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1971)
1. 소개
OB/두산, 한화에서 뛰었던 보성고[1] 출신의 1루수 겸 외야수.
2. 선수 경력
2.1. 두산 베어스
1988년 드래프트 이후 스카우트로 조의수, 홍길남, 송명철과 같이 OB로 입단을 하게 된다. 참고로 네 명 모두 계약금, 연봉 둘 다 8백만원에 계약했다. 1989년에 보성고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진입을 했다. 김종석은 장타력과 빠른 발로 유명했던 선수다. 그러나 기량은 출중하더라도 신경식, 김형석 같은 기라성급 선수들이 버티고 있었고 자잘한 부상과 불운이 겹쳐서 많이 나오지는 못했다.
94년부터는 주로 지명타자로 많이 나와서 그때나마 출장을 많이 했다. 또한 13경기 연속 안타를 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출장을 많이 하더라도 홈런은 고작 네다섯개밖에 없었고 오히려 2루타가 20개를 넘는 경우가 많았다.
OB 베어스 항명파동에도 관여하나 1995년에는 우승에 기여를 한다.
그러나 진정한 불운은 이 때부터 시작이었으니.... 바로 허리부상 때문에 어렵게 잡은 주전 자리를 또 다시 보내야 했었다. 98년에는 용병제도가 처음 생기고 나서 타이론 우즈라는 용병 때문에 주전입성에 실패했고, 이중계약 때문에 영구제명을 먹고 있었던 강혁이 제명에 풀려서 정말 자리가 없게 되었다. 또 99년에는 선수협파동까지 겹치면서 동계훈련에 빠진데 이어 2군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2.2. 한화 이글스
이제 설 자리도 없어서 더이상 못 해먹을 것 같아 은퇴를 하려는 그에게 손을 내민 구단이 바로 한화 이글스였다. 2000년 6월, 한화는 두산에게 1억을 주는 대신 김종석을 받아왔다. 김종석은 2000년에 .264에 8홈런을 기록해서 부활의 불씨가 생기더니 2001년에 .315에 16홈런 65타점을 기록해 제대로 부활을 했다. 프로에서 3할도, 두자리수 홈런도 13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또 다시 출전기회가 줄어들었고 대타나 지명타자로 간간히 나오다가 14년 프로인생을 뒤로 하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2] .
은퇴 후, 경기도 양주에서 사회인 야구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1] 전남 보성이 아닌 서울 송파구 오륜동에 소재해 있다.[2] 2004년 시즌 후 김종석이 방출될 당시 1995~2000년 시즌 중까지 베어스 재직 때 사령탑이었던 김인식 감독이 들어오면서 한화 프런트는 김종석을 포함하여 대부분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던 선수들을 대거 정리했다.(김종석-OB 베어스 항명파동에 가담, 한용덕(2004년 시즌 후 은퇴) - 빙그레 시절 비북일파 VS 북일파로 파벌이 나눠질 당시 북일파의 주요 인물, 장종훈(2005년 시즌 후 은퇴) - 빙그레 시절 비북일파 VS 북일파로 파벌이 나눠질 당시 비북일파(세광고)의 주요 인물)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