도로 국카스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결국 2집 발매를 몇 달 앞두고 타계하고 만다. 해당 인터뷰 출처. 그만큼 신해철에게 사랑받은 데 대한 헌정인지 보컬 하현우가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 우리 동네 음악대장으로 출연하여 44회차에서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 각각 신해철의 곡 '민물장어의 꿈'과 'Lazenca, Save Us'를 불렀다. 그 결과 모든 대전자들을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며 가왕의 자리를 계승했다. 56회차에서도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선곡, 신해철로 시작하여 신해철로 끝내고 싶어하는 듯 보였지만 이번에도 승리하며 가왕자리를 이어나갔다.[80] 2016년 MBC 연예대상에서는 하현우가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소감으로 "하늘에서 저를 기특하게 바라보고 계실 신해철 선배님께 다시 한 번 이 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국카스텐 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다.
- 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선 광해군 때 권신 이이첨의 얼굴로 신해철의 얼굴에 수염을 붙인 얼굴을 그려냈다고 한다.
- 상술 된 길티기어라는 게임의 음악과 더빙을 작업하면서 길티기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시와타리 다이스케와도 공통 점이 어느정도 있는데 , 이시와타리 역시 길티기어의 더빙과 음악 작업을 하였고 이시와타리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솔 배드가이는 프레디 머큐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며 등장인물들 역시 퀸의 다른 멤버들을 모티브했다고 볼 수있는데, 신해철 역시 넥스트의 5.5집 ReGame 앨범 자켓 이미지를 퀸의 2집 앨범 자켓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한 적이 있다.
- KBS 2FM에서 새벽에 방송하였던 매니아 취향의 레전드급 프로그램인 "전영혁의 음악세계"가 낳은 스타이기도 하다.[81] 으로 보성고 시절이었던 1986년에 방송되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을 덕후 수준으로 좋아했는지라, 이 프로그램을 접한 것을 계기로 음악을 접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해철의 아버지는 “전영혁 때문에 음악을 하게 됐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서울대 갈 수 있는 머리인데 만날 밤에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듣느라고 서강대 갔다”고 말했을 정도. 나중에 신해철이 심야 DJ를 맡았을 때 전영혁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한 적이 있다.
- 2017년 2월 25일 모여라 딩동댕의 코너 중 번개타운에서 N.EX.T의 곡인 '날아라 병아리'를 극화한 '별이 된 얄리'가 방영되었다. 내용은 병아리 얄리가 죽어 실의에 빠진 펌핑조이를 번개걸이 위로하는 내용. 펌핑조이와 얄리가 해후하는 장면에서는 날아라 병아리가 합창으로 불려졌다. 다만 시청 연령 특성상 죽음에 대해 논한 가사들은 전부 제외했다.
- 처음 PC방에 갔을 때 약간 화가 났었다고 한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던 어린 학생들이 '야, 해처리부터 까'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내용으로 한 해설자가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를 하던 중 해처리가 새롭게 생기자 캐스터에게 그럼 저건 '신 해처리'인가요?라는 드립을 쳤다.
- 2020년 1월 3일, 영화 투자배급사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신해철이 25년 동안 남긴 음악과 삶의 흔적을 담을 영화 '그대에게' [82] 를 2020년부터 제작한다고 밝혔다. 신해철의 육성과 노래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넥스트 유니이티드가 공동 제작자로 들어갈 예정이다. [83]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발이봉로 10에 신해철이 솔로앨범부터 수많은 N.EX.T의 노래를 썼고, 죽기 전까지 사용하던 작업실와 거리를 통틀어 '신해철거리'가 일반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되었다. 그의 마지막 사진이 이 곳을 배경으로 찍었다.#
- 양쪽 팔이 잘 빠진다, 5키로 이상 물건을 들면 양쪽 손 어디든 빠진다고 한다. [85] 왼팔은 교통사고, 오른팔은 보트 사고로 다쳤다고 한다. 그리고 양쪽 발 연골막은 군대에서 훈련을 하다가 다 찢어져 버려서 공익 판정을 받아도 될 몸이였지만, 당시에 연예인 군대 비리 때문도 있고, 중대장이 사단장에게 욕 먹을까봐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 은근히 애플빠 기질이 있었다. Ghost touch의 미리 듣기 영상에서 Mac Pro(2013)를 약 5개씩이나 가지고 있었다. 신해철 6집 공개 무대 때 단 하나의 약속을 공개할때도 맥북을 사용한거 보면 애플빠가 맞긴 한 듯.
- 2011년 본인이 진행하는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신해철 본인이 선택한 무덤까지 끌고갈 베스트 11위를 선택한 적이 있으며, 1위는 해에게서 소년에게, 2위는 민물장어의 꿈, 3위는 그대에게이다.
14. 어록
어... 지금 별로 기대를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얼떨떨해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대단히 기쁘구요, 저희가 지금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신 부모님께 대단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음악 한다고 부모님께 마음 걱정 많이 끼쳐드렸는데, 이제부터 효도하고 싶습니다.
복수는 하면 안 됩니다, 용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화해입니다.'''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中
사랑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써나가는 연필'''이지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의 전에 있었던 것들을 지우는 지우개가 아니거든요.'''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 中
(전략)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째서 생방송이 음악 프로그램의 가장 메인 방법처럼 되고 있었느냐?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얄팍하게 엔터테이먼트를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 인거죠.
(중략)
10대 위주의 콘텐츠가 만연한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 10대는 문제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집단이 10대입니다.
'''10대가 일방적으로 주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20대, 30대, 40대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과 삶의 질과 음악이 무너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중략)
예쁜 사람, 잘 빠진 사람, 춤 잘 추는 사람은 그걸로 사랑을 받겠지만
얼굴이 아니라도, 몸매가 아니라도, 자기가 할 얘기가 있으면, 삶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으면 그것이 바로 스타가 되는...
저희는 현재 이런 시장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한쪽이 편중되어 있습니다.'''
음악을 일개 프로덕션이나 소수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음악 엔터테이먼트 권력이 생산 수단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대중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권리와,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자신들의 천부적인 행복추구권과'''
'''이런 것들을 시스템 개혁을 통해 돌려주어야만 우리의 삶의 질이 급속도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어집니다.'''
(중략)
OECD가 뭐 별겁니까?
오이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CD로 구우면 그게 OECD지
'''거기 가입했다고 우리 삶의 질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2005년 8월 22일 <세계 평화기원 국제 페스티벌 개최방안 토론회> 中
'''겸손은 미덕이잖아요.'''
그러니까 미덕은, 누군가 미덕을 발휘 했을땐 박수쳐줘야 되는 거고,
'''그렇지 않다고 욕을 먹어야되는 건 아니잖아요.'''
겸손하면 박수쳐주면 되는 거고.
겸손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은'''... 그런 정도란 것도 있는 거잖아요.
2007년 2월 21일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신해철 편 中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이미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데...
그 대신에, '''특히 불법으로 다운받는 사람들은 다운받고 욕이나 안했으면 좋겠어요.'''
아티스트하고 교감을 하면서 앨범을 구입한 사람이 아니면,
그게 뭐 노래가 좋네 나쁘네 하지 말고 '''그냥 닥치라는 거죠.'''
2007년 2월 21일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신해철 편 中
(전략)
예를 들면 뭐... 조기 교육이다 뭐다 열풍 불어서 애들이 뭐 괴롭다.
그러면 '''이 나라를 바꿔야 돼!''' 뭐 이럴 게 아니라
내 자식은 그렇게 안 기르고, 내 자식부터 그러면 편하게 어린이답게 놀도록 기르겠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니까, '''저 자신이 바뀌어야죠.'''
2007년 2월 21일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신해철 편 中
(전략)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처럼 음악가가 대우받던 시대는 지났고...
음악으로 돈을 벌어서 또 뭔가를 해보려던 그런 꿈을 꾸던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여전히 노래를 하고, 앞으로도 노래를 합니다.
여러분들이 없다면 방구석에서 혼자 음악을 만들고 나 혼자 듣고 그리고 던져두고 그리고 버려두겠지만,
저는 CD라는 게 없어지는 마지막 그날까지 앨범을 내고
CD라는 게 없어진 뒤에도 음악을 만들고 여러분들에게 다가설 방법을 다시 찾아낼 겁니다.
'''잘들 사시고, 행복하세요.'''
2008년 신해철 데뷔 20주년 콘서트 中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요?'''
저예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해자기 때문에... 문상도 못 갔고... 조문도 못 했고... 담배 한 대 올리지 못했고, 쥐 구멍에 숨고 싶은 생각밖에 없는데,
할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노래라도 한 자락 올리러 나왔어요.
우리의 적들을 탓하기 전에, '''물에 빠져 죽은 이를 우리가 건지지 않았다는 죄 의식을 우리가 버려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그 물에 빠진 사람이 '''다른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 들어갔다가 죽었는데, 그 사람을 우리가 건지지 못했다는 거,'''
죽을 때까지 쇠사슬로 발목에 감겨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난 다음에 저 X새끼들 욕을 해도 그 다음에 해야 된다고 봐요.'''
'''노무현의 자살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되돌려줄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위해 죽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목숨'''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이 노래를 드립니다.'''
저는 이 노래를 20년 간 불렀고, 그리고 노래 가사와 상관없이 이 노래를 아무데서나 불렀었고,
노무현이 탄핵을 당했을 때 광화문에서도 이 노래를 불렀고,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 번 이 노래를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비탄보다는, 앞으로 있을 희망을 늘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2009년 6월 22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헌정 공연 中
(전략)
딸이 아홉 살, 아들이 일곱 살일 때 들려주는 얘기...
애들이 스무 살, 서른 살 때도 똑같이 얘기하고 싶습니다.
공부 못해도 좋고, 뭐 학교 뭐 어떻게 돼도 좋고, 돈 못 벌어도 좋으니까, '''아프지만 마.'''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모두 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그냥 어떻게 해도 좋으니까, 아프지만 마세요.'''
그런 얘기 하고 싶습니다.
꿈을 이루면 모든 게 다인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고,
꼭 그 꿈이 행복이랑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거.
네가 무슨 꿈을 이루는지에 대해 신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니 오늘 잘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당장 행복한지 아닌 지에서는 항상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란 생각을 해봅니다.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
'''몸이 힘들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 보이지가 않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중략)
전혀 수입 없이 작업실에서 이렇게 앉아가지고 무작정 나오지 않는 곡을 기다려요.
모든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가족들의 못난이가 되면서,
내 가족들이 나한테 고통 당하는... '''나도 당장 그래, 나도 뒤질 것 같애, 힘들어!...'''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서 벗어나서, 정말 무슨 사이드 잡이라도 하나 구하면 당장이라도 생계에 조금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기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다 좋은데, 그 알바 자리 한 번이라도 내가 갔을 때, '''내가 다시는 이 작업실에 돌아오지 못할까 봐... 그렇다.'''
2014년 11월 2일[86]
JTBC <속사정쌀롱> 1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