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두(1913)
[image]
金正枓
1913년 ~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이명은 김정과(金正科).
1913년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애산마을#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중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순창군 단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1년 12월 자유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여 선전부 차장에 임명되었으며, 1952년 5월 자유당 잔류파로서 당시 장택상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 신라회(新羅會)에 가입하여 발췌개헌의 전위부대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발췌 개헌에 찬성표를 던졌다[1] .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임차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국회의원 임차주에 밀려 낙천되었다. 결국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김정과(金正科)'''라는 이름으로 출마하였으나 또 다시 자유당 임차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여담으로, 국회출석률이 불량할 정도로 저조했다고 한다#.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金正枓
1913년 ~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 이명은 김정과(金正科).
1913년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애산마을#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중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단체인 대한청년단 순창군 단장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순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1년 12월 자유당이 창당되자 입당하여 선전부 차장에 임명되었으며, 1952년 5월 자유당 잔류파로서 당시 장택상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목단체 신라회(新羅會)에 가입하여 발췌개헌의 전위부대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발췌 개헌에 찬성표를 던졌다[1] .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임차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에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국회의원 임차주에 밀려 낙천되었다. 결국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김정과(金正科)'''라는 이름으로 출마하였으나 또 다시 자유당 임차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여담으로, 국회출석률이 불량할 정도로 저조했다고 한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