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 라조이
1. 소개
'''로저스 혼스비, 에디 콜린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2루수'''[1]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前 야구선수로 19세기에 내셔널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아메리칸 리그 출범 원년에 옮겨 '''4할2푼1리'''[2] 라는 엄청난 성적을 낸 위대한 4할 타자이다. 현역시절 포지션은 2루수였다. 공수주 3박자가 모두 뛰어났던 선수로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다. 본명이 '''나폴레옹 라조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계 미국인[3] 이며 선수시절 별명도 "The Frenchman", 즉 프랑스 남자였다.
2.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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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로드 아일랜드 주 운소켓에서 태어난 라조이는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히 지역 야구팀에서 뛰었다. 그러던 어느날, 라조이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1896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첫 시즌 39경기에 출전해 .326의 타율을 기록한 라조이는 다음해인 1897년, 라조이는 본격적으로 풀타임 2루수로 뛰면서 타율 .361, 197안타, 9홈런, 20도루, 127타점을 기록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1898년에는 타율 .324, 197안타, 6홈런, 25도루, 127타점을 기록하며 개인통산 최초로 타점왕을 차지했고,1899년에는 부상으로인해 시즌 절반밖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378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1900년에는 .337, 152안타, 7홈런, 22도루, 92타점을 기록했으며 시즌이 끝난 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라조이의 소속팀이던 필리스가 이에 소송을 제기하며 라조이는 필리스와 어슬레틱스의 소유권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하지만 라조이는 법정소송을 벌이면서도 아메리칸 리그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으로 이적한 첫 해 '''타율 .421, 232안타, 14홈런, 27도루, 125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해를 보낸다. 라조이는 도루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타격 7관왕을 차지했다.[4] 다음 해인 1902년에도 라조이는 타율 .378, 133안타, 7홈런, 19도루, 65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그러나 이 해 필리스와의 소송에서 패소한 라조이는 다시 필리스로 돌아갈 뻔했으나 아메리칸리그 총재였던 밴 존슨은 그런 라조이를 신생팀이던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로 이적시켜 버렸다.
이와중에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라조이를 얻게 된 클리블랜드 브롱코스는 아주 난리가 났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창단한지 2년 밖에 안된 신생 팀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스타 선수인 라조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라조이가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후 사람들은 라조이를 보기 위해 벌떼처럼 몰려들었고, 클리블랜드는 아예 팀명을 브롱코스에서 라조이의 이름인 냅을 따와 클리블랜드 냅스라고 팀명을 바꿔버렸다.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첫 해 라조이는 클리블랜드에서 타율 .379, 132안타, 7홈런, 19도루, 64타점을 기록했다. 다음 해인 1903년에는 타율 .344, 167안타, 7홈런, 21도루, 93타점을 기록하며 다시 도약했고 1904년에는 타율.376, 208안타, 5홈런, 29도루, 102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4관왕에 올랐고 이후에도 1910년에도 단 1리 차이로 타격2위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활약하다가 1914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로 이적, 2년을 더 뛰다가 191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3. 은퇴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투표에서는 첫 해에 최초의 5인에게 밀려 헌액되지 못했지만, 다음 해인 1937년에 85.58%의 득표율로 헌액되었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Second Base (3rd)
[1] 역대 최강 2루수를 다룰 때, 로저스 혼스비 다음을 냅 라조이로 치고, 보통 그 다음으로 치는 2루수가 1914년 MVP였던 에디 콜린스다. 냅 라조이 - 에디 콜린스 - 로저스 혼스비로 이어지는 2루수 레전드 라인의 선봉.[2]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의 커리어하이가 .419다.[3] 정확히 말하면 조상이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이다. 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냅 라조이를 낳았다. 나폴레옹을 좋아하던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4] 당시에 14홈런이면 절대 적은 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홈런왕치고도 엄청 많이 친 거다. 라조이가 뛰었던 시대는 데드볼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자. 그때의 야구공은 지금 쓰는 공과는 전혀 달랐다. 이로부터 8년 뒤 도루왕까지 해서 세계 프로야구사 유일무이한 8관왕을 차지한 타이 콥은 '''9홈런'''으로 홈런왕을 차지했다. 또한 이때보다 17년이나 지난 뒤의 투수 베이브 루스는 '''11홈런'''으로 투수로써 홈런왕이 되기도 했다. 1920년전까지 메이저리그는 심지어 '''7홈런 홈런왕'''도 있었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당시는 통산 100홈런 타자를 지금 시대의 통산 350~400홈런 타자급으로 봤다. 14홈런이면 지금으로 치면 50홈런은 쳤다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