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렴

 

1. 개요
2. 상세


1. 개요


신라 후기의 김씨 왕족. 신라 46대 문성왕의 후손이자, 나중에 56대 왕이 되는 경순왕의 백부(큰아버지)...라고 써져있지만 사실은 작은아버지다. 김관유의 아들이자 김유렴의 아버지이며, 형으로는 신라 후기의 이름난 화랑이었던 김효종(신라)이 있다.

2. 상세


관등은 잡간(匝干)이었고, 지대야군사(知大耶郡事) 벼슬을 지냈다. 그가 살았던 후삼국시대의 신라는 서라벌과 주변만을 겨우 통치하는 안습한 신세였지만, 어쨌든 그는 왕위에 매우 가까운 고위 귀족이었으니 그럭저럭 살았을 것이다.
901년과 916년 후백제의 대야성 공격을 막아낸 신라군의 총사령관이었다. 이후 920년에는 후백제에 의해 대야성이 함락되지만 이 당시에도 김억렴이 대야성주였는지는 기록의 부재로 인해 알 수 없다.
927년 견훤의 침공으로 신라 조정은 거의 힘을 잃었고, 935년에는 폐위된 전 후백제견훤이 한때 적이었던 왕건에게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후삼국의 대세가 왕건에게 있음을 느낀 경순왕은 마의태자, 김굉, 이순유 등 반대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건에게 나라를 바쳐 순순히 항복했고, 왕건은 대단히 기뼈하며 신라 왕실과 혼인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왕건은 29명(...)의 부인으로 유명하듯 전국의 유력 호족과 정략결혼을 많이 맺어왔고, 그 일환으로 신라 왕가와도 정략결혼을 원한 것이다.
경순왕에게는 적당한 혼인상대가 없었는지 김억렴의 딸 김씨를 추천했고, 그녀가 신성왕후 김씨다. 그녀의 손자가 고려 제8대 현종(고려)이 되었고 이후 모든 고려왕이 현종 계통이니 모두 김억렴의 혈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