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 타카유키
1. 소개
일본프로야구의 우완 투수로, 현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선발 투수다.
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와쿠이 히데아키와 함께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았다. 2007년 퍼시픽 리그 우수신인상을 수상했고 팀의 2008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며 시리즈 MVP로 선정되었다.
대학 진학 거쳐 다소 적잖은 나이에 프로에 데뷔했음에도 누적 스탯 증가 속도가 빠르다. 꾸준함의 대명사로 2013년에는 통산 1,000 투구이닝, 2014년에는 통산 1,000 탈삼진, 2016년에는 통산 100승 및 통산 1,500 투구이닝 고지를 밟았다.
2014년에는 QVC 마린 필드에서 치바 롯데 마린즈를 상대로 NPB 역대 78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2016년 6월 27일, 부상 후 복귀 첫 경기에서 타나베 노리오감독이 6.2이닝 동안 무려 140구를 던지게 했고 결국 7대 3으로 리드하던 게임을 역전패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의 나쁜 기억이 FA 행사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2.1. 라쿠텐 이글스 시절
2.1.1. 2017년 시즌
2016시즌 종료 후 FA권리를 행사하여 고향팀의 유니폼으로 갈아 입었다. 초반에 연승행진을 거두면서 에이스 노리모토 다카히로와 함께 팀을 선두로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여름 이후 급격하게 페이스가 무너지면서 8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팀도 본인의 부진과 함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8월 초순까지 위태위태하게 선두를 유지하던 팀은 4년만에 시즌 3위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한 것에 만족해야 했고 본인도 시즌 10승에 실패하고 8승 10패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에이스 노리모토가 1차전에 세이부 타선에 두들겨 맞으면서 경기를 내준 절체절명의 상황에 선발로 등판하게 되었다. 예전 홈 팬들의 야유 속에서 4대1 승리를 이끌면서 시리즈 전적 1승1패로 균형을 맞추고 업셋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소프트뱅크와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4차전에 선발등판했으나 초반에 투구수가 늘어나면서 5이닝 투구에 그쳤다. 3대2로 앞선 상황에서 승리투수의 요건을 갖추고 내려왔으나 구원으로 등판한 쑹자하오가 우치카와 세이이치에게 동점홈런 나카무라 아키라에게 역전홈런을 허용하면서 본인과 팀의 승리가 동시에 날아갔다. 본인은 팀이 리드한 상황에 내려오기는 했지만 이닝수 소화에 실패하면서 조기 불펜투입을 불가피하게 만든 점에서 실망스러운 마지막 등판이 됐다.
2.1.2. 2018년 시즌
2018시즌에는 2017년과는 달리 시즌 내내 안정된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팀은 에이스 노리모토의 부진 및 본인을 제외한 나머지 투수진의 폭망, 전년도 시즌보다 더 악화된 물방망이 등의 요인으로 시즌 초반부터 최하위로 쳐졌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승패차이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고 6월 중순에는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이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히라이시 요스케 대행 체제 하에서 어느정도 팀은 안정됐지만 초반에 패한 경기가 워낙 많아서 결국 한번도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본인은 이러한 팀 사정 속에서도 꾸준함을 유지하면서 11승으로 4년만에 두자리수 승수에 복귀했으며 2.72의 평균자책점으로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수상했고 처음으로 골든글러브(NPB)를 수상했다. 팀으로서는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 이후 5년만에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 홀더를 배출했으며 비록 팀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FA 이적 이후 2년간의 퍼포먼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2.1.3. 2019년 시즌
개막전 선발로 등판했지만 이 경기에서부터 허벅지의 통증을 호소하며 5회에 강판되었고 1달 반 가량을 결장했다. 5월에 다시 1군에 복귀해 호투했지만 7월에 편도선염으로 이탈하는 등 제대로 시즌을 치루지 못했다. 최종적으로 15경기(15선발)에 등판하여 93.2이닝을 던졌고 3승 5패 퀄리티스타트 9회 방어율 3.56 86탈삼진을 기록했다.
2019 WBSC 프리미어 12에 참가하는 사무라이 재팬에 합류했다. 첫 한일전/야구에 선발투수로 등판 예정 되어 한국의 신예 투수 이승호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일본의 타선이 2이닝동안 이승호와 이용찬을 상대로 7점을 먼저 뽑아내며 여유롭게 승을 가져가는 듯 했으나 4회 대한민국의 타선이 폭발하면서 본인도 3회에 황재균에게 맞은 솔로홈런까지 포함 6실점을 하고 강판되었다.
3. 여담
200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등번호 11번을 달고 있다. 라쿠텐으로 이적해서도 본인의 등번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세이부 시절엔 호리호리한 체격에 훈남이었으나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지 나이 든 티가 난다.
[1] 과거 1993~2006년까지 존재한 제도. 드래프트 상위 지명자가 원하는 구단을 선택해 입단할 수 있었던 제도다.