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통

 


駱統
(193년 ~ 228년)[1]
1. 개요
2. 정사
2.1. 손권에게 임관 전
2.2. 손권에게 임관 후
3. 연의
4. 평가
5.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문관으로 자는 공서(公緒). 삼국지 오서에 자신의 열전이 따로 있는 인물이다.

2. 정사



2.1. 손권에게 임관 전


부친 낙준은 진군의 상까지 승진하지만 원술에게 살해당하고 200년 어머니는 개가해 화흠의 첩이 되는데, 이 모든 게 낙통이 8살 때의 일이었다. 그는 재가하게 된 어머니를 떠나 부친의 식객과 함께 회계로 가게 되었는데,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수레에 탔을 때 수레를 모는 자가 어머니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고 하니[2] 낙통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더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돌아보지 않을 뿐이오.

라며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적모를 매우 극진히 섬겼다고 하는데, 적모(嫡母/適母)라는 표현을 통해 낙통의 어머니는 낙준의 첩으로 낙통은 아버지의 식객, 적모와 함께 회계로 왔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기황이 들어 주위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자 낙통은 자신이 먹는 음식을 줄였고 그때 사랑스러우면서 성품이 인자하지만 과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있던 그의 누이가 어째서 슬퍼하냐고 묻자,

사대부들은 지게미조차 먹을 수 없는데, 나는 어찌하여 혼자만 배부르려고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누이는 어째서 자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자신의 식량을 낙통에게 준 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어머니 또한 자신의 것을 주위에 나눠주었으며, 이 일로 낙통은 명성을 얻게 된다.

2.2. 손권에게 임관 후


212년에 낙통은 손권이 시범적으로 오정의 상으로 임명했는데, 이때 1만 호가 넘는 백성들이 모두 그의 통치에 찬탄하자 손권은 그를 공조, 기도위로 임명하면서 손보#s-1(孫輔)의 딸을 시집보냈다. 어떤 것을 보고 들으면 한밤 중이라도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았으며, 손권에게 그 시대 정치의 이로움을 살피도록하며 언제나 인재를 중요시할 것을 권했다. 특히 그는 구제척인 방법까지 언급하는데 연회를 열 때 상을 내릴 때는 한 사람 한 사람 구별해서 의견을 진언하도록 하고 추운지 따듯한지 같은 사소한 것까지 질문하며 친밀감을 얻으라고 하니 손권은 그의 말을 받아들인다.
지방으로 나가 건충중랑장으로 임명되어 무리 3천 명을 통솔했는데, 217년에 능통#s-2이 죽자 그의 병사까지 거느렸다.[3] 당시 역병이 돌아 민호가 감소하는데도 노역이 빈번하자 낙통이 손권에게 상소를 올려 이 일에 폐단에 대해 말하자 손권이 감동해 그의 의견을 특히 중요시했다.
222년에 이릉대전에서는 육손을 따라 촉나라 군대를 격파해 편장군으로 승진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유비의 추격을 주장할 때 육손, 주연과 함께 조비의 남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조비가 남하해서 벌어진 삼로 전투에서는 유수에서 조인#s-1이 중주를 습격하기 위해 보낸 상조(常雕), 왕쌍, 제갈건을 엄규와 함께 물리치면서 상조를 죽이고 왕쌍을 사로잡아 신양정후 유수독으로 임명된다.
그는 정치에 이로운 의견을 많이 제출했는데, 너무 많아서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기록을 했을 정도였다. 낙통은 특히 소집하는 행위가 사악함을 조장하고 습속을 파괴시켜 반역할 마음을 낳게 했으므로 시급히 이런 사람에 대한 안배를 멈춰야 한다고 해 손권과 반복해서 논쟁해 결국에는 그의 방법을 시행했다. 224년에 장온글염의 사건으로 갇히자 평소 사이가 험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변호하지만 손권은 끝내 낙통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228년에 36세의 나이로 요절하니 동맹국에서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선 엑스트라로 딱 1회 등장한다.[4] 적벽대전에 앞서 제갈량패드립을 주무기로 오나라 문관들을 바르고 있을 때 한 번 발렸다가 다시 기운을 찾은 장소와 함께 제갈량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하나 황개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등장 끝.

4. 평가


낙통에 대한 평가로는 '대의가 분명하고 언사가 간절하며 이치는 지극했지만 손권이 듣는 것을 닫아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고 전했다.

5.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12, 13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의 설전 장면에 등장하기 때문인지 삼국지 시리즈에 등장한다. 전형적인 문관적 능력치였으나, 정사도 조금 반영하기 시작한 삼국지 9부터는 통솔력도 어느 정도 높게 나온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64/지력 72/정치력 77. 제사, 투함, 정란, 조영, 파괴,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57/지력 70/정치력 75/매력 68에 특기는 농업, 기술, 유인, 항변, 반박 5개. 통솔 75면 후기장수치곤 괜찮지만, 무력이고 지력이고 어중간하며 오나라 소속인지라 전투에서 굴리기엔 조금 미묘한 측면이 있다. 농업, 기술 특기가 있어서 내정으론 무난하게 부릴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58/지력 75/정치력 77/매력 77. 특기는 없는 거나 진배없는 전법인 강습이 특기이긴 하지만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균형잡혀 있고 병종 적성도 A가 꽤 있는 편이라 나쁘지 않다. 초기 시나리오나 영웅집결에서는 회계에서 재야로 나오게 되는데 하제 등과 같이 왕랑의 희망이 된다.
삼국지 12의 전법은 화계. 하필 오나라에 주유, 육손이 있는지라 묻힌다. 지력도 화계를 지닌 장수치고는 좀 미묘한 편이라 정 쓰겠다면 백성들의 진정으로 80 정도는 찍어 주는 게 좋다. 기본 통솔력은 70대 후반으로 괜찮은 편이라 지력만 좀 높여 주면 그냥저냥 쓸 수 있다. 일러스트는 두 손을 맞대고 제갈량과 설전을 하려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58/지력 75/정치력 77. 전법은 뜬금없이 공격강화인데, 12처럼 화계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 특기는 농업 2, 수영 1을 가지고 있고 전수특기는 농업이며 병종 적성은 창병 B/기병 C/궁병 A이다. 왕랑군이나 엄백호군이라면 전장에서 굴려야 한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6, 무력 57, 지력 73, 정치 76, 매력 74로 전작에 비해 무력과 정치력이 각각 1, 지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수전, 진흥, 개수, 주의는 예교, 정책은 성벽확장 Lv 3, 진형은 안행, 정란, 전법은 제사, 고무, 정란, 강습, 친애무장은 장온, 혐오무장은 원술이다.

[1] 나중에 능통의 생몰년도 오류를 짐작할 때 사용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중요하다.[2] 뒤돌아보고 한 번 더 인사하라는 것이다.[3] 능통이 237년에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237년 이면 낙통은 이미 죽어 있다.[4] 단, 인문본 기준 이름으로나마 2개 회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