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양

 


'''明德大王
명덕대왕
'''
'''시호'''
'''명덕대왕(明德大王)'''
'''이름'''
김효양(金孝讓)
'''아들'''
원성대왕(元聖大王) 김경신
'''아버지'''
흥평대왕(興平大王) 김위문
'''생몰연도'''
? ~ ?
1. 개요
2. 생애


1. 개요


金孝讓
? ~ ?
신라왕족이자, 추존 국왕. 본관은 경주 김씨.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기록에서는 왕족이라서 성씨를 생략하고, 그냥 간단하게 '''효양'''이라고 남아 있다.

2. 생애


신라의 제38대 임금인 원성왕 김경신의 아버지로, 진골 고위 귀족이었지만 고대사 기록의 부족으로 살아있을 때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사찰 무장사(鍪藏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대로 신라의 보물 피리 만파식적을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었고 이를 아들 원성왕에 물려주었다.[1]
사망할 때의 관등은 최고 관등인 대각간. 나중에 후사 없이 37대 왕 선덕왕이 사망한 후, 아들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면서 죽은 아버지를 명덕대왕(明德大王)으로 추존하였다.[2] 그리고 신라시대의 종묘인 5묘에서 성덕대왕과 개성대왕[3]의 2개 묘당을 헐고, 그 자리에 할아버지 흥평대왕과 아버지 명덕대왕을 넣어 5묘로 정했다.[4] 왕통이 무열왕계에서 내물왕계로 바뀌었으니 원성왕이 자신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1] 이후 일본이 사신을 보내 만파식적을 노리자 거절한 후, 창고 깊은 곳에 보관했다 하며 이후 만파식적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2] 이때 고조부 김법선(金法宣), 증조부 김의관(金義寬), 할아버지 김위문(金魏文)도 함께 각각 대왕으로 추존하였다.[3] 선덕왕의 아버지 효방.[4] 5묘에서 나머지 세 자리는 원래 있던 시조대왕불천위로 정해져있던 태종대왕, 문무대왕. 원성왕부터 무열왕계는 아니지만 무열왕과 문무왕은 삼한일통의 업적을 부정할 순 없어 바꾸지 않았다. 사실 태종 무열왕원성왕의 증외고조부(증조할머니의 아버지)이기도 해서 모셔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다. 증조 세대에 해당하는 증조할머니는 따로 모시기 애매해서 그냥 문무왕을 배알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