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닝시

 


난닝 시 (광시 좡족 자치구)

간체자 南宁
번체자 南寧
영어 Nanning
1. 개요
2. 역사


1. 개요


중국 남부 광시 좡족 자치구지급시. 인구는 695만명으로 자치구의 수부이다. 구이린에서 서남쪽으로 200km, 광저우에서 서쪽으로 400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다만 좡족 자치구의 수부인데도 한족이 많이 거주하여 좡족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남쪽의 더운 기후 덕애 사탕수수 등의 열대 작물이 특산물이다. 큰 도시답게 난닝 궤도교통(난닝 지하철)이 있으며, 시내 남서쪽에 난닝 우수 국제공항이 있다.

2. 역사


동진 시대인 318년에 진흥현이 설치된 것이 현재 도시의 모태가 되었다. 당나라 시대에는 옹주(邕州)로 불렸고 북송 시대인 1076년에 베트남리 왕조와 전쟁이 일어나자 도시는 월남군에게 포위되기도 하였다. 이후 원나라 대인 1324년에 남녕로(南寧路), 즉 난닝루로 불리어 현재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남녕(南寧)은 '남쪽 지방의 안녕을 빈다'라는 뜻으로 서쪽의 안녕을 비는 의미인 칭하이 성의 성도 서녕(시닝)과 그 지명의 유래가 비슷하다. 명나라 대에는 '작은 난징'으로 불릴만큼 남부 내륙 산업의 요지로 부상하였으며, 청나라 말기에는 톈진 조약으로 개항장이 되었다.
하노이와 250여 km, 베트남 국경과는 120km 밖에 떨어지자 않은 도시인 이유로, 태평양 전쟁 시에는 인도차이나 반도 진출을 꾀하던 일본군의 집요한 공격을 받았다. 따라서 2차 대전 직후 인구는 9만에 불과하였는데, 이후 인근의 텅스텐 광산을 기반으로 한 경공업이 발달하며 과거의 영광을 회복, 현재에 이른다.
베트남 북동부 랑선성으로 연결되는 샹구이철도[1] 가 지나갈뿐만 아니라 윈난성 쿤밍으로 가는 난쿤철도가 있는 철도교통의 요지로 1979년 중월전쟁 당시 중국군이 침략로로 사용하기도 했고,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태양호에 탑승하여 직접 베트남으로 가는 루트가 되기도 했다.

[1] 湘桂铁路 : 후난성 헝양에서 광시자치구 구이린, 난닝을 거처 베트남 국경 요우이관(友谊关 : 우의관)을 연결하는 간선철도. 전장 1,026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