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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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2018년부터 2020년 6월 7일 홈 NC 다이노스전까지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았다가 자진사퇴 하였다.그는 화려한 투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꾸준한 투수였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투수였다.
이글스의 숨은 명투수 중 한 명. 이글스의 연습생 신화에 타자로 장종훈이 있다면 투수에는 한용덕이 있다. 다리를 최대한 높게 들어올린 후 대충 던지는 듯한 특이한 투구 폼을 지니고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배팅볼을 던지기 조금 더 편한 자세를 연구하다 만든 자세라고.
선수시절 등번호는 40번이었다. 감독으로 다시 돌아오면서도 역시 40번을 달았다. 이는 장종훈, 송진우 등 여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2. 불우했던 젊은 시절
그의 젊은 시절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원래 고향은 대구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8살 때 대전으로 이사하여 가난에 찌든 유소년기를 보냈다. 대전 천동초교 때 유격수로 야구를 시작했지만 덩치가 작은 데다가 실력도 그저 그래서 홀대를 많이 받았다. 북일고를 졸업하고 동아대 야구부에 진학하면서 덩치는 커졌지만, 이번엔 중학교 시절에 부상당한 왼 무릎의 관절염이 재발하여 결국 1년 만에 중퇴했다.
그 뒤로 자포자기하여 술에 찌들어 사는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야구를 잊기 위해 관절염과 약시를 숨기면서까지 16개월 방위병 판정을 받아 방위 복무를 하였고, 소집해제 후에는 잡부나 트럭 운전도 했다[4] . 그러나 야구를 끝내 잊지 못해 대전구장을 자주 기웃거리다가, 결국 1987년에 북일고 시절 은사이자 당시 한화의 전신 팀인 빙그레에 막 감독으로 부임한 김영덕 감독에게 "배팅볼 투수라도 시켜 달라"고 하소연하여 허락을 받고 연습생 신분으로 야구 인생을 재개했다. 그 뒤 3개월 후에 연봉 600만 원[5]#에 정식 선수로 등록, 포지션도 투수로 바뀌었다. 이때 타자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며 제구하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특유의 하이 키킹 후 대충 던지는 듯한 투구 폼도 (현역 시절 투구영상), 배팅볼을 상체를 이용해 던지면 팔이 아프니까, 조금이라도 오래 던지려고 연구하다가 하체를 활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배팅볼을 던지면서 완성한 것이다. 첫 1군 데뷔전은 1988년 7월 1일.
3. 선수 경력
처음엔 구종이 직구밖에 없는 등 투수로서도 그저 그랬으나, 1990년 전지훈련을 다녀온 뒤로 슬라이더를 장착하며 화려하게 변신하여 그 해 13승[6] 을 기록하는가 하면 1991년에는 17승[7] 을 거두며 한일 슈퍼게임 대표 선수로 선발, 4차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는 영광도 누렸다. 1991년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보면, 그 당시 최강 팀인 해태 타이거즈는 빙그레와 상대하며 8승 3무 7패로 아주 근소한 우위이기는 했지만 단일 팀에게 3무를 기록할 정도로 피튀기는 접전을 많이 벌였으며,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서로 상대 팀으로 만나 명승부를 펼쳤다. 그 당시 선동열이 투구수 10회 미만으로 한 이닝을 끝내면, 그 대항마인 한용덕 역시 10회 미만으로 끝냈다. 결코 선동열에 밀리지 않았던 그의 최고 전성기였다. 1993년에는 완투 1위를 달성할 정도로 분투했지만 팀은 부상자 속출로 인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연속진출 기록은 5년으로 끝나게 된다.
1994년에 해태의 '팔색조' 조계현과 다승 경쟁을 벌이며 16승을 올렸으나 강병철 당시 감독과의 불화, 대형 교통사고로 인해[8] 시즌 아웃되었다. 다행히도 1995년 무사히 복귀해 3점대 ERA와 규정이닝을 넘기며 자신이 여전히 한화의 주축임을 강조했으나, 승운이 안 따라주며 8승 13패를 기록한다. 승패만 제외하면 평균자책점은 전년도와 비슷했고, 이닝이나 FIP는 전년도보다 확실히 나았음에도 저 오버패 때문에 기량 하락의 우려가 피어나기 시작한다.[9]
그런데 1996년 ERA가 4점대로 상승하며 기량 하락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6년 연속 규정이닝을 돌파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던진 데다 전년도 큰 부상에서 갓 돌아오고도 관리 없이 180이닝을 소화한 후유증. [10] 그래도 111.1이닝에 8승 8패로 3~4선발 정도의 성적을 찍으며 어느 정도 체면치레는 했는데, 1997년은 기록상 보여지듯이 승운이 정말정말로 없었다. 25경기 중 11번을 선발로 나와서 평자책 4점대에 93이닝밖에 못 채운 건 그렇다 쳐도, 1승 8패가 뭔가...
그리고 1998년 한용덕은 계투로 뛰면서, 평균자책점 2.26으로 부문 3위를 찍으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계투로 131.2이닝을 기록하며 규정이닝을 넘기는 가운데 선발등판 횟수는 단 2회였고, 56경기는 리그 9위[11] 이자 구대성에 이은 팀내 2위였다. 게다가 당시 한용덕은 34세의 노장이었다. 아마 홀드가 좀 더 일찍 도입되었다면 1998년 홀드왕은 한용덕이 확실했을 만큼, 당시 한용덕은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12]
그러나 이 때 무리해서였는지 다시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미들맨으로 활약하며 부활하는 모습을 보인 한용덕은 다음 시즌인 1999년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들었으나 90.1이닝 동안 2승 7패에 ERA 7.47로 데뷔 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냈다. 때문에 그해 팀의 우승에 별 기여를 못했다. 2000년에도 선발진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김원형과 함께 리그 최다패(15패)를 기록하며 한화의 급추락에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해 8월 23일에 100승을 달성하는 경사가 있었다. 2001년 37세로 다시 부활하며 노장의 투혼을 보여주었으나, 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지 2002년부터 다시 하락세를 탔으며 2003년부터는 아예 불펜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2004년에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후 은퇴를 결정하여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최종 성적은 '''통산 472경기 출장, 120승 118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3.52, 개인통산 1,341탈삼진'''. 통산 다승 11위, 통산 탈삼진 7위, 통산 이닝 5위다. 이쯤 되면 충분히 명투수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지만, 같은 팀의 스타 투수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에 비하면 주목을 덜 받는 편.[13][14] 게다가 팀이 비인기 팀이어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분명 팀뿐만 아니라 한국야구사에 남을 명투수다.
그의 탈삼진 기록인 1,341삼진은 파이어볼러가 즐비한 역대 탈삼진 랭크 중 7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최고 구속은 140대 초반, 평균 구속 130대 중후반 정도로 강속구 투수라고 보기 어려운[15] 그가 탈삼진 랭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활약한 이유는 칼같은 제구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통산 9이닝당 볼넷 평균 허용개수는 2.19로 역대 12위. 10년 이상 선수 생활한 선수 중 4위이다.[16] 그의 주무기로는 1990년 전지훈련 때 익힌 슬라이더와 투심이 있는데, 그의 제구력은 상당히 절묘하여 카운트를 잡고 스트라이크존에서 공 반개 정도 빠지는 투심을 꽂아넣어 헛스윙을 유도, 삼진을 잡아내는 스타일이였다.
참고로 현역 당시의 등번호는 40번이었는데, 이 번호를 선택한 이유는 은퇴할 때까지 40승 정도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아서 고른 번호라고 한다. 그런데 은퇴할 때까지 거둔 승수는 40의 3배. 또 다른 설로 김은식의 야구의 추억에서는 40살까지 야구하고 싶다고 해서 달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건 은퇴 년도인 2004년이 대한민국 나이로 딱 40세가 되던 나이였다.
흑역사라 하긴 뭣하지만 불명예 기록도 가지고 있다. 11타자 연속 피안타(1993년 5월 9일 대 LG전~1993년 5월 18일 대 삼성전)와 4연타자 피홈런(01년 8월18일. 상대 타자는 이승엽-마해영-매니 마르티네스-카를로스 바에르가) #[17]
4. 지도자 경력
4.1.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시절
그 후 투수코치로 변신했는데,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 경험에 바탕한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어 이상군 투수코치의 별명인 '상군매직'(또는 SG매직)과는 반대의 의미로 '''용덕매직'''이라고도 불린다. 무능력자들이 넘쳐나는 한화의 코치진 중 제구실을 하는 몇 안되는 코치라는 평. 2009년에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못미더운 공만 던지던 양훈을 준수한 불펜으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18] 재미있는 것은, 한용덕 코치는 투수 조련에 있어서 제구보다는 구위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타입이다. 과거 유원상과 김혁민에게도 구위 강화를 위해 팔 각도를 더 올릴 것을 주문한 바 있으며, 양훈의 경우에도 제구보다는 구속과 구위 위주로 개조했다.
한화 팬들이 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상군 코치의 퇴출과 한용덕 코치의 1군 투수코치 복귀[19] 였는데 2009년 6월 22일 1,2군 코치의 이동으로 이상군 코치와 자리를 맞바꿔 1군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다만 자신에게 찍힌 사람은 잘 안쓰는 김인식 감독의 특성상[20] 프런트의 개입이라든가 차기 감독감으로 꼽히는 이상군의 화살 막아주기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다행히 이상군은 2010년에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겼다가 거기서도 삽을 펐다.[21]
2010년에는 이상군 코치가 짤렸고, 다른 투수코치도 정민철 코치여서 1군 코치로 자리잡을 거 같…았는데, 성준[22] 이 영입되면서 2군 투수코치로 밀려났다. 2010 시즌까지, 1군에서 망가져 내려오는 한화 투수들 응급수리해서 올려 보내고, 또 다른 망가진 투수들 내려받아 고치는 '응급실 전문의' 신세였다.
결국 성준이 삼성으로 떠난 2011 시즌에서야 다시 한화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초반에 류현진이 부실한 모습을 보여 불안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화 투수진의 방어율은 정말 마법을 부린것 마냥 쭉 내려갔다.
그런데 중반 시점에 어째서인지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가고, 정민철 투수코치 혼자서 투코를 보고 있는 상황. 아무래도 현재 1군에 있는 불펜들의 불질(유전어라든가, 윤불진이라든가...)때문인지 새로운 불펜진 수혈을 위한 보직이동이라는 카더라도 있는듯.
근데 아닌게 아니라 불펜진을 보면 정민혁, 신주영과 같은 필승 계투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보직 이동이 단순히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얼마 못 가서 (타자들의 득점지원 기복도 요인이지만) 1군 투수들이 대거 몰락했다. 류현진은 어깨 부상이 우려되어 전력 이탈[23] 했고, 이어서 양훈도 허리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김혁민, 장민제 등도 이전만 못한 부진을 보이고 있고, 그나마 안정적인 안승민도 역시 조금은 버거워하는 모습이다. 불펜이야 뭐어... 노장인 박정진이 2이닝이나 그 이상을 소화해야 하는 판국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필승조'가 사실상 없다.
어쨌거나, 그가 살려내거나 키운 투수들의 면면을 보면 한화의 암흑기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양훈의 성장이 대표적이지만, 이후 망가진 양훈을 '''다시''' 부활시켰고[24] ,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던 안승민은 2010년 8월에 1군 선발로 등판해 환골탈태에 가까운 변화를 보여주며 한화 마운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송창식과 장민재 역시 한용덕 코치의 작품이다. 완전히 무너졌던 김혁민까지도 부활시켰다. 정말이지 경탄이 절로 나온다. 흘러흘러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유원상의 슬라이더의 경우에도 한용덕 코치가 전수해준 슬라이더이다. 송창식이 2012년 이후에 한화 투수진에서 자리하는 위치와 장민재가 2016년에 스윙맨으로써 보여준 모습을 보면 한용덕이 없었다면 한화 투수진은 없었을 거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7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개최된 한-일 레전드 매치에서 중간계투로 나와 '''2이닝'''을 먹으면서 '''탈삼진'''도 빼앗아내는, 여전히 현역과도 같은 폼을 보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은퇴 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나서는 팔이 잘 안 올라가 예전처럼 던지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저 정도이니... 오죽하면 경기중 실시간 댓글에 (지금 계투 내리고) '''용덕이 형 투입'''시키라는 말까지...
2012년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 5월 12일 코칭스태프 개편 때 수석코치로 승격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8월 10일 부친상을 당했다.
4.2.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시절
8월 27일, 한대화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남은 2012 시즌 감독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감독 대행을 맡았다. 8월 29일 넥센전에서 6:7로 감독 대행으로서의 첫 승리를 거두었으며, 9월 1일에는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3:2로 승리를 하여 감독대행 이후 3연승을 거두었다. 한용덕이 감독대행을 맡은 이후 팀은 9월 21일까지 12승 6패를 거두며 이전에 비하면 엄청난 선전. 그리고 지난 9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LG를 잡아 탈꼴지 욕심도 드러냈다.관련 기사 9월 21일까지 7위 LG와의 승차가 2.5게임차였으니 불가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선수층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꼴찌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용덕을 욕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었다.
꼴찌로 떨어진 팀을 묵묵히 수습하면서 이전같이 허무하게 지는 경기를 줄여나가는 모습으로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는 "용왕"[25] 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시즌 막판 활약으로 감독 후보로 고려되기도 했으나, 결국 김응용 감독이 부임했고 2012년 10월 14일 사의 의사 표명을 했다. 관련기사 후임으로는 김성한이 수석코치로 임명.
참고로 2012년 한화 이글스의 승률은 53승 3무 77패, 승률 0.408였는데 이중 '''한용덕 감독대행 시절 성적은 14승 1무 13패, 승률 5할 1푼 9리로 상당히 선방한 편'''이다. 최근 5년간 한화 이글스 감독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감독인 셈.
4.3. 감독대행직 이후
시즌 후 거취를 바로 정하지 않아 몇몇 팀에서 러브콜이 들어와 많은 팬들이 불안해했다. 한편 구단에서는 해외 연수를 권유하였다.[26] 한화 마운드를 채울 용병 투수를 고르는 작업에 들어갔다. #
그러던 와중,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류중일 감독에 의해 투수 파트를 전담하는 코치진으로 내정되었다. 타이중 참사 이후, 당시 불을 질러댔던 차우찬을 추천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야구팬들 대부분이 류중일 감독이나 양상문 코치에게 책임을 물어서 크게 추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WBC가 끝난 후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마침 LA에 입단한 류현진에게도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다. #
마이너리그 시절 손수 캐치볼을 던졌는데, 하루에 200개를 던져도 멀쩡했다고...
2013년 6월 12일 모친상으로 잠시 귀국했으며 9월 14일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 이후 은퇴한 신경현과 함께 공익근무 복무 중인 선수들의 훈련을 돌보고 있다.
2014년 1월 시점에서도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직 코치진에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지 않다. 결국 프런트로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하게는 노재덕 단장의 요청으로 단장 특별보좌역이 되어 현장과 프런트의 가교 역할을 할 예정.
단장 보좌역으로 간 뒤에도 신설된 2군 구장인 서산 야구장에 메이저리그식 카메라 장비 도입을 건의하여 실행시키거나 ''''다른 팀에서 제의가 와도 절대 이글스를 떠나지 않겠다'''' 라고 인터뷰에서 언급하는 등[27] 한화 팬덤 사이에서 한용덕의 지지도는 점점 치솟으며 갓용덕이 되고 있다.
2014 시즌 5월 15일, 갑작스럽게 김성한 수석코치가 사임했다. 김응용 감독은 수석코치 없이 시즌을 마무리한다고 언급했지만 낮을 많이 가리는 노감독의 성격상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가교를 맡아줄 수석코치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그 때문에 후임 수석코치로 기용설이 있다. 그러나 김종모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베이스볼긱과의 인터뷰 #1, #2, #3, #4, #5, #6, #7, #8, #9, #10, #11
2014년 시즌 후에는 한화 팬들 사이에서 차기 감독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다. 구단 프런트 쪽에서 이상학 기자를 내세워 내부 승격설을 언론에 퍼뜨렸는데 이 내부승격의 유력한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이후 한화 팬덤은 김성근 데려오고 칰무원 싸그리 방출vs한용덕 승격vs이정훈 승격의 세갈래로 나뉘어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감독대행 시절 성적만 놓고 봐도 무난하지만 썩 뛰어난 정도는 아니었으며 또한 검증이 가능할 정도로 장기 시즌을 뛰어본 게 아니기 때문에 미지수라는 것이 내부 승진을 비판하는 측의 의견. 그리고 25일 저녁에 김성근 감독의 영입이 공식화되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박동희의 기사에 따르면 한화 구단에서는 내부승진으로 한용덕을 밀었는데 그룹에서 김성근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즈음에 브룩스 레일리를 영입하려 했으나 한화 현장의 선택은 KBO 리그 경력이 있는 쉐인 유먼이었고 결국...
그런데 투수코치 자리에 '김성근 사단' 출신인 박상열, 계형철 코치가 영입된 데다가 정민태 전 롯데 투수코치마저 한화 이글스와 계약하게 되어 입지가 더 좁아졌다. 게다가 김성근 사단의 핵심인 계형철 코치와 선수 시절 견원지간이었다는 소문이 도는 데다가#1#2, 김승연 구단주가 그의 선수 보는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프런트에서 남은 생을 보낼 듯 싶'''었'''다.
4.4. 두산 베어스 시절
그런데... 놀랍게도 두산 베어스로 옮긴다고 한다.[28] 보직은 2군 총괄 코치. 강석천, 조경택도 같이 두산 베어스로 갔다고 한다. # 팬들은 뒤의 둘은 제껴 놓고 후에라도 돌아오길 바라며 크게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후속 기사에 따르면, 이미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직후 사표를 제출했으나, 노 전 단장이 만류하는 바람에 수리가 늦어진 것으로, 특보라는 어정쩡한 자리[29] 에 오래 앉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특히 현장에서 더 일하고 싶은 생각에 결국 사표를 제출했고, 사표가 수리된 직후 두산 김태형 감독이 투수력 보강을 목적으로 직접 제의했다고 한다. 한용덕은 두산에서 '화수분 야구'가 어떤 건지를 배우고 싶다는 취지를 밝혔다.
2015년 6월 권명철이 봉와직염으로 말소되자 1군 투수코치로 콜업되었다. 6월 11일 권명철이 1군에 복귀했지만 권명철은 불펜코치로 갔으며[30] 한용덕은 계속 메인 투수코치를 역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포스트시즌에서 두산의 안습한 투수진들을 가지고 능수능란한 투수교체 타이밍을 보여주며 두산을 캐리하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키는 데 성공했다. 개인 통산 2번째 우승반지 획득. 그리고 한용덕을 내친 한화 이글스 프런트와 김성근 감독은 또 1패를 추가했다.
2016년부터는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병행한다. # 시즌 시작부터 두산의 투수진이 과거에 비해 대단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벌써 팬들 사이에서는 좋은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31]
한편 같은 시기 김성근 감독에 크게 실망한 한화팬들이 차기 감독으로 잊을만 하면 한용덕을 거론하고 있는데, 두산 팬들 역시 한용덕이 없으면 지금의 투수진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절대로 내줄 수 없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언젠가는 돌아가야겠지만, 적어도 1~2년이라도 더 남아서 두산의 투수진 및 투수 코칭이 자리를 잡도록 해 줬으면 하고 바라는 팬들이 많다.
11월이 될 때까지 김성근 감독의 유임 여부가 밝혀지지 않자 2016 한국시리즈가 끝난 이후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한용덕 코치를 차기 한화 감독으로 모셔올 예정이기 때문에 한국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진 발표하지 않는다는 썰이 있었다. 그러나 한용덕 때문이 아니라 NC에서 단장을 맡던 박종훈 때문이었고 김성근 감독은 유임 확정이라는 게 밝혀지자 한화팬들은 단체로 실망하고 있다.
2016 시즌 후 두산의 투수 파트 코칭스태프로 이강철, 조웅천, 이용호가 추가로 영입되어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를 병행하던 한용덕이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수석코치로 계속 갈 듯.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수석코치임에도 투수코치를 같이 하는지라 야수 쪽에서 불만이 많았다고 했었는데 # 이젠 안 그래도 된다.
하지만 2017년 4월 18일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다시 투수코치 직을 겸하게 됐다. 권명철 코치는 잔류군으로 사실상 강등.
2017년 8월 20일 김태형 감독이 게실염으로 입원함에 따라 20일 수원kt전부터 23일 인천 SK전까지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20일, 두산 1 : 2 kt
22일, 두산 10 : 6 SK
23일, 두산 4 : 1 SK
대행 성적은 3전 2승 1패.
특히 22일 문학 SK전에선 1번 타자 자리만 7번을 바꾸다가 야수가 모두 소진되어 지명타자인 에반스가 3루수로 가고 투수인 김강률이 1번 타자로 가게되는 촌극이 벌어졌는데 그 김강률이 적시타를 때려냈다. 내일이 없는 야구가 아니라 다음 이닝이 없는 야구를 경험한 두산 팬들은 신기해 하면서도 새삼 튼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나 뭐라나.....
17년 한국시리즈 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 오퍼를 받았으나, 팀이 흔들리는 와중에 기름을 부을까봐 한국시리즈가 끝나기 전까지 이적에 대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17시즌 모든 일정이 끝나고 팀을 떠날 때에도 좋게 떠난 듯.
4.5.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
18시즌 한화 감독 하마평에 강인권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 코치, 이상군 현 한화 이글스 감독 대행, 정민철 MBC SPORTS+ 해설위원 등과 함께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 중 이상군 대행은 구단이 해외 연수와 육성군 총괄 보직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는 소식이 들려 빠졌고, 한화의 포수 또는 투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하는 것을 보아 매우 유력하나 두산의 포스트시즌이 끝나지 않아 발표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정민철을 감독으로 내정했다면 굳이 발표를 미룰 이유가 없기 때문.
10월 30일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2018년부터 시즌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결정되었다. 감독 대행직 이후 한화 1군 스태프로는 5년만에 복귀한다. '''한화 새 사령탑, 한용덕 감독 선임 완료'''
10월 31일 총 3년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총 12억에 사인했으며 11월 3일에 취임식을 한다는 소식을 한화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다. 감독 선임 공식 발표 이후 한 인터뷰에서 박종훈 단장에게 먼저 구단의 방향성에 대해 물어봤고 '육성'을 강조하였지만 육성만 내세우면 팬에게 대하는 예의가 아니며 자신이 추구하는 바와 조금 다르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단 프런트에게 한용덕 코치가 롯데의 장종훈 코치, 해설가 송진우를 요구하여서 곧바로 장종훈 코치를 수석코치, 송진우 코치를 투수코치로 데려왔다. 그 외에도 두산에서 한솥밥 먹던 사이이자 이글스 출신인 배터리 코치 강인권, 3루 코치 전형도도 함께 왔다. 17시즌이 끝나고 11명 코치진을 무더기로 해임한 한화이기 때문에 더 많은 코치진들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32]
감독 선임후 인터뷰에서 한용덕 감독은 "구단이 내부육성이라는 장기적 비전으로 갈 길을 정해둔 상태이니 외부FA는 현재로선 어려울 것이 맞는 말이다" 라고 말하며 박종훈 단장과 함께 올 스토브리그에서 큰손 노릇을 하지 않겠다며 공개천명하였고 구단이 3년이라는 시기를 줬다는 것은 장기적인 비전을 가져다 달라는 의미이며 리빌딩에 집중 내부 육성을 통해 정상을 노릴 것이라며 말했다.#
오자마자 칸동님[33] , 용왕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후 웨이트를 통한 장타력 향상에 신경을 쓰겠다고 언급하면서 훈련 시 적당한 영양 공급과 휴식도 보장하고 있는데, 전임자의 스몰볼, 오버트레이닝에 부정적이었던 한화 팬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편.
시즌 시작도 전부터 인스타로 사고치는 외야수 덕에 밤잠도 몇날을 못자고 고생했다고 한다. 자식 키우는 아버지인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구단과의 협의하에 방출을 결정했다고. 이어 구단 내 내야수를 둘러싼 성 의혹까지 터져 타 구단 팬들은 벌써부터 까고 있다. 사회복무 중인 주현상마저 부상은 안 당했지만 뺑소니를 당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자 '''"액땜 한 번 제대로 한다."''' 라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다만 해당 내야수는 불기소처분을 받았고, 주현상도 큰 부상은 아니었다.
지역 사회를 위해 '''1억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했다. 감독 계약 당시 구단과 만난 자리에서 기부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스토브리그 결과 정말로 외부 FA 영입이 없었으나 “사실 누구나 감독이 되면 외부 FA 영입이 욕심이 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내가 구단에 요청해 FA 영입이 이뤄지면, 또다시 한화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서 욕심을 버렸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4.5.1. 2018 시즌
4.5.2. 2019 시즌
4.5.3. 2020 시즌
결국 기나긴 연패를 책임지고 자진사퇴하고 말았다.
5. 감독직 이후 행보
자진사퇴 뒤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코치, 감독 시절 누려보지 못한 여유를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2021년 2월 5일 자로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선임되어 경기감독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6. 평가
6.1. 2018년
시즌 초반에는 초보감독으로서의 시행착오[34] 를 꽤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안영명이라는 특급 셋업맨과 이태양, 장민재와 같이 이닝 먹어주는 롱 릴리프, 안영명을 포함해 송은범, 서균과 같은 필승조와 신인급 투수인 박주홍, 김범수, 박상원, 마무리 정우람의 가세로 불펜 운용은 한층 더 팬들에게 납득이 될 정도가 되었다. 한용덕 감독 본인이 이야기하는 '''불펜 투수 전원 필승조화'''가 시작된 것. 다만 유독 1명뿐인 좌완 계투 후보들이 하나같이 부진하고 있다. 뭐 다른 선수들이 잘 해주고 있고, 좌완이든 우완이든 잘 던지면 그만이지만...
정규 시즌 전반기때는 좌우놀이를 잘 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우타자 상대로 서균을, 좌타 상대로 박주홍이나 김범수를 원포인트로 기용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그들을 등판시킨 상황에서 반대 손 타자가 대타로 나온다고 하더라도 계속 밀고 가는 때가 훨씬 많았고, 마찬가지로 원포인트가 나와도 어지간해선 대타를 잘 쓰지 않는다. 물론 아예 좌우놀이를 안 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신인들이나 확실히 검증된 선수들에게는 같은 손 상대와 승부할 기회를 많이 준다. 또 한 가지 특징이라면 고의사구를 잘 쓰지 않고, 투수들이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서산으로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수 본인에게도 언론에도 직설적으로 전하는 편.
또한 경기 후반 접전 상황에서도 번트를 거의 대지 않는 빅볼 야구 성향이 강한데, 한화 타선의 타격 지표가 낮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타고투저라 1점의 가치가 크지 않은 현 리그 상황에 적합한 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감독은 "내가 현역일 때 상대 팀이 번트를 하면 '땡큐'였다."라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번트를 최대한 대지 않는 것은 감독의 이러한 선수 시절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뛰는 야구를 좋아하며 특히 1, 3루 상황에서의 더블스틸을 '''역대 감독들 중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좋아한다.''' 몇 년간 도루 관련 수치와 큰 연관이 없던 한화 이글스가 팀 도루 1위를 기록하게 됐을 정도. 하지만 7월 28일 기준으로 도루 관련 수치가 좋지는 않은데, 빠른 주자들뿐 아니라 최재훈[35] , 송광민, 심지어는 KBO 역사에 남을 똥차 김태균마저 도루 작전을 하는 탓에 도루실패도 많아진 게 크다. 그나마도 1,3루 상황에서 상대 포수들이 3루 주자의 홈스틸을 의식해 2루 도루저지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해서 도루 성공률이 상승한 것.
투수 기용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다소 실점을 하더라도 선발은 대부분 5이닝을 채우고 내려가는 경우가 많고, 접전 상황에서도 추격조가 등판하는 경우가 많다. 마무리 정우람 역시 1이닝 초과 등판이 거의 없으며 8회 위기 상황에서도 정우람을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3연투가 사라지고 투수 관리가 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한 부분으로, 마무리 정우람을 제외하면 3연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하다. 참고로 살려조란 단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인 2016년 송창식은 3연투 4번에 4연투 1번, 권혁은 3연투 3번, 박정진은 3연투 3번에 4연투 1번을 기록했다. 마무리라 등판 간격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셋 모두 필승조였는데 정작 2016년은 패가 더 많은 시즌이었다. 특히 송창식과 권혁은 부상으로 8월에 말소되었는데도 저 정도다. 이후 이태양이 3연투를 한번 기록하기는 했다.
투수를 보는데 있어서는 구위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또한 볼넷을 내주는, 속된 말로 '도망가는 피칭'을 굉장히 싫어한다. 김재영에게는 아예 도망가면 2군으로 내려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 이 역시 전임 감독인 김성근과 정반대의 성향인데, 김성근은 바깥쪽 승부로 안타를 맞느니 볼넷을 내주는 피칭을 더 선호했고, 이 때문에 같은 이닝이더라도 투수들의 투구수가 대체로 많은 편이었다.
5월 이후 야수와 투수 모두 적절하게 관리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지나친 빅볼과 믿음, 관리로 1점차 무사 1루 1할 최재훈에게 번트 대신 강공시켰다가 병살타를 치게 하고, 흐름이 이어질만하면 지나치게 공격적인 주루로 주루사나 도루자가 나와 빅이닝이 무산되거나, 접전 상황에 박주홍을 냈다가 결국 홈런을 맞고 지는 등 세밀한 부분에서의 아쉬운 운용도 있다.
그러나 한용덕 감독은 올해가 계약 첫 시즌이자 실질적인 감독 첫 시즌이며, 팀도 이전에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며 스몰볼에 집중했다가 얻은 실패를 재고하고 선수들 스스로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는 방향전환이 필요한 때이며 한용덕 감독은 이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1승과 미래를 바꿨다는 시각의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대다수의 팬들 역시 납득이 가는 운영이라는 평이다. 노련함이나 원숙미를 보이기보다는 갈팡질팡하곤 해도, 큰 그림을 그릴 생각이 전혀 없이 두 시즌 동안이나 팀의 근간을 말아먹은 김성근 감독에 질릴 대로 질린 팬들으로서는 한용덕의 운용에 미숙한 점이 있더라도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운용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편. 물론 이상군 대행이 박살난 팜에 씨앗을 뿌린 덕도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10년 동안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했고 그마저도 고작 2~3년 전인 김성근 감독 시절에는 선수층이 초토화날 뻔했던 상황에서 신인 감독이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선수들을 레귤러급으로 만들어냈고, 좋은 성적으로 높은 순위에 진출했다는 것은 단지 운이 잘 따라준 것으로 치부하기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실제로 5월, 한화 역사상 최고의 한달을 만들어 내며 비상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타선의 침체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편이어서 상위권 팀과의 매치가 줄지어 있는 6월이 최고의 고비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그 우려를 불식시키듯 월간 승률 6할+를 기록하면서 한화를 2위에 안착시키고 있다.
시즌 후반 들어 좌우놀이가 꽤 심해졌다. 어떻게든 좌타만 나오면 박주홍이나 김범수를 쓰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좌투만 나오면 백창수를 대타로 기용하다 말아먹곤 했는데 백창수가 좌투 상대 타율이 더 낮은건 모르는 듯 하다. 선발 투수가 잘해줘도 좌우 놀이때문에 교체하고 투수교체만 나오면 지나치게 좌우균형을 맞추려다 역전패를 당하기도 한다.
오히려 선수를 키워내고 최대한 잠재력을 써먹는다는 점에서 김태형 감독과 두산 베어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데, 실제로 전임자가 바닥으로 떨어트린 팀을 추스려서 강팀으로 만들었다든지, 주저없이 1군과 2군 사이에 선수를 올리고 내리면서 라인업을 꾸준히 돌리면서 빅볼을 지향하는 등의 모습은 확실히 삼성보다는 두산과 맞닿아 있다. 안그래도 한 감독이 두산에서 2년간 수석코치를 하다 왔고, 2015년 당시 두산에 가면서도 두산 야구를 배워서 오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 편이 설득력이 있다.
흥미로운 건 김태형 감독의 가장 좋은 수완으로 구단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이게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려면 일단 구단의 능력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 분석과 지원을 제대로 받으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좋은 야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용덕 역시 의사소통에 있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지만, 그게 이렇게 빛을 발하려면 일단 한화 이글스 프런트의 역량이 받쳐줘야 한다. 결국 한화가 두산식 야구를 한다는 것은 감독도 감독이지만 박종훈 단장이 이끄는 '''프런트가 받쳐주고 있다'''는 뜻이 된다. 지난 몇 년간 한화를 거쳐간 감독들이 전부 구단과 좋지 않게 끝난 것을 감안할 때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고, 이 체제가 장기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단기전에 접어들면서 시즌 중 실패한 선발투수 육성, 장종훈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인한 타격 붕괴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가 뒤늦게 터지면서 가을이 오면 호구가 되곤 하던 덕장들의 실패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36][37]
6.2. 2019년
사실 2018 시즌 3위라는 성적을 낸 것은 불펜의 일시적인 회복과 다른 팀들[38] 의 자멸, 그리고 WAR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았던 타격 WPA 등의 행운이 겹친 결과였으며, 2018 시즌 투타에서 좋은 성적을 낸 것은 대부분 베테랑들이었다는 점에서 아직 리빌딩이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러한 점을 인식한 한용덕 감독도 외부 FA에 관심을 두지 않는 등 리빌딩 기조를 유지했다. 당장 팬들부터 2018시즌 시작 전 가을야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한화의 전력을 약하게 평가했고, 2019년 역시 2018년에 비해 크게 보강된 부분은 없었다. 게다가 권혁, 이용규 등 주전급 베테랑들이 팀을 떠나거나 항명으로 팀전력에서 이탈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2019년의 성적이 작년 시즌만 못할 것은 예상된 일이었으며, 단순히 작년 성적과의 비교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리빌딩이나 신인 육성, 전력 유지 등의 면에서 평가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시즌의 1/4 정도를 치른 4월 말에서 5월 초 시점에서는 좌우놀이에 대한 집착과 박주홍, 김민하, 백창수 등 일부 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기용 문제[39] , 이닝쪼개기 등의 문제가 주로 지적받고 있다. 특히 작년 후반기에 주로 지적된 좌우놀이는 더 심해져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되는 박주홍은 좌타자 상대 피 OPS가 9할을 넘어가는 데도 꾸준히 좌타자만 등장하면 기용되다 5월 2일 경기에서 중요한 장면에 투입되어 역전을 허용하여 패배의 빌미가 되었고, 5월 4일 2번 지명타자에 작전을 하기 위해 이창열을 집어넣고 상대적으로 기회를 덜 받은 변우혁을 2군으로 내리는 등 경기 운용이 구시대적이며 신인에 대한 기회가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5월 말 시점에서의 문제점은 역시나 타격. 시즌 초 무너지던 선발진은 안정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펜 관리도 원활하게 되고 있다. 비록 작년만 못하다고는 하나 불펜 WAR 4위(5월 31일 기준)로 작년 불펜의 핵이었던 송은범과 이태양의 부진을 감안하면 충분히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시즌 초 잠시 좋았던 타격은 다시 작년 수준으로 회귀하여 전 지표에서 최하위를 다투고 있다. 2018시즌 타격 부진에 빠져 있던 하주석을 대하는 태도로 대표되는 소극적인 타격 문제 개선 의지와 2019시즌 정은원의 많은 수비 이닝 등 야수 관리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정은원이 팀 타선의 핵심인 상황이라 빼면 성적 좋은 선수를 빼서 타선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하는 층이 일정 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은원이 이제 프로 2년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체력 안배는 특히나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특히 리빌딩 시즌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는 흔히 지적받는 경기 운용 문제보다 오히려 이쪽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단, 당장 한화가 직면한 타격 부진 자체는 한용덕의 답없는 시즌 운용보다는 한화의 고질적인 뎁스와 육성 시스템, 그리고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 쪽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직전 시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본래대로의 성적으로 회귀한 한대화/2012년 문서에도 비슷한 말이 쓰여 있지만 한화의 얇은 뎁스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암흑기 기간 동안 말로는 그렇게 리빌딩을 외치면서도 김성근 시절 젊은 군필 외야 자원인 오준혁과 노수광을 트레이드로 KIA에 보내는 등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팀 타격 지표를 갉아먹는 가장 큰 원인인 외야 쪽은 1군에서 그렇게나 비난을 받는 백창수와 김민하가 그나마 가장 좋은 축에 들 정도로 심각하다. 이러한 뎁스 문제나 성적 문제를 부임 1년차인 초보 감독 혼자서 단기간에 바로 해결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분명 무리인 것도 사실이나, 적어도 장기적으로라도 개선되는 부분을 보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장점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어찌 되었든 시도되는 신인 기용과 투수 관리이다. 노시환을 시작으로 변우혁, 이원석, 박주홍, 김성훈, 박윤철, 김진욱, 김종수, 김이환 등 신인 내지는 신인급 선수들이 시즌 초부터 활발하게 1군에 얼굴을 비추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노시환과 박주홍은 시즌 초반 기회를 상당히 많이 받았고 후반기 들어 김이환, 유장혁, 장진혁 등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비록 일부 선수들의 과도한 기용이 문제가 되는 것도 사실이나 초반부터 돈도 덜 들고 어쨌든 에이징 커브가 오기 전이라 성장 가능성은 있을 적극적으로 신인들을 기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바람직한 일이다. 투수 관리 측면에서는 주로 투구수 기준으로 투수 교체를 하는 탓에 이닝 쪼개기와 연투가 다소 많은 편이지만, 등판 횟수와 불펜 투구수 등의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볼 때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순위 역시 2018 시즌 불펜의 핵이었던 이태양이 수비 불안과 혹사 문제로 무너졌고 송은범이 연봉 협상 후 5점대의 평균자책점과 0점대의 승리기여도를 찍다 트레이드되었으며, 마무리 정우람도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4경기 기준 16승 18패로 성적은 18시즌과 동일한 상황이지만, 트레이드나 육성선수의 정식 등록 등을 통한 소위 '슈퍼스타급 선수'의 등장 가능성이 거의 없는만큼 19시즌 가을야구 진출에 대해선 대부분의 한화 팬들은 부정적이다.
그리고 팀 운영과는 별개로 1선발로 점찍은 서폴드를 굳이 샘슨을 '버리고' 데려왔다고 이야기하는등 인터뷰가 너무 직설적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런 식의 인터뷰는 작년에도 드물지 않았다. 그때야 우주의 기운으로 가을야구를 했으니 자동적으로 묻히거나 오히려 비호를 받았지만 올해는 그게 아니니 비호도 묻힐 상황도 안 나와서 두드러져보인다. 시즌이 진행되면서 스스로 조급했다거나 경솔했다고 다시 인터뷰하는등 어느 정도 피드백을 하려 노력하는 면을 보여준다지만 냉담한 분위기. 어차피 지금 바꿔봤자 당장 어느 감독이 온다한들 한화가 갑자기 우승권까지 순위가 급등할 팀도 아니라는데 의견이 모아지는 편이지만 시즌 내지는 올스타전 끝나자마자 미련없이 작별하기를 원한다는 의견도 모아진 상황이다.[40]
여담으로 한용덕 감독의 미숙한 투수 교체 등 실책들을 무작정 감싸기만 하는 일부 한화 팬들을 야갤 등지에선 털리타라고 부른다. 모티브는 수염+노리타로 추정. 19 시즌 올스타전을 앞두고도 야수 운용이나 대타 작전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데이터없이 감으로 투수를 바꿨다가[41] 역전당하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한무당 내지는 털무당이라고도 간혹 불린다.
현실은 빙그레를 넘어 이글스 역사상 월간 최저 승률, 6년만의 8연패를 기록하며 팀을 꼴지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책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전전 감독을 넘어 이글스 사상 최악의 경기운용 능력을 지닌 감독이다. 팬들은 이제 욕하기도 지쳤으니 롯데처럼 단장과 손잡고 팀을 떠나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전전임 감독이나 전임 감독이 아무리 못한다 못한다 소리 들었다 한들 최소한 한 달동안 5승도 못찍으면서 리빌딩한단 소린 안했다. 허나 인터뷰를 봐도 물러날 생각은 없는 듯 하고 그룹 역시 다시는 보기 싫은 감독 1, 2위를 다투던 전전임 감독과 전임 감독에게마저 2년이나 기회를 줄 정도로 '으리'를 여전히 중시하는만큼 팬들이 바라는 일은 시즌 종료 전까진 어려울 듯.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선수 관리, 특히 베테랑이든 유망주든 가리지 않고 일단 한 번 찍은, 특정 선수에 어마어마한 집착을 가지고 휴식없이 퍼지게 만든다는 점이다. 정은원의 경우 올 시즌 최다 타석을 기록하고 있다. 우천취소인 경기를 고려한다면 거의 풀출장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최재훈은 아무리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다지만, 백업 포수인 지성준이나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김창혁이 있음에도 거의 교체되거나 2군 한 번 가지 않고 사구에 맞든 파울 타구에 맞든 매경기 9이닝에 가깝게 소화하고 있다. 오선진은 시즌 초부터 허벅지 마사지를 해가며 경기를 출전하다 햄스트링으로 이탈하였고, 조급하게 복귀시켜 허리통증으로 지속적으로 교체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특히 이 선수들이 자신이 친 타구에 맞거나 컨디션 난조가 있어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뛰게 하는 모습은 선수 관리에 대한 개념이 있기는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정도이다.[42] 정은원에 대한 인터뷰에서 '야무진 친구라 이겨낼 것'이라는 답변으로 많은 팬들의 이성을 잃게 했을 정도로 선수 관리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어 보인다. 당장 올해 은퇴한 이범호가 650경기 연속 출장 이후 급격한 유리몸으로 고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43] 한용덕의 선수 기용이 이 팀의 현재와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전임 감독이 정우람을 쓰듯 권혁을 무리시키다가 심각한 구위 저하가 일어났듯 오지환, 황재균같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빠른 00년생의 선수를 혹사시키다 부상이나 부진을 겪는다면 리빌딩과 세대교체는 전임 감독이나 개인적으로 껄끄러운 베테랑들 쫓아내기 위한 면피용 발언이었냐며 상상 이상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8월 16일까지도 탈꼴지가 불가능해지고 리빌딩의 ㄹ자도 꺼내기 민망한 뎁스가 이어지자 타 팀 팬들은 전전임 감독과 전임 감독을 재평가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소수의 울분에 찬 한화 팬들은 끊임없이 한대화의 지도력을 재평가하고 있다.
결국 8월 말 자신이 내쳤던 이용규와 다시 손을 잡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19 시즌 실패의 종지부를 찍었다. 물론 19시즌 종료 시점까지는 육성군에 박아두며 쓰지는 않으니 탈꼴지와는 아무 상관 없다지만 선수와의 기싸움에서 패배한 꼴이 되었으니 시즌 종료 후 자진사퇴 형식으로 짤릴 것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구단 내부에서 어쨌든 10년만에 가을야구를 해본만큼 처참한 실패를 거울삼을 것을 기대해 유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팀의 추락과 맞물려 전체적으로 경기 운용 능력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다만 실제로 한용덕의 경기 운용 능력이 유달리 떨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야구 감독이 실제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은 기껏해야 ±2경기 정도로 크지 않다는 미국 쪽 분석이 있다. 2018 시즌 피타고리안 승률과 불펜 지표가 유달리 좋았던 것도 작년에는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능력에서 이유를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2019 시즌 이후로는 그냥 플루크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팬들은 경기에 졌을 때 그 원인을 특정 투수 교체 하나, 특정 작전 실패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실제 어떤 경기의 패인이 단 하나뿐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실제로는 득점 지원 부족 등의 다른 복합적인 이유로 패하는 것이고, 이것은 다시 말해 팀의 전반적인 전력이 약하다는 뜻이다. 암흑기 초중기에 한용덕이 한화에서 투수 코치를 한 적은 있으나 투수코치로서의 평가는 좋은 편이었으며, 한화가 암흑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이후로는 두산에 있었으므로 팀의 약한 뎁스 중 한용덕의 지분이 그렇게까지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 따라서 평가할 때는 투수교체와 같은 부분보다는 선수 기용과 관리 등의 부분을 평가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한용덕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올 시즌의 한용덕을 평가할 때 처음부터 팀의 목표가 리빌딩으로 잡았던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실제로 이번 시즌 한화의 행보를 보면 직전 시즌 3위라는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시작 전 FA 영입을 일절 하지 않고 고졸 신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등 리빌딩이 목적인 팀의 행보를 지속적으로 보였다. 이는 최소한 암흑기 내내 반복되던, 처음에는 5강을 목표로 하다가 시즌 후반 5강이 절망적이게 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면피용으로 리빌딩을 언급하던 패턴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으며, 실제로 2019 시즌 드러난 뎁스 부족 문제를 보면 리빌딩 기조를 유지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참가 팀의 절반이나 가을야구에 올라가는 좁디 좁은 리그서 성적이 안 나오는 리빌딩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는 팬들도 있고, 실제로 키움처럼 공격적인 투자나 대대적인 리빌딩 선언 없이도 꾸준히 성적을 내는 구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화는 10자리 수 비밀번호를 찍는 동안에도 14년에야 2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정도로 제대로 된 리빌딩을 시도한 적 없었다. 김응용 시절에는 외부 FA만 3명을 영입하며 육성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고,(FA 2명이고 이태양 키우지 않았나) 심지어 전임 감독 시절에는 FA 선수들을 포함한 다수의 베테랑 영입, 내일이 없는 투수운용 등으로 대놓고 윈나우 스탠스를 보였으면서도 가을야구를 못 갔다. 애초에 리빌딩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선수 뎁스가 부족해서 성적이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앞뒤가 뒤바뀐 모순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이용규를 내쳤으면서도 다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당장 팀의 외야 자원이 부족하고, 이동훈과 장진혁 등 주요 유망주가 군 미필이기 때문이라는 점이 크다.[44] 그리고 이 역시 그 감독 시절 대책 없이 노수광, 오준혁을 트레이드로 타 팀에 넘겼던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전성기 시절부터 쭉 육성에 소홀했던 것이 10년 간의 암흑기로 돌아온 것이고, 작년 3위가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화의 국내 선수 뎁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11년 한화는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대타 성공률과 피타고리안 승률 등 사실상 운으로 예상 밖의 높은 순위(8위 중 6위였지만)를 기록했는데, 김태균, 박찬호와 송신영 등이 가세하니 팀 전력이 가을야구권이라고 착각한 프런트에서 바로 다음 시즌 가을야구를 주문했다가 처참한 뎁스만 드러내고 다시 꼴찌로 회귀한 사례가 있다. 지금에서는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야왕이라며 재평가도 받는 한대화지만 당시에는 2012년 8위로 팀을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돌대화라 불리며 지도력에 대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한화 이글스/2010년 문서와 한화 이글스/2011년 문서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당시에도 주전 대부분은 30대였고, 제이 데이비스 의존에서 비롯된 외야 뎁스 빈약이 특히 심각했는데[45]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이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한화가 내부 육성에 매우 소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한대화도 노망주 박정진을 지켜내고 하주석, 양성우 등을 발견하는등 선수단을 재건하려 애썼던 것은 사실이나 2군 구장도 없고 외국인 투수들은 하나같이 못 던지고 총 연봉은 단 28억인 팀이었던지라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단 군 문제 해결 정도였다. 선수들 군대 보내고 욕먹다 보면 시즌이 끝나있었을 정도니...
물론 성적이 안 좋은 것과 별개로 리빌딩 시즌이라는 점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문제점이 여럿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2군에서 제대로 다듬어지지도 않은 고졸 신인 선수들을 1군에 지속적으로 기용하는 것은 선수들의 성장을 외려 더디게 할 수 있으며, 팀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선수가 지속적으로 부진함에도 2군에 내리지 않거나, 수비 이닝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좌우놀이에 집착하여 안 좋은 성적에도 꾸준히 등판하게 하여 하주석, 정은원, 박주홍 등의 성장을 막거나 체력 저하가 오게 한 문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이는 팀의 기조를 리빌딩으로 잡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오히려 리빌딩 시즌이기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리빌딩을 목표로 한 시즌치고는 충분히, 골고루 신인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하기는 힘들며, 이는 이번 시즌 한용덕 감독이 비판받는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 문서에서 지적하는 문제 모두가 감독의 문제 내지는 감독 책임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감독이 성적 못 내면 비난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애초에 암흑기 시절부터 쌓이고 쌓였던 문제들을 한 해 성적 안 나오고 있다고 모조리 초보 감독 한 명에게 책임지라 하는 것도 지나친 요구일 뿐이다. 전임 감독을 그리워하는 몇몇 야구팬들의 망상과 달리 프로 스포츠 감독이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미약한 뎁스는 도깨비 방망이 두들기듯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화 팬들에게 금지어 취급 받는 전임 감독 역시 전성기였던 SK 시절에는 투수를 갈든 심판에 대놓고 항의하든 간에 4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갈 정도로 성적이 잘 나왔기 때문에 칭송받았고, 그 여파로 생긴 문제들은 후임 이만수 감독이 본인 문제라고 보기 힘든 것까지도 모조리 뒤집어썼다. 시즌 시작 전만 해도 베테랑 홀대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투수진만 해도 제 몫을 꾸준히 해준 안영명과 정우람 모두 서른 중반이며 야수진 중 정은원, 지성준, 장진혁 정도를 빼면 주전급 선수들은 거의 다 서른을 넘겼다. 오히려 한화에서 방출한 배영수는 두산에서 스탯티즈 기준 WAR 0 전후를 기록했고, LG로 이적한 심수창은 시즌 초반 롱릴리프로 나온 몇 경기를 제외하면 거의 2군에만 머무르면서 설령 한화에 남았더라도 성적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임을 증명했다. 이 때문에 주전 대부분이 서른 중반인데다 군필 20대조차 몇 없는 팀의 암울한 현실을 아는 소수의 팬들은 오히려 더 과감하게 리빌딩을 시행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0승을 거둔 외국인 투수 둘과 외야수 호잉이 확실히 제 몫을 해주었음에도 꼴지나 다름없는 성적을 낸만큼, 토종 외야수와 선발 투수는 내후년에 발굴해야만 하는 과제도 주어진 상황.
일반적으로 리빌딩의 성과가 나오는 (나와야 하는) 시점이 리빌딩 개시 후 수 년 이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19 시즌의 운용과는 별개로, 장기적으로 보아 한용덕+박종훈 체제의 리빌딩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수 년 후에야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이전 감독들과 달리 본격적으로 리빌딩을 시도했다는 정도의 평가를 받을 여지는 있겠지만, 결국 감독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므로 수 년 내로는 리빌딩의 성과가 보여야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6.3. 2020년
여전히 좌우놀이를 계속하며 이해가 가지 않는 불펜투수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2019년에 박주홍을 쓰면서 진 경기는 다 잊은 것인지 접전 상황에서 패전조를 내고 역전당하면 승리조를 내는 이해 불가능한 작전을 계속 낸다. 투수 혹사를 덜 하려 하고 외야진이 정진호와 이용규 덕에 안정화되었다지만 단지 그뿐. 기본적으로 필승조로 쓸만한 선수와 추격조로 쓸만한 선수들이 시즌 시작 전에 구분되어 있어야 하는데 한용덕의 투수기용은 이 두 부류가 완전히 뒤섞인채 뒤죽박죽인 모습이며 심지어 필승조로 쓸만큼 최근 기록이 괜찮은 투수는 경기가 뒤집히고 나서야 등판시키며 쓸데없는 공을 던지게 하고 있다.
시즌 개막 후 키움과의 첫 시리즈에서 투수운용과 작전지시에 대한 능력에 슬슬 의문이 쌓이고 있는 중이다. 승부처에서 필승조를 내지 않고 소심하게 대응하다 역전당한 뒤에야 필승조를 내서 투수를 낭비하거나 번트를 대지도 못하는 타자로 번트 작전을 대놓고 실행하여 미리 대비한 상대에 농락당하는 등 누가 봐도 실패할 작전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을 어이없게 내주니 팬들은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터질 노릇.[46] 물론 행복수비 끝에 두 자릿수 점수를 내주고 철저하게 패하거나 보직을 파괴하거나 팀에 애정조차 보이지 않고 팀 운용을 아예 나 몰라라 놓아버리는 등 최악의 모습은 아니지만, 1점 차로 지든 10점 차로 지든 순위 매기는 방법은 똑같으니 개선되지 않으면 빨리 경질하고 다른 감독을 불러오라는 비웃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47] 시즌 초반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시간 두고 개선될 것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이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팬들이 걸지 말라는 더블스틸을 걸다 호잉과 양의지가 홈에서 충돌하며 실패한 뒤 호잉의 스타트가 느려서 실패했다는 변명을 하고, 채드 벨이 돌아 오자 2경기 연속 부진했던 장시환이나 구속 탓에 한계가 있는 장민재가 아닌 가장 가능성이 있던 김이환을 중간 계투로 돌리는 등 팬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팀 운용을 계속 하는 것으로 보아 답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가능성 있는 유망주들더러 팬들이 '그냥 태업해서 감독 눈에 띄지 말고 감독 재임 중엔 1군에 올라오지 말라'는, 경질 직전의 감독 시절에나 볼법한 말을 할 정도로 여론은 최악이다. 김이환한테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하더라는 변명은 덤. 팬들은 암흑기에 책임이 있는 감독들이랑 다를 게 뭐냐며 아연실색. 언제까지 전임 감독 모셔오라는 소리에 시달리기 싫기에 더더욱 분노하고 있다.
김태형에게 배워온 '''외국인 투수 도살자'''의 위명은 올해에도 여지없이 발휘되어 19시즌 가을야구 좌절된 뒤에도 꾸역꾸역 이닝 먹인 채드 벨은 불펜 출신이 단기간에 무리하게 많은 이닝을 소화한 후유증으로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결국 주력 구종인 슬라이더가 완전히 봉인되었다.
내야 엔트리 운용 역시 3년 내내 발전이 없다. 전 시즌 무리한 수비 위치 변경에도 2할 7푼을 기록한 플레잉 코치급 선수는 버릴 거면 리빌딩을 천명한 만큼 야수 뎁스라도 두껍게 해둬야 하는데 휴식이나 말소가 필요한 선수는 해줘야할 선수라며 끊임없이 선발 출장시켜 게임을 말아먹고, 기회를 받아야 할 조한민 등의 선수는 벤치 워머로 만들거나 노시환처럼 본 포지션인 3루가 아닌 유격수로 계속 출전시키는 등[48] 정은원은 그냥 얻어걸렸다는 소릴 절로 나오게 만들고 있다. 선수 입장에선 1군 생활을 하고 분위기를 느끼며 동기 부여를 얻을 수도 있지만 계속 벤치워밍만 하느니 차라리 2군에서 충분히 경기 경험을 쌓아서 정말 성장했을 때 기회를 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49] 이 지경이다 보니 유망주더러 그냥 감독 눈에 띄지 말고 임기 끝까지 1군엔 오지 말라는 악담까지도 나오고 있다. 정리하자면, 적당히 승수를 쌓든지 세대 교체라도 확실하게 해놓고 떠나든지 당장 사퇴하든지 셋 중 하나는 하라는 게 팬들의 바람일 따름이다. 하지만 5월 말부터 6월 3일까지 10연패를 찍으며 커리어 사상 첫 두자릿수 연패라는 불명예까지 추가했다.
한화 팬들 중 감독이 팀 레전드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팬들은 거의 없고, 싫긴 하지만 그래도 비밀번호 단절 및 리빌딩 시도의 성과는 인정하는 약간의 팬들, 3위의 성적은 우주의 기운을 받은 것이었고 19 시즌 후반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진짜라며 비판을 더 많이 하는 대다수의 팬들,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라는 일부 팬들로 나눠진 상황인지라 개선에 실패해 반등하지 못한다면 당장 가을야구 진출을 목표로 해야할 KBO 1군 감독인 특성상 경질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안타깝지만 팀에 대한 애정으로만 야구 감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팬들은 경질을 바라더라도 지금까지의 칰무원들이 그랬듯이 임기를 보장한 뒤에 프런트 쪽으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높지만, 11연패를 찍고 14연패를 바라보는 6월 초반을 기준으로 미래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부분의 한화 팬들 눈엔 전 감독못한 김응룡 이하 내지는 그보다도 못한 감독일 따름이다. 12연패를 찍은 시점에선 그냥 꺼지라는 반응이 99.99%. 다만 1군 코치들의 대거 강등 사건 이후에는 13연패를 찍었음에도 당일 KBS 9시 스포츠 뉴스에서 정민철 단장이 직접 코치진 이동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추후에 인터뷰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감독이 코치가 없어 투수가 흔들릴 때 교체를 위해 직접 마운드에 오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자 프로같지도 않은 선수들을 맡고 고생한다며 동정을 조금 받기는 했다.
6월 7일 14연패의 책임을 지고 한화이글스 감독직에서 자진사퇴하였다. 비밀번호를 끊고 11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이란 업적과 그 이후 부진 등으로 후대에 평가가 엇갈릴만한 업적을 이룬 것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다만, 구단 역사상 최다 연패 당시의 감독이자 마지막 모습이 워낙 안 좋게 헤어진 모습이다보니 지도자로 재취업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감독대행이 취임하자마자 2군에 10명을 보내고 리빌딩 체제로 간것으로 볼때 리빌딩과 성적 사이에서 갈등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유격수, 2루수를 모두 볼 수 있는 김선빈을 FA로 영입하길 원했다는 후일담까지 나오면서 성적을 내려고 했던 한용덕 방향성을 입증했지만 실패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이후 팀의 내야 수비가 더 막장이 되면서 최소한 어떤 선수를 사야하는지에 대한 눈은 있었던 것으로 재평가받고 있기는 하다. 김선빈이 있었다면 최소한 18연패는 안했을 것이라는 식으로라도...
6.4. 총평
일단 긍정적인 평가 요소 중 첫째는 노쇠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2루수 정근우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신인 정은원을 발굴한 것을 비롯해 박상원, 서균, 노시환 등등 유망주들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며 적절히 기용한 것. 비밀번호를 찍을 동안 여타 감독들이 시즌이 다 기울고 나서야 부랴부랴 신인들을 올리며 기회를 주는 척만 하던 것을 기억한다면 분명 칭찬받을 만하다. 2018년에는 송은범을 비롯한 베테랑들의 단체 플루크 시즌, 아시안게임 브레이크, 제라드 호잉을 비롯한 제값은 한 외인들, 5강 경쟁팀 감독들의 자멸, 적절한 타이밍의 우천 취소, 대진운 등 여러 요인들 덕분에 비밀번호를 끊어내고 정규시즌 3위를 찍어본 것 역시 그저 운이라고 폄하하기엔 크나큰 공적이다. 덤으로 2007년 이후 4,000여일만에 거둔 가을야구 승리 역시 엄연히 업적은 업적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2018 시즌의 기대 이상의 호성적이 독이 되었다는 시각을 버릴 수가 없는데, 팀이 정규시즌을 3위로 마쳤더라도, 선술했듯 행운이 겹친 것도 사실이었고, 신인들의 활약보단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외국인 선수들과 언제 에이징 커브가 올지 알 수 없는 베테랑들의 활약이 더 컸고, 주전층이 부상이나 슬럼프로 나가 떨어지면 그들을 메워줄 선수가 부족한 만큼 꾸준히 가을 야구를 하거나 대권을 노리기엔 뎁스가 좋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한용덕은 매 시즌 내내 5강 이내로 갈 수 있다거나 임기 마지막 해엔 더 큰 목표를 노린다는 식의, 팬들도 이해할 수 없는 근자감 넘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성적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는지 신인들 기용 횟수가 점차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1군 감독으로서 성적과 세대 교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이미 가을 야구는 물 건너간 '19 시즌 말엽에도 신인들을 쓰기보단 소위 '베스트 라인업'으로 승리를 챙기는 데 바빴고, 강제 리빌딩이니 베테랑과의 갈등 운운하는 일부 기자들의 시선과 달리 한화의 선수단 평균 나이는 그리 낮아지지 않았다. 이미 7위 이상 오르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베스트로 간다며 전 경기 출장 페이스였던 신인 정은원은 야무진 선수라 스스로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으로 팀 내 야수 수비 이닝 1위를 찍게 만들었다. 리빌딩 시즌이었다는 점에서 코어 유망주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야수 운용이었다.[50]
특히 중심타선 신인 육성 미비가 매우 심각한데 이성열, 김태균, 송광민 등은 나이가 나이다 보니 언제 갑자기 본격적으로 에이징 커브에 들어가도 이상할 것 없는 타자들이었고 이들 3명이 한꺼번에 부진한 '20 시즌은 타선 전체가 그야말로 아웃카운트 자판기가 되고 말았다. 특히 김태균은 한용덕 부임부터 장타율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하여 영양가 없는 스탯용 똑딱이성 안타만 치는데도 이글스 우타자 내에 통산 WAR 1위라는 이유만으로 중심타선 붙박이로 기용한 것은 엄연히 비판받을 만하다. '19 시즌 그가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였고 프렌차이즈 스타인 만큼 대우해주는 건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 역시 사람인지라 급격한 노쇠화를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인지했어야 했는데 대책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이외에도 치욕스런 14연패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살아날 선수들이라며 감싸거나, 쳐 줘야 할 선수들이라며 2할을 치든 삼진만 먹든 라인업에 고정으로 박아두는, 소위 쓸놈쓸 전략으로 일관한 것, 부상당한 오선진, 하주석만 오매불방 기다리면서 부상자들이 돌아오면 좋아질 것이라며 1군 감독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기도메타로 상황을 방관하다시피한 것도 비판받을 만한 점이다. 연패 도중 그나마 싹수가 노란 노시환을 투수로 등판시키고 다시 타석에 세우면서 아예 게임을 던져버리는 무책임한 모습까지 보였으니 팬들의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 투수를 정말 험하게 굴렸다.''' 두산에서 김태형이 니퍼트, 보우덴 굴려먹던 데서 배워온 건지 아니면 외국인을 단지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키버스 샘슨과 채드 벨및 워릭 서폴드는 한용덕이 혹사시켜서 보내버린 피해자다. 2018시즌 탈삼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좋은 구위를 가졌으나 다소 많은 이닝당 투구수를 가져갔던 샘슨은 투구수가 넘치든 말든 100구 이상 꾸역꾸역 밀어넣은 한용덕의 기용으로 18 시즌 후반부터 후유증이 발생, 재계약에 실패하고 2019년을 재활하느라 통째로 날렸다.
샘슨은 11년 만의 가을 야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치더라도 불펜 출신으로 17시즌 62이닝 18시즌 7이닝 소화한게 전부인 채드 벨과 18시즌 34이닝 소화에 그쳤던 워릭 서폴드를 19 시즌 여름에 이미 가을야구가 어렵게 되었음에도 꼴찌 안 하겠다는 심산이었는지 무시하고 무려 177이닝 192이닝을 꾸역꾸역 소화시켰고 결국 채드벨은 20 시즌 팔꿈치 부상을 당하고 주력 변화구인 슬라이더를 한동안 봉인했으며 부상 여파로 사실상 전력 외 신세로 전락해 정규시즌이 끝나기 전 웨이버로 떠났고, 서폴드 또한 한화 외국인 투수 최초로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는 달성했지만 혹사 후유증에 따른 구위저하로 인해 고생하다가 정규시즌 종료를 얼마 안 남기고 시즌아웃이 됐다.
외국인 선수뿐만이 아닌 야수도 심하게 혹사시켰다. 18시즌 하주석은 타격에서 기나긴 삽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대체선수를 쓸 생각없이 굴렸었고 19시즌에는 오선진, 최재훈, 정은원이 부상과 혹사로 힘들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선수를 기용하지 않았다. 2020 시즌에도 마찬가지라 결국 정은원은 8월에 손목부상 이탈 후 2군에 코로나가 퍼진 것까지 겹쳐 일찌감치 시즌아웃 당했다. 이러한 경직된 운용으로 인해 야수판 '''김성근(...)'''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는 점에서 얼마나 야수관리를 못했는지 알 수 있다.
한용덕 체제를 이끌던 코칭스태프진들도 문제였다. 이들 대다수가 기존 한화 이글스의 문제라 일컬어지던 칰무원들이었다. 이 칰무원 라인업이 정말 심각했다.(괄호안은 코치 커리어 시작연도) 검증된 무능력자 수석코치 장종훈을 위시해 백승룡(2018), 김해님(2017년), 박정진(2020), 정현석(2018), 마일영(2016), 고동진(2017), 차일목(2018), 이희근(2017), 추승우(2015), 이양기(2018)까지.
검증이나 성과도 없거니와 코치 경력조차 일천하다. 물론 누구나 처음이 있고, 경력직만 쓴다는건 말이 안된다. 하지만 선수로서 야구를 하는 것과 코치로서 지도하는 것은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하는만큼 경력이 없으면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서 올리는게 일반적이다. 오히려 감독이라면 매니저 역할로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현대야구 메타상 경력 일천한 초보자가 맡을 수도 있지만 코치는 그밑에서 선수들을 맨투맨으로 지도해야하는 최일선 실무직이다. 근데 한용덕 체제 한화는 전체 코칭 스태프의 3분의 1 이상, 육성군도 아니고 팀의 핵심인 1군을 자팀 출신 초보코치로 도배했다.
2020 시즌 전체 코칭 스태프 24명 중 9명이 프로팀 코치 경력이 채 3년이 되지 않았으며 특히 1군에 4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했거나 한화에서 장기간 선수 생활했던 이들로 한용덕이 그 중요한 프로팀 코치직을 사기업 연공서열 보직쯤으로 생각했다는 증거이다. 한용덕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중 일부는 전임 단장 박종훈 단장이 행한 개혁 중 하나이긴 했으나 박종훈 단장 주도로 부임시킨 고동진, 차일목들은 1군 보조 코치 혹은 재활군에서 코치로 육성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코치 배치권한은 엄연히 감독이 쥐고 있다. 즉 이들의 보직을 연공서열 순으로 배분한 한용덕의 지분이 상당히 크다.
설상가상 이양기가 2017년 전력분석원으로 스태프 경력을 시작할 때 컴퓨터 쓸 줄 몰라서 그것부터 배웠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 한화는 최소한 김성근 재임기까지는 연수를 똑바로 시키는 구단도 아니었다. 두산처럼 프런트가 중심을 잡고 육성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는 팀들이야 돌멩이 하나둘 바꿔 끼운다고 티날 일이 없으니 이런 칰무원들이 부임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지만 한화는 아니다.
이러한 초보 코치진 구성은 선수단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안 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파행적인 신인 지명 탓에 20대 후반~30대 초반 야수층이 괴멸한 한화는 베테랑 의존도가 높은데 그 베테랑들과 어제까지 선수로 한솥밥 먹던 코치진이 제대로 공사 구분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 촬영이라 평소보다 선수들이 많이 나왔다며 전력분석실에 달랑 8명 앉아 있던 모습이 한화 선수들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설사 개인적으로 코칭능력을 끌어올렸어도 그걸 온전히 발휘하기 힘든 환경이다.
한용덕 감독 사퇴후 야구부장에서 확인 사살을 했는데 베테랑들은 한용덕이 2018년에 리빌딩을 시작할 때 이미 입이 댓발 나와 있었다.[51] 하지만 야구도 못 하면서 기회 안준다고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내는 고참들을 제어한 코치가 아무도 없었고, 송광민, 이용규 등과의 충돌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안 좋은 의미로 회자되기도 했다.
팀 케미스트리가 흔들리는 가운데 2019년부터 투수 운영에서도 필승조와 추격조를 합리적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특정 양아들(박주홍)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였으나 코치란 사람들이 죄다 한화 출신이란 연고가 있으니 이러한 한심한 운용을 제재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8 시즌부터 심각했던 타격은 80년 초반생 노장들이 에이징 커브에 접어들어 더욱 하락했다. 타 팀에서 성과를 낸 타나베나 김성래를 고용하고도 해결이 안 되었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흐르는 세월은 코치가 막을 수 있는게 아니며 은퇴 목전인 노장들 밑에는 90년대 후반~2000년대 태어난 핏덩이들밖에 없었다. 한화가 제대로 2군을 정비하기 시작한 건 김응용 시절에나 가서였고[52] 하필 후임으로 주어진 전력 짜먹는데 특화된 감독을 데려오는 바람에 어렵사리 쌓아둔 한조각 기반마저 날아가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처지다. 타 팀처럼 투타를 가리지 않고 신인들이 부담 없이 활약한다거나 키움, 두산처럼 만 24~25세의 선수들이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20 시즌 한화로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당장의 암흑기는 끝내고서 세대교체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는' 했던 감독 정도로 기억될 수는 있겠지만, 당장은 그 역시 올드스쿨 야구관과 우리가 남이가 식의 정서를 극복 못 해 팀의 체질개선에는 실패한 사람으로만 기억되게 생겼다. 팀 최다 연패 신기록이라는 치욕적인 기록을 남기고 쫓겨난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나마 호평할 만한 점을 찾아보자면 누가 와도 욕만 먹고 떠날 게 뻔한 자리에 제 발로 왔다는 것 정도.
결국 한용덕이 떠난 뒤 2020시즌이 끝나고 팀이 노장들을 대량으로 방출하고 말뿐이 아닌 대대적인 리빌딩 기조를 보이면서 한용덕 선임 당시 천명했던 리빌딩이 무려 3년이나 뒤에 시작되고있다. 한용덕이 베테랑들과 여러 가지 충돌을 겪으면서 임기 내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7. 통산 성적
8. 감독 성적
9. 관련 문서
[1] 음력 6월 2일.[2] 하단에도 나왔듯이 2017년 8월 20일에 김태형 감독이 게슬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3경기를 당시 감독대행으로서 팀을 지휘했었다. 감독대행시절 전적은 2승 1패.[3] 자진사퇴[4] 정확히는 트럭 운전을 한 건 아니고 조수를 했는데 운전사가 좋아했다고 한다. 그 외에 전기선 정리, 전화기 수거 등 일도 했다고. 그의 젊은 시절과 2018년 야구 생활을 담은 기사 참조[5] 그나마도 원래는 300만 원(당시 프로야구 선수 최저연봉)을 제시해 때려치려던 걸 김영덕 감독이 빙그레 프런트에 강력히 항의하여 2배로 받은 것이었다. 김영덕 감독은 한화그룹이 운영하던 북일고를 사상 첫 전국대회 정상에 올린 경력으로 입지가 탄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6] 8선발승으로 한희민과 팀내 최다 선발승[7] 16선발승으로 그 해 최다 선발승을 기록했고 해태 선동열과 롯데 윤학길이 15선발승으로 선발승 공동 2위[8] 그 자신도 크게 다쳤고, 아들도 크게 다쳤으며, 아내 역시 다리 절단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한 중상이었다. 다행히 회복했지만.[9] 당시 에이스의 평가 척도는 닥치고 승리 횟수였다. 평균자책점과 이닝은 그냥 들러리 수준이었으며 FIP는 알려지기도 전이다.[10] 투수 혹사로 이름을 날린 강병철답게 한화에서도 구대성, 정민철 등 여러 혹사 사례를 남겼고, 한용덕도 그중 한 명이다.[11] 차명석과 공동 기록[12] 1998년 한용덕보다 많은 경기에 나온 투수들 중 한용덕보다 확실히 나은 성적을 찍은 임창용, 진필중의 경우 마무리 투수였고, 경기수 공동 9위를 기록한 차명석은 77.1이닝에 ERA가 4점대를 바라보고 있었다.[13]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야구붐이 불었던 2008년 당시까지 이 세명은 여전히 선수였고 살아있는 전설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과거 전성기 모습을 종종 회자시켜 주는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한용덕은 아니었기 때문.[14] 그리고 눈에 띌만한 수상, 기록을 올리지 못했던 것도 이유였다. 정민철도 다승왕은 못했지만 방어율 1위는 2번이나 했는데, 한용덕은 그런 타이틀이 없다. 1993년 완투 1위, 1991년 완봉 1위가 전부인데 이런 기록은 타이틀로 수상해주지 않는다. 타자 쪽으로 송지만이 있다면 투수 쪽으론 한용덕이 있다고 할 수 있을정도. 1994년 다승왕 경쟁 중의 교통사고가 그저 아쉬울 뿐. 통산 승수에 비해 패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라는 것도 당시엔 감점 요인. 요새는 점점 다승의 가치는 줄어들고 있으나, 저 당시땐 다승이 다른 기록보다 높게 인정받았다.[15] 최고 구속은 145km/h 정도였으나 한 경기에 이 정도 구속의 볼을 많이 던지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당시 선발 투수는 길게 던지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언급된 것 정도의 구속으로 던지다가 위기 상황에서만 저 정도의 구속으로 타자를 상대했다.[16] 제구력도 좋았지만, 구위가 좋아 '볼이 매우 무거운 선수' 중 하나였다. 윗 기술만 따르면 한용덕은, 동 시대에 활약했던 이상군이나 주형광과 비슷한 것처럼 생각되나, 실제로는 그 당시 기준으로 강속구 투수까지는 아니어도 볼이 빠른 군에 속했다.[17] 19년 후에야 10월 22일 롯데와 SK의 경기에서 나왔다. 백투백투백 홈런 이후 교체된 투수가 또 홈런을 맞으면서 역대 2호 4연타석 피홈런이 기록되었다.[18] 그러나, 2009년 양훈은 김인식의 노예가 되어 골수까지 빨아먹혔다. 처음에야 "이제야 밥값한다" 정도였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19] 실제로, 한용덕이 1군 코치로 있던 2007 시즌의 한화 이글스는 '선발 투수 방어율'이 전 구단 1위(아는 사람은 아는, '''류현진-정민철-비-비-비, 류현진-정민철-세드릭-비-비''')였으나, 이상군 코치가 1군으로 맡은 2008년에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 2007년 부활투를 선보였던 정민철도 이상군이 올라왔던 2007 시즌 후반 이후에는 포스트 시즌 부상으로 조기 강판과 이듬해 부진 등으로 추락.[20] 2007 시즌 중 류현진의 투구수 문제로 대립 후 찍혀서 재활군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단, 김인식 항목의 윤규진 관련 루머와 같이 김인식 감독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루머임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류현진은 19살 고졸신인 역대최초 2년연속 200이닝을 돌파하는등. 역대최고의 천재적 재능이었지만 역대최악급의 혹사를 당했다. PS,국가대표까지 포함하면 +50이닝은 더 던졋으니 2시즌연속 250이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1] 이상군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구단주 김승연 아버지의 관을 들 정도로 구단 최측군과 깊은 관계인 그가 한화에서 퇴출될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감독대행으로서는 그간 무리하던 필승조들을 어느 정도 덜 쓰고 팀을 재정비하며 재평가의 여지를 남겼다.[22] 롯데 투수코치 시절 박동수나 페르난도 아로요에 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23] 그 동안의 혹사로 인한 후유증을 많이 거론하지만, 반대로 한대화 감독의 투수 컨디션을 도외시한 등판간격 늘어뜨리기식 조정도 역시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24] 이후 양훈은 김성근에 의한 무리한 감량으로 몸이 망가지다가 2015년 넥센 히어로즈 이적 후 이지풍 1군 트레이닝 코치와 손혁 1군 투수코치의 매직으로 다시 정상화되었다.[25] 한'''용'''덕 + 야'''왕'''[26] 2012 시즌 종료 후, 광주 지역신문을 통해 KIA 타이거즈가 오퍼를 넣은 사실이 흘러나오기도 했다.[27] 실제 한용덕은 '검증된 투수코치'라고 볼수 있기에 감독 대행을 마친 후 복수의 구단에서 제의가 왔다고 한다. 본인 또한 한화에서 감독 대행을 하다가 다시 코치를 하는건 부자연스럽다고 느껴 고민이 많았는데, 구단에서 코치직 대신 미국 연수를 제의하여 가게 된 것이라고.[28] 이 때문에 계형철과의 악연도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29] 감독이 된 후 인터뷰에서 별로 할 일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영웅담같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30] 가득염 코치가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31] 타팀 출신 두산 코치들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으나, 오히려 돡무원으로 분류되는 전형도나 권명철은 2016년에도 까인다.[32] 이 때문에 일부 두산팬들은 섭섭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마침 한국시리즈 우승이 좌절되어 분위기도 별로인 탓도 있었고.[33] 유래는 한용덕-용덕 한-덕한-더칸+감동님으로 추정[34] 이 당시 한용덕 감독은 아직 투수진의 포지션 분배가 아직 정확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보름 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얘기했고, 실제로 4월 중순부터 한화의 마운드진은 안정을 되찾았다.[35] 헌데 18시즌 최재훈은 도루 8회 시도 8회 성공 즉 성공률 '''100%'''를 달성했다. 심지어 이게 개인 통산 처음으로 도루를 한 시즌이다.[36] 사실 올스타전 이후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가던 전반기의 위력을 잃고 서서히 승률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주간 5할 본능을 발휘하긴 했지만...[37] FIP에 비해 자책점이 낮은 불펜진 덕도 있지만, 호잉, 지성준 등 전임 감독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몇몇 선수들의 wpa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던 것도 원인인 듯?[38]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NC 다이노스.[39] 경기 후반 거의 반드시 대수비로 교체되어 출장하는데, 사실 양성우, 이동훈, 장운호, 장진혁 등 외야 자원이 모조리 부상으로 올라올 수 없는 상태라 체력 안배를 고려하면 그나마 외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김민하나 2군을 폭격하던 백창수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40] 사실 1달 반 동안 위닝시리즈가 없는데 작년 호성적에 부푼 팬들 입장에서야 질릴 만도 하다. 그나마 환승역 없는 9호선 시절에도 이태양이나 송창현, 강경학같은 신인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며 하루라도 야구 재밌게 볼 날은 있던 반면 19 시즌은 그런 거 없이 재미없게 패배만 쌓여가고 있기 때문.[41] 이를테면 좌타자라고 좌투수인 박주홍을 올렸는데 그 좌타자가 좌우 편식없이 다 잘 치는 이정후라든가...[42] 정은원은 8월 5일 컴투스 프로야구와의 라이브 인터뷰에서 심한 감기로 고생하였음에도 바로 다음날 풀타임을 소화하는 등 전혀 관리를 받지 못하였다.[43] 정확히는 2011 시즌 햄스트링 부상 이후 주루와 수비가 급격하게 안 좋아진 것이지만...[44] 사실 누구 드립도 한용덕이 계속 똑같은 것을 물어보길래 똑같이 대답하기 싫어서 그냥 분위기 전환용으로 던진 것이라고 한다. 팬들 사이에선 이미 파문 이후 운영팀, 선수단에 지속적으로 사과하면서 반 시즌~1년 정도의 징계만 주고 용서할 생각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사실 끝까지 안 쓸 생각이었는데 연봉이 계속 나가는데도 선수를 쓰지 않는 것을 구단 수뇌부서 지적해서 풀어준 것이라는 추측이 공존하고 있다.[45] 2014년 FA로 한화에 이적한 이용규가 당시 1군 야수 라인업 중 포수를 제외하면 막내였다.[46] 더불어 무사 2루의 주자가 발이 느린 편인 최재훈이었고 이해창도 엔트리에 있었기 때문에 대주자를 활용해도 되는 상황임에도 아무 교체도 없이 그대로 밀어붙인 것도 팬들의 화를 돋울만 했다. 접전 상황에서도 장기적 시즌 운용 시에도 야수 운용 능력이 꽝인 수준이다.[47] 게다가 이 팀은 여전히 전임 감독을 그리워하는 야구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48] 심지어 노시환은 6월 5일 NC전에서 9회에 무려 투수로 등판했다![49] 당장 주전 선수의 빈 자리를 채운다고 준비 안 된 선수를 올려 1군 경험치를 과하게 먹이다 보면 오히려 멘탈만 망가진다.[50] 센터라인 수비는 체력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타 팀의 유격수, 2루수, 포수 등은 1주일에 1경기 정도는 대타로 대기하는 날도 있고, 여유로운 시기엔 아예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수비 부담이 덜한 3루수나 1루수로 나서며 관리받기도 하며 아예 타격에만 집중하도록 지명타자로 나가기도 한다. 물론 팀 내야 뎁스가 그리 여유롭지 않고, 거포형 야수가 아닌 선수를 지명타자로 쓰기엔 아깝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51] 방어율 5점대 6점대 7점대를 찍어대면서 감독 뒷담화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52] 이때도 김응용 감독이 사비로 비시즌 기간에 전지훈련을 보내준다고 지원자를 받았더니 이태양 혼자 지원했다는 한심한 일화가 있다. 육성 시설도, 체계도 없었고 선수들 의지조차 박약했다는 소리.[53] 한대화 감독 경질 이후 감독대행.[54] 준PO에서 넥센 히어로즈 상대로 패했으나 넥센이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로 최종 순위는 3위 그대로 유지. [55] 시즌 중 자진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