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길
[image]
'''"KIA 아니면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축하한다. 너 광주로 간다.”'''
- 2008년 10월 20일 한화 이글스 프론트로부터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후.
1. 소개
KIA 타이거즈의 우투좌타 외야수. 광주일고 출신으로 2002년 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 46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프로에 데뷔했다.
2. 플레이 스타일
빠른 발을 가진 좌타자로, 타격 후에 주루자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빠르지만 야구센스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 전반적으로 김주찬과 비슷하게 신체능력 중심의 플레이를 하는 선수다.
기본적으로 발이 빠른 선수다. 준족으로 유명한 이대형, 김주찬보다도 빠르다고 한다. 이대형과는 고등학교 동기인데, 100m 달리기 시합을 해서 이대형을 이긴 적이 있다고 한다. 100m를 11초에 끊는다고 하는 듯. 실제로 롯데에 있을 땐 김주찬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이겼고, 한화에서는 김수연을 상대로 이겼다고 한다. 얼마나 빠른지 피치아웃을 당해도 도루를 성공할 정도이고, 번트를 대고 스피드만으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낼 정도이다. 하지만 빠른 발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루센스가 심히 부족하여 어이없게 주루사당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좋은 체격 조건과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가지고 있어 단타형 타자임에도 뜬금포를 기대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직구에는 강하나 변화구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스트라이크 후에 몸쪽 밑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엔 정말 속수무책. 선구안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라 타율 대비 출루율이 썩 높지는 않다.[9] 하지만 2013년 김용달 코치를 만난 이후 변화구에 대한 공략이 한층 나아졌다.
신인 시절에는 내야수로 뛰었지만, 이후 외야수로 전향. 외야 수비는 좌중우 가리지 않고 전부 소화할 수 있지만 타구판단이나 포구에 아쉬운 점이 있다. 발이 빠른 덕에 수비범위는 넓고, 어깨는 평균 이하. 팀이 암흑기에 빠졌던 당시 혼자 팀을 먹여살렸지만 이후 약점을 드러내며 대타 대수비 대주자 등으로 나오는 중. 2017 시즌에는 대타 스페셜리스트로 대타 성공률 최상위권을 마크하고 있다.
3. 프로 데뷔 후
3.1. 롯데 자이언츠 시절
데뷔 후 2루수로 주로 뛰었다. 허나 롯데에선 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롯데 자이언츠에서 한화 이글스의 이상목을 FA로 영입할 때 보상선수로 지목되어 한화 이글스로 가게 되었다.
3.2. 한화 이글스 시절
[image]
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후 백업 내야수로 뛰다가 시즌 막판인 2004년 9월 21일, 대전 두산전에서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이름을 알렸다. 허나 이 사이클링 히트는 시즌 막판 순위가 결정된 이후 쩌리급 투수들이 주로 나왔을 때 기록했던 관계로 평가절하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기록이라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다.
한화가 제이 데이비스 이후 중견수자원 확보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유가 당시 공익근무하고 있던 신종길의 존재일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2004 시즌 이후 1군 기록은 전무. 그 사이에 외야수 전향 및 공익근무를 하였고, 2008 시즌이 끝나고 강동우와 맞트레이드되며 고향 팀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당시 김인식 감독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008 시즌 후 방출 대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침 강동우가 필요하기도 했고, 신종길도 고향팀에 가면 잘 할까 싶어서 보냈다고 한다. 본인이 트레이드 명단에 오른 것을 안 후 기아로 가는 게 아니면 은퇴하겠다며 갸부심을 근거로 협박(?)을 했다고 한다.
한화팬들은 이 트레이드에 대해서 젊은 유망주를 주고 또 베테랑 선수를 영입한다며 김인식 감독을 엄청나게 깠다. 하지만 강동우는 2009 시즌에 오랜만에 3할 타율을 기록하였고, 2010 시즌에는 다소 부진했으나 2011 시즌에 재도약하면서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은 데반해 신종길은 고향팀으로 이적한 후로도 빈번한 주루사와 불안한 수비, 그리고 발전이 없는 타격으로 2012년까지 2군을 왔다갔다했다. 그냥 한화가 성공한 트레이드.[10]
3.3. KIA 타이거즈 시절
유난히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봄종길', '시범종길'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문제는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KIA팬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었던 것. 2012년까지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만년 유망주 신세였다.
3.3.1. 2010 시즌
2군에서 시즌을 맞았으나 김상현의 부상 등으로 인해 야수 뎁스가 엄청나게 얇아지자 1군으로 올라왔다. 지명타자, 대주자, 외야 대수비 등등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모든 면에서 2%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5월 2일 사직 롯데전에서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가 어리버리한 수비를 보여주며 바로 나지완으로 교체당했다.
7월 21일 광주 삼성전에서는 4타석 4타수 4안타 3도루로 전타석 안타뿐만 아니라 1경기 3도루를 기록하는 등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 이후로는 이종범의 체력 문제로 우투수가 선발일 경우 우익수로 자주 나왔는데, 도대체 함평에서 뭘 했는지 수비 및 타격에서 발전을 보이며 시즌 초반 OME급으로 플레이하던 것에 비해 플레이가 많이 나아졌다. 그 때문에 당시 한화 팬들은 강동우의 부진과 더불어 왜 신종길을 팔았냐며 한탄하기도.
8월 11일 청주 한화전에선 2회초 2사 만루 상황에 싹쓸이 2루타를 기록하였다. 인터뷰에 따르면 최희섭에게 타격 기술 조언을 받아서 타격이 잘 되는 것 같다고. 기사
9월 17일 광주 삼성전에서는 안타와 3루타로 혼자 5타점을 내며 맹활약하였다.
이렇게 시즌 후반기부터 갑자기 각성한 듯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최종 성적은 58경기 출전, 131타수 42안타 타율 0.321, 18타점, 22득점, 1홈런, 16도루를 기록하며 KIA팬들을 잔뜩 설레게 하였다.
3.3.2. 2011 시즌
시즌 초반엔 딱 1할 근처의 극악스런 타율을 기록했지만 5월 들어서 타율이 2할 중반대까지 꾸준히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뇌를 두고 온 듯한 플레이를 고치지 못해 갸갤에서 안 좋은 별명을 잔뜩 얻었다.
7월 28일 광주 삼성전에서는 찬스 때마다 어이없는 스윙질로 왜 욕을 먹는지를 입증하였다.
하지만 8월 12일 대구 삼성전에서 홈런을 날리고, 13일에는 2루타 3개로 4타점을 올려 난세의 영웅 신종출루로 찬양받기도 했다. 2군에서 타격폼을 수정하고 나온 뒤에 타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9월 22일 대구 삼성전에서 좋지못한 수비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은 대수비, 3,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타율&출루율&장타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3.3.3. 2012 시즌
비시즌에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가 부임해온 후, 마무리 훈련 최대의 성과가 신종길이라는 설레발 기사가 쏟아졌다. 팬들은 반신반의하였지만, 결국 별다른 외부영입도 없었고 이 당시에도 KIA의 외야 뎁스가 여전히 얇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신종길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가게 되었다. 특히 연습경기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면서 팬들을 더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이종범이 은퇴하자 이종범 은퇴의 가장 큰 주범'''[11] 으로 일부 팬들의 눈총을 받게 되었다. 물론, 신종길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는 이종범을 밀어낸 셈이 돼버렸으니.
그리고 시즌이 시작된 후, 역시나 1할대(0.118)의 처참한 타격감을 보여주며 선동열, 이순철, 이용규와 함께 또 다시(...) 대차게 까였다.
4월 19일에는 타율이 결국 '''0할대'''까지 떨어지며 2번 타자에서 9번타자로 밀려났다. 20일 경기에서는 한 타석에만 들어섰고, 그나마도 삼진을 기록하고 타율은 0.083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장타나 출루라도 괜찮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서 '''OPS가 무려 0.293'''이란 극악스런 수치를 기록. 거기다 타구판단 미스로 평범한 플라이도 놓치는 병신같은 수비까지.
4월 27일 잠실 두산전에 선발 출장해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은 '''0.077'''까지 떨어졌다.
4월 28일 결국 선발 로테이션에서 밀려났다. 7회초 2루까지 진루한 이준호를 대신해 대주자로 나왔으며, 8회초 1아웃 상황에서 김상현을 상대로 뜬금없이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 홈런이 없었다면 8회말 이원석의 솔로 홈런이 나와서 '''8:8 동점'''이 될 수도 있었던 상황. 타율은 '''딱 1할'''로 올라갔다.
5월이 되어도 타격부진은 그대로인데다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밀려났고 대주자로 나와 피치아웃에 걸려 아웃되는 등 그야말로 0툴 플레이어의 위엄을 보였다.
5월 13일 광주 두산전에 참으로 오랜만에 선발출장하여 병신같은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결국 '''2군으로 내려갔다'''.[12] 이 와중에 KIA는 이준호라는 괜찮은 우익수를 발굴하면서 신종길의 입지가 더욱 줄어들게 생겼다.
이후 2군에서 그럭저럭 활약하며 푹 썩다가 6월 19일부터 다시 1군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시즌 초보다는 플레이가 나아졌다.
6월 22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2:0으로 뒤처진 상황에 5회말 3루타를 터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7월 12일 부상에서 회복한 김상현이 1군으로 올라오면서 2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2012 시즌 최종 성적은 44경기 출전, 83타수 13안타 타율 0.157, 출루율 0.202, 장타율 0.265, 2타점, 10득점, 1홈런, 5도루를 기록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3.3.4. 2013 시즌
이전까지와는 달리, 시범경기에서의 좋은 모습을 개막 후로도 계속 유지하며 드디어 포텐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5월경 햄스트링 부상으로 4주 정도 1군에서 빠지기도 했지만, 여름이 온 후로도 좋은 타격감을 계속 유지했다.
8위까지 추락한 팀 내에서, 사실상 KIA를 먹여살린 선수가 되었다. 이 시즌에 얻은 갓종길이라는 별명이 그의 위상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를 설명해준다.
3.3.5. 2014 시즌
2013년의 맹활약으로 2014시즌에도 주전 우익수를 맡게 되었으며, 김주찬, 이대형과 함께 외야 라인업을 형성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발이 빠르며, 우수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야구센스는 떨어지는 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3월 2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5번 타자(!)로 출장, 1:0으로 앞서기 시작하던 1회초 2사 1루 상황에 선발 투수 윤성환을 상대로 중견수 뒤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날리며 1타점을 보탰다. 이날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고, 팀은 의외로(...) 점수를 지켜내며 2:1로 승리를 가져갔다.
4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도 2회 무사 1루 상황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결승 3루타를 때려내는 활약으로 팀의 3:0승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전날 경기에서의 대굴욕도 어느 정도 설욕하였다.
그러나 이후 3경기 연속으로 타격이 부진에 빠지자 4월 18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선발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받았다. 어깨 쪽에 부상이 있어서인지 2013년에 비해서는 시즌 초반 페이스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4월 30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SK 선발 여건욱에게 2개의 홈런을 뽑아내는 등[13] 4타수 3안타 2홈런 2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6:3 승리에 큰 보탬이 되며 전날 경기의 대굴욕도 어느 정도 설욕하였다.
6월 10일 한화와의 홈경기에서는 5타수 4안타 2타점 1홈런으로 맹활약. 거기에 다음 날도 4타수 3안타 4타점의 맹타를 치고 어느 새 타율도 3할이 되었다.
6월 20일 평소 가지고 있던 어깨통증이 심해지면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팬들은 또 빠지냐며 체념하는 중. 대신 박준태가 등록되었다.
이후 7월 11일에 죽쑤던 김주형 대신 다시 등록되었다.
8월 16일 경기에서는 타석에서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선전했으나, 2회 수비에서 에러로 선취점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하는 등 수비에서 아쉬운 면모를 보여줬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3경기 399타석 360타수 105안타 9홈런 51타점 60득점 20도루 31사사구 타율 0.292 출루율 0.345 장타율0.467 OPS 0.812로 마무리하였다.
3.3.6. 2015 시즌
프로야구 시범경기 마지막날인 3월 22일 kt wiz전에서 상대 선발 앤디 시스코의 몸쪽 높은 직구에 어깨를 강타당했다. 이후 박준태와 교체됐다. 신종길은 라커룸에서 아이싱을 하고 휴식을 취했다. 가벼운 타박상으로 예상됐지만, 상태는 심각했고, 병원 검사 결과 오른 견갑골 골절 진단을 받았다. 신종길의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은 타율 0.263·3타점으로 마감하였다.
신종길은 개막 엔트리에서 빠지고 재활군으로 내려갔고 복귀 예정 시기는 4월 말~5월 초로 예상되었다.
그리고 5월 5일 마산 NC전에 1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하지만''' 5월 6일 1군으로 올라온지 얼마되지 않아 허리통증으로 1군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소속팀 트레이너의 책임을 묻는 팬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5월 24일 당시 부진하던 나지완이 2군으로 내려갔고 허리통증을 회복한 신종길이 재활군에서 좋은 타격감을 보여 1군으로 콜업됐다.
6월 24일 NC전에는 선발 우익수 1번타자로 출전하여 1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2회말에 마치 그 분을 연상케 하는 수비를 2차례나 보여주었는데, 그의 답이 안 보이는 수비의 첫번째는 김태군의 타구를 판단미스하여 2루타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이후 박민우가 볼넷으로 나가 주자 1,2루 상황때 김종호의 타구를 판단 착오로 잡지 않고 키를 넘어가게 하여.. 2명의 주자 모두가 홈에 들어오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하였다. 이로 인해 상대팀 NC는 0-3에서 0-5 점수로 역전할 수 있었고, KIA는 그의 수비로 인해 승리와 멀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답이 안 보이는 수비를 한 이후 3회초에 김다원과 교체됐다.
7월 4일 kt전에는 선발 우익수로 출전하여 4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을 기록하였다. 물론 이 경기에서도 마치 지난 6월 4일 NC전에서와 같은 얼빠진 수비를 보여줌으로써 2회말을 끝낼 수 있는 상황에서 1점을 더 내주는 등 적을 도와주는 활약을 하였다. 신종길의 아쉬운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는 KIA
결국 작년에 비해 더 아쉬운 성적과 수비를 보여주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3.3.7. 2016 시즌
스프링캠프 때 무릎 통증으로 귀국 후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가 4월 19일에 나지완, 서동욱, 강한울과 함께 1군에 콜업 되었다.
이후 삽질만 하다 종아리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파울타구를 잘못 맞아 또 다쳤다고 한다.
6월 중순에 복귀한 뒤로는 주로 리드오프 역할을 맡아 꽤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구를 맞은 뒤 햄스트링 통증으로 선발 출장이 제한되어 대타로만 출전하는 경기가 늘었다.
잠시 주춤하다 7월 두산전부터 선발 출장을 다시 하면서 방망이에 불이 붙었고, 2013년의 갓종길 시절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다. 신종길이 너무 잘하는 바람에 노수광이 공수에서 나름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타로 밀리게 됐다..
7월 19일 후반기 첫 경기인 롯데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는 4타수 3안타 3득점 1볼넷으로 팀의 6:1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비록 정규타석을 채우지 못하였지만 현재까지 0.368의 고타율을 기록중이고, 리드오프 역할을 꾸준히 맡아주고 있다.
프런트측에서 외부 FA를 생각하고 있다 하는데 신종길이 묶일 확률은 낮은 편이다.
김호령 오준혁 노수광 같은 코어 유망주들 때문에...
7월 29일 SK전에서 선두타자로 나서 출루한 뒤 노수광의 투런홈런에 홈을 밟고 덕아읏으로 돌아오던 중 김기태 감독 앞에서 의도치 않은 몸개그(...)를 했다.
요즘 타격감이 영 좋지 않은데 김주찬이 복귀하면 노수광의 버닝 여부에 따라 출전 여부가 갈릴 것이다. LF 김주찬 CF 김호령 RF 노수광이 될지도.
7월 30일 부상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 후 노수광의 부상 덕에 주전으로 출전. 그러나 신종길이 주전이면 망한 시즌이라는 것을 공수에서 증명하였다.
9월 27일 LG전에서 좌타자에게 약한 상대선발 허프를 의식해 7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였는데 3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였다. 수비에서도 어이없는 실책으로 2루타를 만들어주었는데 파울이라고 생각한 신종길은 마지막 남은 합의판정 카드까지 써버렸다.
3.3.8. 2017 시즌
4월 12일 두산전 6회초 1사 만루상황에 대타로 나와 이날 결승타인 2타점 2루타를 쳤다.
4월 27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미세한 통증을 느끼고 교체된 최형우의 대주자로 나와 2루타 2타점을 기록하며 기아팬들의 봄은 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5월 4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황당한 견제사를 당했다. 영상
[image]
3회초 우전안타로 출루하여 1루에서 평범하게 도루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재영이 평범한 견제구를 던졌고 신종길은 몸을 던져 세이프 됐다. 이 때 일어나려는 과정에서 바로 손을 떼버리는 기초적인 실수를 했고[14] 채태인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태그하는 바람에 견제사를 당하고 말았다. 이날 팀도 경기에서 지는 바람에 팬들에겐 먼지가 되도록 까였다.
이 기사를 보면 5월 8일 기준 17 시즌 대타로 가장 많이 출전해 21타수 8안타 타율 3할 8푼 1리 2루타 3개 타점 7점을 기록했다. 대타 출전 2위인 배영섭이 19타수 1안타인 걸 보면 단순히 많이 나와서 많이 친 건 아니다.
9월 24일 한화전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거하게 삽질했다. 그리고 이 날 경기가 끝나고 나서 바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포함되어 우승 반지를 얻었다. 당초 시즌 후 FA가 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격 요건 미비로 늦춰졌다.
2017 시즌 동안 대타로 활약해주었다. 다만 후반기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신종길의 타격감이 좋을 때 눕동님이 끝까지 짐짝을 대타로 기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3.3.9. 2018 시즌: 은퇴
시즌 시작 전, 구단에서 플레잉 코치를 권유하며 은퇴를 제안했지만 거부하고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2군에는 단 한 경기도 나오지 않고 3군 전력에 포함되어 주로 연천 미라클이나 저니맨 외인구단 혹은 대학팀과의 경기에서 출장하였고, 결국 7월 8일에 웨이버공시 처리되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최종적으로 은퇴의사를 밝히면서 웨이버 공시가 되었다고 한다.
4. 은퇴 후 근황
비슷한 시기에 방출된 김지성과 함께 광주 사회인 야구단에 입단함과 동시에 북구 양산동 OB맥주공장 근처에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차렸다. ##
2020년에 울산공고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5. 연도별 성적
6. 여담
- KIA 타이거즈에 대해 애착을 여러 번 드러내곤 한다. 대표적으로 신종길이 한화에 있었을 때, 자신의 트레이드 소식에 대해 KIA 아니면 안 가겠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이 때 신종길과 트레이드된 선수는 바로 강동우.
- 고교 시절에 손목 부상을 입어 몇 번 수술받았다.
- 과거 프로야구 선수가 양다리를 걸쳤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화제가 되었을 때, 그 당사자로 지목되어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은 듯.
- 2011년 12월에 결혼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양다리 문제 때문인지 네이버에서 신종길을 검색하면 신종길 간통이 연관검색어로 뜨는데, 양다리 문제가 터진건 7월로 그가 결혼하기 전이니 절대 오해하지 말자.
- 롯데 자이언츠의 김대우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야구를 해온 선후배 사이다. 그리고 2014시즌 기아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대형은 중고등학교 절친. 다만 이대형이 유급을 해서 졸업년도는 신종길이 1년 빠르다.
- 의외의 사실인데, 타격 버퍼링이 제일 긴 선수이다. 박한이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으나 실상은 신종길. 무려 28초가 걸린다. 물론 현재에는 12초룰 때문에 안 되지만.
[1] KT에서 슈퍼소닉 별명을 가진 분과 중,고등학교 동기다[2] 데뷔 초기 시절에는 내야수였고, 주로 2루수나 유격수로 출장했다. 2015년 이후로는 교체 멤버로 간간히 1루수로 출장한다.[3] 안타 하면 신종길! 신종길이 나왔다~ 도루 하면 신종길! 폭풍질주 신종길! 폭!풍!질!주! 신종길![4] 실제로 신종길의 팬클럽에서 신종길을 위해서 만든 응원가 중 가장 호응이 좋았던 것을 응원가로 쓰는 것.[5] 폭풍질주 신종길 좋아~ 완전 좋아~ 레알 좋아~ 폭풍질주 신종길 좋아~ 완전 좋아~ 레알 좋아~ 폭!풍!질!주! 신!종!길![6] 동명의 영화(국내명 '귀여운 여인')의 OST에 삽입된 그 곡이다. 황재균의 제 2응원가이기도 하다.[7] 하지만 2017 시즌 들어서 저작권 문제로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됐다.[8] 가사는 기아의 신종~길~ 기아의 신종~길~ 폭풍질주 기아~의 신종~길~워~[9] 당연히 삼진도 엄청나게 많다.[10] 2018 시즌후 신종길이 은퇴한 현 상황에서 WAR 합만 보면 한화에서의 강동우가 쌓은 WAR가 신종길이 KIA에서 쌓은 WAR보다 조금 높다...[11] 어떤 의미에서는 이종범의 은퇴를 오히려 '''가로막았던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KIA의 얇은 외야진 가운데 신종길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가 되지 못하면서 많이 중용이 되지 않았고, 그것이 40대 노장 이종범이 외야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12] 반면 시즌 초 '''타율 최하위 경쟁'''을 벌이던 한화의 최진행은 2군에서 돌아와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5월 27일 기준 타율 0.311을 기록했다.[13] 개인 통산 첫 멀티홈런 기록이다.[14] 이런 상황에선 손으로 베이스를 짚은 채 엉거주춤 일어난 뒤 발로 베이스를 밟은 다음 손을 떼도록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